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92화 (592/634)

Dark Match 78.

레스너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

그래.

분명히 둘 사이의 감정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신이 제안하는 각본대로 대립을 진행하자고 협의하기는 했다.

테이커의 추천도 있고.

어쨌든 레스너는 자신이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모조리 뒤집어엎을 생각이었으니까.

오히려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

앞으로도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노후 자금을 벌기 위해서는 신의 기를 꺾어야만 하는데.

그를 위해서는 자신들의 대립 각본이 실패하는 편이 훨씬 더 나으니까.

그렇기에, 그쪽에서 무슨 각본을 제안하더라도 일단 따라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예상 못했다.

레스너는 거대한 버스가 자신의 오두막 앞에 서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초대형 촬영용 버스.

내부에 편집용 PC를 비롯해서 온갖 장비를 갖춰 놓은 시설. 하지만 여기에서 더 황당한 점이 존재했다.

트럭 세 대가 더 들어왔다.

그 안에 목재가 쌓인 게 보였다.

트럭 뒤쪽에 타있는 산전수전 다 겪은 것처럼 보이는 인부들의 얼굴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신이 버스에서 내렸다.

레스너는 곧바로 말을 걸었다.

“이봐, 신.”

“엉?”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야기 못 들었어?”

“아니, 듣기는 했는데.”

한숨을 내쉬는 레스너.

그래, 분명히 오늘 대립에서 쓸 세그먼트 영상 촬영을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건 다 뭐야?”

“집을 지을 생각이거든.”

“집을 짓는다고?”

“저거랑 똑같이.”

“……?”

레스너는 오두막을 돌아보았다.

브룩 레스너는 촬영이 없는 날이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이곳에서 사냥을 하면서 조용히 지냈다.

여기는 베이스캠프고 아래로 내려가면 가족들이 있는 별장이 나왔다.

혼자 가만히 생각을 거듭하면서 보조를 데리고 사냥을 다니는 것이 레스너의 유일한 취미 생활이었다.

그걸 신도 알고서 일부러 여기까지 직접 레스너를 찾아와준 것이었다.

프로레슬러로서 커리어를 이어갈 때 가장 어려운 것은 언제나 이동이었다.

그런데 그 이동을 빼주겠다고 말하니 레스너로서도 딱히 거절할 만한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던 거다.

‘이럴 거라고는 상상 못 했지만.’

레스너는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생각하고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허가는 받았냐?”

“여기 허가서.”

신이 종이를 내밀었다.

펜실베이니아 주 소방당국으로부터 2018년의 스타게이트 유치를 대가로 받아온 것이었다.

레스너는 인부들이 트럭에서 장비를 내리는 동안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하나는 살수차였다.

“이게 왜 있어?”

“촬영 대본 안 봤냐?”

“그야, 음.”

“당연히 안 봤겠지.”

태연하게 중얼거리는 신.

인부들에게 상황을 설명한 그가 미리 조사해두었던 곳에 가건물을 세우라고 지시를 내렸다.

어차피 오두막의 크기는 작았다.

서너 평 정도?

방도 하나뿐이었고 주변에 불이 번질 만한 곳도 없었다. 그래서 적당히 세우고 촬영에 쓰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오두막은 레스너가 얼마 전 촬영해서 방영된 다큐멘터리에 그 모습이 한 번 나온 곳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팬들에게 보다 현실성 있는 각본으로 작용하리라는 판단.

레스너는 일단 별장으로 돌아가 그곳의 컴퓨터로 메일을 확인했다.

전달 받았지만 확인만 하고 읽어보지는 않았던 촬영 각본.

“무슨 미친 짓거리야?”

황당한 내용이었다.

그걸 다 체크하고 점심때가 되어서 식사를 마치고 올라가자 인부들과 타코를 나눠 먹고 있는 신이 보였다.

“어, 왔어?”

“정말 이대로 하겠다고?”

“그래, 100% 대박 날 거다.”

씨익 웃은 신이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고, 그곳을 돌아본 레스너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미 건물 조립이 끝난 상태였다.

디테일은 좀 달라도 완벽하게 자신의 사냥용 오두막이 거기에 갖춰졌다.

“이제 어쩌자고?”

“저녁 먹을 때까지 휴식.”

“뭐……?”

“촬영은 밤에 할 거야. 더 가져와야 하는 물건도 있으니까 집에서 쉬어.”

“정말로 그 각본대로 진행하려고?”

“이봐, 레스너.”

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가 이미 다 받았고 장비까지 죄다 빌려왔는데 그럼 여기서 멈춰?”

“…….”

“이거 다 돈이야. 그리고 나는 거기에 책임을 질 각오도 되어 있다고.”

“난 아니라는 거냐?”

“책임을 지지는 않잖아. 오히려 내가 고꾸라지는 것을 바라고 있겠지.”

신이 다 안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래, 방금 확신이 섰다.”

레스너도 씨익 웃었다.

“넌 확실히 미친놈이야.”

* * *

스타게이트까지 한 달.

각각의 선수들이 대립을 계속 이어가는 가운데, 신과 브룩 레스너 역시도 계속해서 퓨드를 쌓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레스너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립을 이어나갔다.

영상 촬영의 적극적인 활용.

ACW 나이트로의 메인이벤트.

링에 오른 폴 헤이건은 레스너의 대변자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러분, 신이 분명 이 업계에서 눈에 띄는 업적을 쌓은 건 사실입니다.”

[Booooooooooooooooo……!]

야유가 좀 더 강해졌다.

신 때문이었다.

팬들과 절대적인 신뢰를 구축한 그가 레스너에게 도전하자 계속해서 쌓여왔던 기대감이 표현되었다.

레스너는 쓰러져야 할 악당.

신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 영웅.

멋진 그림이었다.

레스너가 해줘야 할 이상적인 역할을 지금 신이 받을 준비가 갖추어졌다.

물론.

오직 신이기 때문에 팬들로부터 그 정도의 기대감을 받는 것이겠지만.

헤이건은 그것을 도와주자고 생각하면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여러분도 그걸 표현하고 있죠! 신을 믿고 있는 겁니다! 그라면 분명 뭔가를 해주리라고! 우매하군요!”

[Booooooooooooooooooooo-!!]

“신이 지금 상대하는 남자가 누군지 알고 하는 소립니까?! 위대한 정복자! 브루우우우우우욱-!! 레스너어어어!!”

헤이건은 신나게 어그로를 끌었다.

프로레슬링을 사랑하는 팬들은 지금 이 대립을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신과 레스너가 진짜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뉴스 기사도 여럿 나갔다.

서로 주먹을 실제로 주고받았다.

그러므로 이 대립은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팬들의 관심을 야기했다.

하지만 확실히 해둬야만 했다.

이건 프로레슬링이었다.

너무 대립이 현실적이어선 안 됐다.

“신은 스타게이트에서 브룩 레스너에게 짓밟혀서 쓰러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 업계에서 레스너와 대적할 선수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겠죠!!”

침을 튀겨가며 외치는 헤이건.

바로 그때였다.

철커엉-!!

돌연 경기장의 조명이 꺼졌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이 기대하며 환호하는 와중, 돌연 입장로 위에 설치된 초대형 스크린에 한 남자의 모습이 나왔다.

바로 신이었다.

마침 또 운이 좋았다.

영상이 촬영되는 펜실베이니아와 현재 나이트로가 진행되고 있는 도시의 시차가 정확히 맞았다.

그렇기에 신이 카메라를 들고 서있는 장소가 늦은 밤의 숲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폴 헤이건.]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또 대변자로 나와서 헛소리나 지껄여대고 있군. 솔직히 그러는 것도 이제는 지쳤어. 확실히 보여주마.]

[Yeeeeeeeeeeeeeeeeeeeaaahhh!]

[여기가 어딘지 알겠나?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알 거야. 여기는 평화롭고 조용한 펜실베이니아라고.]

신이 카메라를 들고 움직였다.

가죽 재킷에 셔츠, 청바지.

그리고 선글라스.

[오늘 밤은 아니지만.]

카메라 시점이 변화했다.

[그 개새끼가 안 나온다면 내가 직접 쳐들어가주지. 거기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나 지켜보라고.]

미리 촬영된 영상이었다.

하지만 팬들에게는 실시간인 것처럼 꾸며졌고 모두가 기대를 했다.

신의 뒤를 따르던 카메라가 이내 저 멀리 보이는 불빛에 이르렀다.

확대되는 카메라.

일부러 흔들리는 연출.

브룩 레스너의 모습이 나왔다

[Uooooooooooooooooooooohhh!]

놀라는 팬들.

폴 헤이건도 마찬가지였다.

방송 영상은 로프에 팔을 기대고 나서서 고개를 내젓는 헤이건을 잠시 비춘 뒤 펜실베이니아로 돌아갔다.

레스너는 사냥용 옷을 입은 채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모습과 같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신이 습격했다.

[엇?!]

[여기서 뭘 하시나!]

복부를 노린 신의 토 킥.

레스너가 순간 옆으로 피해내고 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Waaaaaaaaaaaaaaaaggghhh!!]

영상에 팬들의 환호가 씌워졌다.

뒤엉킨 두 사람이 서로 다투면서 그것을 카메라가 고스란히 촬영했다.

실제 감정이 들어갔기에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두 사람의 대립. 팬들은 순간적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신이 머리를 내던졌다.

콰앙-!!

레스너의 코를 짓이기는 헤드벗.

코피를 줄줄 흘리며 뒤로 물러선 레스너는 침을 퉤, 뱉고는 옆에 있던 쇠스랑을 들어 신에게 맞섰다.

일부러 봐주지 않고.

등을 힘껏 후려치는 쇠스랑.

쩌억!

가죽 재킷이 찢어질 정도의 충격.

무너졌던 신이 바닥을 굴렀고 자갈과 흙으로 얼굴이 범벅된 채 일어나 다시 레스너에게 달려들었다.

그 싸움은 무척 현실적이었다.

싸움도 프로레슬링 기술이 아닌 주먹질 위주로 이어졌고 그런 와중 신은 레스너에게 로-블로마저 날렸다.

“끄허어억!!”

무너지는 레스너.

주도권을 잡은 신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고작 이거냐, 레스너?!”

“이, 이 새끼……!”

“이딴 곳에서 개지랄이나 떨고 팔자 한번 좋군! 넌 스타게이트에 나올 자격도 없어!! 여기서 죽여주마!!”

신이 레스너를 붙잡았다.

팬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닥불 옆의 작은 오두막으로 레스너의 뒷덜미를 잡고 힘껏 던지는 신.

투콰앙!!

그 안에 가득하던 온갖 사냥용 장비가 레스너의 위로 후두둑 쏟아졌다.

신은 그 안쪽에 있던 기름통을 들고 나와서 오두막 바깥에 마구 뿌려댔다.

[Don’t Do That! SIN!! Don’t!!]

[신이 선을 넘으려 합니다!!]

[누군가 말려야만 해요!!]

깜짝 놀라 소리치는 해설진.

그걸 지켜보던 카메라맨이 순간 신의 팔을 붙잡고서는 말리려고 했다.

이 또한 현실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신은 그런 그를 밀쳐내고 계속해서 오두막에 기름을 뿌려댔다.

그리고 기름을 바닥에 부으며 모닥불 옆까지 끌고 와 준비를 끝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흥분해 외치는 팬들.

물론.

이건 지극히 비현실적인 요소였다.

아무리 그래도 현실에서 저런 식으로 누군가를 오두막에 쳐넣고 불에 태워버리려는 건 엄청난 중죄였다.

방화 살인.

혹은 그 미수.

그렇기에 지금 이 세그먼트 촬영은 분명 철저한 안전수칙 아래에서 진행 되었고, 그래서 방송허가가 나왔다.

말인즉슨 이게 각본이라는 걸 까발리는 셈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잔뜩 흥분한 팬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대립의 요소가 지극히 현실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팬들은 크게 몰입하고 있는 것이었다.

신이 모닥불에서 불이 붙은 나무를 꺼내 무표정한 얼굴로 노려보았고.

이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름에 던져 넣었다.

푸화악-!!

타들어가는 도화선.

불길에 휩싸이는 오두막.

[Waaaaaaaaaaaaaaaaaggghhhh!]

팬들의 환호.

“Noooooooooooooooooooo-!!”

비명을 내지르는 헤이건.

링 위에서 무릎을 꿇고 비명을 지르는 헤이건과 불에 타고 있는 오두막이 번갈아 화면에 나타났다.

그런 가운데.

오두막을 바라보고 있던 신이 옆으로 돌아서서 카메라 밖으로 사라졌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신.

그렇게 세그먼트가 끝나려던 찰나.

투콰앙!!

그리고 이어지는 폭음.

카메라가 비춘 오두막은 아까와 달리 문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피부.

불타는 오두막 앞에 선 레스너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는 신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듯 주변을 살폈다.

[크아아아악!!]

그리고 분함에 비명을 내질렀다.

야수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그걸 보여주며 끝나는 세그먼트.

[Uoooooooooooooooooooohhh!!]

경기장 안의 팬들도.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모두가 엄청난 충격에 빠지 채.

나이트로가 종료되었다.

대박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압도적인 재능과 스타성을 지닌 두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가 발현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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