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04화 (604/634)

Dark Match 90.

그날 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은 최대한 비밀로 해두자.’

그게 나을 터였다.

코리아타운에서 한인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실에서 화약 냄새가 난다라.

어쨌든 여차할 때 유용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최대한 그런 방식은 지양하자고 답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으니까.

총이니 화약이니.

다 내게는 과거의 이야기였다.

늦은 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내가 앞으로 살아갈 곳이었다.

밤이 되면 쥐 죽은 듯 고요한 군 막사와는 달리, 이곳은 잠들지 않았다.

오히려 밤이 깊어갈수록 마치 풀벌레 소리처럼 다양한 소리가 들려왔다.

차량의 엔진 소리.

그게 달려가는 궤적음.

빵빵거리는 소리.

누군가가 노래를 불렀다.

‘엘비시 프레슬리’.

예전 미군 병사가 부르는 걸 들었다.

나는 대부분 혼자 임무를 수행했지만, 가끔은 타국의 병사들과 접촉하고는 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고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끝에, 결국에는 여기 미국으로 오자고 결론을 내렸다.

이제 그렇게 도착했으니.

‘조용히 살아야지.’

크릭스에 관해서는 혹시 모르니 조사를 해둬야겠다 싶기는 했지만, 최대한 모습을 감추고 살 예정이었다.

일도 적당히 평범한 걸 하고.

나중 일은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

그리고 찾아온 이른 새벽.

밤이 끝나자 고요한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일단 화장실로 가 세수를 하며 정신을 일깨웠다.

그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아, 일어났나?”

식탁에 앉아있던 최 목사가 말을 걸어왔고, 나는 빵과 찌개의 냄새를 맡고는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그래, 식사는 뭐로?”

“주는 대로 먹겠습니다.”

“된장찌개는 잘 먹나?”

“그렇습니다.”

“그럼 그쪽으로 하지. 진주야!”

들었어요.

……라고 주방 쪽에서 희미하게 진주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리를 하는 모양이군.

같이 할까 싶기도 했지만, 최목사가 말을 걸어온 탓에 나는 일단 앉았다.

“먹고 나갈 생각인가?”

“그래볼까 합니다.”

“일손은 어디든 부족하니 일거리 찾는 게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걸세.”

“코리아타운 안에서 말입니까?”

“그래, 같은 동포니까.”

“그 바깥은 어떻습니까?”

“바깥?”

“크릭스라던가 하는 갱스터 나부랭이들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 코리아타운 바깥으로 나가면 위험하지만, 이 안에서는 우리의 입김이 강하지.”

“……뭔가 작은 나라 같군요.”

“그런가?”

“예.”

그리고 딱히 좋은 것 같진 않았다.

그때, 식사가 나왔다.

일반적인 한정식.

“시, 식사하세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너는 오늘도 빵이냐?”

“네, 편해서요.”

“그게 일반적이기는 하지.”

씨익 웃는 최목사.

진주 씨도 자신의 몫을 내왔다.

빵 두 장에 잼.

“한식은 못 드십니까?”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요.”

“그러십니까.”

한식을 안 좋아하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굳이 우리 식사를 한식으로 챙겨줄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감사히 먹자고 생각하며 나는 찌개를 떠서 가볍게 한입 밀어 넣었다.

“…….”

그리고 순간 굳어졌다.

힐끔 반대편을 보자 최목사가 나에게 눈짓으로 어떤 신호를 보냈다.

맛있다고 해.

그런 기류가 느껴졌다.

진주 씨가 이쪽을 힐끔거리는 게 느껴져서 나는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맛있네요.”

“다행이에요.”

당연한 일이었다.

한식을 먹지 않는 사람이 한식을 요리하는데 맛이 나올 리가 없었다.

“살구 잼을 넣어봤거든요.”

“…….”

“색깔이 잘 어울리죠?”

그래서 몰랐군.

독을 숨길 때는 최대한 비슷한 색깔의 음료를 사용한다. 상식이었다.

나는 순간 현기증마저 느끼며 그렇게 힘겨운 식사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아침 식사가 끝났고.

“괜찮나?”

“맛없었습니다.”

“크하하! 티내지만 않으면 됐지.”

“굳이 한식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나도 안 그랬으면 좋겠네만.”

“원해서 드시는 게 아닙니까?”

“진주가 원해서 하는 거야. 고향의 맛을 표현해보고 싶다나.”

바로 그때였다.

흥흥흥.

콧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한국에서 바로 어제 온 자네의 인정을 받으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군.”

고향을 그리워하는 걸까.

신기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렇게.

일이 있다는 최목사와 헤어져 거리로 나온 후, 일단 가장 가까운 곳의 상점에 들어가 주인과 인사를 나눴다.

나와 같은 한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오……. 교회에 왔다는 형씨인가?”

“그렇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인 사회임을 실감했다.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어가 통했다.

거리를 걸을 때 백인이나 흑인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나와 같은 동양인의 비중이 높았다.

그렇게 나는 코리아타운을 돌아다니며 한인 가게에 들러서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일거리를 찾았다.

기준은 하나였다.

‘배달일 같은 거 없나?’

근방의 지리를 알고 싶었다.

크릭스라는 친구들이 어떻게 조직이 되어서 움직이는지. 혹시라도 내가 한 일을 가지고 원한을 품지 않았는지.

그리고.

꽤 좋아 보이는 일을 찾았다.

세탁소였다.

“자네 몸이 다부지군.”

“감사합니다.”

“키가 몇쯤 되나?”

“195입니다.”

“체중은?”

“110kg 정도.”

“자전거는 잘 타나?”

“남들만큼은.”

“요새 세탁물 딜리버리 서비스를 시작할까 하는데. 일자리 안 구하나?”

“딜리버리 말입니까?”

“그래. 저기 북쪽에 부촌도 다녀오고 그래야만 하는데, 보시다시피 내가 딱히 자리를 비울 수는 없어서. 자전거로 가볍게 다녀오면 된다네.”

“하겠습니다.”

“……벌써 정했나?”

“예.”

몸은 계속 움직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녹이 슬기 마련이었다. 주변 정찰과 함께 자전거로 운동이라니 더할 나위 없는 일이었다.

‘운이 좋군.’

“그렇다면 부탁 좀 하지.”

사장님이 손을 내밀었다.

가볍게 악수를 한 나는 그에게서 인근 지리가 들어간 지도를 건네받았다.

북쪽은 백인들의 부촌.

코리아타운이 동쪽.

“서쪽은 조심하게.”

“크릭스 놈들 때문입니까?”

“그래. 놈들이 뭐 필요할 때마다 이쪽으로 오는데 아주 죽을 맛이야. 그뿐이겠나? 여기 남쪽으로는 블러드라는 갱들도 있다고.”

서쪽에 크릭스.

남쪽에 블러드.

“갱들이 참 많군요.”

“그런 세상이지. 전쟁 끝나고 히피들이 쓰레기처럼 돌아다니지 않나. 여하간, 미국은 지금 내리막길이야.”

그밖에도 설명을 들었다.

히스패닉 갱단.

한인 갱단.

중국인 갱단.

여러 갱들이 그 나름대로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듯했다.

“일단, 내일 9시까지 나오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정보를 획득한 나는 세탁소를 나와서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마침 점심때였다.

뭐라도 먹고 들어갈까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중, 거리 뒤쪽에서 차량이 한 대 다가오는 걸 발견했다.

검은 봉고.

나를 슬쩍 지나치더니.

곧 한 가게 앞에서 멈춰 섰고.

투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무자비한 총격이 시작되었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

나는 그 사이에서 조금 놀라 총질을 해대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고개를 내밀고 잔뜩 흥분해 총을 갈겨대는 갱 하나의 코에 거즈가 붙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그놈들?’

그리고 얼마 후, 봉고가 떠났다.

드라이브 바이 슈팅.

줄여서 Drive-By.

군의 전략으로도 쓰였던 기술이다.

나는 혼란 속을 헤치고 나아가 표적이 된 가게 안의 상태를 확인했다.

식당이었다.

엉망진창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사람들.

죽은 사람도 보였고 총에 맞은 채로 신음을 흘리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나는 일단 공포에 떨고 있는 직원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관련된 일처럼 느껴졌다.

그냥 넘어가기는 힘들었다.

“괜찮으십니까?”

“크윽…….”

고통스러워하는 사내.

무릎에 총을 맞았다.

일단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려야겠다 싶었던 나는 근처의 물건을 이용해 곧바로 지혈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도착했고, 나는 지혈을 마친 사람들은 인계한 뒤 현장을 빠져나왔다.

* * *

그날 저녁.

방에 홀로 앉아 점심쯤 벌어진 일을 생각해보고 있자니 돌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신 씨. 계세요?]

진주 씨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신 씨를 찾아온 분들이 계셔서요.]

“……? 곧 나가겠습니다.”

나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진주 씨의 안내를 받아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예배당에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곁으로 다가가자.

“아이고! 총각!!”

느닷없는 한국어.

“고마우이! 참말로 고마워! 자네 덕분에 우리 남편이 살았어! 고마워!”

“당연히 했어야 할 일입니다.”

아무래도 지금 교회를 찾아온 사람들은 내가 점심 때 드라이브 바이에서 구해낸 사람들의 가족 같았다.

대략 열 명 정도.

“아주 훌륭한 청년이 왔어!”

“군인 출신인가?”

“예, 그렇습니다.”

“하하! 든든하군!”

남자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나는 줄곧 궁금했던 사실을 물어보기로 했다.

“자주 있는 일입니까?”

“드라이브 바이?”

“그렇지는 않지. 그것도 벌건 대낮에 시내에서 그런 걸 누가 하겠나.”

“그럼 대체 누가 한 거야?”

“어디 놈들인지는 모르지.”

“어디 놈들……?”

“갱들인 건 확실하니까.”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일단, 드라이브 바이에 당한 가게가 바로 한인 갱스터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라는 모양이었다.

“놈들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겨 경고 차원에서 이런 짓을 벌였겠지.”

“그게 말이나 됩니까?”

나는 의아해 물었다.

“백주대낮에 본 사람이 없지도 않고, 차량 조회만 한다면 곧바로 범인을 붙잡을 수 있을 텐데요.”

“그렇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건 총격을 당한 게 백인일 경우에만 그런 거야. 젊은 청년.”

“…….”

“미국 사회에서 우리는 이방인이야. 그러니까 서로 뭉칠 수밖에 없었지.”

황당한 소리였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 이 머나먼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였다.

아마 틀린 말은 아닐 테지.

‘한번 알아봐야겠군.’

감사의 인사와 함께 한인들이 돌아갔고, 방으로 돌아가려는 나를 최 목사가 불러 세웠다.

“신.”

“……목사님.”

“잠깐 괜찮나?”

“말씀하십시오.”

“오늘 일은 정말 대단했네. 와서 하루도 안 지났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서 좀 유감이지만 말이야.”

“아닙니다.”

“원래 이런 곳은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다만, 뭔가 자네가 온 이후로 뭔가 문제가 하나 발생한 모양이더군.”

“혹시…….”

“공항에서 어떤 남자가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그쪽 놈들을 완전히 박살내면서 크릭스가 열이 받았다더군.”

역시나.

“혹시 자네가 관련이 있나?”

“거기에 앞서서 먼저, 제 질문에도 혹시 대답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물론이네.”

“목사님이 한인 갱스터들의 수장은 아니시죠?”

“그야 물론이지. 그쪽 친구들이 가끔 내게 찾아와서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는 않다네.”

“…….”

“맹세하지.”

“그러시다면.”

“자네는?”

“네?”

“소매치기 당한 거, 자네인가?”

“그렇습니다.”

“어쩔 셈인가?”

“일단은.”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딱히.

나서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로 인해 문제가 촉발되었고 갱스터들 간의 총격전을 통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해결을 해야겠지 싶었다.

“목사님.”

“그래.”

“물건이 필요합니다.”

“……따라오게.”

최목사가 돌아섰다.

나는 그 뒤를 따라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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