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00화 (600/634)

Dark Match 86.

천만다행으로 경기 도중 어깨가 빠진 게 딱히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어깨가 뚝 뽑혀 나와 그대로 집어넣어서 고쳤을 뿐으로, 추이를 지켜보면서 2주 정도 쉬면된다는 듯했다.

단순히 근육이 놀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나는 스타게이트에서 딴 챔피언 타이틀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휴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결혼식이 코앞이었다.

신혼여행을 포함해 2주 정도는 휴가를 받아서 쉬다가 올 예정이었는데.

그를 위해서라도 얌전히 휴식을 취해야만 나의 그, ‘주인님’께서 날 죽이지 않으실 것 같아서 말이다.

티파니는 화가 많이 났다.

결혼 전까지 반 깁스를 풀지 않으면 집에 들어올 생각을 말라는 듯했다.

그래서 쉬기로 결정.

스타게이트 바로 다음 날, 반 깁스를 한 채 링에 오른 나는 팬들의 앞에서 진심을 담은 대사를 쳐나갔다.

“멋진 싸움이었지. 하지만 많은 상처를 남겼어. 내 어깨는 적어도 한 달 정도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더군.”

[Uoooooooooooooooooohhh!!]

“물론, 브룩 레스너처럼 8월까지 안 나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여기 이 타이틀이 눈물을 흘리겠지.”

나는 타이틀을 존중했다.

여기에 담긴 신념을 존경했다.

선수들의 역사를 선망했다.

그렇기에 현재 부상을 입은 내가 타이틀을 계속 가지고 있을 순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파이팅 챔피언.

계속 싸워 자신이 최고라는 점을 증명할 수 있는 남자의 어깨에 걸려 있어야만 마땅한 물건이었다.

나는 입장로를 돌아보았다.

“나는 타이틀을 반납하겠어.”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응원을 보내는 팬들.

나는 그 앞에서 확실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 여기 이곳으로 돌아와 내 타이틀을 가져간 운 좋은 녀석의 얼굴을 박살 내줄 생각이다.”

[Waaaaaaaaaaaaaaaaaaaggghhh!]

깔끔하게 이야기를 끝낸 뒤 나는 곧바로 마이크와 타이틀을 링 위에 내려놓고 퇴장했다.

울려 퍼지는 테마곡.

나는 팬들에게 인사를 마쳤다.

뭐, 어쨌거나.

커리어 통산 월드 타이틀 3회.

그 기록은 확실히 추가되었다.

* * *

이후.

나는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바로 결혼 준비였다.

하지만 그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왜냐면 그 이전까지 결혼 준비는 내가 아니라 티파니가 계속해왔으니까.

어디서 할 건지.

어떻게 할 건지.

뭘 할 건지.

그 대부분을 티파니가 정했다.

나는 그냥 전화나 문자나 메일로 오는 자료들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대단하면서 완벽한 존재인지 칭송하는 게 하는 일의 거의 98%였다.

나머지 2%는 지금 하는 거고.

그러니 그 2%를 하는데 싫다거나 귀찮다는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왜냐면 그게 결혼이니까.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뭐 그런 거.

나의 아버지도 말씀하셨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아내를 사랑하는데 그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후가 고달플 것이라고.

그러니 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티파니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히 해두겠다.

웨딩 드레스의 프릴 모양이 A 라인이건, C 라인이건, 라인하르트건, 솔직히 말해서 내 알 바 아니었다.

정확히는 하나도 몰랐다.

하지만 티파니는 벌써 세 시간이나 웨딩 드레스를 갈아 입고 있었다.

솔직히 링 위에서 브룩 레스너와 싸우던 시간이 몇 배는 더 힘들었다.

촤악-!

걷히는 커튼.

그 안에서 등장하는.

티파니 마리 맥센.

눈부신 웨딩 드레스.

더 눈부신 그녀.

하지만 역시 힘들었다.

“신, 어때요?”

“어머, 신부님 너무 예쁘시다!”

“이쪽 컬 라인이 마음에 드네요!”

컬은 무슨 컬이야. 컬라 같은 건가.

아, 아니.

“예쁜데?”

“매번 예쁘다고만 하네요.”

“아니야, 그게 제일 예뻐.”

“방금 입은 건데요?”

“어?”

“거봐, 모르잖아.”

“아, 아니 다 예뻐서 그렇지!”

“정말요?”

“컬 라인이 죽여주네.”

“컬 라인이 뭐죠?”

“……컬트 앵글?”

“그건 누구죠. 거트 앤젤은 아는데.”

“몰라, 그런 사람이 있나?”

나는 시선을 피했다.

어쨌거나.

티파니가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방금 말에 거짓은 없었음을 느꼈다.

그녀는 언제나 아름다웠다.

거기에 감사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렇게 옷 고르기라는 고난이 넘어간 뒤, 우리는 말리부 저택으로 돌아와 하객 리스트를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티파니가 아이디어를 냈다.

“뭔가 아쉽지 않아요?”

“그래?”

“네. 우리 결혼식인데, 기왕이면 크게 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어, 그래도 괜찮겠어?”

“네, 상관없는데.”

“아니, 내 말은 이미 하객 리스트에 맞춰서 주문해둔 뭐 그런 거 있잖아.”

우리는 평범하게 예식과 피로연으로 나눈 결혼식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밤까지 이어지는 피로연은 캘리포니아 말리부 해안가에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진행될 예정이었고.

음식이나 동원되는 의자나 식탁 같은 걸 이미 다 맞춰둔 상태였다.

그걸 결혼이 한 달도 안 남은 상태에서 추가하면 엑스트라 차지가 붙지 않을까 싶어서 물어보자니.

티파니가 내 코를 툭 건드렸다.

“자기야.”

“……예, 예?”

“나 돈 많아. 왜 그래. 진짜.”

“………….”

아, 그랬지.

우리 자기가 돈이 많구나.

“그냥 말리부 해안을 살까요?”

“그럴 필요까진 없을 거 같네요.”

짓궂게 말하는 티파니의 농담에 웃으며 대답한 나는 내 안에 쏙 들어오는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가볍게 입을 맞췄다.

왜 이렇게 귀엽냐.

“아무튼, 다 추가하죠.”

안경을 쓰고.

큼지막한 내 티셔츠를 입은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하객 리스트와 노트북 화면을 대조하며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자니 누군가 지나갔다.

어.

장인어른이셨다.

“뭐냐, 아직 안 끝났냐?”

“예, 아직요.”

“그냥 대충 해. 그까짓 거.”

“아니, 어떻게 그럽니까.”

“그럴 거면 다 초대하든가.”

“어, 그럴까요?”

“?”

“??”

티파니의 말에 바트와 내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였다.

아니, 지금.

뭐라고 하신 거지?

“좋네요. 다 불러버리죠.”

“아니, 그게 왜.”

“일주일. 이 업계 관계자들. 정규직 직원들한테 초대장 보내서 항공비 지원해줄 테니까 오라고 해버리죠!”

“아니, 왜 그렇게 화끈해?”

“신경 쓰지 마세요. 아버지.”

우리 인생이잖아요.

싱긋 웃으며 말하는 티파니.

그 말에 바트 맥센은 초라하게 은퇴한 노인이 되어 물을 가지러 갔다.

아니, 근데.

“진심이야?”

“예, 재미있겠는데요. 당신 GCW 시절 동료들도 모조리 불러버려요!”

“업계를 떠난 사람들도?”

“그 사람들은 됐고. 지금도 PWA에서 일하는 의상팀장님 있잖아요?”

“SIN의 로고를 만들어준 사람이지.”

“불러야죠!”

히히, 하고 웃는 티파니.

그녀가 이처럼 갑작스레 생각 이상의 계획을 짜낼 때면, 확실히 누구의 딸인지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WWF! PWA! ACW! 다 불러!”

“얼마나 오려나.”

그리고 걱정이었다.

그 사람들한테 인사를 모조리 다 하고 다니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하지만.

솔직히.

재미있을 거 같기는 했다.

* * *

WWF, ACW, 그리고 PWA.

세 회사에 근무하는 임직원 숫자를 전부 합치면 대략 2,000명 정도였다.

이마저도 뭐, 전국에 퍼져 있는 머천다이즈 숍의 직원들은 다 빼고 계산한 결과였다.

그래도 역시 결혼식에 오는 사람들치고는 너무 많은 게 아닐까 싶어 나는 좀 생각을 재고해보자 했지만.

티파니는 계획을 진행시켰다.

그리고 진짜 2,000명 중에서 75% 가량이 그날 시간을 내서 결혼식에 참가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정확히 1,478명.

우리의 결혼식에 거의 그 정도 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드는 거였다.

과연 축하해주러 온 사람들과 제대로 인사를 나눌 수나 있을까 싶었다.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갔고, 그 사실이 뉴스에 나올 정도로 화제였다.

그리고 나는 어느 날, 랜스 오튼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게 되었다.

[야야.]

“……뭐.”

[진짜 1,500명 하객이냐?]

“아, 아마도?”

[아, 푸하!! 푸하하하하!!]

“끊는다.”

[야야! 아니! 기다려봐!]

“뭔데?”

[들러리는 200명쯤 할 거냐?]

“아니.”

[푸하하하하하!! 들러리가 200명!]

“끊는다.”

[아니, 기다리라고!!]

“용건만 간단히 해.”

나는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지금 나는, 티파니와 결혼식에서 테이블을 깔기로 한 업체에 와있었다.

그쪽 사장이 테이블 숫자를 도저히 시간에 맞춰 늘릴 수가 없다고 해 티파니가 담판을 지으러 왔다.

“두 배 드리죠.”

“콜.”

그리고 단숨에 끝났다.

“…….”

[들러리 해주랴?]

“아니.”

[야, 야야야!!]

“뭐?”

[누가 해주기로 했는데?]

“있어. 내 고등학교 시절 친구.”

거짓말을 했다.

[어, 그래.]

시무룩해지는 오튼.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구라야.”

[응?]

“당연히 러셀하고 시나랑 너지. 우리 네 사람이 악연이 얼마나 깊은데.”

[역시 그렇지! 야, 내가 Best Man으로 멘트 준비해가면 되냐?]

Best Man.

들러리 중에서 신랑하고 가장 관계가 깊은 남자가 샴페인을 들고 덕담을 건네는 뭐 그런 결혼 이벤트였다.

“그건 러셀이 할 건데.”

[아, 그래.]

“이건 안 돼.”

러셀이냐 시나냐.

고민을 좀 했는데.

아무래도 러셀이기는 했다.

녀석에게는 동질감을 느꼈고.

경쟁심도 함께 느꼈으니까.

[아무튼, 1,500명이나 모이면 인사할 시간도 제대로 없을 거 같은데?]

“그렇겠지?”

[총각 파티 할 거니까 와라.]

“뭐?”

[해야지, 자식아. 티파니도 처녀 파티 안 한대? 아, 친구 없나?]

“아니, 있거든. 브리 로건이라고.”

둘이 잘 지내는 모양이다.

처녀 파티 이전의 신부 파티도 브리가 주도해서 이루어졌다고 하니까.

[아무튼, 찐하게 즐겨야지. 응? 총각으로 지낼 수 있는 마지막 밤이잖아.]

“미리 말해두지만, No Stripper야.”

[왜? 마지막이니까 즐겨야지! 티파니도 분명히 라티노 스트리퍼 엉덩이에 달러 좀 꽂아주고 올 텐데?!]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티파니가 그런 걸 할 사람 같냐?”

신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스트리퍼.

분명히 미국 내의 음지 문화였고 다른 음지 문화와 비교하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유머 소재로 많이 쓰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나 드라마였다. 실제로 그런 걸 하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오튼이 소리쳤다.

[안 해?!]

“넌 하냐?”

[난 하지. 어? 지난번에 무한리필 스트립 클럽에도 다녀왔단 말이야.]

“…….”

이 자식, 가본 적 없군.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튼 스트리퍼는 아니야.”

[제기랄! 그럼 어쩔 수 없군.]

“……?”

설마 오튼 이 자식. 자기 자신이 직접 스트리퍼가 된다는 헛짓거리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기를 빈다.

* * *

랜스 오튼은 심각했다.

“아니, 이건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미국의 정신에 위배되는 짓이었다.

총각, 처녀 파티에 스트리퍼가 없다니.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즐기는 이 마지막 일탈이 없다니.

분명 재미가 없을 터였다.

땀내 나는 남자 놈들끼리 마구 모여서 맥주나 마시면서 레슬링 이야기나 하는 재미없는 순간이 올 터였다.

“아, 레슬링 개 재미없는데.”

바로 그때였다.

“여보, 왜 그래?”

“자기야. 들어봐.”

오튼은 상황을 설명했다.

그 말에 아내가 황당해했다.

“우리도 했잖아!”

“그치! ……아니, 당신. 했어?”

“당신이 했을 걸 알았으니까!”

“…….”

오튼은 속이 타들어가는 걸 느꼈다.

총각 파티 때 신과 러셀, 시나가 와서 다 같이 술 마시고 게임이나 했는데 아내는 스트리퍼를 불러 놀았다니.

순간 배신감을 느꼈지만.

‘계약’은 그 이후였기 때문에 여기서 뭐라고 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오튼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총각, 처녀 파티의 그 방탕함이 신혼 초기를 더 불타게 만들 수 있다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아무튼, 그 두 사람은 서로만을 바라보고, 뭐 그런다는 말이잖아?”

“어, 그렇지?”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지.”

서로가 서로의 스트리퍼가 되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선물 상자 안에 들어간 상태에서.

둘만 방에 두고.

“후후, 후후후후…….”

랜스 오튼은 사악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렇게.

훗날 신과 티파니 맥센 사이에서 나온 첫째 아들이 탄생하는 날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아이는 자신이 탄생한 순간이 어땠는지 전혀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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