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98화 (598/634)

Dark Match 84.

‘수플렉스 시티’.

Welcome To Suplex City.

종합격투기에서 성과를 내고 돌아온 브룩 레스너의 새로운 캐치프레이즈.

전생의 2015 레슬 임페리움에서 레스너가 로만 레긴스와 일대일로 맞붙으며 즉흥적으로 내뱉은 대사였다.

그게 트위티의 월드 와이드 트렌드가 되어버리며 이후 브룩 레스너라는 사내를 상징하는 대사가 되었다.

폴 헤이건은 이렇게 말했었다.

브룩 레스너는 수플렉스 시티의 시장이며 모든 입주민을 환영하고 있다.

입주 조건은 간단했다.

브룩 레스너에게 수플렉스를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맞을 것.

전생에는 수많은, 동시에 다양한 선수들이 수플렉스에 맞고 입주민이 되었지만.

내가 과연 알았을까.

전생이 아닌, 지금의 첫 입주자가 바로 내가 될 줄이야.

투콰앙-!!

정신이 아찔해졌다.

저먼 수플렉스.

내 이전, 1대 프로레슬링의 신이라고 불렸던 남자, 카를 곳치가 만들어낸 기술이었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았다.

일단 더럽게 아팠다.

당연했다.

허리를 붙잡힌 채로 번쩍 들려 2미터 가까운 레슬러의 키를 넘어가 반대편에 등부터 떨어지는 기술인데.

안 아프면 그게 이상했다.

게다가 만일 잘못 떨어지기라도 하면 단숨에 목이 부러질 수도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기술이었다.

그런 저먼 수플렉스를.

벌써 열 번 이상 맞았다.

어깨가 퉁퉁 부었고 관절과 승모근이 이상을 호소했다. 나는 바닥에 처박힌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Three-!!]

팬들은 숫자를 셌다.

연속된 저먼이 얼마나 이어지는지.

그런 상황에서 야수가 다가왔고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누가 능히 저 야수를 상대하겠는가.

누구긴 누구야.

바로 나지.

“……!”

나는 레스너의 주먹을 피했다.

그리고 뒤로 돌아들어갔다.

허리를 붙잡고.

그대로 쑤욱 뽑아 넘겼다.

저먼 수플렉스.

투콰앙-!!

[Waaaaaaaaaaaaaaaaaaggghhh!]

쏟아지는 환호.

그와 함께 이어지는 외침.

[Four-!!]

이걸 같이 세준다고?

“후.”

피식 웃은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레스너에게 다가가 다시 허리를 잡고 저먼 수플렉스를 날렸다.

콰앙-!!

[Five-!!]

멋진 반응이었다.

저먼 수플렉스.

원래 나는 이럴 때 스냅 수플렉스를 사용하는 쪽이었지만, 한 남자와의 싸움을 통해 이 기술을 가져왔다.

바로 러셀 오메가였다.

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껏 상대해온 수많은 레슬러들의 기술과 카리스마를 배워왔다.

그들의 장점을 취합해 내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레스너에게 똑같이 저먼으로 반격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팬들은 이 그림을 원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레스너와 내가 동등하게 맞붙는 걸.

물론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다.

내가 초장부터 동등하게 싸웠다가는 나와 레스너, 그리고 다른 선수들 사이의 격차가 생겨나기 때문이었다.

그건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프로레슬러로서 나는 이 링에서 벌어지는 일이 언제나 치열했으면 했다.

누가 무조건적인 우위에 서지 않고, 우리 모두가 스타가 되었으면 했다.

그렇기에 무기라는 룰을 넣었고.

그 10분이 막 지났다.

시간을 확인한 심판이 무기를 치우기 시작했고, 나와 레스너는 그런 가운데 서로 마구 주먹을 휘둘러댔다.

뻐억-!

뺨에 얽혀드는 주먹.

찹으로 돌려줬다.

쫘악-!!

순간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난 레스너가 이내 한 번 더 쳐보라는 듯이 가슴을 활짝 펴며 내게 다가왔다.

그러시다면 뭐 별수 있나.

쩌억-!!

최대한 힘껏 때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반격.

빠악-!

헤드벗이었다.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나는 코를 움켜쥐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니 이내 등에 로프가 닿는 것을 느꼈다.

달려든 레스너의 클로스라인.

녀석과 내가 한데 뒤엉킨 채로 로프를 넘어가 링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Uoooooooooooooooohhh!!]

비명을 지르는 팬들.

등부터 바닥에 떨어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레스너를 보고는 이쪽이 한 박자 더 늦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냅다 발부터 내질렀다.

뻐억-!

중심을 잃는 레스너.

그렇게 보였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느꼈다.

발에 감기는 감각이 없었다.

레스너는 그 짧은 상황에서 몸을 순간 비틀며 내 킥을 피해낸 것이었다.

그리고 중심을 잡았다.

진짜 야수처럼.

네 발로 땅을 디디고서.

‘미쳤군.’

가공할 코어 근육이었다.

놈의 몸이 어떻게 힘을 발휘하고 신체를 움직이게 하는지가 느껴졌다.

그렇기에 그 순간.

나는 걷어찬 자세 그대로 멈췄고, 그것을 놓칠 레스너가 아니었다.

바로 태클이 들어왔다.

콰앙-!!

등 뒤의 바리게이트에 몸이 부딪혔다. 무슨 황소와도 같은 힘이었다.

그대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동시에 마운트 포지션을 잡으려는 레스너.

옆으로 굴렀다.

레스너의 몸이 미끄러졌고 빠져나온 나는 팔을 지면에 댄 채 힘을 주었다.

몸의 근육이 순간 수축했다.

인간에게는 힘이 필요하다.

몸을 움직이고, 원하는 대로 의지를 실행할 수 있는 힘이.

그리고 나는 레스너에게 맞서기 위해 최대한 그것을 갖춰온 상태였다.

다리부터 시작해서 전신으로.

투콰앙-!!

레스너를 들이받았다.

놈의 거체가 뒤로 넘어갔고 나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끝까지 몰아붙였다.

바리게이트가 무너졌다.

나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뒤에서 관객들을 통제하던 보안요원들이 이 붕괴 사고에 휘말렸다.

[Uooooooooooooooooooooohhh!]

비명을 지르는 관객들.

그리고.

“7-!!”

텐 카운트가 7까지 이어졌다.

‘이거 어쩌지.’

나는 레스너와 뒤엉켜 바닥에 드러누운 상태에서 온갖 생각을 거듭했다.

어떻게 텐 카운트 이전에 다시 링으로 돌아가느냐. 바로 그게 문제였다.

하지만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레스너와 나는 서로의 눈을 한 차례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Waaaaaaaaaaaaaaaaaggghhhh!!]

쏟아지는 환호.

보안요원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 오히려 드라마가 되어줬다.

이들이 밑을 깔아줘서 우리 두 사람이 일어서는 게 더 극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확실히 이게 옳았다.

레스너와 나는 팔팔했다.

땀으로 범벅이었지만 체력적으로는 오히려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었다.

아드레날린이 돌았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팬들의 챈트 속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링으로 달려 들어갔다.

* * *

‘뭐 이런 게 다 있냐?’

바트 맥센은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안 그런 척하고 있지만, 그는 은퇴한 이후로도 업계의 소문을 다 들었고 지금 상황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신과 브룩 레스너의 대결.

두 사람이 실제로 감정적으로 붙고 있으며 그것이 대립에도 드러났다.

하지만 경기까지 이럴 줄은 몰랐다.

프로레슬러가 신체적 능력을 겨루는 것은 멋진 몸으로 보디빌더처럼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뿐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 경기는 달랐다.

실제 두 사람은 진짜로 맞붙었으며, 합을 맞추며 온갖 신체 능력을 겨뤘다.

솔직히 말해서 놀라웠다.

이런 경기가 있을 수 있다니.

아니, 이런 게 다 있다니.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프로레슬링 매치였다.

신과 레스너는 링으로 복귀한 이후로도 계속 공격을 주고받으며 겨루고 있었다.

팬들의 반응을 가져오기 위해.

그로써 자신이 이기기 위해서.

그 두 사람의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것은 궁극적인 의미에서의 케이페이브일지도 몰랐다.

실제로.

두 선수가 링 위에서 힘을 겨루면서 경기의 결과를 내는 것.

물론 그건 옳지 못한 일이었다.

프로레슬링은 계획이 있다.

그걸 각본이라고 불렀으며,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가 팬들의 반응을 원하는 대로 다루는 것이 바로 프로레슬링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걸 넘어서도 괜찮을 정도의 위치였으며, 그로 인해 보통 경기보다 훨씬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바트 맥센은 문득 떠올렸다.

브룩 레스너는 자신을 동물원의 원숭이에 비유하면서 이 업계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었다.

번 아웃이 온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도 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고, 결국 레스너는 업계를 떠나고 말았다.

‘그때는 열이 받았는데.’

하지만 Show Must Go On.

숀 시나.

러셀 하트.

랜스 오튼.

그리고.

“신.”

그걸 인정하는 게 열 받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1년간의 재활과 복귀.

그사이 종합격투기에서 자신을 증명한 야수가 돌아와 업계를 완전히 박살 내고 잔뜩 어그로를 끌어놓았다.

그 모든 걸 이룩하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해왔던 신으로서는 열이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로’ 그래서일까.

두 사람이 주고받는 펀치는 실제에 가까웠고, 그게 팬들의 마음을 울렸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Brook!]

레스너보다는 신을 응원하는 소리가 더 강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고?

이건 ‘프로레슬링’이니까.

“이겨라, 신. 네가 이겨.”

바트 맥센은 녀석과의 오랜 악연을 떠올리면서, 자신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응원을 했다.

* * *

온갖 챈트가 다 터져 나왔다.

This Is Awesome.

Fight Forever.

신은 자신의 중요한 경기마다 항상 나오는 챈트라 신경 쓰지 않고 레스너를 공격했지만.

그 상대는 달랐다.

‘이거 미치겠군.’

신을 벨리투벨리 수플렉스로 넘기고 일어선 레스너는 흐르는 땀을 닦아내면서 순간 경기장을 돌아보았다.

심장이 계속 뛰었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경기장에서 치열한 경기가 전해주는 감정은 프로레슬링을 무시하는 레스너라도 떨리게 만들었다.

죽여주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진짜 신체 능력을 겨루면서 그를 통해 팬들에게 열광을 받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는 포효했다.

“흐어어어어어어어-!!”

[Waaaaaaaaaaaaaaaaaaggghhh-!]

쏟아지는 환호.

하지만 그렇기에, 레스너는 지금 이 상황이 자신을 위한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신이 만든 상황이었다.

그가 지금껏 이 포르노에 보여준 헌신이 팬들의 마음을 뒤흔들었고, 압도적인 야수에게 도전하는 남자라는 완벽한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쓰러진 신이 일어서고자 했다.

레스너는 그 앞으로 다가갔다.

“이봐, 신.”

머리를 발로 밟으며 말을 걸었다.

“넌 정말 대단한 놈이야.”

“…….”

“이런 병신 같은 짓에 자신의 영혼을 걸 수 있다니 말이야.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세상일이라는 게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지.”

레스너는 씨익 웃었다.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다.

헌신과 희생이 언제나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힘이었다.

결과를 이뤄낼 수 있는 힘.

그렇기에 레스너는 말했다.

“넘어서봐. 가져가봐.”

“……내가, 말했나?”

“뭐?”

“원래 남자는 등신 같은 짓을 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거야, 인마.”

수영장이 딸린 집 지붕에서 떨어져서 다치고.

스케이트보드 뒤에 폭죽을 달아서 불을 붙인 뒤 날아가서 다치고.

왜 그러겠는가?

그게 등신 같은 짓이니까.

“그리고 나는 등신들의 왕이지.”

그리고 다들 등신이니까.

여기에 열광하는 거다.

두 남자가 근육을 키워서 부딪치고 서로를 학대하는 이 모습에는, 사람을 들끓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으니까.

신은 자신의 머리를 짓밟고 있는 레스너의 다리를 붙잡고 휙 당겼다.

“……?!”

쿵-!

쓰러지는 레스너.

그리고 이어지는 건.

신이 전설로부터 이어받은 기술.

바로 샤프 슈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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