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03화 (603/634)

Dark Match 89.

나는 군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군인이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불렸다.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자’.

정찰, 폭파, 요인 암살.

온갖 임무를 다 수행했지만 베트남전은 우리의 처참한 패배로 끝났다.

한국군의 공식 파병이 끝난 이후에도 미군 사령부와의 연계로 계속해서 임무를 수행하던 나는, 처절한 패전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미국의 탈출 전략으로 인해 북월군은 남월군을 정복했으며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건설되었다.

나는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온갖 더러운 꼴을 다 봤으며, 병사들 사이에서 내 이름이 퍼졌지만 결국 나는 존재할 리가 없는 인물이었다.

귀국한 뒤, 상부는 나를 당시 사이가 좋지 않던 북한에 파견하고자 계속해서 훈련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쟁의 참상을 겪은 나는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가망이 없는.

높으신 분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싸움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꾀를 짜냈다.

훈련 도중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것처럼 위장해 군에서 전역했고, 그 과정에서 관계자들을 매수하느라고 전쟁 특수로 벌어둔 돈을 다 까먹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에게는 자유가 필요했다.

이후 곧바로 한국에서의 내 모든 흔적을 지우고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그때 당시 한국은 이민 붐이었고 나는 거기에 편승해서 자연스럽게 모습을 감출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연고도 없는 나는 그렇게 조용히 미국 땅에서 지낼 생각이었다.

1976년, 미국 캘리포니아.

나는 그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임무를 수행하면서 세뇌하듯 되새긴 말이 있었다.

모든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항상 플랜 B가 필요하다.

“도둑이야!”

“도둑!!”

누군가 외쳤다.

어지러운 캘리포니아 공항.

어떤 소년이 내 더플백을 들고 도망쳤다. 꿈에 부푼 이민자를 뜯어먹는 전형적인 형태의 범죄였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저쪽! 저쪽!!”

그렇게 외치는 이들도 한패였다.

일부러 혼란을 부추기면서 시선이 분산되도록 유도하는 수법이었다.

나는 곧바로 머리를 짜냈다.

가방을 보고 도망친 친구를 지켜보다가 다가오는 공항 경찰을 무시하고 곧바로 인파 속으로 들어섰다.

경찰에게 시간을 빼앗길 순 없었다.

그리고.

녀석을 쫓았다가 행여나 한국 측에서 붙은 감시망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곧바로 내가 부상을 위장했다는 사실을 들키게 될 터였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크게 ‘도둑이야!’라고 소리쳤던 소년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 지형을 파악하고는 그가 뒷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시점에 따라 들어가 조용히 어깨를 두드렸다.

당연히 얼굴은 가린 채였다.

얼굴을 보이는 건 아마추어나 할 법한 짓이었다.

“뭐…….”

돌아보는 소년.

그 안면에 펀치를 날렸다.

빠각-!!

“끄헉억?!”

코가 부러졌을 터였다.

“인터뷰다.”

나는 저항하려는 소년의 손을 쳐내고 곧바로 목울대를 움켜쥔 뒤 허공에 높이 들어올렸다.

“내 가방 어쨌어.”

“크, 무, 무슨…….”

“코를 부러뜨려서 코피가 나오는 거다. 숨을 쉬기가 힘들 테고 평생 코가 비뚤어진 채로 살아가야겠지.”

나는 나직이 경고했다.

군에서 배운 ‘인터뷰’ 기술이었다.

“내 가방 어쨌어.”

“F…… Fu-k you!!”

피가래를 뱉는 소년.

그걸 고개를 슬쩍 틀어서 피한 나는 고민하다 소년을 밑으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무릎 ‘앞’을 밟았다.

콰직!!

“끄하아아아악!!”

“다리 추가.”

“이, 썅! 빌어먹을!!”

“마지막 질문이다. 여기서 너 하나 죽는다고 누구도 울지 않을 테지.”

나는 냉정하게 굴었다.

이런 녀석은 최대한 기를 꺾어놔야 고분고분해지는 법이었으니까.

“내 가방 어쨌어.”

“나, 나도 몰라! 네가 소매치기 당해놓고는 왜 나한테 지랄이야?!”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

“소매치기 당했다고 한 적 없어.”

이를 악무는 소년.

그리고 손이 주머니로 향했다.

나이프.

“크아아아!!”

흥분해 달려드는 걸 피하고 손을 붙잡은 나는 어깨에 걸어 꺾으며 깔끔하게 팔꿈치도 아작을 내주었다.

“끄흐으……!! 끄흐!!”

“말해.”

“아라, 아라써! 제발!!”

비명을 지르며 애원하는 소년.

하지만 나는 그 눈빛에서 아직 살기가 남아있음을 읽고 뒤를 돌아봤다.

누군가 총을 겨누려고 했다.

“꼬, 꼼짝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대로 날 사선에 넣지도 못했다.

나는 곧바로 사선을 벗어나며 다가가 놈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뻐억-!!

별것도 아닌 양아치들.

이후로 몇 명인가가 자신들의 친구를 구하기 위해 나타났으나 모두 무기에 의존하는 아마추어에 불과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바로 이곳이 집결지였는지 개중에는 내 가방을 훔쳐 간 놈도 있었다.

빠악-!

그 안면을 완전히 박살 내주고 그대로 가방을 챙겨 골목을 빠져나왔다.

“어그윽…….”

“끄으응.”

“하아, 하아…….”

고통에 찬 신음을 뒤로한 채.

나, 김신이 미국 캘리포니아에 도착해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좋지 못한 출발이로군.’

미국은 치안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던데, 그 때문이려나.

그나저나.

저 친구들 옷이 죄다 시퍼런 색으로 되어 있어서 요즘 미국에서는 저런 옷이 유행이구나 싶었다.

내게는 촌스럽게 보이는데.

* * *

물론.

연고도, 돈도 없는 내가 미국에 다짜고짜 건너왔을 리는 없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타운.

군 시절 직속상관이었던 강준혁 대령이 알고 지내는 목사가 바로 이곳에 교회를 하나 차렸다고 들었다.

나는 당분간 그곳에서 신세를 지면서 할 만한 일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교회 앞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서자 누군가 영어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Excuse Me?”

발음이 부정확했다.

표정에는 생기가 없었고 어깨가 움츠러든 것이 어딘가 인상적이었다.

‘몸이 안 좋은 것 같군.’

작은 체구의 여자.

나는 금세 그녀가 한국인임을 알아차리고는 모국어를 사용했다.

“최 목사님 계십니까.”

“아, 예? 예?”

“최 목사님 말입니다.”

“어, 그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녀.

곧 돌아섰다.

“따라, 오세요.”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교회에서 일을 도와주는 사람인가?

순간 의문이 들었으나 내 일이 아니라서 신경을 껐다.

그렇게 찾아간 목사실.

생각과는 좀 다른 곳이었다.

최 목사는 덩치가 꽤 큰 편이었다.

그리고 내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오, 안녕하십니까.”

“김신이라고 합니다.”

“신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예, 목사님.”

“준혁이에게 이야기는 들었어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면서?”

“그렇습니다.”

“청룡 부대였나?”

“그렇습니다.”

나는 위장된 신분을 이야기했다.

실제로 나는 대한민국 해병대인 청룡 부대 출신으로 살아갈 예정이었다.

“군기가 바짝 들었군! 허허!”

“감사합니다.”

“영어는 좀 할 줄 아나?”

“완벽하게 합니다.”

“놀랍군. 이민 준비를 많이 했나봐.”

“…….”

나는 침묵했다.

사실, 내가 영어를 배운 것은 대한민국의 우방인 미군과의 원활한 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일을 말할 순 없군.

“여기 이 아이는 통 영어를 배우려고 하지 않아서 말이야! 하하하!”

최 목사가 소개하는 건.

“내 딸인 진주일세.”

“……반갑습니다.”

친딸은 아닌 것 같은데.

최진주는 높게 잡더라도 20대 중반, 최 목사는 적어도 50대 후반으로 보였다.

그럴 수 있는 나이 차이긴 했다.

하지만.

일단 전혀 안 닮았고.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 목사는 현재 독신이었다.

작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진주 씨.

소심한 인물 같다.

“그럼, 오늘은 푹 쉬고. 방은 진주가 안내해줄 걸세.”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같은 동포끼리 돕고 살아야지.”

웃음을 터뜨리는 최 목사.

진주 씨가 말없이 나와서 나를 안내해주었고, 나는 더플백을 어깨에 짊어진 채 그 뒤를 묵묵히 따라갔다.

그러자니.

“저…….”

“옙.”

“이민은, 혼자 오셨나요?”

“그렇습니다.”

“가족, 은?”

“없습니다.”

“……죄, 죄송해요.”

“아닙니다.”

없이 태어난 걸 어쩌겠는가.

사과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진주 씨는 왠지 깊은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고, 말없이 나를 교회의 꼭대기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침대 하나에 서랍장, 옷장 하나.

먼지 없이 깔끔했다.

좋은 방이군.

“누가 청소한 겁니까?”

“제, 제가요.”

“진주 씨가?”

“네…… 오신다고 들어서.”

“감사합니다.”

나는 솔직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바깥을 살펴보았다.

교회의 가장 높은 곳.

주변에 감시를 받을 만한 공간은 없었다. 나 같은 게 뭐라고 저격수가 올 리도 없겠지만.

그런 포인트도 없으니.

좋은 방이군.

“저, 그럼 이만…….”

“몇 가지 여쭤 봐도 됩니까?”

“네?”

“진주 씨에게 호기심이 있습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런 내 이야기를 들은 진주 씨는 얼굴이 무슨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

뭐지?

안면홍조증이라도 있나?

“저, 말씀, 하세요.”

“목사님의 방도 청소하십니까?”

“네?”

“어떻죠?”

“아, 아뇨. 제가 이 교회의 청소는 대부분 맡고 있는 편인데. 전혀 청소를 하지 않는 곳이 목사실이에요.”

“역시 그렇습니까.”

“그건, 왜……?”

“거기만 이 교회에서 유일하게 청소가 되어 있지 않은 곳이더군요.”

“헤헤…….”

미소를 짓는 진주 씨.

순간 눈이 크게 뜨였다.

여자의 미소를 본 건 처음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하나만 더, 괜찮습니까?”

“네, 얼마든지요.”

“이 근처 지리는 어떻죠?”

“어, 여기에서 보이다시피 저쪽 큰 블럭으로 코리아타운이 형성되어 있고요. 나머지는 저도 잘 안 나가서…….”

“영어는, 못하십니까?”

“…….”

고개를 끄덕이는 진주 씨.

신기한 일이지만.

그만큼 코리아타운이라는, 민족성으로 뭉친 공동체가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저기, 그.”

“말씀하십시오.”

“주변 지리는 잘 모르지만, 저기 서쪽에 있는 해변가로는 안 가는 게 좋을지도 몰라요.”

“어째서죠?”

“그쪽에 그, 크릭스라고 하는 갱스터들이 모여 산다고 들었거든요.”

“크릭스?”

“푸른 옷을 즐겨 입는 사람들인데. 그래서 길거리에서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은 웬만하면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는 진주 씨.

나는 문득 오늘 이곳에 도착해 만났던 소매치기들을 떠올렸다.

“…….”

이거 원.

벌써부터 사고에 휘말린 느낌이군.

문제에 휘말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분명히 그렇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을 좋은 일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나쁜 일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고민하던 생각이, 방금 크릭스의 이야기를 듣고는 조금 좋은 쪽으로 그 방향성이 돌아갔다.

바로 목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곳에서.

나는 감출 수 없는 진한 화약 냄새를 맡았던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