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94화 (594/634)

Dark Match 80.

레스너와 신이 맞붙었다.

애초에, 링 세그먼트가 끝나는 시간이 조금 빨랐기 때문에 두 사람의 싸움은 10분 이상 이어져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경기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멋지고 폭력적인 씬이 이어졌다.

레스너를 덮친 신은 슬레지 해머를 휘둘러댔다.

빠악-!!

거기에 맞고 넘어가는 레스너.

진심은 아니지만.

꽤 아팠다.

“끄응……!”

두 사람은 제대로 된 각본 없이 싸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충 링 프로듀서들이 짜준 내용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안 갔다.

애초에 링 앞에 적당히 들이박고 내린다는 내용부터 안 지켰으니까.

레스너가 신의 손에서 슬레지 해머를 빼앗았고, 두 사람은 뒤엉킨 채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나갔다.

레스너가 바닥을 뚫고 치솟은 철골 기둥에 신을 부딪치게 만들었다.

힘과 기술은 그쪽이 우위였다.

그런 상황에서 레스너는 신을 완벽하게 제압해버릴 생각을 품었지만.

신도 절대 만만하지는 않았다.

뻐억-!!

레스너의 안면에 꽂히는 니 킥.

힘에서 밀릴 거라고 생각했던 신이 그렇게 나오자 레스너도 당황했다.

“웃……?!”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레스너.

뒤이어 신은 레스너의 경동맥을 조르면서 그대로 바닥에 넘어뜨렸고 머리를 들이받아 제압하려고 했다.

콰앙-!!

하지만 레스너는 고개를 옆으로 틀어서 순간 신의 헤드벗을 피했다.

바닥과 충돌하는 신.

거기에서 레스너는 깨달았다.

이건 놈이 준 기회였다.

주도권을 넘기려는 행위.

오늘 세그먼트는 레스너가 돌아온 신을 제압하면서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레스너는 순간 쪽팔림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신은 이 세그먼트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나가기 위해 연기를 하고 있었다.

‘제기랄.’

프로레슬러 놈.

어이가 없어진 레스너는 그대로 정신을 못 차리는 상대방을 어깨에 들쳐 메고서는 벌떡 일어났다.

[Uoooooooooooooooohhh?!]

놀라는 팬들.

이어지는 F-5.

레스너는 어깨 위에 엎드려 있던 신을 자신의 순수한 힘만으로 반회전 시켜서 그대로 지면에 추돌시켰다.

투콰앙-!!

그것으로 끝났다.

F-5는 그런 기술이었다.

신의 안티 크라이스트처럼 지금까지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는 피니시 무브.

[Uoooooooooooooooooooohhh!]

팬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고, 뒤를 이어 자리에서 일어선 레스너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신을 돌아보았다.

“끄윽…….”

정신을 못 차리는 신.

그런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선 헤이건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쓰러진 신을 내려다보는 두 사람.

그리고 이내, 레스너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신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퍼억!

퍽!

연잇는 주먹.

신은 완전히 정신을 잃은 채 저항하지 못했고 겨우 팔을 들어 가드를 올리는 정도가 전부였다.

레스너의 피부가 흥분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팬들은 그 폭력성에 순간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내 상황을 중재하기 위해 데릭 비숍이 보안요원들을 데리고 나왔다.

십여 명이 넘는 남자들이 달라붙어서 레스너를 신에게서 떼어 놓았다.

쓰러진 신과 숨을 몰아쉬는 레스너의 대비를 보여주면서 위클리 쇼는 종료되었다.

신이 이토록 무력하게 당한 것은 대립을 하면서 몇 번 없던 일이었다.

브룩 레스너의 강력한 위상과 카리스마가 함께 드러나는 세그먼트였다.

* * *

그렇게 쇼가 끝난 뒤.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신은 락커룸에서 나오는 선수들과 인사를 나눴다.

맨 먼저, 코디 로스.

“선배님.”

“어, 코디. 고생 많았다.”

“감사합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별거 아냐.”

“별거 아니긴.”

러셀이 나왔고 그 뒤를 따라온 다른 선수들마저도 신의 주위를 에워쌌다.

“제대로 얻어맞던데.”

“나도 제대로 쳐줬어.”

“…….”

“진짜야.”

“괜찮은 거 맞냐?”

“아슬아슬하기는 한데.”

신은 씨익 웃었다.

다른 이들도 다들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좀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내가 믿음직스럽지 못한가.’

상대가 레스너니 그런 거겠지만.

그래도 딱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수행하는 각본 이외에는 알지 않는 것이 업계의 불문율이었다.

그래야 각본이 새나가도 다른 선수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로 인해 다들 이 대립을 걱정하는 것이 느껴져서 어쩐지 좀 미안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서있자니 뒤이어 브룩 레스너가 폴 헤이건을 대동한 채 백스테이지로 돌아왔다.

“…….”

“…….”

모두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레스너는 그런 시선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신의 앞으로 다가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이대로만 가자.”

그러더니 떠났다.

반대로 헤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I Hate You.”

“…….”

선수들은 황당해했다.

업계에서 선수들의 마음을 잘 알아주기로 누구보다 유명한 폴 헤이건이 내게 그런 말을 하고.

반대로 브룩 레스너는 가볍게 좋은 말을 하나 건네고 사라졌으니까.

신은 어색하게 웃었다.

‘좀 심하기는 했지.’

레스너와 신이야 어차피 일이 각본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협의하고서 링 위에서 마구 장난을 쳐댔지만.

헤이건은 아니었다.

실제로 헤이건은 허리 염좌로 인해서 뒤뚱거리는 걸음이 더 심해졌다.

그렇게 쇼가 종료되었고.

브룩 레스너와 폴 헤이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트럭에 올라타 묶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이제 레스너와 신은 한 주를 쉬고.

3월 마지막 주에 경기 계약 세그먼트를 진행한 뒤 4월 2주차에 열릴 스타게이트에서 맞붙을 예정이었다.

4월 1주차에는 신이 마지막으로 혼자 링에서 세그먼트를 하고 말이다.

나쁘지 않은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레스너는 그것과 별개로 트럭을 몰고 도로를 타는 내내 어쩐지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군.’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말도 일부러 한 건 아니었다.

그냥 복도로 돌아와 선수들에게 둘러싸인 신을 보자 자동으로 그런 말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빌어먹을 자식.’

분명 열이 받는 놈이었다.

그렇기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말해서.

정말로 즐거웠다.

즐거운 쇼였다.

“큭큭…….”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반응이라는 걸 느낀 레스너가 웃자 옆에 앉아 있던 폴이 입을 열었다.

잔뜩 심통이 난 얼굴이 웃겼다.

“뭐가 그리 즐겁나?”

“아니, 링이 그따위로 박살 나는 광경은 어디에서도 못 본 거잖아?”

“그 미친 자식. 거기서 진짜로 박아? 누구 하나 크게 다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고?”

“존나 웃기지 않았어?”

“웃기긴 개뿔.”

“아니, 거기에서 풀 액셀로 밟아서 링을 박는 놈이 대체 어디 있냐고.”

“그러니까! 그러다 목이라도 부러졌으면 대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비명을 지르는 헤이건.

그러다 고통에 허리를 움켜쥐는 모습을 보고 레스너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래, 누가 그러겠어.”

“…….”

“그 새끼는 철창 속에 있는 게 아니군. 딱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레스너는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다.

정확히는 그와 연관된 소리였다.

헤이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철창 속에 있다.

그것은, 과거.

레스너가 폴 헤이건에게 울면서 자신의 처지를 토로했을 때 쓴 말이었다.

자신은 마치 철창 속에서 재주를 부리는 동물원 원숭이처럼 느껴진다고.

하기 싫은 각본을 하고.

기계적으로 스케줄을 소화하고.

개인 시간은 없고.

그것은 브룩 레스너라는 남자가 알지 못한 WWF의 프로레슬링이었다.

선수를 하나의 상품으로 만드는 프로레슬링. 거기에 질린 레스너는 몸과 마음 둘 다 상한 채 업계를 떠났다.

그리고 돌아온 뒤로도 생각했다.

업계는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기에 레스너는 그러한 업계에서 오직 자신에게 필요한 이득인 돈만 챙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즐거웠다.

이걸 원했다는 느낌이었다.

헤이건이 물었다.

“……프로레슬링이 다시 좋아졌나?”

“설마!”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하는 레스너.

“그럴 수 있는 건 신이 이 업계에서 엄청난 파워를 지녔기 때문이겠지. 물론 나 역시도 그 정도는 되고.”

“그렇겠지. 그게 아이콘이고.”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레스너.

헤이건이 다시금 놀랐다.

지금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레스너는 방금 신을 이 업계의 아이콘이라고 인정한 셈이었다.

‘미치겠군.’

또 신이 마법을 부렸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레스너는 조금 더.

조금 더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간단한 이유였다.

프로레슬링은 존나 싫고.

신은 존나 마음에 안 드니까.

싸우러 나갈 생각이 생겼다.

* * *

중간에 낀 폴 헤이건만 당황스러운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3월 2주차.

신은 각본상 부상으로 빠지고 원래대로라면 메인이벤트에서 폴 헤이건이 나와 레스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링 세그먼트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팬들이 신의 복귀를 바라는 그림이 나와야 하는데.

세미 메인이벤트로 펼쳐진 러셀 오메가, 루차 브로스, 영 덕스, 코디 로스의 경기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그때 선수들은, 각본대로 악역 선수들이 러셀 오메가를 린치하면서 최대한 어그로를 끌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전자음이 이어졌다.

[Uoooooooooooooooooooohhh?!]

깜짝 놀라는 관객들.

선수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브룩 레스너가 링으로 나왔다.

경기가 DQ로 끝나고 팬들의 어그로를 끌어야만 하는 시점이 망가졌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레스너는 당황한 선수들의 앞에서 이야기했다.

“링에서 쳐맞고 나가면 돼.”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이거 진짜야?”

슬쩍 옆을 돌아보는 코디 로스.

고릴라 포지션과 대화를 나눈 심판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브룩 레스너가 갑자기 예고도 없이 나이트로 시작 전, 데릭 비숍을 찾아와 각본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비숍이 그걸 받아들여서 선수들에게 알리지 않는다는 조건까지도 추가된 상태에서 이어지는 각본.

레스너가 더블 클로스라인을 써 영 덕스를 쓰러뜨리고는 그대로 링 위를 신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코디 로스를 저먼 수플렉스로 넘기고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내며 자신의 무법자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반칙과 린치로 체력이 너덜너덜했던 러셀 오메가에게 F5를 날리고 루차 브로스를 차례차례 박살 내주면서.

“크하아아아아-!!”

포효하는 레스너.

그리고 별거 아니라는 듯 웃는 그에게 팬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Waaaaaaaaaaaaaaaaaggghhh!!]

확실히 ‘배드애스’한 순간이었다.

뒤따르는 헤이건은 상황을 순간 받아들이지 못하고 표정이 굳어졌지만.

‘이게 어떻게 되는 거야?’

레스너의 의욕이 갑자기 돌아왔다.

평소대로라면 아무리 스타게이트로 가는 길목에 있는 위클리 쇼라고 해도 절대 대가 없이는 나오지 않았는데.

나왔다.

그렇게 세미 메인이벤트가 종료되었고 광고 타임이 이어지는 동안은 대체 어쩌려고 이런다는 말인가?

“브룩.”

“아, 헤이건.”

“이제 어쩌려고 그러나?”

“뭔가 똘추 짓 좀 해봐.”

“……내가?”

“마이크나 가져오지.”

한숨을 내쉬는 헤이건.

뒤뚱거리며 움직인 그가 밑에서 마이크를 받아왔고, 당연하다는 듯 레스너가 그걸 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광고 시간에 들어가서 방송이 잠깐 Off가 된 상황이었지만 팬들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때와는 달리 링 위에서 레스너가 마이크를 잡았는데 누가 자리를 뜰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레스너는.

그들을 비웃었다.

“방광 비우러 안 다녀오시나? 돼지들은 지방 때문에 방광이 눌려 소변이 자주 마렵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낄낄거리며 웃는 레스너.

헤이건이 황당해 바라보았고.

레스너는 팬들을 놀린 순간을 가벼운 농담으로 넘기며 순식간에 분위기를 자신의 것으로 끌고 왔다.

“미안, 당신 이야기군.”

“…….”

[Uoooooooooooooooooooohhhh!]

웃음을 터뜨리는 팬들.

헤이건은 확신했다.

이 일만 끝나면 업계를 뜨자.

앞으로 이런 브룩 레스너와 함께 일했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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