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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의 신-588화 (588/634)

Dark Match 74.

풀 스로틀로부터 한 달 전.

나는 PWA의 링 프로듀서들과 링에서 마지막으로 몸 상태를 점검했다.

일단 바쿠.

가볍게 서로 락 업으로 시작했다.

쿵-!

역시 대단한 완력이었다.

하지만 이번 부상을 통해 난 말 그대로 와신상담의 각오로 재활을 했다.

그렇기에 밀리지 않았다.

“음…….”

순간 좀 놀란 바쿠를 밀어내고 이내 번쩍 들어서 반대편으로 넘겨버렸다.

콰앙-!

“후우.”

그다음은 그렉 하트.

링 위로 올라온 그와 체인 레슬링.

팔과 팔을 얽으며, 그렉은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듯이 내 팔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았다.

그걸 받아주었다.

순간 팔이 꺾이자 뒤쪽으로 가볍게 텀블링을 돌면서 빠져나왔고 이어 그렉을 힘껏 당겨 암 드래그로 넘겼다.

파앙-!

날카로운 파열음.

“좋은데?”

자리에서 일어선 그렉이 미소를 지었고 우리는 좀 더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서 맞붙기 시작했다.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다른 곳에서 훈련을 하던 녀석들이 모두 그렉과 나의 공방을 보았다.

프로레슬링의 공방.

그건 화려하되, 결코 서커스의 선을 넘어서는 안 되는 복잡한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그 근본은 레슬링.

그렉이 나를 넘기고.

내가 그렉을 넘기며.

‘어라?’

샤프 슈터에 걸리려고 했다.

나는 뒤쪽으로 돌아 자세를 잡으려는 그렉의 다리를 당겨 무너뜨렸다.

그리고 반대로 슈터를 걸었다.

상대가 반응할 새도 없이.

“끄윽!”

탭을 치는 그렉.

풀어준 뒤 그 팔을 당겨 일으켜 세운 나는 그렉과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아직 안 죽으셨는데요.”

“네가 이렇게 슈터를 잘 걸어버리면 난 이제 뭘 해서 먹고 살면 좋냐?”

“최고에게서 배운 결과죠.”

나는 가볍게 너스레를 떨었다.

뒤이어 마지막 선수가 들어왔다.

바로 베이다.

“이제 내 차례군.”

“붙어보죠.”

체중 110kg.

생존을 위해 다이어트를 감행한 그는 이제 꽤 날렵한 체형으로 보였다.

이제 문제인 심장도 고위험군까지는 아니라고 해, 이곳 PWA에서 선수들을 가르치며 인생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패면서’ 말이다.

그렉이 어깨를 으쓱한 뒤 아래로 내려갔고 마지막 시험이 시작되었다.

다짜고짜 해머부터 날리는 베이다.

뻐억-!!

살과 살이 부딪혔다.

연수를 베어내듯 이어지는 통증.

그걸 버텨낸 나는 곧바로 헤드벗을 날리면서 베이다의 공격에 응했다.

쩌억!

힘과 힘.

기세와 기세.

상대의 허리를 뒤에서 잡고 저먼으로 뽑아든 나는 반대편으로 넘겼다.

투콰앙-!!

중심을 잡는 베이다.

그 힘은 여전했다.

수플렉스 포지션으로 뽑힌 나는 등부터 떨어지며 안전하게 낙법을 쳤다.

곧바로 다시 일어섰다.

싸움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

지금 내 상태는 최고였다.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고 마치 고릴라처럼 힘과 유연성을 겸비한 듯했다. 직립 보행에 맞지 않는 온갖 자세를 다 취해도 전혀 힘이 안 들었다.

이게 힘.

이게 프로레슬러.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가장 강력한 자신을 되찾게 된 것 같아 무척 기뻤다.

난 베이다를 힘껏 들었다.

그리고 옆으로 몸을 돌려 우뚝 정지하면서 안티 크라이스트를 날렸다.

아, 물론.

지면에 꽂아버리지는 않고 마지막에 가서 목을 걸고 넘겨 안전하게 등부터 땅에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파앙!

울려 퍼지는 파열음.

“좋아.”

딱히 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몸에 힘이 흘러넘치는 것을 느끼며 벌떡 일어섰다.

바쿠가 다가왔다.

“그 표정을 보아하니, 딱히 우리가 평가를 내릴 필요는 없겠구먼.”

“예, 기분 죽여주는데요.”

“……준비가 모두 끝났군.”

고개를 끄덕이는 베이다.

그래.

이로서 종합격투기를 휩쓸고 돌아온 The Beast와 맞붙을 준비가 끝났다.

나는 곧바로 데릭 비숍과 연락했다.

그쪽과 일하고 싶다.

그런 제안에 데릭 비숍은 당연히 좋은 반응을 보여왔다.

[저희는 좋죠! 브룩 레스너에게 복수를 준비한 당신이 ACW로 복귀한다면 분명 엄청난 돈이 될 겁니다!]

“스타게이트 2014를 노리고 대립을 진행해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복귀 장소는 풀 스로틀이 어떨까요. 그때 레스너가 VS ALL이라는 표어를 내세워 경기를 가질 예정이라.]

“좋네요. 그리고 여기에서.”

[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예, 뭡니까?]

“복귀는 비밀에 붙여주시죠.”

[그게 무슨…….]

“말 그대로, 당신과 저만 아는 일입니다. 풀 스로틀 당일까지 그 누구도 제 복귀에 대해서 몰라야 합니다.”

[저는 당신이 20번으로서 화려하게 복귀를 해주리라고 생각했는데요.]

“21번입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그래도, 복귀 떡밥이나 홍보 같은 건 좀 해야 하지 않을까요?]

“비숍 씨.”

[……?]

“저는 진지합니다.”

[어, 옙.]

비숍이 긴장한 게 느껴졌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압박감은 유지하되.

내 생각을 냉정하게 전했다.

“전 레스너를 이겨야겠습니다.”

[아, 아니 하지만.]

“그리고 내 마음대로 해야겠고. 꼬우면 나와 PWA 애들이 WWF와 계약해서 일하는 걸 지켜보시던가.”

그게 결정타였다.

비숍은 내 말을 잘 듣게 되었다.

* * *

그리하여 시간은 현재.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챈트가 잔뜩 풀어둬 뜨겁던 내 몸에 다시금 아드레날린을 돌게 만들었다.

나는 슬레지 해머를 꾹 쥐었다.

이건 각본이나 연기가 아니었다.

진짜였다.

브룩 레스너.

나는 업계의 생태계교란종인 녀석을 오늘 확실히 짓밟고자 여기 나왔다.

당황한 듯한 얼굴의 헤이먼.

하지만 그와 별개로 레스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슬레지 해머를 들고 나온 것이 녀석에게는 장난처럼 느껴지겠지.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지금 이 순간, 레스너가 밑바닥까지 처박아둔 ACW 선수들의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레스너가 아무리 지친 상태라고 해도, 내가 복귀 버프를 받았다고 해도.

그동안 줄곧 압도적인 강자로 부킹을 받아온 레스너를 제압해 버리면 러셀이나 다른 선수들의 이미지는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이걸로 간다.

프로레슬링만이 할 수 있는 방식.

나는 천천히 링으로 나아갔다.

“뭐냐, 너?”

“널 죽이려고 지옥에서 돌아왔지.”

“크하하! 만화로군.”

“그래, 이건 슈퍼 만화지.”

나는 해머를 내보였다.

“그러니까 넌 이걸 맞더라도 뒈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

“뭐?”

순간 창백해지는 레스너의 얼굴.

나는 다짜고짜 해머를 휘둘렀다.

콰앙-!

링 바닥이 붕괴했다.

팬들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스너는 옆으로 피했고, 이내 나를 바라보며 당황한 듯 말을 이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너에게 프로레슬링이 뭔지 보여주려고 하는 거지. 아,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그 순간 네 위상이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될 테니까 말이야.”

“미친 새끼!”

“그럼 빤쓰 한 장 입고 링 위에서 이러는 놈들이 제정신일 것 같았냐?”

나는 다시 해머를 휘둘렀다.

콰앙!!

레스너가 겨우 피했다.

링 아래로 황급히 빠져나가는 녀석.

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어딜 가시나?”

“정신 차려! 그건 사고였다고!!”

“네가 유도한 사고겠지.”

“그래서 지금 나한테 슛을 걸겠다는 거냐? 제정신으로 하는 짓이야?”

“아니, 레스너. 이건 어디까지나 프로레슬링일 뿐이라고. 눈 뜨고 봐봐.”

나는 주변을 가리켰다.

팬들이 이 상황에 적응했다.

“Fu-kin’ 폭력의 미학이라고.”

[Waaaaaaaaaaaaaaaaaaggghhh!]

당황하는 레스너와 여유로운 나.

그 상황의 대비.

링 안에서의 상황.

모든 건 통제되고 계획된 포르노.

팬들은 그걸 즐기고 있었다.

당황하는 건 레스너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놈의 거시기를 까버렸다.

뻐억!!

“끄하악!!”

비명을 지르며 무너지는 레스너.

링 벨이 울렸다.

땡땡땡-!!

나의 반칙패.

하지만 괜찮다.

이제 시작이니까.

“생각 외로 작은데?”

나는 거시기를 찼을 때 느껴진 감각에서 사이즈(?)를 짐작하고는 웃었다.

그리고 레스너의 안면에 사정 봐주지 않고 펀치를 날려대기 시작했다.

뻐억!

무너지는 레스너.

놈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나는 슬레지 해머를 들고 레스너의 굵고 길쭉한 손가락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지체 없이 찍어버렸다.

콰직-!

울려 퍼지는 소리.

물론 내 손에 들린 게 실제로 공사 현장에서 사용하는 쇠로 된 슬레지 해머가 아닌 고무 재질이었지만.

그래도 제대로 맞으면 단숨에 뼈를 아작 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게 레스너의 손등에 꽂혔다.

“끄흐으으윽…….”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구르는 녀석의 앞에 선 나에게 챈트가 쏟아졌다.

나는 그렇게 해냈다.

깔끔하게 내가 누군지 보여주었다.

어디까지나 프로레슬러로서.

하지만 아직 끝은 아니었다.

“레스너, 내게 좆도 아니라고 했지.”

“끄으으으…….”

“한 달 정도면 회복할 수 있을 거다. 돌아와라. 챔피언. 우리는 스타게이트에서 결착을 지어야 하니까.”

거기까지.

슬레지 해머를 내려놓은 내가 뒤쪽으로 물러서자, 백스테이지에서 급히 나온 의료진들이 레스너를 둘러쌌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레스너와 충격에 휩싸인 헤이건을 남겨두고 퇴장한 나는 곧바로 만사 다 제쳐두고 다가오는 데릭 비숍을 맞이 했다.

“신!!”

잔뜩 열이 받은 그.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예? 뭐가요?”

“지금 레스너가……!”

“아, 실수였습니다.”

“실수라고요?”

황당해하는 비숍.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놀란 모습이었고 나는 씨익 웃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레스너가 부상을 입었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뭐, 그게 아니더라도 이후 스타게이트까지 안 나올 텐데요.”

“아니 그게……!”

“부상에서 회복하는 동안 제가 혼자서 도발을 해나가야겠군요. 그런 각본이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완전히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뭐 어떠랴.

바로 그때, 심판들로부터 양옆에서 부축을 받은 레스너가 고릴라 포지션으로 막 들어왔다.

그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너, 너 이 새끼…….”

“레스너! 괜찮습니까?!”

“일단 길을 좀 터주시죠.”

나는 그를 무시하고 이야기했다.

그 말에 비숍이 무슨 상전을 모시듯이 레스너가 가는 길을 터주었다.

솔직히.

링에서 프로레슬러처럼 행동을 했다고 하지만 내가 한 짓은 선수로서 그다지 귀감이 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각본을 넘어서서 레스너에게 완전히 슛을 먹인 셈이었으니까 말이다.

“신.”

바로 그때, 레스너의 뒤를 따라 고릴라 포지션으로 돌아온 헤이건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헤이건.”

“아주 제대로 복수를 해줬군.”

“아뇨, 아직인데요.”

“……그런가?”

“예, 스타게이트에서 놈이 쓰러지는 모습을 볼 때까지는 안 참을 겁니다.”

“후우, 그렇군.”

한숨을 내쉬는 헤이건.

비숍이 레스너와 함께 의무실 쪽으로 간지라 나는 딱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백스테이지로 나왔다.

헤이건이 계속 말을 걸어왔다.

“이번 일은 큰 문제가 될 거야.”

“그렇습니까?”

“그래, 아무리 상대가 먼저 했더라도 레스너에게 슛을 먹이다니.”

“상대가 먼저 했으니 한 거죠.”

“그 자식은 프로 격투가야.”

“저는 프로레슬러죠.”

“아니…….”

“걱정 마십쇼. 싸움은 그쪽이 우위겠지만 제게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뭔가 고민에 빠진 듯한 헤이건.

하지만 뒤를 이어.

박수 소리가 들려오자 앞을 돌아본 그는 이내 나를 인정하듯 어깨를 으쓱해보일 뿐이었다.

그랬다.

락커룸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던 모든 선수들이 내게 박수를 보냈다.

“멋졌어! 신!”

“제대로 한 방 먹여줬군!”

러셀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젠코와 주먹을 부딪히며 나는 그런 팬(?)들의 성원에 응답해주었다.

이거, 참.

다들 날 너무 기다린 모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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