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85화 (585/634)

Dark Match 71.

잠깐의 긴장이 흘렀다.

최근 들어 살이 더 쪄서 턱이 투 턱을 넘어서 없을 지경이 된 폴 헤이건이 입을 쩍하고 벌렸다.

옆에 서있던 바쿠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내가 레스너를 모를 리는 없지만, 그냥 솔직히 말해 좀 고깝잖아?

신이라고 ‘했던가?’라니.

네가 날 알아보고 존경을 표해도 모자랄 판에 앉아서 그딴 식으로 굴어?

약간 흐르는 긴장감.

나는 레스너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서로 악력 테스트.

처음에 슬그머니 힘을 주었던 레스너의 손아귀가 점점 바이스처럼 내 손을 조여들었지만 적당히 버텨냈다.

레스너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케이, 신.”

이 남자는 영악했다.

상대방의 깜냥을 분석해보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밑이라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무시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나는.

슈퍼 젠틀하고 슈퍼 섹시하지만, 누가 날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실제로 레스너는 전생에 WWF에 돌아온 이후로 숀 시나를 ‘내가 없어서 스타가 될 수 있었던 놈’이라며 엄청나게 무시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오, 하지만.

내 앞에서는 그렇게 못 하지.

레스너가 웃으며 말했다.

“네 업적은 잘 알고 있지.”

“그래, 나도 네 업적은 잘 알아.”

나도 그러면 좋게 대답해주는 거다.

서로 존중하고 협력해서 좋은 분위기 속에 만들어지는 게 레슬링이지.

별거 있겠는가.

“아무튼, 어쩐 일이야?”

“이 양반 좀 빌려줘.”

“헤이건?”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레스너.

다소 의아한 행동이었다.

물론 두 사람이 데뷔 초기부터 매니저와 선수의 관계로서 아주 멋진 호흡을 선보였던 건 맞는 말이었다.

브룩 레스너는 말도 잘 해서 그러한 점이 종합 격투기 쪽에서도 주목을 받았지만 큰 문제점이 하나 존재했다.

바로 목소리가 얇다는 점이었다.

그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WWF에서는 폴 헤이건을 붙여주었고, 두 사람의 콤비는 레스너의 제왕적인 면모를 잘 살리는 것으로 꽤 유명했었다.

이번에도 아마 복귀한 다음에 그런 식으로 가고자 하는 모양인데.

‘왜 본인이 직접?’

“이봐, 레스너.”

나는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회사 간의 비즈니스를 우리가 여기에서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잖아?”

“그 말이 맞군.”

의외로 순순히 동조하는 레스너.

“내가 너무 마음이 급했어.”

“요새 러셀하고 잘 대립하는 것 같던데. 뭔가 문제라도 있어서 그래?”

“폴 헤이건 같은 남자가 옆에 있어줬으면 하고 있거든.”

씨익 웃는 레스너.

나는 순간 눈썹이 찡그려지려는 것을 참으며 고민에 잠겼다.

브룩 레스너.

내가 아는 그가 아니었다.

“그리고 현재 이 업계의 정상에 서있는 선수가 어떤지 보고 싶어서.”

“보시다시피 이런데.”

“나중에 돈 되는 일 좀 하자고.”

“레스너.”

슬쩍 끼어드는 바쿠.

“온 김에 내일이 쇼인데 얼굴 한 번 비추고 가는 건 어떤가?”

“오, 그거 나쁘지 않은데요.”

“……?”

“어떻게 되는 거죠?”

“신과 페이스 투 페이스 정도면 어떨까 싶은데. 분명히 돈이 될 거야.”

“출연료는?”

“당연히 지불해줘야지.”

“멋지군요.”

레스너가 껄껄 웃었다.

“요즘 이 업계가 참 재미있어졌어요. 옛날에는 뭐 숨만 쉬어도 바트가 그러지 말라면서 날뛰었는데.”

“그 모든 게 이 친구 덕이지.”

“시대의 아이콘. 신이로군요.”

뭐야.

혹시 종합격투기하면서 뇌진탕을 너무 많이 겪은 레스너가 아닐까.

“아무튼 전 좋습니다. 나중에 신과 경기를 한다면 분명 돈이 될 테니 미리 반응을 좀 봐두는 게 좋겠죠.”

“신, 네 생각은 어떤가?”

“……그러시죠.”

나는 레스너를 빤히 보며 말했다.

* * *

그리고 찾아온 수요일 밤.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아주 작은.

일말의 불안감.

하지만 그걸 한번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브룩 레스너와 링에서 페이스 투 페이스를 하기로 했다.

‘원래는 조금 더 링 적응 훈련을 마친 뒤에 돌아가기로 했지만.’

대략 6월 정도에?

하지만 그 바쁘신 레스너 선생께서 직접 오케이 사인을 내리셨으므로 이에 대한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게다가.

‘레스너인가.’

그와 페이스 투 페이스를 했을 때, 나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전생에는 나도 레스너를 전혀 안 만나본 건 아니었다.

그때.

쿵-퓨리 시절에 레스너에게 덤벼들었다가 깨지는 역할로 출연을 했었다.

그때 압도적인 그 등빨에 밀려 정말 허망할 정도로 쉽게 얻어터졌었는데.

지금은 과연 어떨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링에 올랐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Waaaaaaaaaaaaaaaaaaggghhhh!]

팬들의 환호가 빗발치는 링.

오프닝이 끝난 뒤의 쇼.

나는 팀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천천히 링으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신! Break A Leg!”

“야, 죽여주게 하고 와라!”

“평소처럼!”

“슈퍼 평소처럼 하죠.”

나는 씨익 웃었다.

벨트를 모두 잃은 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가 자유로운 것을 느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일부러 좀 뜸을 들이며 서있자 팬들의 챈트가 훨씬 더 강해졌다.

그리고 난.

링으로 나갔다.

무게감을 팍 잡고.

거기에서 살살 건들거리고.

연기를 헤치고 나가, 불꽃이 휘몰아치고 있는 입장로 위에 우뚝 섰다.

[Waaaaaaaaaaaaaaaaaaaggghhh!]

더욱 커지는 환호.

맨 앞자리의 팬들이 팔을 뻗어왔고 나는 그들과 하이파이브를 해주며 천천히 링에 올라갔다.

그리고 로프를 밟고 올라서자 경기장 전체가 훤히 보이는 게 좋았다.

2,000여 명의 관객.

적은 수였지만 PWA의 매력은 오히려 거기에서 기인했다.

멋진 복귀였다.

……고작 한 달 만이지만.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We Want SIN!]

짝! 짝! 짝짝짝!

[We Want SIN!]

짝! 짝! 짝짝짝!

[We Want SIN!]

짝! 짝! 짝짝짝!

이거 원.

말도 못 하겠군.

나는 말하는 대신 입가에 가져다 대고 있던 마이크를 내리고 씨익 웃었다.

챈트가 더 강해졌다.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확실히 그런 상황이었다.

‘어썸’했다.

하지만.

“아니지, 아니야.”

나는 그걸 부정했다.

순간 침묵이 감도는 경기장.

나는 팬들을 가지고 놀았다.

“‘너희’가 어썸한 거야.”

[Waaaaaaaaaaaaaaaaaaggghhh!]

환호가 더 커졌다.

그리고 챈트가 변화했다.

[We Are Awesome!]

짝! 짝! 짝짝짝!

[We Are Awesome!]

짝! 짝! 짝짝짝!

[We Are Awesome!]

짝! 짝! 짝짝짝!

“좋아, 언제까지 할 수 있나 보지.”

그렇게 챈트가 이어졌다.

주어진 10분의 시간.

원래는 좀 더 길게 말을 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팬들과 소통하면서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아직.

나는 업계의 일인자였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쓰러뜨린 사모아 고의 위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상태였다.

“좋아!”

하지만 말은 해야지.

“내가 돌아왔어.”

[Yeeeeeeeeeeeeeeeeeeeaaahhh!]

“그리고 간단히 말해서, 사모아 고는 정말로 강력한 놈이었어. 꿈을 이룬 녀석을 축하해주고 싶군.”

[GOE! GOE! GOE! GOE!]

“업계 최강을 꺾고 자신 역시 최고라는 사실을 증명해냈으니 말이야.”

[Waaaaaaaaaaaaaaaaaaggghhh!]

“인정하지. 내가 졌어.”

나는 심호흡했다.

그리고 로프를 붙잡았다.

내 생각보다 더 세게.

감정을 담아.

이야기했다.

“하지만 다음엔 그렇지 않을 거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인정한다니. 내가 졌다느니.

다 패배자의 말이었다.

나는 패배자였다.

하지만 계속 그러진 않을 거다.

“한끝 차이였어! 너로 인해 나 역시 아직 배울 게 많았음을 느꼈지! 그러니까 기다려라! 고! 아니……!”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러셀 오메가! 나를 쓰러뜨리고 타이틀을 가져간 빌어먹을 ‘최고’들!”

나는.

반드시.

“너희들에게 패배를 돌려줄 테니.”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챈트가 이어졌다.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해서 일단 복귀 세그먼트를 끝마치고 다음 대립 상대를 PWA에서 찾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누군가 끼어들었다.

울려 퍼지는 전자음.

순간 모두가 경악했다.

그 복귀 때처럼.

[Uooooooooooooooooooohhh?!]

울려 퍼지는 비트.

링으로 나오는 Beast.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브룩 레스너가 PWA에 등장했다.

초대형 사태였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미친 듯이 환호하는 팬들.

그런 가운데, 눈썹을 찡그리고 내 얼굴을 바라보던 브룩 레스너가 리듬을 타고 이내 큰 소리로 포효했다.

그리고 링으로 올라왔다.

더 말은 필요 없었다.

레스너의 테마 음악이 끝나고 조명이 원래대로 돌아온 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키 차이는 조금 났다.

상대가 3센티미터 정도 컸다.

브룩의 키는 191cm.

여기에 부츠 높이를 더해서 193cm라고, 밖에는 그렇게 홍보가 되었다.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팬들의 챈트가 다시 이어졌다.

나는 이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었다.

현재에게 도전하는 과거.

나는 선글라스까지 벗고서 브룩 레스너의 얼굴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리고 솔직하게 생각했다.

만약에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정답은 ‘힘들겠다’였다.

브룩 레스너는 전문 격투가였다.

UFC 챔피언인데다가 체급 역시 나와 비교했을 때 20kg은 더 나갔다.

게다가 올 아메리칸 출신.

뒷골목에서 올라온 내가 실전 룰로 맞붙는다고 한들 질 가능성이 높겠지.

하지만 여기는 프로레슬링.

프로레슬링을 잘하는 놈이 이긴다.

그렇기에 나는 지지 않겠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레스너를 노려보았고.

놈이 나를 거칠게 툭 건들며 지나가 마이크를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이 뭐였지?”

“나도 모르는데.”

[Uooooooooooooooooohhh!!]

레스너와 나는 우리가 처음에 약간 했던 기 싸움을 응용해서 자연스럽게 마이크워크로 이어갔다.

“네 이름은 뭔데?”

“숫자는 기억하는지 모르겠군.”

“내 링에 올라온 병신을 내쫓기 위해서는 슈퍼 킥 한 방이면 된다는 것쯤은 당연히 잘 알고 있지.”

나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초장부터 험악한 분위기.

“네가 이 링에서 난장을 까는 동안 내가 이 업계 바깥에서 뭘 이뤘는지는 알고 하는 소리인가? 신?”

“옛날 경력을 써먹고 싶다면 여기가 아니라 고용노동부를 찾아가는 게 좋아. 레스너. 거기라면 네 옛날 경력도 쳐줄 테니까 말이야.”

[Waaaaaaaaaaaaaaaaaggghhh!!]

환호하는 팬들.

그렇다.

여기는 프로레슬링의 링.

그 위라면 나는 그 누가 상대라고 하더라도. 아니, 더욱이 브룩 레스너라는 남자가 상대였기 때문에.

절대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레스너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실제로 러셀이 내내 파괴적인 위용을 보이는 레스너에게 밀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나는 잘 맞붙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는 레스너가 내게 한 방 먹이고 떠나는 게 여러모로 좋다는 것이었다.

레스너가 악수를 청해왔다.

그걸 의심하며 빤히 바라보자니 녀석이 슬쩍 앞으로 나간 내 손을 잡고는 그대로 헤드벗을 날렸다.

빠악-!!

울려 퍼지는 소리.

순간 골이 띵해졌다.

‘이, 새끼.’

나는 순간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고 뒤이어 레스너는 바닥에 쓰러진 내 위에 올라타 마구잡이로 주먹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거기에 얻어맞던 나는 순간 섞이는 살기를 알아차리고 옆으로 빠졌다.

이 새끼, 이거.

지금 나에게 슛을 걸고 있다.

일단은 피해야.

그렇게 생각하며 옆으로 빠진 순간, 나는 레스너가 내 옆구리 앞에서 자세를 잡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녀석의 무릎이.

내 6번 갈비뼈를 힘차게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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