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86화 (586/634)

Dark Match 72.

순간 느껴지는 진득한 통증.

우드득-!

그리고 몸 안에서 이어지는 불쾌한 소리.

“크, 학……!”

나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확실히 느껴졌다.

‘이거 조졌는데.’

갈비뼈가 나갔다.

순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슈퍼 아파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어서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잠시 심호흡을 했다.

이거 움직이면 안 된다.

더 움직였다간 부러진 갈비뼈가 내장을 찌르며 큰 일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직후.

나는 레스너의 존재를 느꼈다.

그가 내 앞에 서서는 입 안에서 걸쭉한 뭔가를 뱉었다. 바로 침이었다.

그게 내 이마를 타고 흘렀다.

“좆도 아닌 새끼가.”

그리고 이어지는 한마디.

나는 어이가 없어 웃으며 되물었다.

“너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냐?”

“뭐?”

“좆도 아니라고……?”

통증 속에서.

나는 놈을 올려다보았다.

“넌 좆된 줄 알아라.”

거기에 내 발을 밟는 레스너.

진짜 통증에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자니, 이내 누군가가 링 안으로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바로 바쿠였다.

“레스너!!”

이건 실제 상황이었다.

완전히 이성을 잃은 그가 레스너를 밀어냈다. 거기에 레스너는 양팔을 위로 들며 뒤로 물러났다.

그래, 아무리 레스너라고 하더라도 바쿠와 문제를 빚고 싶진 않겠지.

하지만 녀석은 착각하고 있었다.

놈은 바쿠뿐만이 아니라.

나와도 문제를 만들어선 안 됐다.

“신, 괜찮냐?”

“부러진 거 같아요.”

“제기랄.”

내 상태를 살피는 바쿠.

깊게 심호흡을 했다.

나는 허세를 떠는 인간이 아니다.

또한 거짓말쟁이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레스너는 지금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만 것이었다.

* * *

“죄송합니다.”

레스너는 짧게 사과했다.

거기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서있던 다른 선수들이 레스너를 몰아붙였다.

“지금 장난하냐?!”

“그딴 식으로 할 거면 팔각으로 돌아가던가! 힘자랑이 하고 싶으면 어디 고릴라 우리라도 들어가라고!!”

“이 개새끼가!”

“불행한 사고였어.”

고개를 숙이고 듣는 레스너.

거기에서 또 선수들도 딱히 뭐라 할 말은 없어져서 얌전히 뒤쪽에 열이 받아서 서있던 바쿠를 돌아보았다.

바쿠는 레스너를 향해 다가섰다.

“레스너.”

“옙.”

“실수였나?”

“제 모든 것을 걸고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비난할 수는 없겠군.”

“…….”

“신인 때도 하드코어 말리를 그렇게 부상 입힌 전적이 있었지, 아마.”

“그 이후로 조심한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너무 흥분한 모양입니다.”

“그래, 흥분했겠지.”

정곡을 찌르는 바쿠.

레스너는 속으로 웃었다.

신.

사실 그 좆도 아닌 동양인이 뭐라고 했는지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종합격투기의 팔각 링에서도 마주할 때면 죽어라 두들겨 팼던 것이 바로 같은 동양인 놈들이었으니까.

신은 자기가 뭐라도 된다는 듯이 허세를 부렸지만 레스너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고 비웃었다.

당연했다.

그놈은 자신이 업계에 없었기 때문에 탑 자리를 꿰찰 수 있었으니까.

뼈를 부러뜨릴 마음까지는 결코 없었지만 좀 손을 봐줘야겠다 싶어서 날린 니 킥이 아주 제대로 들어갔다.

사과를 마치고 나온 레스너는 밤 비행기를 통해서 ACW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몇 개 없는 짐을 챙겼다.

그러자니 돌연 헤이건이 찾아왔다.

“브룩.”

“폴, 무슨 일입니까?”

“자네가 그런 실수를 할 줄은 몰랐네. 그것도 신을 상대로 말이야.”

“실수는 언제나 일어나는 법이죠.”

“……정말 실수겠지?”

“그야 물론이죠. 제가 그 친구를 건드려서 좋을 게 전혀 없잖습니까?”

“그것도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는 헤이건.

일단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레스너가 경기장을 떠난 뒤, 폴 헤이건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리가 없잖냐.’

그는 레스너에 대해 잘 알았다.

레스너는 천재였다.

하드코어 말리의 경우처럼 링 위에서 체력도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실수를 할 남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헤이건은 확실히 알았다.

의도적이었다.

이유도 대충 짐작이 갔다.

신이 자신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정말 별거 아닌 놈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하지만.

‘이건 정말 실수한 거야. 레스너.’

헤이건은 지금 이 업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선수를 부상 입히고 말았다.

그건 분명 큰 파장을 낳을 터였다.

* * *

심각한 부상이었다.

다행히 수술까지는 갈 필요가 없었지만 6번 갈비뼈가 제대로 부러졌다.

뼈를 고정하는데 7주.

그리고 이후 재활에 3개월.

그런 진단을 받은 나는 올해는 완전히 시즌 아웃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레슬링이 가능해질 때까지 적어도 6개월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좀 냉정했다.

‘그래.’

나도 나이를 먹었고.

그전까지 더블 월드 타이틀 홀더로서 활동하면서 쌓인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결국 일이 벌어졌다.

그 사실은 금방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업계에는 엄청난 비상이 걸렸다.

당장 내가 빠지면 업계의 윤활유 역할을 해줄 인물이 사라지는 셈이었다.

다들 열이 받았다.

바쿠도, 할리도.

티파니도, 선수들도.

하지만 딱히 뭘 할 수는 없었다.

브룩 레스너가 정말 그럴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해명했기에.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건 업계에서 분명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바쿠로부터 직접 전해듣고는 어이가 없어져 웃고 말았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그래서 그냥 그렇게 뒀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일로 인해서 레스너가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비난을 받고, 행여나 떠나게 되는 사태를 막고 싶었다.

왜냐면.

‘그 새끼는 내가 죽여야 되니까.’

오랜만에 제대로 열이 받았다.

바트 맥센이 러셀 오메가를 배신했을 때보다 솔직히 더 열이 받았다.

레스너는 이 업계의 존중을 따르지 않는 사내였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분명 많은 문제를 야기할 터.

지금 그랬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 문제를 누군가에게 말한다고 해서 해결되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냥 놔뒀다.

왜냐면 언제나 그렇듯.

신은 모든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내였고 그걸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레스너가 지금처럼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켜주기를 바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되었다.

2013년 6월, ACW 슈퍼 브롤.

[러셀 오메가가 무너집니다!!]

[충격적인 결과입니다! 브룩 레스너! 종합격투기 업계에서 돌아온 Beast가 월드 챔피언을 쓰러뜨립니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은 레스너에게 환호했다.

그 옆에는 폴 헤이건이 있었다.

일단은 ‘악역’인 두 사람.

하지만 레스너의 카리스마란 우리에게 팬들이 거는 기대감처럼 역할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팬들은 그에게 환호했다.

레스너는 벨트를 별거 아닌 듯 헤이건에게 넘겨주고는 퇴장했다.

솔직히 그 모습이 특유의 카리스마를 뽐낸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레스너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였고, 폴 헤이건의 존재가 그를 옆에서 완벽하게 도와주고 있었다.

[Ladies And Gentlemen! My Name! Is! Paul Heygun!]

레스너가 계약 문제로 인해 텔레비전에 출연하지 않을 때도 나와서 신이 나 떠들어대는 헤이건.

러셀 오메가가 재도전을 천명하자니 그 앞에 선 헤이건은 아주 유려한 말 솜씨로 상대를 도발했다.

[러셀 오메가! 아니, 나는 자넬 아직도 러셀 하트라고 부르고 싶군!]

[Uooooooooooooooooohhh!]

[자네는 최고의 레슬러야! 지금 뼈가 부러져 쉬고 있는 그 친구와의 라이벌리가 자네를 증명해주고 있지!!]

하지만.

[자네가 상대하는 건 인간이 아니야. The Conqueror! The Beast! 인간이 아닌 걸 이길 수는 없는 법!]

러셀이 헤이건을 위협했다.

거기에 헤이건이 겁을 먹었지만 브룩 레스너는 결코 링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가끔씩.

한 달에 한 번 정도?

링에 나와서 깔끔하게 러셀을 F5로 제압하고는 다시 링에서 퇴장했다.

그는 철저하게 실리를 쫓는 사람이었고 그에 따라서 자신의 계약을 이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레스너는 위클리 쇼에 최대 한 달에 한 번만 나온다는 계약을 맺었다.

그러므로 그것만 이행하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벨트를 가졌건 뭐건 무시하고 그냥 쉬었다.

그러므로 그 자리를 헤이건이 채우고 러셀은 완전히 붕 뜨게 되고.

뼈가 겨우 제 자리를 잡았을 즈음해서 러셀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완전히 죽을 맛이야.]

녀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레스너 그 자식은 제대로 할 마음도 없어. 완전히 최악이지. 시청률은 나날이 개판이 되어가고 있다고.]

그 말이 맞았다.

브룩 레스너의 복귀가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가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자 시청률은 나날이 떨어져만 갔고.

레스너가 나올 때만 바짝 올랐다.

그리고 여름의 대시 앳 더 비치에서 러셀 오메가 VS 브룩 레스너에서는 또 페이퍼뷰 구매량이 최대치를 경신했다.

그러니 데릭 비숍은 스스로가 레스너를 영입했기에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잔뜩 떠들어댔지만.

결국 회사가 레스너만 밀어주는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레스너가 벨트를 가져가고는 그가 최고라며 떠들고 있는 상황이니까 다른 선수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는 파묻혀버리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게 파트 타이머의 단점이었다.

현역 선수들이 쌔빠지게 위클리 쇼에서 굴러도 결국 중요 페이퍼뷰에나 겨우 얼굴을 드러내는 파트 타이머가 승리를 챙겨가버리고 마니까.

결국 레스너 없이는 2인자들의 싸움이 될 뿐이었고 좋은 반응이 나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ACW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고 러셀을 다시 레스너의 먹잇감으로 던져주면서 최악의 선택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레스너가 나오면 모든 선수들이 병신이 되었다. 그전까지 나와 치열하게 싸웠던 드류나 코디 같은 선수들이 5분도 되지 않아 초살 당했다.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나는 집에서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다시금 전의를 불태웠다.

업계에서는 이 기회에 1년 정도 쉬면서 천천히 몸을 회복하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지.’

내년 스타게이트라는 골을 기다리면서 나는 빡센 재활 훈련을 견뎌냈다.

솔직히 말해 괴로운 시간이었다.

내 새로운 인생에서 최초로 찾아온 시련이라고 하더라도 좋을 터였다.

하지만.

사모아 고가 그렇듯이.

나는 시련을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존나게 좋아했다.

애초에 두 번째 삶을 살면서도 이렇게 고통스러운 길을 자청했던 나였다.

그러므로 이건 별것도 아니었다.

레스너를 조질 방법은 차고 넘쳤다.

그렇기에 나는.

이어지는 레슬링 월드 시리즈 각본 역시도 복수의 칼을 갈며 지켜보았다.

레스너는 완전히 깡패였다.

폴 헤이건의 이야기를 듣고 WWF로 찾아간 그는 WWF의 아이콘인 숀 시나를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스스로 마이크워크까지 해가며.

거기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숀 시나는 그냥 내가 없으니까 이 업계에서 좀 떠오른 등신일 뿐이야.]

정확히 거기까지.

그리고 레스너는 옆의 헤이건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Paul, Say Something Stupid.]

확실히 뇌리에 남는 말이었다.

팬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브룩 레스너는 목소리가 좋지 않아서 폴 헤이건의 도움을 받고 있을 뿐, 꽤나 유창한 말솜씨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링으로 나온 시나.

레슬링 월드 시리즈에서 펼쳐진 두 명의 대결은 레스너의 승리로 끝났다.

물론 반대편에서 사모아 고가 러셀 오메가에게 이기면서 WWF 측도 잃은 것만 있지는 않았지만.

티파니는 그런 부킹에 대해서 내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다.

[아무리 그래도 ACW 측에서 챔피언은 이겨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요.]

ACW가 러셀 오메가 이후로 회사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밀어주는 선수가 바로 브룩 레스너란 말이었다.

하지만.

웃기지 않은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위클리 쇼에 제대로 출연하지도 않는 선수가, 이 업계의 그 누구보다 헌신하는 선수 두 명을 이겨버리다니.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전생에도 그랬다.

그때 당시 WWF는 바트 맥센이 집권 중이었고 ACW가 망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단계였다.

그때 떠오른 게 C.M. 펑크.

그리고 대니얼 라이언 같은 이들.

마지막으로 숀 시나까지.

하지만 회사는, 그리고 바트 맥센은 그때도 돌아온 브룩 레스너를 회사의 탑 가이로서 밀어주고 말았다.

그러니 현역 선수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쌓이고 그들이 재능을 펼칠 기회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지금 이 상황이 그것과 굉장히 비슷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하면, 혹시나 내 착각일지 싶었다.

하지만 나는 기다렸다.

나를 ‘만들면서’.

복귀 날만을 기다리며 지금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건방지게 한마디 하자면.

지금 이 업계는 내가 만들어냈다.

적어도 나는 선수 중에서는 그 누구보다 그런 말을 할 만한 자격이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없어지자, 이 업계가 금방 또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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