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81.
이어진 메인이벤트.
레스너는 헤이건에게도 마이크를 쥐라고 주문한 뒤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면서 신과의 대립을 이어나갔다.
그러며 동시에 팬들에게 그간 설명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레스너는 이해나 공감 따위를 바라고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다들 내가 쇼에 나오지 않아서 불만이 많은 모양이더라고. 헤이건.”
“어, 그게.”
“딱히 돌려 말할 필요는 없어. 사실이잖아. 특히 다들 내게서 여기 이 벨트를 빼앗으라고 말들이 많던데.”
“브룩.”
“아니, 진짜로.”
상황이 이상해졌다.
평소 레스너를 믿으며 추켜 세워주기에만 바빴던 폴 헤이건이 지금은 몹시도 당황하고 있었다.
반대로 레스너는 낄낄 웃었고 그것은 지금 상황이 각본이 아님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나는 저기 저 러셀 어쩌고나 뭐시기 시나처럼 이 벨트에 가치를 둔 놈은 아니야. 친구들. 그게 바로 나지.”
[Waaaaaaaaaaaaaaaaaaaggghhh!]
환호가 터져 나왔다.
팬들은 그런 레스너의 카리스마에 깊이 빠져들었다.
“난 돈이면 충분해. 지금 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친구들하고는 다르게 나는 벨트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고.”
레스너는 뒤로 돌아섰다.
거대한 등짝이 드러났다.
“지금 이 링 뒤편에 있는 너희 모두가 이 리그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매일 뼈 빠져라 일하는 건 알겠어.”
하지만 그건.
“내 방식은 아니야. 친구들. 그리고 여기 다쳐서 못 나온 그 녀석까지.”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래, 그 신이라는 놈 말이야.”
레스너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그 개새끼가 엿 같다는 생각을 하자니 이 벨트를 내가 계속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Uoooooooohhh……!!]
“마치 그 새끼 마누라를 빼앗듯 말이야!! 푸하하하! 혼자 침대에서 속이 좀 많이 타시겠어! 신!!”
[Uooooooooooooooooooohhh!!]
더 당황해하는 폴 헤이건.
마초적인 면이 있는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모욕이었다.
신 역시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 라스베이거스의 저택에서 나이트로를 지켜보던 그는 어이가 없어져서 생각했다.
‘빼앗는다고?’
현재 이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넘버원의 권력을 가진 여제 폐하를 어떻게 브룩 레스너가 빼앗는단 말인가.
하지만 속이 또 부글부글 끓는 것은 사실이라 신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다음 주에 보자고. 레스너.”
‘진짜’ 대립이었다.
* * *
레스너가 그렇게 메시지를 보낸 뒤, 팬들의 관심은 하나에 집중되었다.
과연 신이 어떻게 반격할 것이냐.
그런 상황에서 일주일이 다시 지나갔고 ACW의 주식과 스타게이트의 암표 값은 미친 듯이 폭등했다.
신 VS 브룩 레스너.
브룩 레스너 VS 신.
여기에 ACW 월드 챔피언십이 걸렸다는 사실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다.
두 사람의 감정이 더 중요했다.
신과 레스너는 서로를 증오했고, 그 사실은 프로레슬링의 각본을 넘어 팬들에게 고스란히 전달이 되었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3월 4주차의 나이트로에서, 두 사람의 경기 계약식은 무척이나 조심스레 준비되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동안 대립을 하면서 각본을 어기는 짓을 자주 해온 그들이었기에 데릭 비숍은 이례적으로 큰 준비를 했다.
링 위와 그 주변에 회사의 보안요원들을 스무 명이 넘게 준비 시켰다.
그 상태에서 테이블과 의자가 세팅되니 링 안은 위험한 냄새를 풍겼다.
그리고 레스너가 먼저 나왔다.
날카로운 전자음.
[Waaaaaaaaaaaaaaaaggghhhh!!]
팬들의 환호.
‘악당’으로서.
자신의 무법자적인 면모를 과시하며 그것을 이해 받으려 하지 않는 레스너는 확실히 야수라는 이름에 걸맞았다.
그렇기에 반응도 좋아졌다.
이제 팬들은 두 사람의 대립을 보다 더 순수한 의미에서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레스너가 링으로 올라와 자리에 앉았고, 뒤이어 신의 테마곡이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Waaaaaaaaaaaaaaaaaaggghhh!]
레스너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 환호.
그렇게 링으로 나온 신은 뭔지 모를 파일철을 하나 들고 있는 상태였다.
거기에 순간 의아해하는 레스너.
신이 링으로 올라왔다.
두 사람 사이에 보안요원들이 스크럼을 짰고 링 아나운서가 긴장된 표정으로 경기 계약식을 진행했다.
참고로.
‘진짜’ 긴장한 것이었다.
각자 자리에 앉은 신과 레스너는 서로의 얼굴을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보안요원들도 식은땀을 흘리는 자들이 다수 있는 상황이었다.
진짜 싸우고 있다.
프로레슬링의 탈을 썼고 그 선은 지키지만 그 외에는 두 야수가 제멋대로 진행하고 있는 대립이었다.
그리고 그런 디테일이 팬들의 무의식에 침투하면서 몰입을 높여주었다.
“브룩 레스너.”
챔피언의 이름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신.”
[Waaaaaaaaaaaaaaaaggghhh!]
두 선수에게 쏟아지는 환호.
“두 분은 2014년 4월 13일에 펼쳐질 스타게이트에서 ACW 월드 챔피언십 매치를 가질 예정입니다.”
“Bull-Sh-t.”
그렇게 말한 건 레스너였다.
데릭 비숍이 또 뒷목을 부여잡고서는 욕설의 묵음 처리를 지시했다.
순간 링 아나운서가 당황했고 레스너는 삐딱하게 앉은 채 신을 노려보며 말을 꺼냈다.
“이게 무슨 챔피언십 매치야. 저기 저 새끼랑 내가 서로를 존나 싫어하니까 일어나는 매치가 더 자연스럽지.”
[Uoooooooooooooooooooohhh!]
“그래, 맞아. 레스너.”
신도 동의했다.
“우리 매치가 그런 식으로 가서는 안 되지. 벨트는 부가적일 뿐이라고.”
“그래? 내가 이 벨트를 가지고 있는 게 너에겐 열 받는 일이 아닌가?”
“열이 받기는 하지.”
“그거 다행이군.”
“하지만 내가 네 골통을 박살 내고 가져오면 되는 문제니까 괜찮다고.”
“…….”
잠깐 침묵하던 레스너는.
“이 친구, 뇌진탕 증세가 좀 심해서 기억을 잃은 모양인데.”
신을 조롱했다.
“그럴 리가 있나.”
“아니, 진짜로. 지난주에 내게 얻어터진 건 새까맣게 잊은 모양이야.”
“그래? 네가 나를 기습하다가 오줌까지 지린 건 확실히 기억하는데.”
뻔뻔하게 이야기하는 신.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Uooooooooooooooooohhh……!]
놀라는 팬들.
뒤를 이어 신이 그때까지 손에 들고 있던 파일철을 레스너에게 내밀었다.
“새 계약서다.”
“……?”
“너와 나의 경기에 딱 맞는 계약서지. 사인이라면 이쪽에 하라고.”
“또 이상한 하드코어 매치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승률을 높여보려는 것 같은데. 어디 한번 확인해보지.”
레스너는 계약서를 읽었다.
정확히는 읽는 시늉만 했다.
경기를 일반적인 월드 챔피언십 매치로 하지 말자는 것은 이미 몇 주 전부터 거론된 상황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감정.
증오.
분노.
그걸 모조리 담아내는 경기.
“언생션드 매치다.”
승인되지 않은 경기.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경기로서, 무규칙으로 진행되며 경기에 대한 책임을 다 선수들이 진다.
만약에 언생션드 매치의 폭력성으로 인해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로 큰 타격을 입으면 피해 보상까지도 생각해야만 하는 정말 위험한 경기였다.
“이거 돈 벌려고 들어왔다가 벌금 내서 내가 파산을 하게 생겼구먼.”
레스너는 씨익 웃었다.
“만약에 언생션드 매치로 가면 나는 너를 죽여 버릴지도 몰라. 신. 이 회사는 그야말로 끝장이 나는 거지.”
“아, 그러셔?”
신도 피식 웃었다.
“나는 반대로 널 존나 팬 다음에 빤스를 벗겨서 그 Small Peanut을 세계에 드러낼 생각이었는데.”
뭐, 영 다른 소리는 아니었다.
“넌 쪽팔려 뒈질 테니까 말이야.”
“크흐흐…….”
바로 그때였다.
레스너의 뒤에 서 있던 헤이건이 다가와 귓속말로 뭐라고 말을 건넸다.
언생션드 매치에 굳이 서명할 필요가 없다는 제스처였다. 그리고 레스너가 마이크를 쥐고 직접 이야기했다.
“지금 폴이 너랑 그런 식으로 붙어줄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무기 사용 때문에 그래?”
신이 다시 웃었다.
“좀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레스너. 확실히 여기서 내가 무기 없이 싸우는 쪽이 그림으로는 멋있겠지.”
종합격투기의 괴물.
브룩 레스너와 무기 없이!
정정당당하게!
멋지게 맞선다! 신이!
“아니, 근데 내가 왜 그래야 해? 종합격투기가 하고 싶으면 그쪽으로 돌아가. 게실염 때문에 힘드시나?”
[Uooooooooooooooooooohhh!]
팬들이 경악했다.
게실염.
레스너를 종합격투기 선수 시절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질병이었다.
“싫으면 꺼지시던가.”
“아니, 좋아.”
레스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렇게 가는 건 어때? 경기 시작 후 10분까지만 무기를 쓸 수 있다는 규칙으로 가는 거야.”
“오히려 반대가 좋을 것 같은데.”
“아니, 이건 양보해주셔야겠어.”
그런 식으로 정해져 가는 규칙.
레스너는 방금 그것으로 신이 자신보다 더 나은 ‘프로레슬러’임을 은연 중에 시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확실히 그랬다.
그리고 그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좋아! 그렇게 해보자고!”
팬들이 공증인이었다.
레스너가 고개를 끄덕인 뒤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뒤이어 신이 팬을 들고서 똑같이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렇게 끝나는가 싶던 계약식.
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어, 이렇게 두 사람의…….”
링 아나운서가 다급하게 계약식을 마무리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레스너가 그 말을 잘라냈다.
“이렇게 된 이상 조심하라고.”
“……?”
“네 마누라. 네가 뒈지고 난 다음에 진짜 내가 빼앗아갈지도 모르니까.”
몸을 들이밀고 경고하는 레스너.
“허어.”
[Uooooooooooooooooooohhhh!!]
신은 잠시 생각했다.
이건 선을 넘었다.
그리고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만년필로 테이블 위에 올라와있던 레스너의 손등을 힘껏 찍었다.
‘진짜로’.
“끄억?!”
레스너가 비명을 질렀고.
헤이건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싸움이 시작되었다.
신이 믿을 수 없는 괴력을 발휘해 테이블을 들어올려서 레스너의 얼굴에 던졌다.
콰앙-!!
거기에 휘말린 헤이건은 레스너처럼 등으로 테이블을 받아내지 못하고 얼굴로 받아냈다.
코피를 질질 흘리며 링 밖으로 굴러 떨어지는 업계의 혁명가, 폴 헤이건.
스크럼을 짜고 있던 보안요원들이 달려들자 신은 진짜로 펀치를 날리면서 그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렸다.
상황은 ‘진짜’였다.
실제로 보안요원들은 근처 인디 단체에서 출연료를 주고 불러온 선수들이 많았다.
그런 그들이 신이 자신들을 마구 폭행해대자 개중에는 흥분해 진짜로 신을 때리려는 사람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 순간.
뒤에서 달려든 레스너가 주먹을 날리려는 보안요원을 잡고 들었다.
저먼 수플렉스.
합을 맞추지 않았음에도 체구가 왜소한 선수는 레스너에 의해 힘껏 뽑혀 링 위를 나뒹굴었다.
그러고 나니 자신들이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다들 링 아래로 빠졌다.
레스너와 신이 만났다.
주먹이 오고 갔다.
신은 씨익 웃으며 이마로 주먹을 받아내고는 레스너의 무릎을 까버렸다.
물론 100% 실전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신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프로레슬링의 선을 지켰고, 그건 레스너를 크게 자극했다.
‘이 새끼가, 감히?’
브룩 레스너라는 희대의 거물과 싸우며 프로레슬링을 하는 여유를 보여?
그렇기에 레스너도 진심으로 싸워줄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주먹을 날리며 절묘한 타이밍에 합을 맞춰나갔다.
날리는 주먹은 진심.
하지만 거기에 섞인 것은 쇼.
신의 입술이 뜯어져 피가 흘렀고 레스너의 이마에서도 출혈이 발생했다.
그리고.
팬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그렇게 이어지던 싸움은 결국 데릭 비숍이 락커룸의 선수들을 모조리 데리고 나온 다음에야 진정 되었다.
[Waaaaaaaaaaaaaaaaggghhhh!!]
선수에는 선수가.
락커룸에 있던 수십 명이 달라붙어서 레스너와 신을 떼놓았고 두 사람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힘을 썼다.
그리고 마침내.
링 아래로 끌려 나간 레스너를 바라보던 신이 틈이 벌어진 곳을 발견하고는 힘껏 달려 나갔다.
[Uooooooooooooooooooohhhh!!]
선수들은 막지 못했다.
로프를 타고 올라간 신은 그대로 자신의 전매특허인 문설트를 사용해 레스너와 선수들을 몸으로 짓눌렀다.
레스너가 그런 신에게 주먹을 날리고 기어코 선수들에게마저 수플렉스를 날리기 시작하면서.
대립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언생션드 매치.
신과 레스너.
두 사람은 진짜 싸울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