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85.
“끄하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레스너.
[Uooooooooooooooooohhhh!!]
팬들도 똑같이 고함을 내질렀다.
확실하게 걸렸다.
샤프 슈터.
캐나다와 하트 패밀리의 성명절기.
그들의 정신, 더 어쌔신의 필살기.
다리를 엮은 상태에서 몸을 돌려 상대방의 허리와 무릎에 큰 충격을 주는 서브미션 기술은, 분명히 경기의 후반부에 나왔을 때 그 의미가 컸다.
레스너가 탭을 칠까.
아니면 벗어날까.
괴로워하는 레스너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췄고 그는 바닥을 힘껏 내리치며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실제로 신이 무릎이라도 박살 낼 각오로 서브미션을 걸어대고 있으니까.
힘을 줘서 버텨냈지만 그러면 허리에 무리가 가는 상황이었다. 레스너는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었다.
브루우우우우욱-!!
비명을 지르는 헤이건.
팬들도 위험한 각도로 꺾인 레스너의 허리를 보고는 설마 설마 했다.
여기에서 탭이 나오는가.
위대한 경기가 생각치도 못했던 방식으로 끝이 난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매력적인 결말이었다.
하지만.
레스너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신도 그걸 원하지 않았다.
“끄으으으윽-!!”
레스너가 앞으로 기어갔다.
두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이를 악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끝내 로프를 붙잡고 서브미션을 풀어냈다.
“신! 로프 브레이크!!”
심판의 외침에 레스너를 놓아준 신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채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죽은 게 아닐까.
“허억, 허억…….”
하지만 거대한 폐에 계속해서 산소를 불어넣자 몸 전체에 엄청난 속도로 혈액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곧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서려는 레스너에게 슈퍼 킥.
쫘악-!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상대의 턱과 상반신이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레스너는 쓰러지지 않았다.
태클이 들어왔다.
“큽?!”
숨이 턱 막히는 감각.
중심을 잃고 넘어간 신은 곧바로 레스너가 매미처럼 매달리는 걸 느꼈다.
자세가 반대로 뒤집혔다.
기무라 락.
어깨를 꺾어서 제압하는 서브미션.
그게 순간 느껴졌다.
레스너가 손목을 세게 움켜쥐기 직전, 신은 몸을 반대편으로 비틀며 그 안면에 대고 엘보를 날렸다.
뻐억-!!
코피가 터졌다.
“크하악-!!”
하지만 레스너는 멈추지 않았다.
또 다시 기무라를 시도했고 두 사람은 바닥에서 뒤엉킨 채 경기의 마지막 순간답지 않은 싸움을 이어나갔다.
경기의 막바지는, 분명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만큼 서로 천천히 호흡을 맞춰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Waaaaaaaaaaaaaaaaaaaggghhh!]
빠악-!!
신의 엘보가 두 방째 터졌고 동시에 레스너가 기무라 락을 걸어버렸다.
우드드드득!!
“끄으으윽-!!”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는 신.
기술이 완벽하게 들어간 걸 느낀 레스너는 일부러 힘 조절을 하면서 신이 탭을 치지 않도록 유도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신에 대한 응원이 이어졌다.
그 가운데에서 레스너는 웃었다.
드라마가 점점 완성되어갔고, 그 과정에서 팬들의 환호는 절정에 달했다.
자신은 압도적인 최종보스.
신은 그 도전자.
더군다나.
최종보스의 손에 큰 상처를 입고 1년을 날려먹었다는 드라마도 있었다.
그러므로 신이 이기는 게 맞았다.
그게 맞는 그림이리라.
레스너 본인도, 현재 업계의 아이콘인 신을 이겼을 때 나올 팬들의 역반응을 감당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적당히.
돈 버는 선에서.
그게 모토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사리 져줄 마음은 없었다.
신이 그럴 만한 능력을 갖췄는가.
과연 이 업계의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 받을 가치가 있는 남자인가.
자신이 떠난 뒤 업계의 변화를 이끌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졌나.
그걸 보기 위해.
레스너는 팔에 힘을 꽉 주었다.
바로 그때였다.
신이 상반신을 들었다.
위험한 행동이었다. 팔이 부러질 수도 있었고 레스너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며 팔에 힘을 약간 풀었다.
기세에서 밀렸다.
신은 단숨에 머리를 날렸다.
빠악-!!
헤드벗.
빠악!!
두 방째.
쩌억-!!
세 방째.
“끄흑?!”
순간 레스너의 손힘이 약해졌고 신은 억지로 팔을 빼내면서 빠져나왔다.
바로 그 반동이 찾아왔다.
우드득-!
신은 아찔한 통증을 느꼈다.
어깨가 빠졌다.
‘제기랄.’
뒤로 물러선 그는 식은땀이 쫙 흐르는 것을 느끼며 일단 어깨를 맞췄다.
까드득!!
“끄으으윽?!”
절로 쇳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티를 내서는 안 된다.
[W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은 자신이 레스너의 기무라 락으로부터 완벽하게 빠져나왔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기대를 저버릴 순 없었다.
신은 강렬한 통증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난 레스너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릎.
스팅거.
쩌억-!!
레스너와 함께 뒤엉키며 쓰러진 신은 지치지도 않고 헤드벗을 날렸다.
뻐억!
정신을 못 차리는 레스너.
계속해서 이어지는 신의 브롤링.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이 통증이 익숙해지도록.
마지막 안티 크라이스트에서 실수가 없도록 지금 고통을 다스려야만 했다.
하지만 직후.
“크하악!!”
레스너가 신을 번쩍 뽑아들었다.
[Uoooooooooooooooooohhh?!]
파이어맨즈 캐리 포지션.
이어지는 F5.
신의 몸이 힘차게 회전했고 그걸 본 팬들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신은 당해주지 않았다.
과거.
에디 비테레로가 그랬던 것처럼.
몸이 회전하는 동시에 레스너의 머리에 팔을 휘감으며 등으로 떨어졌다.
토네이도 DDT.
투콰앙-!!
[Waaaaaaaaaaaaaaaggghhhh!!]
환호하는 팬들.
멋진 반격이었다.
바닥에 대자로 누운 레스너는 일어서지 못했고 신은 통증이 느껴지는 어깨를 움켜쥔 채로 고통스러워했다.
“1……!”
텐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카운트가 이어지는 것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고통이 정신을 짓이겼다.
하지만 신은 일어섰다.
“7……!”
질 수는 없었다.
다른 누구라도 좋았다.
어떤 놈이라도 상관없었다.
어떤 놈에게도 그놈이 그만한 가치를 증명한다면 신은 져줄 수 있었다.
하지만 레스너는 아니었다.
자신이 이겨야만 했다.
신은 의지를 다잡고 일어섰다.
레스너도 토네이도 DDT의 충격으로부터 회복했고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몸을 가누고 싸울 준비를 끝마쳤다.
레스너가 신을 자신의 양어깨 위에 파이어맨즈 캐리 자세로 들쳐 멨다.
하지만 신은 그 등을 밀어내며 빠져나온 뒤 뒤를 돌아보는 레스너의 안면을 향해서 슈퍼 킥을 날렸다.
하지만 레스너가 그 발을 붙잡았다.
[Uoooooooooohhh?!]
놀라는 관객들.
순간 대치가 이어지는 와중.
신이 지면을 박차고 뛰어 오르며 그대로 레스너의 안면에 회심의 스팅거를 꽂아 넣었다.
쩌억-!!
[Waaaaaaaaggghhh……!]
짧게 터져 나오는 환호.
레스너가 뒤로 밀려났고, 로프에 몸을 기댄 뒤 다시 앞으로 나왔다.
그때를 기다렸다.
신은 레스너를 붙잡았다.
지끈.
어깨의 통증이 이어졌지만 그는 내색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상대방을 힘껏 뽑아들었다.
회전하는 몸.
그리고 정지.
[Uoooooooooooooohhhh?!]
역십자를 그리는 형상.
레스너를 거꾸로 뽑아든 신은 한 호흡 쉬고는 지면에 힘껏 꽂아 넣었다.
안티 크라이스트.
야수를 잠재우는 마지막 일격.
투-콰앙-!!
[Waaaaaaaaaaaaaaaaaggghhh!!]
레스너가 그대로 붕괴했다.
폴 헤이건이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쥔 채 절규했고, 신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대로 핀 폴.
레스너의 위에 드러누운 채.
[1……!!]
그는 수십만의 관객들이 외치는 카운트를 들으면서 레스너에게 물었다.
“일어날 거냐?”
“…….”
“제기랄.”
“아니.”
“응?”
“너의 승리다.”
짧게 이야기하는 레스너.
[2……!!]
그래도 혹시나.
정말 혹시나 레스너가 어깨를 들어올릴 수도 있으니, 신은 최대한 무게를 주고 레스너를 깔아뭉갰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다.
말했듯이 레스너는 이런 프로레슬링 팬들의 열기를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신의 리그였다.
그리고.
신이 가장 바라던 모먼트였다.
[3……!!]
땡땡땡-!!
[Waaaaaaaaaaaaaaaaaggghhh!!]
열화와 같이 쏟아지는 환호.
순간 경기장 전체가 떨릴 정도의 환호 속에, 신의 승리로 경기가 끝났다.
모두가 기뻐했다.
단 한 명.
폴 헤이건을 제외하면.
승자의 테마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신은 레스너의 위에서 굴러 나와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죽는 줄 알았다.
무리한 반동이 찾아왔다.
어깨가 비명을 질러댔고, 신은 심판이 벨트를 가져올 때쯤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그러고 보니.’
이게 있었지.
ACW 월드 챔피언 벨트.
드디어 되찾아왔다.
자리에서 일어선 신은 황금으로 빛나는 벨트를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물론 어깨가 빠졌던 곳을 더 움직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한 손만으로.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쏟아지는 챈트.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터지는 폭죽.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정말로 끝내주는 기분이었다.
* * *
그렇게 스타게이트가 막을 내렸다.
신이 팬들 앞에서 세리모니를 마치고 고릴라 포지션으로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던 비숍이 박수를 보냈다.
“환상적이었습니다! 신!”
“고맙습니다.”
“어깨는? 괜찮으신 거죠?”
신이 세리모니를 하는 내내 왼쪽 어깨를 움직이지 않는 걸 보았던 비숍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의사에게 좀 보여야겠네요.”
“아, 아! 이런! 얼른 가시죠!”
곧바로 자리를 비켜주는 비숍.
최고의 상품성을 지닌 신이 챔피언이 되어서 다시 ACW를 이끌어간다.
그런 그림도 원했던 비숍은 신의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안색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벨트도 제대로 들지 못해 옆의 심판에게 맡긴 신은 지끈대는 통증을 참아내며 백스테이지로 들어섰다.
그러자니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신.”
“레스너.”
“……내 기무라는 어땠지?”
시비를 거는 듯한 레스너.
하지만 아니었다.
“죽여줬다.”
“그래.”
신이 가볍게 받아치자 피식 웃은 레스너가 돌아서 주먹을 내밀었다.
툭.
가볍게 이루어지는 피스트 범프.
그리고 녀석이 뒤로 돌아섰다.
헤이건과 함께 멀어져 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신은 씁쓸하게 웃었다.
브룩 레스너.
분명 아까운 인재는 맞았다.
하지만 인생에는 여러 길이 있는 법이고, 레스너가 그걸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단지 그가 너무 이 프로레슬링 업계를 좌지우지하게 둘 수는 없으니까.
실제로 레스너가 돌아온 이후 ACW의 순이익은 엄청나게 상승했다.
그렇게 보자면 분명 그는 야수였다.
업계의 흥행을 이끄는 야수.
하지만 야수는 인간의 손에 쓰러져야만 한다. 그것이 신의 생각이었다.
이후,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레스너가 업계의 풀-타이머를 차례차례 쓰러뜨린 뒤 말 그대로 ‘정복자’로서 우뚝 서는 건 막을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대진도 좋겠지.
전생에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켰던 캐스켓-테이커 VS 브룩 레스너라던가.
아니면 적당히 떠오르는 신인이 레스너와 대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위상이 크게 상승한다던가.
저 아무도 못 말릴 것 같은 야수.
하지만 그런 만큼, 그가 이 업계에서 맡아줄 역할은 분명히 존재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잘 해보자고.’
신은 미소를 지었다.
긴 싸움이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