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76.
누가 능히 저 야수와 싸울 것인가.
“바로 나야. 폴 헤이건.”
신은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거기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내가 아니면 누구겠어? 누가 네 뒤에 숨은 그 야수와 싸울 수 있겠어?”
“신, 하나만 정정하지. 나는 리더가 아닌 레스너 씨의 대변자에 불과해.”
“뭐야, 그런 거였어?”
신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봤을 때는 헤이건 당신이 항상 텔레비전에 나와서 활약하니까 레스너가 당신 부하인가 싶었는데.”
[Uooooooooooooooooooohhh!!]
“다들 그렇게 생각할걸? 정작 당신 대장이 TV 쇼에 출연하지 않고 집에서 숨어 있는데 누가 그걸 믿겠어?”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내 말이 맞았군!”
신이 팬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헤이건도 순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청난 퍼포먼스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역시 ‘격투가’다우셔. 우리랑 다르게 최상의 몸 상태가 아니면 링 위에서 퓨드를 맺고 싶지 않은 거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허세에 가까웠다.
신이 아무리 근육을 키우고 최상의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레스너에게는 실전이라는 커리어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팬들은 신을 믿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여기 팬들처럼 믿어보라고. 헤이건. 내가 당신 뒤에 숨어 건방을 떨고 있는 야수를 잠재워줄 테니까.”
“……놀랍게도, 자네 같은 말을 한 선수들을 나는 여러 명 보아왔지.”
헤이건은 지지 않고 받아쳤다.
“숀 시나, 러셀 오메가, 코디 로스, 크로우, 크리스 젠코. 모두가 자네처럼 Beast Slayer가 될 거라고 말했어.”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떤가.
Eat.
Sleep.
Conquer.
“Repeat!”
헤이건이 힘주어 말했다.
먹고, 자고, 정복한다.
먹고, 자고, 정복한다.
먹고, 자고, 정복한다.
그것이 바로 브룩 레스너.
대변가가 악마의 입을 열었다.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사람이! 잘못된 괴물과!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군! 신!”
“너희 대장하고 다르게 프로레슬러는 언제나 그렇게 싸운다고! 너무 날 우습게보지 않는 게 좋아! 헤이건!”
프레임이 짜였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분명히 프로레슬러는 가짜였다.
물론 그들은 신체 능력과 기술을 가지고 상대방과 승패를 겨루지 않았다.
모든 게 각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도 프로레슬러가 터프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터였다.
신은 그렇게 자신을 이야기했다.
레스너가 자신보다 강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누구보다 터프한 남자다.
그리고 그건.
레스너가 이 업계를 떠나있는 사이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자신의 모든 걸 바쳐온 남자기에 할 수 있는 말.
“레스너에게 전해! 적당한 마음으로 나왔다가는 그 좋아하는 종합격투기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말이야!!”
[Waaaaaaaaaaaaaaaaaggghhh!!]
헤이건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레스너와 대립하는 선수들 대부분은 그 압도적인 강함 앞에서 최선을 다해서 싸우겠다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숀 시나도.
러셀 오메가도.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달랐다.
그는 레스너를 최상의 몸 상태일 때만 싸울 수 있는 격투가로 치부했다.
하지만 자신은 언제 어느 때라도 팬들을 위해 링에 오르는 프로레슬러.
그것이 프로레슬러.
“레스너! 너에게 그럴 용기가 있을까?! 다리가 부러져서 영구적인 상해가 남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또였다.
신은 헤이건을 밀어내고는 카메라에 대고 자신의 의사를 똑똑히 전했다.
“난 그런 싸움을 해야겠거든. 넌 내 존중을 받을 가치가 없는 선수고, 이번 싸움은 분명히 혹독할 거다.”
확실하게 선언하는 신.
그렇게 세그먼트가 마무리되었다.
반응은 환상적이었다.
신이라면 분명 뭔가를 보여준다.
레스너를 쓰러뜨려 주리라.
다들 그렇게 믿는 가운데.
막상 대립에 참여하고 있는 헤이건 본인조차도 경기의 결말을 계산할 수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당연히 레스너와 신은 한 번도 접촉하지 않았고, 각본진이 내놓은 ‘레스너의 승리’ 각본은 거절당한 상태였다.
그리고 ‘신이 승리한다.’는 각본 역시도 의외로 레스너 측에서 거절했다.
[왜 그 새끼가 이긴다는 거야?]
신기한 일이었다.
이전까지의 레스너는 각본 따위에는 아예 관심이 없어 그 결과도 경기장에 와서 시큰둥하게 묻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레스너는 지고 싶지 않아 했고.
그건 신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대립은 보다 ‘실제’에 가까운 형태로 진행이 되었다.
레스너가 슛을 걸었다.
2014년 2월 4주차.
신이 헤이건과 마이크워크를 하기 위해 링으로 나온 시점이었다. 갑자기 무언가 거대한 게 링으로 올라왔다.
헤이건은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했다.
오늘 출연이 예정되지 않았던 레스너가 잔뜩 열이 받아서 신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기 시작했다.
태클을 걸어서 파운딩을 먹이고 그 상태에서 곧바로 주먹을 날려댔다.
뻐억!
빠악!
콰직!!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모두 슛이었다.
데릭 비숍이 잔뜩 열이 받은 레스너를 달래기 위해 일부러 신을 두들겨 팰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 것이었다.
“자, 잠……!”
너무 놀란 헤이건은 각본조차 잊은 채로 레스너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레스너는 프로 선수.
그 주먹을 계속 맞았다가는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신은 곧바로 코를 얻어맞아 코피가 철철 흐르기 시작했다.
‘비숍, 그 미친 새끼가……!’
아무리 그래도 레스너의 고삐를 저렇게 마구 풀어줬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는데.
신은 완벽하게 테이크다운을 당해서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가죽 재킷을 입고 있던 신이 품 안으로 손을 슥 집어넣더니 뭔가를 꺼내 레스너의 얼굴에 대고 분사했다.
“크하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나뒹구는 레스너.
[Uooooooooooooooooooohhh?!]
관객들이 지금 이 상황을 몰입하면서 지켜보는 가운데, 신이 입 안에 고여 있던 피가래를 뱉으며 일어섰다.
페퍼 스프레이.
호신용으로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 신…….”
“지켜보시죠.”
신은 당황해 말을 거는 헤이건에게 짧게 한마디 내뱉고는 그대로 레스너를 향해서 다가갔다.
바닥을 나뒹구는 The Beast.
그 손에 수갑이 차였다.
순간 레스너가 저항을 했지만 신은 단숨에 수갑을 채우고 품 안에서 다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브레스 너클.
황동으로 만들어진, 주먹에 끼워 펀치의 위력을 강화하는 반칙용 무기.
물론 레스너가 그런 것을 끼운 상대의 주먹을 맞아봤을 리가 만무했다.
뻐억!!
신의 주먹이 그 안면에 꽂혔다.
프로레슬링이라기에는 너무나도 격렬한 펀치였지만 팬들은 아직까지 그 싸움에 깊이 몰입하는 상황이었다.
레스너가 저항을 시도했다.
킥을 날렸고 신은 중심도 제대로 잡지 못한 그것을 가볍게 피해냈다.
상황이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신은 레스너를 떡이 되도록 두들겨 팼고, 그때쯤 해서 다급히 링으로 보안요원들이 뛰쳐나왔다.
아무래도 신이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비숍이 다급히 내보낸 것이겠지.
[Booooooooooooooooooooo-!]
쏟아지는 야유.
“저 새끼……!! 이거 당장 풀어!!”
분노를 토해내는 레스너.
보안요원들이 두 사람의 사이를 막아섰고, 뒤를 이어 누군가가 허둥지둥 레스너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레스너가 보안요원들에게 마구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환호하는 팬들.
하지만 그들이 이게 실제 상황이라는 걸 안다면 계속 그럴 수 있을까.
헤이건은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면서 링에서 도망치는 신을 보았다.
그는 아예 관객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레스너가 보안요원들의 정리를 끝냈을 즈음, 그는 이미 팬들 사이 깊숙한 곳에 이른 뒤였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갔다.
“크아아아악!!”
레스너는 분통을 터뜨렸고 신은 팬들 사이에서 가볍게 주먹을 들었다.
스코어는 다음과 같았다.
레스너 1 : 신 2.
이 업계에서 잔뼈가 굵을 대로 굵어진 헤이건조차도 감탄할 정도였다.
이어서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레스너는, 신이 아예 그대로 퇴근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아예 고릴라 포지션을 박살 낼 정도로 흥분했다.
* * *
애초부터 ACW 측에서는 지금 일을 그다지 중재할 마음이 없었다.
신과 레스너의 대립은 엄청났고 반대편의 WWF 측을 발라버리면서 팬들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그야말로 두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대립. 그게 돈이 된다면 굳이 말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거기에서 아주 살짝 레스너의 편을 들어주며 신이 자연스럽게 꼬리를 내린다는 게 비숍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부의 사람들을 몰라도 한참은 몰랐다.
신은 이미 ACW, WWF, PWA.
특히나 현장팀의 관계자들로부터는 거의 원탑에 가까울 정도로 큰 존경을 받는 레슬러였다.
그렇기에 그가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미리 대비를 해둔 신이 레스너를 엿 먹이며 상황이 심각해졌다.
그로부터 며칠 뒤.
회사 측에서 이대로 두 사람의 대립을 놔둘 수 없겠다는 판단을 했다.
사실 상황적으로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불을 꺼야겠다는 마음으로 비숍은 신과 레스너를 모두 모았다.
그리고.
두 사람 다 늦었다.
회의 시작 시간은 오후 세 시.
하지만 레스너가 도착한 것은 오후 세 시가 다 되어서였고, 거기에서 신은 무려 두 시간을 더 늦었다.
‘일부러’였다.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하나……!”
“뭐야, 먼저 와있었어?”
“다들, 다들 잠깐만 진정하고!”
“나는 평소처럼 존나 늦을 줄 알았는데 내가 오늘 제일 개자식이로군.”
“지금 장난해?!”
“아니, 그렇지 않아. 레스너.”
신이 털썩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맞은편의 레스너에게 보란 듯이 발을 그대로 테이블 위에 올렸다.
“난 언제나 진지했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안 그래?”
“링 위에서 보자…….”
“내가 경기복 안에 뭘 숨겨갈지 알고서 하는 말이야? 요새 전기충격기가 아주 잘 나오던데.”
“그딴 게 없으면 나와 붙을 용기도 없는 자식이 말은 잘 하는군.”
“아니지, 레스너.”
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꼬우면 너도 써. 대신, 나는 네가 어떤 개지랄을 하더라도 일어나서 목을 물어뜯을 테니까 각오해두고.”
“일단, 좀, 진정하시고요.”
비숍이 끼어들었다.
“두 사람 모두 돈을 벌려고 여기 있는 거 아닙니까. 협의점을 좀 찾아봅시다. 이겁니다.”
“헛소리 마쇼. 비숍. 당신이 레스너에게 슛 찬스를 줘버려 놓고 인제 와서 공정한 척하깁니까?”
“아니, 그건.”
“당신 말고 여기 있는 모두가 저기 저 고릴라를 싫어한다는 말이요.”
“지금 나보고 한 말이냐. 원숭이?”
“인종차별도 하셨어?”
“네가 먼저 했으니까.”
“하긴, 몸에 털 많은 걸로 치면 나보다는 네가 원숭이에 더 가깝지.”
원초적인 욕설까지 오고 가면서 두 사람의 감정은 극한까지 치달았다.
“아무튼 그쪽이 원하는 대로 해. 레스너. 튀고 싶다면 기회를 주지.”
“이쪽이 할 말이다.”
“그렇게 불구가 되고 싶으셔?”
“네가 먼저다. 신.”
레스너가 이를 으득 갈았다.
“난 네놈의 골통을 스타게이트 무대 위에서 빠개버리고 말 거야.”
“난 네 불알을 잘라낼 거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타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순간 방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지금 이 상황을 중재하기 위해서 신이 일부러 초대를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캐스켓-테이커였다.
은퇴 후, 한가로이 사냥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는 지금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힘은 강렬했다.
브룩 레스너와 신.
두 사람 모두 순간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아 있는 전설을 돌아보았다.
모든 1인자들보다 더 위대해진 2인자.
그는 레스너의 커리어 초창기 때부터 많이 도움을 주었다.
그렇기에 레스너도 꼼짝하지 못하는 거의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일단, 비숍 씨.”
“……예.”
“괜찮으시다면 제가 여기에서 감히 한마디 끼어들어도 되겠습니까?”
그는 무척 젠틀했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ACW의 일에 끼어든다는 것 자체를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도.
“……부디.”
그쪽 대장으로부터 허락이 떨어지자 확실하게 한마디를 꺼냈다.
“신, 그리고 레스너.”
“…….”
“…….”
“너희 둘 모두, 내가 중재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도록 하마.”
순간 기 싸움이 벌어졌다.
신과 레스너는 으르렁거리면서 사납게 서로의 얼굴을 노려보았고.
이내 거기에 져서 먼저 중재를 해달라, 테이커에게 부탁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