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97화 (597/634)

Dark Match 83.

프로레슬링 경기를 위해 건조된 범프 링 아래에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빈 공간이 존재했다.

난입하는 선수들이 여기에 숨고, 무기를 넣어두거나 하는 용도로 자주 사용이 되는 곳이었다.

레스너에게 경고를 날리고 곧장 링 아래로 내려간 나는 스폰서와 스타게이트의 로고가 붙은 커튼을 걷고 범프 링 아래의 상황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테이블.

나는 그걸 꺼내 들었다.

[Uoooooooooooooooooohhhh!]

환호하는 관객들.

모두가 기대하는 가운데, 나는 테이블을 링 위로 올려두고는 경기에서 사용할 무기들을 차례차례 꺼냈다.

양철 쓰레기통.

철제 의자.

사다리.

마지막으로.

슬레지 해머까지.

[Waaaaaaaaaaaaaaaaaggghhh!!]

완전히 환호가 넘어왔다.

슬레지 해머.

내가 지금은 은퇴하고 MXT의 운영을 맡고 있는 업계의 전설이자 ‘왕중왕’, 트리플H로부터 이어받은 무기.

그걸 들고 링 위로 올라간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는 레스너에게 달려들었다.

그 복부에 한 방.

뻐억-!

“끄흑?!”

등에 한 방.

콰악-!

둔탁한 소음과 함께 레스너의 몸이 무너졌다. 나는 헤이건이 저 멀리에서 ‘브루우우욱!’ 하고 외치는 걸 들었다.

리드는 내가 잡았다.

다른 경기와는 달랐다.

브룩 레스너는 지금껏 압도적인 무력을 이용해 다른 선수들을 어렵지 않게 제압해왔다.

숀 시나도.

러셀 오메가도.

지금 당장 이 업계를 주름 잡는 수많은 선수들을 날려버린 야수. 그것이 바로 브룩 레스너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변수가 생겼다.

바로 ‘무기’였다.

그걸 가진 나는 다른 선수들보다 더 나은 상황에서 경기를 할 수 있었다.

쓰러진 레스너를 뒤로한 채 돌아선 나는 다른 무기들을 활용하려 들었다.

테이블을 코너로 가져가 세우고 뒤로 돌아서자 뭔가 거대한 게 나를 향해서 돌진해오는 게 느껴졌다.

레스너였다.

피할 수는 없었다.

콰앙-!!

달려드는 레스너의 어깨에 받힌 나는 등 뒤에 있던 테이블에 처박혔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끄흡-!”

마치 투우(鬪牛)처럼 내 복부에 어깨를 대고 들어 올린 레스너가 턴버클에 대고 연이어 공격을 가했다.

턴버클 쓰러스트.

콰악-! 콱!!

충격이 연이어 몸을 덮쳤다.

하지만 나는 딱히 저항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저항을 하려다가 되려 당해주었다.

슬레지 해머가 지면에 떨어졌다.

“끄흑…….”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 식으로 연출까지 해가면서 레스너의 턴버클 쓰러스트를 받아준 이유는 간단했다.

그게 프로레슬링이니까.

레스너가 말없이 내 몸을 뒤로 돌려서 허리를 붙잡았다.

저먼 수플렉스.

나는 힘껏 뛰어주었다.

몸이 뒤로 날아가 등부터 낙법.

투콰앙-!!

팔을 벌린 채 낙법을 친 나는 그 반동을 이용해 반대편으로 구르며 큰 충격을 받았음을 몸으로 표현했다.

[Waaaaaaaaaaaaaaaaggghhhh!!]

우레와 같은 환호.

“크윽…….”

아주 그냥 제대로 떨어졌다.

멋진 저먼 수플렉스였다.

레스너의 스타일은 파워 하우스.

거기에 사실상, 1차 은퇴 전까지 그는 올라운더에 가까운 괴물이었다.

사실, 올라운더라고 불리는 선수들은 대부분이 테크니션 계통이었다.

그렉 하트.

거트 앤젤.

AK 스타일스.

존 마이클스.

러셀 오메가.

하지만 파워 하우스는 달랐다.

파워 하우스 계통은 힘과 그에 대비되는 근육량이 필수적이었기에 보통은 테크닉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세간의 인식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레스너는 규격 외의 존재였다.

올 아메리칸 출신.

거대한 체격과 압도적인 힘.

테크닉까지.

모든 걸 겸비한 선수가 바로 레스너였다. 젊은 시절의 레스너는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완벽한 사내였다.

심지어 그 모기 목소리조차 헤이건이라는 존재로 커버했으니 가히 단점이라는 걸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과거의 일.

의외로 그런 테크닉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고, 그것은 나이를 먹으며 점점 줄기 마련이었다.

현 시점에서 레스너는 보다 순수한 파워 하우스에 가까운 스타일이었다.

수플렉스, 수플렉스, 그리고.

수플렉스.

연이은 저먼.

레스너가 독일계 미국인이라서 그런지 더 아프게 느껴지는 기술이었다.

연이은 수플렉스를 꽂아 넣은 레스너가 내 앞으로 다가와 핀 폴을 했다.

[1……!]

나는 곧바로 어깨를 들어 벗어났다.

그리고 말했다.

“Hey, Lesnar.”

씨익 웃으며.

숨을 몰아쉬며 눈앞이 순간 아찔하다 싶었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고 입만 살아서 마구 지껄여댔다.

“그게 다냐?”

“…….”

“무기 같은 것도 좀 써보라고.”

“좋아, 신.”

레스너가 사다리를 손에 들었다.

사다리라니.

‘미친 자식.’

저런 걸 저렇게 번쩍 들 수 있는 설득력과 힘이 부러울 정도였다.

나라고 저런 걸 못 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긴 경기를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사다리를 들거나 하진 않는데.

레스너는 들었다.

그리고 그걸로 날 내리쳤다.

뻐억-!!

“크하악?!”

짓이겨지는 듯한 통증.

어우, 이 미친놈이 제대로 친다.

나는 복부를 움켜쥔 채 옆으로 굴렀다. 그러자니 레스너가 이번에는 드러난 내 등에 다시 사다리를 날렸다.

콰직!

“끄흐윽!”

[Waaaaaaaaaaaaaaaaaaggghhh!!]

환호하는 팬들.

아이고, 사람이 죽어 가는데.

나는 이를 악물었고.

이내 웃었다.

그래, 이래야지.

이게 프로레슬링이지!

나는 의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레스너를 향해 휘둘렀다.

세로로 세운 상태에서 정강이를 노리고 휘두른 철제 의자.

쩌억-!

“끄학!”

레스너가 무릎을 꿇었다.

그 손에 들려 있던 사다리가 떨어지자 옆으로 굴러 피한 나는 로프에 등을 기대고 그 반동으로 일어났다.

한쪽 무릎을 꿇은 레스너.

그 안면에.

리바운드 체어샷.

투콰앙-!!

[Uoooooooooooooooooooohhh!!]

호쾌한 반격에 환호하는 팬들.

레스너와 함께 땅을 구른 나는 코어가 앞뒤로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끄응…….”

레스너 이 개자식.

하지만 나도 제대로 돌려줬다.

링 위는 엉망진창이었다.

심판이 텐 카운트를 시작했고 그러는 동안 나와 레스너는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체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먼저 움직인 건.

바로 나였다.

“후우.”

심호흡과 함께 일어선 나는 옆에 쓰러져 있던 사다리를 링 위에 세웠다.

탑 턴 버클보다 더 높은 사다리.

그 위에서 꽂는 하이플라잉 무브라면 확실히 우위를 잡을 수 있을 터.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챈트를 들으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나는 바닥에 드러누운 레스너를 확인하며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놈이 사다리를 두 손으로 붙잡고 넘기려 했다.

놀라는 팬들.

나는 몸이 기우는 걸 느꼈다.

보통 이 시점에서 일반적인 선수라던가 경기라면 그냥 안전을 위해 공격을 받아주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곧바로 레스너를 향해 몸을 던졌다.

콰앙-!!

충돌.

레스너와 나는 다시 뒤엉킨 채 바닥에 쓰러졌다. 팬들은 연이은 강한 범프에 놀란 듯 마구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죽을 맛이었다.

“이야, 이걸 받아줄 줄이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하는 레스너.

확실히 그랬다.

거의 4미터 높이였던 터라 레스너가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확실히 크게 다쳤을 만한 상황이었다.

“이래서 프로레슬러 새끼들은…….”

짜증을 내는 레스너.

그래도 링 위에서 누군가 죽는 상황은 그 역시 보기 싫었는지 받아줬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 * *

솔직히 말하자면.

레스너는 꽤 당황하고 있었다.

‘이 새끼…….’

이게 싸움인지 아닌지조차 혼란스러웠다. 프로레슬링의 탈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계속 합을 맞춰가야만 했다.

그리고 팬들은 거기에 열광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강렬한 챈트.

경기장을 찾은 수십만의 팬들이 신과 레스너의 싸움에 열광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이어지는 경기는.

그래,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꽤 마음에 들었다.

신은 훌륭한 프로레슬러였다.

팬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할 줄 알았고, 거기에 맞서 상대인 레스너에게도 충분히 기회를 주고 있었다.

그게 열이 받았다.

남자로서.

상대방에게 이 경기의 리드를 맡기고 있다는 사실이 성질을 건드렸다.

그래서 받아주었고.

이어진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느닷없이 날아드는 이마.

뻐억-!!

헤드벗.

코를 움켜쥐며 물러난 레스너는 분명한 셀링을 하며 무릎을 꿇었다.

[Uooooooooooooooooooohhhh!]

거기에 올라오는 반응.

죽여주는 쾌감이 뒤따랐다.

아무리 레스너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압도적인 반응은 분명 기분이 좋았다.

프로레슬링과 종합격투기.

그 분명한 중간 지점에서.

두 사람은 계속 줄타기를 했다.

뻐억-!

레스너의 훅이 신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신의 상체가 앞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일어서며 니 킥을 꽂아 넣었다.

빠악-!!

무너지는 신.

하지만 레스너는 느꼈다.

그 눈은 아직 살아 있었다.

뒤로 파고들어 저먼.

투콰앙!!

[Uoooooooooooooooooohhh!]

튕겨져 나가는 신을 향해 다시 달려든 레스너가 이번에는 파이어맨즈 캐리로 힘껏 어깨 위에 들쳐 멨다.

그리고 이어지는.

F5.

허리케인의 최고 등급을 뜻하는 단어. 그처럼 레스너의 어깨 위에 자리한 신의 몸이 힘차게 회전했다.

링 안을 휘몰아치는 태풍.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

투콰앙-!!

[Waaaaaaaaaaaaaaaaaggghhh!!]

이어지는 핀 폴.

[1……!!]

이걸로 끝이다.

레스너는 생각했다.

보통 경기라면 이런 식으로 자신이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며 온갖 수플렉스와 F5로 끝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2……!!]

이번에도 그럴 터였다.

평소와 같았더라면 말이다.

하지만.

레스너는 분명히 들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지금 자신의 밑에 깔린 이 프로레슬러에게 쏟아지는 팬들의 믿음을.

분명히 다른 선수들과는 달랐다.

레스너는 언뜻 생각했다.

만약 프로레슬링에 신(神)이 있다면.

바로 이 남자일 거라고.

신의 어깨가 힘차게 들렸다.

[Yeeeeeeeeeeeeeeeeeeeaaahhh!!]

일부러 2의 반의 반의 반이라는.

거의 핀 폴을 빼앗기기 직전인 극적인 상황에서 어깨를 들어 올린 신.

혹시 조금이라도 타이밍이 늦었더라면 바로 쓰리 카운트가 세어지고 경기가 끝났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신은 그걸 해냈다.

이 수십만의 관객들과.

수천만의 시청자들 앞에서.

프로레슬러로 갈고 닦은 자신이 얼마나 극적인 드라마를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존재인지를 보여주었다.

“퉤.”

레스너는 침을 뱉었다.

근육질의 몸은 땀으로 범벅인데다가 흥분으로 인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런 상황에서 레스너는 쓰러진 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는 연이은 저먼 수플렉스로 아주 박살을 내놓았다.

투콰앙-!!

콰앙!!

수플렉스, 그리고 수플렉스.

그런 가운데 점점 환호를 보내던 팬들은 레스너의 압도적인 면모를 보고는 도리어 신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자연스러운 언더도그마 현상.

자리에서 일어선 레스너는 링 위를 크게 어슬렁거리며 거기에 지지 않기 위해 버럭 소리쳤다.

“Suplex City, Bi-ch!”

[Uoooooooooooooooooohhhh!!]

놀라는 관객들.

레스너 자신은 수플렉스 시티의 시장이고, 지금 신을 그곳의 입주민으로 삼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후 브룩 레스너의 캐치프레이즈로 사용될 ‘수플렉스 시티’가 순간적인 기지로 인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신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걸 지금 써?’

원래는 몇 년 뒤의 일인데.

아무래도 링 위의 형국과는 달리, 자신이 레스너를 그 정도로 강렬하게 몰아붙인 모양이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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