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79.
신과 레스너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반응은 당연히 열광적이었다.
바로 다음 날, 각 방송사의 스포츠 뉴스 오프닝을 나이트로에서 펼쳐졌던 신과 레스너의 세그먼트가 차지했다.
거기다 프로레슬링에 부정적인 온갖 시민 단체에서도 너무 폭력을 조장할 수 있다는 성명을 내놓을 정도였다.
백스테이지…… 아니, 아예 ‘아웃사이드’에서 촬영한 세그먼트는 팬들뿐만 아니라 업계의 관계자들에게도 분명 큰 인상을 남겼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신이기에.
현재 프로레슬러로서 업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남자기에 할 수 있는 대립.
다른 선수였다면 레스너와 저런 식으로 대립하는 건 꿈도 못 꿨겠지만.
신은 그런 남자였다.
그 누가 상대라 해도 어떻게든 싸우는 방법을 찾아냈고 악바리처럼 덤벼들어서 결국에는 승리를 차지했다.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모두가 그걸 기대했다.
신의 승리를.
레스너의 패배를.
브룩 레스너는 작년 프로레슬링 업계로 복귀한 이래 수많은 선수들을 쓰러뜨리며 자신의 강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그건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팬들은 과거를 떠올리면서 레스너의 파괴적인 모습에 열광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레스너는 조금씩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돈만 보고 업계에 돌아온 것까지는 괜찮았다. 팬들도 그런 무법자적인 면모에 반해서 열광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성실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레스너는 대부분의 위클리 쇼에 나오지 않았고, 그나마 4대 페이퍼뷰에나 간간히 그 모습을 비추는 정도였다.
그러면서 받는 페이는 최고니까 팬들이 염증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 상황에서 복귀한 신.
게다가 그는 복귀한 레스너의 공격으로 갈비뼈가 부러져 1년을 날렸다.
복수심으로 불타는 그를 보고 팬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갈 수는 없지.’
신은 레스너에게도 어느 정도 팬들의 마음이 쏠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굳이 좋은 반응일 필요는 없었다.
‘레스너가 이길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정도면 충분했다.
대립이란 팽팽해야만 하는 법.
신은 굳이 자신에게만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브룩 레스너에게도 역시나 자신만큼 경기에서 승리를 거둬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나 근거가 존재해야만 했다.
그걸 위한 세그먼트였으니까.
이어지는 3월 2주차의 나이트로.
오프닝에서 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열광하는 팬들.
백스테이지를 걸으며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던 신은 이내 인터뷰어와 만나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 지난 주 레스너의 사냥용 오두막을 직접 찾아가셨던데요.]
[그랬었지. 또 학부모 협회에서 성명서를 낼 정도로 과격한 짓을 했고.]
[대체 왜 그러신 거죠?]
[열 받잖아. 그 자식은 자신이 왕이라도 되는 듯이 행동하지. 하지만 확실히 말해서, 왕은 바로 나거든.]
[Yeeeeeeeeeeeeeeeeeeaaahhh!]
호쾌한 선언에 팬들이 환호했다.
[또, 이쯤 해줘야 브룩 레스너가 그 무거운 궁둥짝을 들고 여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화면이 옆으로 돌아가며 브룩 레스너를 대신해 폴 헤이건이 나타났다.
[Boooooooooooooooooooo-!]
마이크를 요구하는 헤이건.
[신,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거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신.
[뒤를 조심하게.]
그렇게 말한 직후.
누군가 뒤에서 신을 습격했다.
화면을 모두 가리는 떡대.
바로 브룩 레스너였다.
[Uoooooooooooooooooooohhh!]
팬들이 놀라 소리쳤고 레스너는 카메라와 부딪혀 쓰러진 신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Booooooooooooooooo-!!]
이어지는 야유.
그러거나 말거나 레스너는 잔혹하게 신을 두들겨 팼고 카메라에 잘못 부딪힌 건지 그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레스너는 신을 완전히 박살냈다.
투콰앙-!!
방범용으로 설치된 셔터로 신을 던져버린 뒤 소도구들이 들어 있는 상자를 들어 신을 완전히 파묻었다.
잔혹한 폭행.
신은 일어서지 못했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레스너의 뒤로 헤이건이 크게 박수를 치면서 다가갔다.
[좋아! 브룩! 최고야!!]
팬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상대가 브룩 레스너라고 해도 신이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당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끝나는 첫 세그먼트.
이어 광고가 나가는 동안 신은 나름대로 괜찮은 결과였다고 자축했다.
미리 촬영된 세그먼트였고 피도 가짜였다. 하지만 현장감이 넘쳤기에 팬들은 저게 실제였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는 편이 더 좋고.’
광고가 끝나고 해설자들이 그런 분위기를 더해주는 멘트를 쳤다.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신이 현재 레스너의 공격으로 인해 큰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또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1년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죠. 모쪼록 큰일이 아니어야만 하는데요.]
지난 일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
그리고 쇼는 계속 이어졌다.
다른 선수들이 경기를 펼쳤고 그동안 신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메인이벤트까지.
쇼가 시작되고 약 2시간 30분 뒤.
“신, 슬슬 준비하셔야죠.”
“그래.”
신은 자신을 찾아온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일단 이마에 붕대를 감아서 상처를 입었음을 표현했다.
팬들이 무엇보다 기대하는 순간.
압도적인 브룩 레스너의 무력과.
절대 쓰러지지 않는 신의 충돌.
그걸 연출하기 위한 세그먼트였다.
마지막 광고가 끝난 뒤, 방송 화면은 다시금 경기장 전체를 비추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붉은 조명.
날카로운 전자음.
[Booooooooooooooooooooooo-!]
압도적인 야유 속에서 브룩 레스너와 폴 헤이건이 링에 등장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펑-!
그 포효와 함께 폭죽이 터졌다.
레스너가 지금 얼마나 중요한 선수로 다뤄지는지를 반증하고 있었다.
그렇게 링으로 올라간 레스너에게서 ACW 월드 챔피언 벨트를 받은 폴 헤이건이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챔피언의 등장.
압도적인 정복자.
그런 수식어로 표현이 가능한 레스너는 현재 이 업계의 최종보스라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선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링 세그먼트.
헤이건이 마이크를 쥐었다.
[놀라운 일이군요.]
[Boooooooooooooooooooooo-!!]
[저는 솔직히 신이 조금이라도 반격을 가할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야비하게 웃는 헤이건.
[하지만 그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연약한 남자였습니다. 아니죠! 바로 이 남자! 브루우우우우욱 레쓰너어어!!]
온갖 휘황찬란한 말로 브룩 레스너를 포장하는 폴 헤이건.
The Conqueror!
The Beast!
The……!
바로 그때였다.
브룩 레스너가 돌연 폴 헤이건이 손에 쥐고 있던 마이크를 빼앗았다.
[Uoooooooooooooooohhh?!]
순간 놀라는 팬들.
폴 헤이건조차도 놀랐다.
브룩 레스너가 헤이건의 마이크를 빼앗아는 건 각본에 없는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팬들이 더 기대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레스너는 폴 헤이건이 말해주는 내용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는 방식으로 세그먼트를 수행했다.
그게 그 압도적인 강함에 더 어울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레스너가 복귀 후, 헤이건과 연합한 뒤 거의 최초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나온 첫 마디.
“그 병신 좀 두들겨 패서 병원에 보냈다고 뭘 그리 좋아하는 거야? 폴.”
[Uooooooooooooooooooohhh!]
깜짝 놀라는 팬들.
“그 Fu-king Bit-h는 이제 나만 봐도 오줌을 질질 지리게 될 거라고.”
레스너는 씨익 웃었다.
그 웃음은 진심이었다.
사실.
그가 마이크를 빼앗은 것은 신에게서 몰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세그먼트 중간에 헤이건의 마이크를 빼앗고 자신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해라.
그게 신의 지시였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건방지게 지시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은 그 말을 따르기로 했던 레스너는 이렇게 쌍욕을 섞어서 신을 조금 엿 먹여주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욕설.
방송 심의 상 12세 이용가인 나이트로에서 F-word는 절대로 나가서는 안 되는 단어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고릴라 포지션에서는 난리가 나서 데릭 비숍이 버럭 소리쳤다.
“당장 처리해!”
현장에서 방송까지 약 15초.
레스너의 욕설이 지워졌다.
욕설에 ‘삐-처리’가 들어갔다.
하지만 현장의 팬들이나 시청자들은 모두 레스너의 입 모양이나 앞뒤로 이어지는 말로 인해 다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건.
사고.
다시 말해 현실처럼 느껴졌다.
“여기 모인 너희 병신들은 신이 악당인 나를 이기는 걸 상상하면서 딸이나 쳤겠지만, 현실은 이렇다고.”
[Waaaaaaaaaaaaaaaaaggghhh!!]
이상하게도 환호가 나왔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팬들이 레스너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특유의 무법자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파트-타이머로서 회사에 안 나오고 종국에는 신이라는 존재로 인해 이미지를 다 까먹었다.
그래서 야유 쪽으로 기울었으나.
바로 오늘.
레스너가 스스로 마이크를 잡고 제대로 신을 욕하고 있으니 팬들의 반응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었다.
여러모로 멋진 그림이었다.
지금까지 회사에서는 레스너의 목소리가 얇다는 이유로 폴 헤이건이라는 매니저를 붙여서 도와주었지만.
레스너는 혼자서 마이크워크를 수행할 수 있는 남자였고, 팬들도 이제는 거기에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레스너의 모습은 마치 참다 참다 신과의 대립에 불이 붙어서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립에 대한 기대감은 더 커졌다.
그리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레스너도 생각보다 재미있는 것을 느꼈다.
‘이거 좋은데.’
그동안 각본에만 따르는 레슬러들을 등신 취급하던 레스너였다. 하지만 그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자신도 각본을 수행할 뿐이니까.
하지만 그 과정 속의 디테일을 표현할 수 있게 되자, 그것이 생각보다 더 자신의 흥미를 끄는 걸 느꼈다.
레스너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 새끼는 온갖 방법을 다 이용해서 나를 조지려고 들었지. 이 손바닥도 그 때문에 한 번 다쳤었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레스너.
그를 통해 자신이 부상에서 완전하게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과시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정복자고 야수고 관계없이, 나와 그 개새끼가 링 위위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섰을 때, 과연 결과가 어떻게 될까?”
처참한 신의 패배.
브룩 레스너는 종합격투기계에서 헤비급 왕좌를 차지하기도 했던 프로.
프로레슬러가 당해낼 리가 없었다.
“그게 현실이라고.”
[Uoooooooooooooooohhhh……!]
탄식하는 팬들.
레스너가 마이크를 내던졌고, 이어서 링 바깥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이어지는 음악.
레스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Waaaaaaaaaaaaaaaaaaaggghhh!]
그리고 팬들은 환호했다.
클래식 클리셰.
쇼의 초반, 레스너에게 당해 병원으로 실려 갔었던 신이 돌아왔다.
그것도 앰뷸런스를 타고서.
자주 있는 일이었다.
태도 불량 시대의 락콜드나 거트 앤젤 같은 기라성 같은 레슬러들도 잔뜩 흥분해 차를 몰고 난입하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나이트로의 세트장은 입장로가 버닝콩처럼 경사로가 아니라 직선으로 쭉 넓은 구조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속력’을 낼 수 있었다.
락콜드는 링 앞에 살수차를 세워둔 상태에서 맥주 호스를 뿌려댔고, 거트 앤젤은 우유 호스를 마구 뿌려댔지만.
신은 달랐다.
왜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날카로운 소리.
끼기기긱-!!
좁은 공간에서 순간 앰뷸런스의 뒷바퀴가 움직였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헤이건은 생각했다.
‘어.’
이건 각본이 아닌데.
돌진해오는 차량.
투콰앙-!!
순간 시속 80km 이상으로 돌진해온 앰뷸런스가 링을 그대로 들이박았다.
레스너와 헤이건이 무너졌다.
[Uoooooooooooooooooohhh?!]
경악하는 팬들.
레스너는 로프를 붙잡고 어떻게 중심을 잡기는 했지만, 순간 엄청난 일이 눈앞에 벌어진 것을 느꼈다.
링이 휘었다.
링 바닥의 철골이 위로 솟으며 매트를 뚫고 튀어나왔다. 모두가 지금 벌어진 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리, 링이……?!”
데릭 비숍이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Show Must Go On.
앞 범퍼가 찌그러진 채로 있던 차의 앞 유리창이 뭔가에 의해 박살났다.
콰직-!
슬레지 해머.
유리를 뜯어내고 그곳으로 내린 신은 이마에 붕대를 휘감은 상태였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본 네트 위에 서는 신.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레스너.
이어서 신이 날았다.
3단 로프 위를 뛰어넘어 레스너를 덮친 그가 슬레지 해머를 휘두르면서 상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Waaaaaaaaaaaaaaaaaaaggghhh!]
마이크가 부서질 듯한 환호.
그 안에서 잘못 넘어져 골반 염좌를 앓게 된 폴 헤이건은 통증으로 안색이 새파랗게 물든 채로 생각했다.
“각본이, 아니잖아…….”
그게 두 사람의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