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89화 (589/634)

Dark Match 75.

손바닥에 실금이 갔다.

아주 미미해서 4주 내로 회복이 된다고 의사에게 들었지만, 레스너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는 걸 느꼈다.

‘그 개 같은 새끼.’

신.

그날 밤에는 꿈에서 그 자식이 슬레지 해머를 휘두르는 게 나왔을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프로레슬링을 하면서 레스너가 이런 취급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여기에서 더 열이 받는 사실은.

신이 봐줬다는 듯이 슬레지 해머 샷으로 손을 박살 내지 않았다는 점.

그게 완전히 이성을 놓게 만들었다.

겉으로는 열이 받아서 제대로 휘두른 척했지만 그 모든 게 연기였다.

신은 끝까지 쿨했고, 프로레슬러로서 선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도.

브룩 레스너에게.

슛을 걸면서.

한 달의 회복 기간.

내내 집에서 트레이닝도 사냥도 못하는 상태, 레스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분노를 곱씹는 일.

그는 프로레슬링을 시청했다.

‘처음으로’.

월요일 밤의 ACW 나이트로.

때는 2014년 1주차.

불꽃과 폭음 속에서 ‘가짜’ 쇼가 시작되었고 열광하고 있는 팬들의 모습을 비추며 쇼가 시작되었다.

레스너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차라리.

90년대 활동하던 태도 불량 시대라면 그때 선수들은 워낙 찢고 째고 화끈한 쇼를 보여줬으니 그렇다 쳐도.

지금은 그런 잔혹한 범프도 없고 선수들 역시 다 말랑한 놈들만 있는데.

팬들이 대체 무엇을 보고 현 세대의 프로레슬링에 열광을 하나 싶었다.

이어지는 음악.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그 시대의 주인공이 나왔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의 환호성이 경기장을 꿰뚫었고 레스너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정말 이해가 안 가는 일투성이였다.

‘저게 아이콘이라고.’

물론 그 포스는 인정을 했다.

신의 그 카리스마는 시나나 러셀보다 레스너에게 흥미를 주기는 했다.

하지만 ‘동양인’이라고 하는 한계가 있었기에 레스너는 도저히 지금 팬들의 심리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대체 저게 뭐라고 이 업계의 최강자로서 대우를 받는 걸까 싶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신은 팬들의 우렁찬 챈트 속에 링으로 올라갔고 마이크를 손에 쥔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레스너가 부상이라는군.]

[Uooooooooooooooooohhhh!!]

[손바닥에 금이 갔다는데. 별로 세게 치지도 않았는데 그런 걸 보면 하여간 자기 몸은 죽어라 챙기셔.]

“…….”

레스너는 하마터면 부상을 입은 자신의 손바닥을 세게 움켜쥘 뻔했다.

[물론 나도 그랬지. 작년 레슬 임페리움에서 사모아 고에게 타이틀을 잃은 이후 나는 레스너의 습격을 받아서 1년을 통째로 날려먹었단 말이야.]

신은 입술을 으득 깨물었다.

그 얼굴을 근접해서 촬영하는 카메라. 그로 인해 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이 팬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프로레슬링 업계의 카메라워크는 환상적인 수준이었다.

가까이서 신을 잡고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어.]

[Uooooooooohhh……!]

카메라가 점점 멀어지며 신에게 열광하는 팬들의 모습이 화면에 담겼다.

[갈비뼈가 제대로 나갔지. 여기쯤이었던가? 제기랄, 처음에는 숨도 제대로 안 쉬어질 정도로 아프더군.]

눈썹을 찡그리는 신.

레스너에게 부상을 입은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해, 그는 그동안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전달해나갔다.

[통증은 이내 분노로 변했고 난 이 옆구리에 무릎을 날렸던 개자식의 이름을 되새기면서 시간을 보냈지.]

한 달, 두 달, 세 달.

부러진 뼈가 붙은 후로도 재활에 계속 매진하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그리고 때가 찾아왔다.

풀 스로틀.

신은 21번으로 돌아왔다.

[통쾌한 순간이었다고. 레스너가 겁에 질려 달아나는 게 정말 웃겼어.]

[Waaaaaaaaaaaaaaaaggghhh!!]

레스너는 이를 으득 갈았다.

상대가 슬레지 해머를 들고 눈이 반쯤 까뒤집혀 달려드는데 대체 왜 거기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팬들은 신의 그 복귀와 일련의 행동이 ‘슛’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각본에 없는 선수의 돌발행동.

그 때문에 레스너는 비숍에게 ‘개지랄’에 가까운 항의를 했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모든 게 신의 공작이었다.

레스너가 슛을 걸었으니 그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를 해온 것이었다.

일반적인 팬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업계의 뒷이야기였다.

‘죽여버릴 거다.’

레스너는 이를 으득 갈았다.

똑같이 반격해오는 상대를 만난 경험이 없었던 레스너는 지금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열이 받은 상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텔레비전 안의 신은 계속 레스너를 조롱해나갔다.

[그리하여, Beast 양반은 손바닥에 금이 간 채로 집에서 쉬고 계시지. 뭐, 굳이 내가 아니었더라도 파트-타이머라 오늘 쇼에는 안 나왔겠지만.]

[Uoooooooooooooooooohhh!!]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던 부분이야. 난 ‘브룩 레스너’가 싫어. 그 개자식이 있어서 지금껏 선수들이 보여준 헌신이 박살 나는 기분이 들거든.]

그리고.

[말인즉슨, 아직 녀석과 나 사이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야. 레스너. 지금 내 모습을 보고 있겠지?]

신이 돌연 카메라 앞으로 다가섰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신은 팬들이 아니라 분을 삭이며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남자, 브룩 레스너에게 다시금 슛을 날렸다.

[덤벼봐. 파이터. 프로레슬링이 뭔지 잊은 너에게 진짜 프로레슬러가 한 수 가르쳐줄 테니까 말이야.]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챈트가 쏟아지는 가운데.

레스너는 금이 안 간 손에 들고 있던 아령을 힘껏 텔레비전으로 던졌다.

퍽석!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깨지는 텔레비전 액정.

레스너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아작을 내주마. 신…….”

금이 간 채, LCD가 부서져 묘한 방향으로 일그러진 신의 얼굴이 레스너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 * *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레스너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신은 그동안 그의 위치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다른 선수들을 상대했다.

핀 발로.

드류 맥킨마이어.

코디 로스.

C.M. 펑크.

절대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신이 부상으로 커리어의 한 해를 날리는 동안 다른 선수들은 그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성장한 상태였다.

하지만 복귀 버프에 곧 레스너를 상대해야만 했던 신은 선수들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위상을 회복해나갔다.

그전까지의 압도적이었던 신으로.

1차전.

PWA에서, VS 핀 발로.

쿠 데 그라를 피하면서 아크로바틱한 동작으로 샤프 슈터를 사용한 신이 힘든 싸움 끝에 탭을 받아냈다.

땡땡땡-!!

[Waaaaaaaaaaaaaaaggghhhh!!]

[신이 승리를 거둡니다!]

[분전한 핀 발로!]

[아,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눕니다!]

[서로를 인정하는 거죠! 멋지군요!]

[신은 이걸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니, 레스너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프로레슬러란 무엇인가!]

[멋지군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신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이어지는 대결에서도.

신은 드류 맥킨마이어와 싸워 이기고 ACW로 넘어가서 코디 로스를 쓰러뜨리고 WWF로 넘어갔다.

그 마지막 상대는 C.M. 펑크.

업계에서 가장 핫한 프리 에이전트이자 아이콘으로서, 신은 그럴 수 있는 권리가 충분히 있었다.

특히나 펑크는, 경기가 시작하기 전 신을 찾아가 다소 강한 태도로 말했다.

“준비는 되셨나? 챔피언.”

“……내가 챔피언이라고?”

“넌 벨트가 없어도 그렇지.”

펑크는 약간 긴장하고 있던 신의 가슴을 힘껏 후려치며 기합을 넣어줬다.

“나도 레스너가 싫다고.”

“누구든 그렇겠지.”

“위클리 쇼에는 나오지도 않는 자식한테 다른 선수들이 지는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하지만 펑크는 잘 알고 있었다.

아직은 자신의 때가 아니었다.

“그 건방진 얼굴을 지면에 꽂아줘.”

그 말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C.M. 펑크.

훌륭한 인성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다. 그는 말하자면 반항아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신은 그가 가진 재능은 잘만 통제될 수 있다면 팬들의 사랑을 받으리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그런 펑크도 전생에는 복귀한 브룩 레스너와 큰 마찰을 빚으면서 끝내는 회사를 떠나고야 말았다.

이번에는 그 역할을 자신이 맡았다.

그렇다면.

‘이겨줘야지.’

이 업계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신은 풀-타이머로서 정정당당하게 펑크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챙겼다.

시간은 흘러 2월.

스타게이트는 3월 말에 열렸고 슬슬 레스너가 대립을 위해 위클리 쇼에 복귀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은 그걸 믿지 않았다.

‘똑같이 나오겠지.’

슛을 걸어올 거다.

그렇다면 그게 언제인지 확실히 알고 미리 대비를 해두는 게 중요했다.

레스너가 똑같이 슛을 걸어오면 거기에 당해주지 않아서 소용없는 짓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신은 ACW 직원들의 힘을 빌려서 레스너의 정확한 복귀 타이밍을 알아냈다.

2월 3주차.

한 달에서 3주를 또 쉬는 셈이었다.

하지만 대립은 진행이 되었다.

바로 폴 헤이건의 존재 덕이었다.

2014년 2월 2주차.

월요일 밤의 나이트로.

“Ladies And Gentlemen!”

폴 헤이건.

정장 차림의 그는 퉁퉁한 몸집을 과시하듯 뒤뚱거리며 팬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Booooooooooooooooooooo-!!]

그리고 쏟아지는 야유.

헤이건은 꽤 놀랐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순간 자신이 할 말을 잊었을 정도였다.

‘이게 신이로군.’

그전까지 다른 레슬러들은 레스너에게 일방적으로 반응을 빼앗겼다.

그가 아무리 나오지 않고 건방을 떨면서 다른 레슬러들을 초살한다고 한들 팬들은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가 가진 특유의 무법자 스타일이 배드애스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강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팬들은 강자에게 열광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이 한 달 동안 다시 나와 그들에게 레슬링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헤이건과 레스너는 악당이 되었다.

마이크워크가 계속 이어졌다.

“My Name Is, Paul Heygun.”

[Booooooooooooooooooo-!!]

“저는 클라이언트인 레스너 씨의 말을 전하기 위해 여기에 나왔습니다.”

레스너에게 보다 더 압도적인 강자와 권력자의 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같이 일하고 있는 폴 헤이건.

그는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레스너가 나오지 않을 때마다 그 전서구로서 링에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오늘도 그랬다.

“The Conqueror! The Beast!! 업계의 유일무이한 구원자이자 파괴자!!”

[Booooooooooooooooooooo-!]

야유가 이어지는 가운데.

헤이건은 천천히 링으로 올라갔다.

“저는 그분이 보낸 기밀 메시지를 여러분과 공유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링에 올라갔다.

“레스너 씨께서 말씀하시길, 신 같은 놈은 내가 없어 그 자리에 있을 뿐이고, 스타게이트에서 ‘뒈지기’ 전까지 신변 정리를 해두라고 하시더군요.”

야유가 계속되었다.

헤이건은 일부러 그 야유를 더 뽑아내기 위해서 아주 즐거운 듯 팬들에게 레스너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동시에.

신과 자신의 관계.

그걸 또 대립에 섞었다.

“여러분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는 신과 많은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그 재능에는 탄복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지금 신이 상대하고자 하는 건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의 탈을 쓴 야수. 성경에서 일컫기를…….”

모래사장 앞에 서서 보기를.

바다에서 야수가 하나 일어서는데.

그는 거대한 힘을 지니고 불가사의한 일을 해내며 천국에서 전해진 불길을 내뿜으며 세상을 정화하더라.

“그게 바로 브룩 레스너입니다. 여러분. 신이 어떻게 그를 상대해서 능히 싸울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멋진 반응이었다.

헤이건은 전율을 느꼈다.

이것이 그가 바라던 프로레슬링.

지금은 브룩 레스너와 함께하며 그의 의지를 대변하는 식으로 그의 행보를 돕고 있는 입장이었지만.

“Eat! Sleep! Conquer! Repeat!”

폴 헤이건이 말한 명언처럼.

“Eat! Sleep! Conquer! Repeat!”

새로운 카우보이가.

“Eat! Sleep! Conquer! Repeat!”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나타났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Yeeeeeeeeeeeeeeeeeeaaahhh!]

쏟아지는 환호.

레스너와 정반대로.

처음부터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고, 이곳에 서기까지 정말로 오랜 시간을 거쳐야만 했던 레슬러인 신.

그가 링으로 나왔다.

폴 헤이건은 순간 할 말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렇게 표현했다.

신이 없을 때, 건방지게도 진짜 레슬러를 자청하며 이 업계에 군림함 숀 시나와 러셀 오메가 같은 이들.

그들에게 현실을 알려주기 위해 브룩 레스너는 신의 사자이자, 신(神) 자체로 돌아와 정복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SIN은 언제나 그렇듯.

신을 모독하고.

신의 뜻을 거역하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싸움에서 승리를 되찾고 자신의 시대를 이어가기 위해, 지금 나왔다.

드리밍 에라.

레슬러가.

인간이.

꿈을 꾸는 시대.

“성경에서 그랬지.”

링 위로 올라온 신은 마이크를 손에 쥔 채 헤이건의 말을 다시 인용했다.

저들이 야수를 우러러보며 묻되.

누가 능히 저 야수와 싸울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바로 나야. 폴 헤이건.”

[W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은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