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91.
장만철.
일명 미스터 장.
코리아타운을 거점으로 삼아 행동하는 갱스터, ‘장 패밀리’의 수장인 이 남자는 지금 고민에 빠져 있었다.
크릭스와의 문제 때문이었다.
크릭스.
서쪽 타운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그들은, 코리아타운처럼 그곳에서 사는 흑인들로 구성되었다.
물론 멤버들이 모두 흑인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골치가 아팠다.
그 숫자는 나날이 불어났다.
자금력도 강해서 경찰을 매수해 벌건 대낮에 드라이브 바이를 해도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사건이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의 거리인 이 코리아타운에서 벌어져서 세간의 관심이 덜한 거겠지만.
‘아니.’
애초에.
갱스터가 공권력에 기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었다.
억울했기 때문이었다.
‘동양인 한 놈이 내 자식을 박살 냈다. 누군지 찾아서 내게 데려와라.’
그게 크릭스의 보스, ‘웨스턴 PG’의 통보였다. 장만철은 그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동양인 한 놈이 뭘 박살 내던 그것이 자신들과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아래쪽의 차이나타운 쪽에서 저지른 일일 텐데, 왜 굳이 코리아타운을 건드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거기다 드라이브 바이까지.
마음 같아서는 똑같이 총을 쏴 갈겨주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크릭스는 이 근방에서 가장 큰 갱이었다.
‘쉽게 건들기는 힘들어.’
그나저나.
대체 누가 그런 걸까.
미국 땅에 도착한 놈이 소매치기를 당하는 일이야 종종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걸 쫓아가서 묵사발을 내놓고 자기 짐을 되찾는 미친놈이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대체 뭘까.
퇴역 군인이라도 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Hold Up.”
조용히 이어지는 목소리를 듣고 앞으로 손을 뻗은 장만철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굳어지고 말았다.
목에 차가운 감촉이 닿았다.
“Shhhhhhhh…….”
총에 닿은 손.
그걸 뒤쪽에서 목에 칼을 들이댄 사내가 옆으로 치워냈다.
그가 물었다.
“질문이 있다.”
“……누구냐.”
“알 필요는 없고.”
만철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허공에 대고 대화를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뒤에 있는 남자의 존재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드라이브 바이 이후.
만철의 집은 수십 명의 장 패밀리 경호원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었다.
그걸 뚫고 들어왔다는 말인가.
그것도 그 누구도 모르게.
“낮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 말해.”
“드라이브 바이?”
“Yes.”
“크릭스 쪽에서 공항 소매치기를 박살낸 동양인을 지금 찾는 중이다.”
“…….”
“그게 너였군.”
만철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응?”
어느새 목에 닿은 칼날의 감촉까지도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만철은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마치.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거 참.’
별 미친놈이 코리아타운에 다 들어왔구나 싶었다.
또.
장만철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크릭스 놈들은 이번 일에 대해 본전도 못 찾을 거라고.
* * *
다음 날.
약속한 대로 아침을 먹고 세탁소로 출근한 신은 세탁소 사장으로부터 오늘 배달할 세탁물을 전해 받았다.
자전거 뒤를 개조해서 옷걸이를 만들고 거기에 온갖 옷을 잔뜩 걸었다.
“자, 여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각의 세탁물을 전할 주소까지도.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오전 내로 끝내.”
“이렇게 세탁물이 밀리면 고객들이 뭐라고 하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 다 어제 거야.”
“그럼 그동안은…….”
“다 찾으러 왔지.”
“장사가 잘 되나 봅니다.”
“동양인이 하는 세탁소니까.”
“그렇습니까.”
“방금 그거 인종 농담이니까 기억해둬. 만약 다른 인종이 그런 말을 쓰면 당장 안면에 주먹을 꽂아주라고.”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신은 자전거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이상한 것을 썼다.
바로 헬멧이었다.
“이봐, 이건 바이크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헬멧을 써?”
“안전을 위해.”
짧게 대답한 신은 그대로 무거운 자전거 위에 올라타 중심을 잡았다.
“어어, 조심하라고!”
“괜찮습니다.”
그리고 슝 나가버렸다.
“……?”
사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전거의 무게는 못 해도 100kg.
그 정도로 많은 세탁물을 실어놨다.
사실 오늘이 첫날이기도 해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좀 무리를 시킨 건데.
“뭐야, 저 녀석?”
자전거는 신이 페달을 밟자 무슨 오토바이처럼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신은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고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생각했다.
‘중심 잡는 게 어렵군.’
그래도 금방 적응이 됐다.
한 손에 배달지가 적힌 종이를 들고 확인하며 앞으로 나아간 신은 이내 근처 편의점 앞에 우뚝 멈춰 섰다.
“배달이요!”
번호가 적힌 세탁물을 전달했다.
그렇게 계속 일을 해나가며 신은 주변 지리를 빠짐없이 머릿속에 넣었다.
코리아타운의 전반적인 구조.
인구 밀집도.
어디에 무슨 가게가 있는가.
그리고 빠져 나가는 길목.
북쪽으로 나아갔다.
상점가가 끝나고 아파트 단지가 이어졌다. 그곳에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리고 더 북으로 나아가자.
‘여긴가?’
돈 많은 백인들의 주거지.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배달을 받으러 나오는 이들도 집안의 고용인들 같았다. 신은 그곳 역시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넣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일부러 진로를 서쪽으로 틀었다.
도로를 질주하는 자전거를 보고 운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야, 저건……?”
“애슬리트?”
길게 뻗은 도로 위 자동차들을 앞질러서 달려간 신은 이내 크릭스들이 모여 산다고 하는 해변가에 도착했다.
코리아타운으로부터 서쪽.
거리에 나와 있는 건 대부분 흑인들이었고, 자전거에 오토바이 헬멧을 쓴 신을 보고는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세탁 배달부가 오토바이 헬멧을 쓴 것이 어지간히도 재미있는 듯했다.
하지만 신은 신경 쓰지 않았다.
똑같이 배달을 이어나가면서 타운의 전반적인 구조를 머리에 새겼고 개중에서 신경 쓰이는 걸 체크해뒀다.
베트남에 있었을 때도 썼던 방식.
물론 그때는 현지인이 한 명 동행한 채 중국인으로 위장하고 정찰 임무를 수행했던 거지만.
어쨌거나.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그렇게 세탁물 배달 일을 마친 신은 사장에게 자전거를 빌린 뒤, 밤에 다시 서쪽 해안가 지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낮에 봐두었던 수상한 곳을 탐문하며 조사를 이어갔다.
일단.
크릭스는 스트리트 갱이었다.
살기 위해 뭉쳤고, 거리는 판자촌에 가까웠다. 대부분 눈빛에 독기가 서린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군.’
베트남과도.
가난에서 범죄가 싹트기 마련이다.
이런 이들을 상대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신은 이들보다 훨씬 독기와 악기로 가득 찬 베트콩들 사이에서 싸웠다.
떠오르는 방법만 해도 수십 가지.
하지만.
최대한 빨리.
최대한 조용히.
그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방법.
얼마든지 존재했다.
이런 부류는 신과 같은 전문가를 만나본 일은 없을 터였기 때문에 단숨에 전의를 꺾는 방법이 더 먹힐 터.
드라이브 바이로부터 일주일 뒤.
늦은 새벽.
신은 작전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 * *
매달 1회.
크릭스에서는 간부들이 모여서 정기 회의를 가졌다. 매달 4주째 토요일이 바로 그 시기였다.
간부들의 숫자는 총 열두 명.
각자 영역을 가지고 보스 밑에서 일하며 상납금을 내는 그들은 서로 무의식중에 경쟁하기도 했다.
오늘도 그랬다.
T.G. 펌킨이 자신의 창녀들을 데리고 한껏 금 목걸이와 액세서리로 자신을 치장한 채 등장했다.
그 반대편에는 보란 듯이 바지에 권총을 꽂아 넣은 슈타가 존재했다.
그 외에도.
대마초를 피우고 있는 스모크와,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가지고 노는 스카.
수많은 간부들이 보스인 ‘잭’을 기다리며 방 안에서 시간을 죽였다.
대화는 거의 없었다.
어차피 서로 경쟁자.
상대를 죽이려 들기도 하는 그들이었으므로 호위까지 빠방하게 갖추고 와서 촌에 모인 것은 백여 명 정도.
그런 가운데.
보스인 잭이 등장했다.
“보스.”
“다들 모였군.”
그 표정은 굳어진 채였다.
얼마 전, 친구들하고 소매치기를 하며 용돈벌이를 하던 잭의 아들이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해있는 상태였다.
보스는 그 일로 인해 크게 상심했고 그놈이 동양인이었다는 말에 따라 차이나타운과 코리아타운에 항의했다.
물론, 비교적 기세가 큰 차이나타운은 말로 설득을 한 정도였지만 반대로 코리아타운은 박살을 내놨다.
드라이브 바이.
그것도 한낮의.
차이나타운 놈들에게도 빨리 그놈을 찾아내라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었다.
‘코리아 놈들만 불쌍하지.’
스모크는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코리아 놈들.
차이나 밑에나 들어갈 것이지, 자기들끼리 뭉쳐서 저 지랄을 하고 있다.
바깥에서 온 놈들이 그러면서 하나의 Zone까지 구성해서 커지고 있으니 자신들로서는 마음에 안 들었다.
바로 그때, 잭이 입을 열었다.
“그놈은 찾았나?”
“…….”
“…….”
“…….”
침묵하는 간부들.
실제로 전혀 찾지 못했다.
“한 번 더 해라.”
“드라이브 타카타카를요?”
“Sh-t, 보스. 이번에 서장한테 찔러준 돈하고 마약 액수 보셨잖소?”
“그 지랄을 하고도 대낮에 총을 쏘냐면서 지랄을 들었는데. 그냥 코리아 놈들이 숙이는 걸 기다려보죠?”
“그건 안 돼.”
“예? 왜요?”
“내가 존나 열 받았으니까.”
“…….”
“니들 버는 돈 가지고 내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잖아. 내 아들 놈 팔에 장애가 남았는데 그냥 있으라고?”
“그 정도입니까?”
“그 새끼, 팔 부러진 것 때문에 트라우마 생겨서 밥도 못 먹고 있어.”
“쒸잇-. 보스.”
“뭐.”
“아예 그 코리아 타운 놈들을 하나씩 죽여버리는 건 어떨까 싶은데요.”
“흠.”
“코리아 놈들이야, 뒈져도 미국인이 아니니까 다들 별 상관 안하잖수?”
“그건 그렇지.”
“백인 나리들 비위나 좀 맞춰주다가 한 놈쯤 빵에 들어가게 하면 만사 오케이. 그렇지 않겠수? 오케이?”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
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이었다.
베트남전이 끝난 이후.
동양계 미국인들은 끝없이 미국이라는 사회에 적응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월드 워 2의 일본과 비엣-남 워의 동양인들을 보고는 동양인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양인끼리 뭉쳐서 하나가 되었고 감정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동양인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흑인들의 자리를 빼앗고, 그들 역시도 똑같이 흑인을 멸시하니까 말이다.
편의점에 들어오면 뭐 훔쳐가지 않나 감시하고. 그런 상황에서 두 인종 간의 대립은 격화되려고 했다.
“대마나 좀 피우지.”
짧은 회의가 끝나고.
창문을 모두 다 닫고 커튼을 친 뒤, 간부들과 보스는 약과 술을 즐겼다.
음악과 창녀들.
싸구려 조명.
바깥에서 총을 든 채 입구를 지키던 가드들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항상 저렇다니까.”
“그냥 자기들끼리 모여 약 빨고 떡이나 치고 싶어서 그러는 거잖아?”
“존나 부럽네.”
“나도 하고 싶은데.”
정원 안을 순찰을 도는 병사들을 포함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저택은 서쪽 타운에서 그나마 집의 형체를 띄고 있는 장소였다.
집이 딱히 없는 간부들과 보스가 이곳을 자주 드나들었지만 똘마니들에게 허락된 장소는 아니었다.
범죄를 통해 쌓은 부.
그것은 보스 라인의 전유물.
입구를 지키고 있던 가드가 담배를 하나 입에 빼물고는 크게 소리쳤다.
“아~ 섹스하고 싶다!”
“큰 소리로 말하지 마. 등신아.”
“누가 듣는다고?”
“바로 나지.”
“……?!”
어둠 속에서 이어지는 목소리.
뭔가 싶어 총을 뽑아든 두 똘마니들은 어둠 속을 겨누며 소리쳤다.
“누, 누구냐!!”
“오늘 밤, 너희 모두와 떡칠 놈.”
그렇게 말한 신은.
어느 샌가 두 사람의 사이에 어깨동무를 하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군 시절 배운 트래시 토크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후장이 터지는 건 너희고.”
갸하하하하.
2층의 보스와 간부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그는 가볍게 입구의 두 사람을 제압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