Dark Match 65.
우리 모두는 실패를 경험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아니, 아마 ‘실패’라는 단어를 다른 말로 쓰자면 ‘김준호’가 되겠지.
나는 실패한 삶을 살았으니까.
누군가는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 삶을 직접 경험했던 나는 그것이 실패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돌아왔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좀 두려웠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끙끙 앓았었다.
몇 번이고.
밤에 깨어나 혼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내 삶이 다시 실패하는 게 아닐지 계속해서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이번 삶은 운이 좋았다.
인정을 받았다.
나는 내 실력과 다른 이들의 노력으로 결국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그리고.
사모아 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생의 나처럼 삶 자체를 실패했던 인간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열매를 결국 먹었느냐 한다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고는 비주류였다.
그렇기에 수많은 실패를 겪었다.
우리 모두처럼.
그래, 인간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성공이라는 영광을 누리는 건 극히 소수였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마치 나처럼 남들은 가지지 못한 자신만의 무기를 한 가지씩 가지고 태어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하나 더.
시기, 혹은 운.
그 능력을 족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성공이 따라오는데.
아니.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느냐를 말하려는 게 아니고.
요는 간단했다.
사모아 고는 숱한 실패를 경험해왔다. 누구도 그가 회사로부터 선택받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공감’하는 것이었다.
사모아 고의 새로운 상품은 날개가 돋친 듯 팔려나갔고 지금은 3위권 내로 껑충 뛰어오른 상황이었다.
이 모든 게 사모아 고가 필사적으로 자신을 성공이라는 틀에 맞춰서 재단장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결과였다.
모든 건 우리가 계산한 대로 진행되었고 남은 건 각본의 진행뿐이었다.
2월 3주차 수요일.
사모아 고가 나타났다.
[워-어-! 워-어-! 워-어-!]
메인이벤트 직전에 내가 링에 올라 한창 또 입을 털어대던 시점이었다.
‘갑작스레’ 울려 퍼진 고의 테마곡에 내가 놀라서 돌아보았고 팬들은 강한 환호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Waaaaaaaaaaaaaaaaggghhh!!]
박수를 보내는 팬들.
그리고 뒤를 이어.
사모아 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페이스 페인팅까지.
한껏 진지한 얼굴로 링에 올라온 그가 내 어깨를 보란 듯이 퍽 밀치고 지나가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말을 꺼냈다.
“네 메시지에 응답하기 위해, 일부러 말도 않고 여기에 등장해주었지.”
[Waaaaaaaaaaaaaaaaaggghhh!!]
“좀 어때. 신. 요새는 그 목구멍으로 밥이 잘 넘어가시나? 아니면 레슬 임페리움에서 네 패배를 그리고 계시느라 잠도 못 자고 그러나?”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고.”
나는 지지 않고 다가섰다.
“터프한 척 애를 쓰시는군. 하지만 네가 말만 그렇다는 사실은 여기에 모여 있는 팬들이 다 알고 있지.”
눈빛과 눈빛이 충돌했다.
나는 고를 확실히 노려보았다.
“아니 근데,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겠어? 중요한 건 네가 여기에 와서 내 무대를 조지고 있다는 사실뿐이라고.”
“내가 못할 거라고 생각하나?”
“어느 쪽을 말하는 거야? 조지는 거? 아니면 터프한 척하는 거? 이 정도 됐으면 깨달아야 하지 않나? 너라는 놈은 절대 내게 안 된다는 거.”
“오오, 신.”
고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물론 네놈에게 몇 번이고 쓰리 카운트를 내어줬던 건 사실이지.”
고는 힘겨운 이야기를 했다.
분명 그럴 터였다.
자신의 계속된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더군다나 수컷 사이의 싸움을 앞에 두고서 그런다는 것은.
분명히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고는 당당하게 그걸 밝혔다.
그 말이 사실이었고, 자신을 더 끌어올려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실패를 존나 좋아해.”
[Uoooooooooooooooooooohhh!]
“난 실패를 환영하지! 내 인생은 그것의 연속일 테니까! 그리고 실패한 뒤 나는 항상 내 실패를 흡족해 하는 네놈의 얼굴을 상상하고 있거든! 신!”
거듭된 실패로 모두가 자신을 의심하고 한심하다 여기는 그 모든 순간을 사모아 고는 즐기고 있었다.
“왜냐면 그 건방진 낯짝을 내가 실패로부터 배우고 돌아와서 까버릴 순간은 정말로 달콤할 테니까……!”
“그럼 계속 상상만 하라고.”
신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너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내가 방금 말했듯이, Alpha, 계속해서 그렇게 생각하라고. 그래야 네놈의 일그러진 얼굴이 더 흥분될 테니.”
“아니, 솔직히 생각해봐. 고.”
신은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듯 옆으로 돌아섰다.
“넌 몇 번이고 내게 덤볐어. 그리고 그간 계속 날 의심했지. 내가 스쿼드와 연관이 있다느니 뭐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일이기는 해.”
왜냐면 그 일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서 신은 스쿼드와 연합했고 이 업계에 큰 사건을 불러왔으니 말이다.
“모두 네가 부상으로 전선에서 빠져있을 때의 일이지. 그때 네가 칼을 가는 동안에 나는 또 전설을 이룩했어.”
“패배로?”
“그거야 뭐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말이 다르군, 신.”
“중요한 건 하나야. 고. 나는 일대일로는 절대로 지지 않아. 특히 너를 상대로는! 아, 징징대는 시합이라면 네가 아마 나를 발라버릴 테지만.”
“내가 징징댄다고?”
“오! 그렇지! ‘신이 스쿼드와 붙어먹었어요! 흐에엥!’ 하고 울어대서 헬 인 어 셀로 붙어줬더니 거기에서도 깔끔하게 쓰리 카운트를 내주셨잖아?”
“이번에는 좀 다를 거다.”
“다르긴 뭐가 달라? 드류 맥킨마이어와 붙어서 또 지고! 그러다 이제 럼블 매치에서 우승은 했지! 그런데 그걸 가지고 사람들 눈치나 보면서 이제부터 매주 내 럼블 매치 우승 자격을 가지고 오픈 챌린지를 하겠다고?”
신은 갑작스레 고를 밀어붙였다.
“인정해! 고! 사실 너 스스로도 의심하고 있는 거잖아! 과연 내가 또 신에게 도전할 자격이 있는가하고!”
“그게 바로 네……!”
“닥치고 내 말이나 들어!”
챔피언이 벨트를 들어올렸다.
“너는 또 패배하게 될 거야! 왜냐면 그 상대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슬러니까……! 그게 바로 나! 신이지!!”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챈트가 이어졌다.
좌우로 팔을 힘껏 벌린 신은 그대로 자신의 위상을 있는 대로 드러냈다.
고는 압박감을 느꼈다.
각본 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실제 이 링 위에 올라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남자가, 팬들의 사랑과 믿음을 받는 주인공의 앞에 서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 앞에서 과연 어떤 평범한 레슬러가 당당하게 도전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사모아 고는 자신을 믿었다.
지금까지 겪어온 실패가.
자신을 바로 이곳까지 끌어올려주었다는 것을 믿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신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네 얼굴을 기다렸다.”
[Uooooooooooooooooooooohhh!]
“이 강자의 선에 편 자들이 너를 믿고, 그걸 내가 모조리 박살 낼 바로 그 순간이 너무나도 기대가 되는군.”
고는 팬들을 돌아보았다.
얼핏 그들을 모욕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사모아 고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남자였다.
“넌 지금 객관성을 잃었어.”
그렇게 반격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함께 일하는 동료를 빗자루로 비유할 수가 있지? 빗자루와 벨트를 걸고 경기를 한다고? 오히려 그게 더 겁쟁이 같은 짓이라고 보는데.”
“내가 언…….”
“너나 닥치고 듣는 법을 배워.”
[Uooooooooooooooooohhh!!]
순간 고가 말을 잘라내자 신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네 말대로 칼을 가는 중이다. 레슬 임페리움까지의 길은 험난할 테지. 하지만 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 그러니까 네놈처럼 빗자루와 싸우지 않고 레슬러와 붙을 거다.”
고는 완전히 흐름을 쥐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본 그는 신을 무시하고 입장로 쪽을 향해 버럭 외쳤다.
“어이 거기! 내가 누군지 모른다면 설명해주지! 나는 사모아 고다! 언젠가는 여기에서 일도 했었지!”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누구든 원하는 놈이 있으면 덤벼보라고! 한판 붙어보자! 럼블 매치의 우승자라는 권리를 걸고서 말이지!!”
그 말에 한 남자가 나왔다.
쿠궁……! 쿵-쿠궁-!!
[Uoooooooooooooooooooohhh!]
드류 맥킨마이어였다.
링으로 올라온 그는 챔피언인 신을 무시한 채 고의 손에서 마이크를 빼앗아 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모아 고. 네게는 갚을 게 있지.”
“오, 그러셔? 나도 마침 네놈을 기다렸는데. 드류 맥킨마이어.”
“하지만 그건 오늘 밤이 아니야. 나는 더 큰 무대를 원해. 왜냐면 그래야 내 승리가 더 널리 알려질 테고.”
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드류.
“저기서 있는 빌어먹을 개자식의 얼굴에 내 클레이모어를 꽂아 넣을 수 있을 테니까. 그것도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거대한 무대에서 말이야.”
[Waaaaaaaaaaaaaaaaaaggghhh!]
“그전에 날 쓰러뜨려 보시지.”
“그럴 생각이야. 고.”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섰다.
2월 말의 페이퍼뷰에서 결착이 나고 그 승자가 레슬 임페리움에서 챔피언십에 도전한다는 규칙.
하지만 이후로도.
그 승자가 드류 맥킨마이어가 되었건 아니면 사모아 고가 되었건.
두 사람은 계속해서 다른 선수들의 도전을 받아들일 터였다.
자신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 * *
물론 승자는 사모아 고였다.
2월 4주차에 열린 결전에서 드류를 제압하며 복수에 성공한 그는 깔끔하게 모든 정리를 끝마쳤다.
이제 남은 건 신뿐이었다.
이후로도 하이 미드 카더 라인에서 도전자들이 나타나 매주 경기를 가졌고, 고는 계속해서 승리했다.
그 위상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원래부터 마니아 팬들 사이에서 엄청난 평가를 받았던 사모아 고였다.
팬들은 점점 그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그 상품을 구매했으며 레슬 임페리움에서의 경기를 기대했다.
“어? 그거 사모아 고 티셔츠잖아.”
“요새 멋지더라고.”
“맞아. 그 자식, 경기도 일품이고.”
“원래 그런 대접을 받았어야 했다니까! 신 그 새끼가 타이틀 쥐고 안 내놓으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아니, 근데 신 말고 누가 타이틀을 그렇게 오래 쥐고 있을 수 있겠어?”
“야, 솔직히 너도 신 경기만 보면 과몰입해서 울어대면서 뭘 그러냐?”
“신 깎아내리면 멋있을 줄 아는 너드들이 너무 많다니까~.”
“솔직히 그 새끼가 GOAT지.”
“아니, 락콜드도 있고 로건도 있는데 신이 GOAT라고? 말이나 돼?”
“로건은 못 이기지.”
“시나도 못 이겨.”
“아니, 사실 하나만 따져봤을 때 바트 맥센이 신을 가장 밀어줬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바트가 신 존나 싫어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아니, 러셀을 스크류잡하고 러셀과 신의 라이벌리가 더 빛났잖아.”
“솔직히 존나 멋졌지.”
“야, 누가 그 순간에 WWF 버리고 배신당한 친구 따라서 ACW로 가냐?”
“그 새끼가 진짜 남자다.”
“그리고 신 VS 러셀. 조졌지.”
“우리는 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신의 시대도 계속해서 이어질 수는 없는 게 업계의 섭리였다.
다시 돌아오겠지만.
분명히 신은 그런 레슬러였지만.
그래도 업계 전체를 위해 다음 기수에게 시대를 건네주고 쉬어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였다.
신.
숀 시나.
러셀 오메가.
랜스 오튼.
이렇게 네 명의 뒤를 바싹 쫓아오고 있는, 메인 이벤터 급의 선수들.
개중에서 가장 특출 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바로 사모아 고였다.
그를 밀어줘서 업계의 새로운 스타로 만들어낸다면, 분명 위의 넷 중 하나가 빠지게 되더라도 업계는 앞으로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터였다.
그렇게 사모아 고는 다음 선수에게.
다음 선수는 또 다음 선수에게.
벨트와 벨트가 오가며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팬들이 열광하고 납득할 수 있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바로 그게 프로레슬링이었다.
3월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신은 계속해서 사모아 고와 대립을 지속하면서 팬들의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정말 알 수 없는 승부였다.
이야기를 생각하면 사모아 고의 대관식이 이곳에서 열리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엄청나게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이 패배하는 것은 분명히 좀 도박수에 가까웠다.
결국 그렇게 해서 사모아 고가 챔피언이 되었을 때, 팬들의 반응이 안 좋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걸 최대한 막기 위해 우리가 지금까지 공을 들여온 거지만.’
팬들이 그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생각할 여유는 없을 터라 분명 이번 승부를 기대할 게 확실했다.
레슬 임페리움까지 단 하루.
경기장 근처의 호텔에 도착해 있었던 신은 마지막으로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내일 밤을 기대하고 있었다.
벨트를 내려놓는다.
그건 정말 멋진 일이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유지를 이어받아 이렇게 되었듯.
사모아 고도 자신을 이기면서 역사의 한 순간을 만들어내게 될 테니까.
‘그럴 가치가 있는 놈이지.’
SIN VS Samoa Goe.
모두가 기대하는 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