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88.
우당탕쿵탕쾅-!
“헉?!”
나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앞이 보이질 않았다.
여기가 어디지?
몸을 움직여보려고 해도 잘 되지가 않았다. 나는 직후, 몸이 의자에 묶여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왜?’
의자 다리에 발목이 묶였고 손이 뒤로 당겨져서는 누가 수갑을 채워놨다.
나는 기억을 잠시 되살렸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지금 이 상황으로부터 내가 빠져나간다면, 일단 랜스 오튼부터 죽여버리겠다고 신에게 맹세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누군가 내 허벅지를 만졌다.
야릇한 손길.
“……?!”
타고 올라온다.
그 사람이 내 위에 앉았고 나는 침착하게 상대방을 타이르고자(?) 했다.
“저기, 일단. 당혹스러우시겠죠.”
허벅지 안쪽으로 들어오는 손.
아니, 이건 손이 아니다.
가죽 채찍?
오튼아.
왜 이런 콘셉트를 불렀니.
“아니, 그런데. 일단 좀 제 다리 위에서 내려오셔서 이야기를 좀 하죠.”
“어느 다리?”
“제 맨해튼 다리 사이즈가 편견하고는 달라 놀라셨다는 점 이해합니다.”
꽈악.
“끄그그윽?!”
여성이 내 맨해튼 다리(?)를 잡았다.
아니, 근데.
너무 아프다.
오튼 이 개자식이 날 어떻게 생각했기에 이런 콘셉트(?)를 택한 것일까.
“아니, 잠……!”
놀라 몸을 뒤틀던 나는 순간 흥분해 여성을 그대로 앞으로 힘껏 밀어냈다.
“끄헉?!”
“당장 꺼져!”
나는 흥분해 소리쳤다.
이 소란을 들으면 누군가 오겠지 싶어서 일부러 큰 소리로 역정을 냈다.
“오튼! 시나! 러셀!! 나 이런 거 안 한다니까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거야!!”
쿵쿵!
몸을 뒤틀며 마구 소란을 피웠다.
그러다 결국 의자가 힘을 견뎌내지 못하면서 부러졌고 나는 바닥에 쓰러져서 겨우 중심을 잡았다.
“오튼!!”
하지만 손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작정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위험.
하리라 느꼈던 바로 그 순간.
“신, 진정해요.”
“……티파니?”
누군가 내 가슴에 기대왔다.
방금까지 들었던 게 익숙한 목소리였음을 깨닫고 잠시 굳어져 있자니.
티파니가 내 안대를 벗겼다.
“푸흐흐흐…….”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뺨이 붉어져서.
“제기랄, 이게 대체 뭐야?”
“이벤트, 이벤트.”
“오늘의 메인이벤트가 이거야?”
“신 VS 티파니 맥센?”
“나쁘지 않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순간 안심이 됐고, 나는 가볍게 힘을 줘서 알루미늄으로 된 수갑을 단숨에 박살냈다.
그리고 티파니를 휙 안아들고는 바로 옆에 있던 침대로 던져버렸다.
결혼 전날.
깊은 밤이 지나갔다.
* * *
드라이브를 마치고 돌아온 랜스 오튼과 친구들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는 어이가 없어 그만 웃고 말았다.
하지만 꽤나 재미있는 이벤트였다.
그리고 반대로.
내가 티파니의 처녀 파티 때 난입해서 난생 처음 스트리퍼가 되어보았고.
그렇게 경력 기술서에 흥미로운 한 줄을 추가한 나와 티파니는 이어서 결혼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갔다.
PWA의 관객 숫자도 아니고.
나를 평소에 존경해오던 이들과 친한 친구들을 모조리 합쳐서 1,478명이라는 하객이 참가하는 결혼식.
아니, 거기에.
부모님의 한인 친구 분들과 바트 맥센의 친구 두 명이 참가해 총원은 대략 1,500명에 다다르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 장인의 파멸적인 인간관계에 대해서 느낄 수 있지만, 딱히 이후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너무 슬프니까.
하지만 티파니는 오히려 그런 아버지의 교우 관계를 놀려댔다.
“아버지 친구 분이요? 트럼프 아저씨하고 고향 친구 분이 다일 텐데?”
“그, 그래?”
“예, 노인네가 성질머리가 고약해서 주변 친구들이 떨어져 나갔거든요.”
“……그렇군.”
나는 분명 티파니 맥센의 대학 친구가 한 명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나 역시도 고등학교 때까지 잘 지냈던 친구들 두 명이 오는 것이니까.
이런.
확실히 프로레슬링 외에 주변과 거의 접점이 없다시피 한 인간 관계였다.
결혼도 프로레슬링의 여왕과 하고.
그 장인이 전(前) 왕이었고.
그런 삶도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가 가장 원하던 삶이었다.
준비는 차근차근 이루어져.
결국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멋진 사람과.
멋진 장소에서.
* * *
캘리포니아의 말리부 해변.
해변 일부와 결혼식이 열리는 언덕을 전세 내는 데만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갔으나,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이후, 예식과 피로연을 함께 하고자 테이블과 무려 중계용(?) 텔레비전까지 수십 대 세팅을 할 정도였다.
요리는 신의 오랜 팬이었던 뉴욕 레스토랑의 수석 셰프가 휴가를 내가면서까지 와서 리드를 해주었고.
방송은 또 티파니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그쪽 인맥이 해주었다.
그런 상황에서.
예식장에 도착한 ‘김씨’ 일행은 휘황찬란한 규모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워메, 워메.”
“이게 뭐야, 다?”
“준호가 아주 대어를 물었구먼.”
“준호가 뭐 한다고 했지?”
“프로레슬링이잖아!”
“어머머머! 진숙이 엄마!”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
한복을 갖춰 입은 여성이 예식장에 도착한 일행을 알아보고 달려왔다.
바로 신랑, 김준호의 어머니.
그 옆에는 김준호의 아버지가 함께였고 자연스럽게 덕담이 이어졌다.
“준호 엄마!”
“이게 웬일이야! 준호 출세했다! 애 키우느라고 고생 많이 했어!”
“호호, 애가 다 한 거지!”
“준호 아버지도! 고생 많으셨어요!”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
그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예식장은, 크게 언덕 쪽의 예식장과 해변가의 예식장으로 나뉜 구조였다.
언덕 예식장은 결혼을 직접 볼 수 있는 장소로, 신과 티파니가 고른 200명 가까운 인원이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신부 측에 모여든 인원들의 모습을 보고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양복을 입은 거대한 사내.
캐스켓-테이커.
“테이커!”
“축하드립니다. 보스.”
“보스는 무슨!”
그가 바트 맥센과 악수를 나눴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모여들어 예식장이 가득 찼고, 곧이어 신랑 신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Waaaaaaaaaaaaaaaggghhh!]
경기장을 방불케 하는 환호성.
하지만 태도는 사뭇 달랐다.
“신!”
바쿠와 할리가 다가왔다.
“결혼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티파니도. 멋진 놈을 잡았군.”
“고마워요. 아저씨들.”
그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찾아와 오늘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를 축하해주었다.
일단 디 캐스켓-테이커.
“신, 축하한다.”
“고맙습니다. 테이커.”
“행복하게 살아라. 아내 이름 몸에다가 함부로 새기지는 말고.”
“……그, 그러죠.”
캐스켓-테이커 선생은 4번의 화려한 이혼 경력을 가지고 계셨는데.
개중 세 번째 부인의 이름을 목에 새겼다가 현재 커버 업한 상태였다.
이어서 부커-리와 그 아내.
“부커!”
“카하하! 신! 오늘 멋진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얼마만이죠? 진짜 오랜만인 것 같은데.”
“전화는 계속 했잖아. 그 정도면 되지. 네가 나오는 쇼도 보고 있어.”
수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스눕-덕.
제임스 관.
스칼렛 요한나.
스컬렉스.
브리 로건.
그렉 하트.
게이브 바티스타.
트리플H와 자이나.
존 마이클스.
캡틴 ‘할리우드’ 로건.
크로우.
코디 로스.
사모아 고.
드류 맥킨마이어.
크리스 젠코.
셰무스.
바비 애슐리.
브로큰 와이엇.
거트 앤젤.
대니얼 라이언.
핀 발로.
쟈니 에이스.
더 스쿼드의 세 사람.
케빈 오윈스와 빅 E 랙스턴.
빅 죠와 그론 스트로먼.
정말 수많은 이들.
커리어를 관통해오면서 신이 만났던 전설과 같은 경력을 가진 선수들.
이 업계의 창조자들.
아, 물론.
이 세 사람을 빼놓을 순 없었다.
“신.”
“러셀.”
“신.”
“시나.”
“신.”
“넌 누구더라?”
“…….”
“아, 그래. 오튼, 오튼.”
신은 그들과 포옹을 나눴다.
자신과 함께 하나의 시대를 좀 더 흥미 있는 리그로 만들어준 세 사람.
형제와 같은 이들.
신은 미소를 지었다.
예식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언덕 위에서는 밑의 해변이 보이는 구조였고, 그곳에도 이미 다른 레슬러들과 직원들이 한가득 찬 상태였다.
그 모두가 신과 티파니의 모습을 텔레비전과 육안으로 보며 환호했다.
신은 생각했다.
정말 황당하지만.
이만큼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엉망진창인 결혼식이 없을 거라고 말이다.
바로 그때였다.
“신!”
누군가 불러서 돌아보니 케인 맥센이 다급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케인? 무슨 일이야?”
“아버지 상태가 좀 이상해.”
“……? 피의 결혼식을 한대?”
“아니, 그게 아니라.”
케인이 슬쩍 옆을 가리켰다.
예식장에서 손님맞이.
대부분 레슬러들은 신&티파니와 인사를 나눈 뒤 바트 맥센과 따로 인사를 또 나누고 자기 자리로 갔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한인 가족이 지나간 뒤, 딱히 맞을 손님이 없어 신의 부모님이 슬쩍 옆으로 다가온 상황.
바트 맥센의 시선이 계속 어디론가 향하는 것을 본 신은 그 끝에 자신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거 어쩔 수 없군.’
그는 피식 웃었다.
최고의 악연.
동시에 인연.
그 딸과 연을 맺는데 자신과 바트 맥센이 할 이야기가 없을 리 없지.
하지만 만약, 바트 맥센이 딸이 아닌 자신과 결혼하자고 외치면 당장 안티크라이스트를 선사해주리라.
그런 생각 속에, 신은 표정이 점점 멍청해지고 있는 바트에게 다가갔다.
“이봐, 영감님.”
“…….”
“좋은 날 아닙니까?”
“그래, 좋은 날이군.”
“앞으로 종종 뵙죠.”
“고맙구나. 신.”
“그래서. 왜 그렇게 절 보셨어요?”
“아니, 네가 아니라.”
“응?”
“……네 뒤에.”
신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마, 방금 자신이 서있던 자리의 뒤쪽이라면 한 사람밖에 없을 터였다.
“아버지?”
“그래, 저 남자.”
“저희 아버지가 왜요?”
“아니, 그게.”
희미한 기억을 더듬는 바트.
그 표정이 사뭇 진지했고 신은 예식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아버지에게 향했다.
그리고 물었다.
“아버지.”
“뭐냐.”
“저 양반이랑 뭔 일 있으세요?”
“사돈 말이냐.”
“예.”
“있지.”
“……?”
두 분이 무슨 인연이 있으신가.
그렇게 말한 그 순간이었다.
“아아아아아아-!!”
바트 맥센이 비명을 질렀다.
거기에 모두가 깜짝 놀랐고,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본 바트 맥센이 이내 신의 아버지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당신을 알아!”
“……???”
신은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바트 맥센이 아버지를 안다고?
그러자니 대답하는 아버지.
“물론 그렇겠지.”
“예?”
“뭐요?”
“둘이 안다고?”
티파니와 케인.
거기에 러셀, 오튼, 시나. 세 사람까지 합류해서 바트 맥센과 마주본 아버지 사이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남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전에 저택에서 봤으니까.”
그런 식으로 넘어가려고 했지만.
“아니야! 아니라고!!”
바트 맥센은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나는 당신을 알아! 신!!”
“……?”
“누구, 저요?”
“신! 1대 신!!”
“……………….”
모두가 말을 잇지 못했다.
1대 신.
그게 대체 무슨 말이던가.
말인즉슨.
신의 아버지가 프로레슬러였고.
먼저 ‘신’이라는 이름을 썼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그 말에, 아버지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어쩔 수 없군. 바트 맥센.”
“…….”
“그걸 기억해낼 줄은 몰랐어. 우리가 만난 건 아주 잠깐의 일인데.”
“잊을 수가 없지.”
바트 맥센은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그리고 옆에서 불안하게 보고 있던 신의 어머니를 휙 돌아보았고.
김준호의 아버지.
김신(Kim Shin)은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를 등 뒤로 감췄다.
그렇다.
1970년대 후반.
베트남전의 패배.
격동하는 프로레슬링 업계.
그보다 훨씬 혼란스럽던 세상.
김신은 바로 그때, 미국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것은.
약 여섯 달 동안, 그가 프로레슬러로서 활동했던 시기의 이야기다.
“아니, 잠깐만-!!”
2대 신이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명을 마구 질러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