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93.
GCW.
Great California Wrestling.
캘리포니아 전역을 돌면서 각종 대회를 여는 단체로, 현재 다른 주의 단체와도 협약을 맺어 성장 중이었다.
선수들은 대부분 캘리포니아 출신이었고, 경기가 끝난 뒤 그 자리에서 곧바로 수당을 받아가는 시스템이었다.
프로모터이자 사장인 퍼시 홉킨스는 은행에서 곧바로 뽑아온 돈을 선수들에게 나눠주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자, 존.”
“뭐야, 고작 이거밖에 안 돼요?”
25달러.
동쪽의 WWF나 남쪽의 NWA와 함께 레슬링 업계를 삼분하고 있는 단체라고 보기에는 너무 적은 액수였다.
애초에.
뼈 빠지게 링 위를 날고 매트에 부딪히면서 20분간 구른 끝에 나온 돈이 25달러면 너무나도 적었다.
물론, WWF나 NWA에 비하면 GCW는 작은 단체에 불과해서 어쩔 수 없다는 부분은 이해했지만.
선수들 대부분이 그런 반응이라 퍼시는 다시 한 번 이유를 설명했다.
“그거면 됐지. 요새 손님이 줄었어.”
“왜요?”
“저번에 네바다하고 교류전 열기로 했던 거 다 취소되면서 난리였잖아.”
“고작 그거 때문에?”
“손님들 기껏 오게 해놓고 네바다 병신들이 시간 약속을 어기고 오지도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지.”
“그걸 가만히 뒀어요?”
“……어쩔 수 없잖아. 그곳은 시칠리 놈들이 꽉 잡고 있는데. 드럼통에 담겨서 바다에 버려지고 싶어?”
“그건 싫죠.”
존은 쓰게 웃으며 뒤로 빠졌다.
시칠리안 마피아인 샨파레 패밀리.
네바다 주에서 프로레슬링 비즈니스를 통제하고 있는 조직폭력배로, 양아치 같은 성향으로 꽤나 유명했다.
그들과 크게 열기로 했던 교류전이 깨지면서 추위 속에 떨던 관객들이 잔뜩 화가 나 집으로 돌아갔고.
이후로, GCW는 하락세였다.
“메인 이벤터는 50. 나머지는 25.”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돌아가는 길에 우유 값이라도 벌고 갈까 했더니만 완전 개판이네.”
선수들이 불만을 쏟아냈다.
퍼시는 노련하게 선수들을 달랬다.
“그래도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
“뭐죠, 퍼시?”
“조만간 동부의 왕, 바트 맥센이 우리 GCW를 보러 오기로 했어. 그리고 교류전이 펼쳐질 수도 있겠지.”
“와우.”
“정말 기대되네요.”
“……반응들이 왜 이래?”
“그 새끼 쓰레기잖아요!”
“그런 병신이 하는 말을 믿느니 차라리 나무늘보가 존나 빠르게 움직인다는 소리를 믿겠수. 퍼시.”
“등신 같은 놈들.”
낄낄거리는 선수들을 보면서 퍼시는 깊은 무력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GCW.
오랜 단체고, 대회는 TV 중계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이 그렇듯이 하류 문화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농구나 야구, 거기에 미식축구지 프로레슬링이 아니었다. 참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여기에 있는 레슬러들도 모두가 정식 계약 선수는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WWF나 NWA 같은 대형 단체가 아니면 전속 계약으로 선수를 묶어둘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모든 건 돈 문제였고.
그리고 돈 문제였다.
“후우.”
선수들이 모두 돌아갔다.
다들 일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럽게 싸워대는군. 진짜.”
“그러게 말이야.”
퍼시의 뒤에서 빌이 나섰다.
빌 홉킨스.
퍼시의 사촌으로 함께 GCW의 일을 기획하고 수행하는 공동 프로모터였다.
“어쩔 수 없지.”
프로레슬링은 마이너 리그였다.
여기에 모인 이들도 당장의 돈이 급한, 말하자면 서커스 광대에 불과했다.
마치 돈이 급할 때 피를 뽑아서 주고 돈을 받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희생해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선수들이 정해져 있는 승패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방식으로라도 남의 밑바닥을 깔아줄 수는 없다는 사내 특유의 성질머리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 모두가 이곳에서 유명세를 얻어서 한창 성장 중인 WWF나 전통의 NWA로 가고 싶은 것일까.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어쨌든 락커룸의 선수들을 통제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 모두가 ‘프로레슬러’로서의 가면을 벗으면 공장 노동자나 트럭 운전수 같은 삼류 인생들이었다.
마초적인 성향도 짙었고 기 싸움도 자주 벌였다. 심지어는 락커룸 안에서 칼부림이 나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퍼시 앤 빌은 절대로 그들을 강하게 통제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프랭클린 한 장 못 쥐어주는 마당에 우리가 어떻게 놈들을 다루겠어?”
“그러니까.”
모든 것은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난다.
그렇기에 100달러에 새겨진 프랭클린 대통령을 보여주지도 못하는 이들이 강하게 나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옛날과는 달라졌어.”
“……그러게.”
요즘 업계는 남북 전쟁 같았다.
몇몇 단체들이 어떻게든 다른 단체를 먹으면서 업계를 키우려고 했다.
WWF가 그 선두주자였다.
그리고 다른 단체들이 그런 경향에 편승하면서 업계가 많이 삭막해졌다.
네바다의 개자식들도 그래서 일부러 일정을 당일에 캔슬해서 이쪽을 곤란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이겠지.
예전처럼, 동네 팀으로서 인기를 얻는 프로레슬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다른 단체를 병합해 성장하려는 이들과 그런 싸움에서 빠지고 싶어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들만 가득했다.
“퍼시.”
“왜, 인마.”
“어쩌면 말이야. 우리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지 않을까?”
“뭐?”
“강한 쪽에 붙는 거야.”
“바트 맥센?”
“그렇지.”
“우리에게 그럴 가치가 있을까?”
“글, 쎄다.”
“제기랄.”
퍼시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텔레비전 광고까지 나갈 정도였지만 사실상 아마추어 집단에 불과한 GCW는 크기만 큰 먹잇감일 터였다.
그렇기에 다른 단체의 밑으로 들어가더라도 선수들이나 직원들이 중하게 쓰일 일은 없다고 해도 좋겠지.
‘이를 어쩌냐.’
얌전히 네바다 놈들의 공격적인 확장을 버텨내면서 기회를 볼 것이냐.
아니면 정말로 바트 맥센을 끌어들여서 이이제이를 노릴 것이냐.
그중에서.
퍼시와 빌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못하고 그저 끙끙 앓고 있을 뿐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실례합니다.”
맑은 목소리.
동시에 좀 특이한 발음.
옆을 돌아본 퍼시와 빌은 웬 동양인 하나가 문 앞에 서있는 걸 발견했다.
“뭐야?”
“선수를 구하신다고 들었는데.”
“뭐?”
“GCW 오너 분들 아니십니까?”
“…….”
“…….”
두 사람은 할 말을 잊었다.
동양인.
그것도 영어 발음도 어눌한 녀석이 프로레슬러를 하겠다고 찾아오다니.
솔직히 처음 겪는 일이었다.
“저기, 미안한데.”
안 그래도 피곤한 상황에 찾아온 불청객에 퍼시 홉킨스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놈.’
키가 왜 이렇게 커?
어깨도 엄청 넓었다.
180인 퍼시가 올려다봐야 할 정도라서 그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동양인이라고?
“말씀하십시오.”
그는 퍼시가 약간 위협적으로 다가왔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아, 아니.”
“형씨, 이름이 뭐지?”
“신입니다. 김 신.”
“킴?”
“신이 이름이고 김이 성입니다.”
“그렇군. 동양인은 이름과 성을 반대로 쓰는 건가?”
“신 킴이라고.”
“일단,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다고?”
“예.”
“돈은 많이 못 벌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캘리포니아 전역을 돌아다니는 단체라고 들었는데……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
기본적으로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에 두고 활동하는 GCW였지만 다른 도시에서 대회를 개최할 때도 많았다.
“그 정도면 됐습니다.”
“됐다니?”
“선수로 활동하겠다고?”
“아, 테스트가 있습니까?”
“아니…….”
이를 어찌 설명해야 하나.
동양인 프로레슬러라.
물론 없지는 않았지만.
WWF 같은 큰 단체에서 브룩 리의 영화에서 나온 동양인 무술 고수 악당을 한두 명씩 넣는 정도에 불과했다.
GCW는 쓸 여력이 없었다.
“일단 형씨, 해본 적 있나?”
“프로레슬링 말입니까?”
“그래, 어때?”
“없습니다.”
“…….”
“그래도 무술은 할 줄 압니다.”
“가라테?”
퍼시와 빌이 웃음을 터뜨렸다.
은은한 인종 차별.
그런 것이 더 무서운 법이었지만 말한 두 사람도, 신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이런 게 당연했다.
퍼시는 낄낄 웃으며 말했다.
“보여줄 수 있나?”
“테스트라면.”
“링으로 가지.”
아직 대여 시간이 남았다.
빌이 의아해했지만 퍼시는 이 동양인 자식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뭐라도 되는 듯한 당당함이.
그렇기에 신을 데리고 링으로 간 그는 자신이 직접 링 위로 올라갔다.
“일단 덤벼봐.”
“스파링입니까?”
“그래.”
“보호구는 없습니까?”
“그런 게 왜 필요해.”
“그러시다면.”
신은 천천히 주먹을 들었다.
파이팅 포즈를 본 퍼시는 피식 웃고는 그대로 그 앞으로 다가섰다.
아무리 키가 크고 덩치가 좋다고 한들, 퍼시 역시도 예전에 프로레슬링으로 짬을 좀 먹은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프로레슬링을 해본 경험이 없는 동양인 한 놈쯤은 단숨에 혼을 빼줄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일단 팔을 붙잡았다.
로프 반동으로 프로레슬링이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시켜 주리라.
바로 그 순간.
“……?”
신은 그대로 퍼시의 팔을 붙잡고 반대편으로 힘껏 넘겨버렸다.
콰앙-!
100kg이 넘는 퍼시의 거체가 날아가 그대로 지면에 처박혔고 아래에 있떤 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
“이게 무슨 짓이야!!”
“예?”
“넘기는 게 어디 있어?!”
“스파링이라고 하셨잖습니까.”
“허.”
“이 새끼가……!”
퍼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방금 그 한마디로 깨달았다.
요즘 세상에 프로레슬링이 합을 맞춰서 이루어지는 스포츠라는 점을 모르는 멍청이(?)가 있을 리도 없었고.
말인즉슨 눈앞의 이놈은 네바다였던 어디든 다른 단체에서 보낸 암살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브룩 리의 영화, ‘피스트 오브 퓨리어스’에서 나온 동양인처럼.
물론.
신은 절대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
프로레슬링 회사에 면접을 보러 오기 전, 그래도 나름 적당히 프로그램을 보면서 공부했던 그였다.
그리고 깨달은 건.
프로레슬링은 일반적인 격투기와 달리 서로 공격을 피하는 대신 주고받는 스포츠라는 사실이었다.
돌진해 들어오는 퍼시 홉킨스.
그는 상대가 날아가는 순간을 기대하며 어깨로 신의 가슴을 들이받았다.
투콰앙-!!
엄청난 소리였다.
하지만 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 뭐…….”
그리고 신은 놀라 서있는 퍼시를 붙잡고는 그대로 지면에서 뽑아들었다.
번쩍.
물론 퍼시가 ‘들리기 위해’ 힘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엄청난 그림이 만들어질 수가 있었다.
‘이렇게인가?’
신은 그대로 버둥거리는 퍼시의 목을 조르면서 얌전히 만들었다.
수펄렉스인가 주펄렉스인가.
이렇게 들면 상대가 다 다리를 뻗은 채 가만히 있던데 그게 예의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절대 프로레슬링이 합을 맞추는 공연 예술이라는 결과에는 도달하지 못한 채.
“게헥……!”
숨이 졸린 퍼시의 다리가 앞으로 추욱 늘어지려는 순간, 신은 그대로 상대를 반대편으로 넘겨버렸다.
투콰앙-!!
버티컬 수플렉스.
세련된 동작.
1970년대의 프로레슬링은 아직 기술이 제대로 정립이 안 된 상태였다.
그보다 더 옛날에는, SIN의 시대에는 기본으로 쓰이는 백 드롭 같은 무브가 피니시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선수들도 기술력이 좋지 못해 마치 싸움의 연장선상처럼 프로레슬링 경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저, 저건…….’
Shin의 깔끔한 수플렉스를 본 빌 홉킨스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일 정말로 링 위의 이 남자가 프로레슬링을 해본 적이 없다면, 압도적인 인재가 업계에 등장한 셈이었다.
아니, 아니, 물론.
‘동양인’이라는 이유 하나가 압도적인 재능을 아무 소용없게 했지만.
그래도 링 위에서 묵묵하게 서 있는 그 포스는 순간 공포가 느껴질 정도.
그렇게 빌이 생각한 순간.
신이 로프를 밟고 위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힘껏 몸을 던졌다.
“어, 어……?!”
투콰앙-!
탑 로프 스플래시.
이미 반쯤 정신줄을 놓고 있었던 퍼시가 그대로 완전히 혼절해버렸고 이내 신이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빌은 할 말을 잃었다.
190cm을 넘길 정도로 엄청난 거구가 탑 턴버클 위에서 멕시코 놈들처럼 하이플라잉 무브를 사용했다.
아직까지 북미 프로레슬링에 하이플라잉 무브가 퍼지기 전이었기에 그 모습은 빌의 인상에 확 남고 말았다.
‘미쳤군.’
생각이 변했다.
현재 다른 단체의 공격적인 확장 정책으로 인해 스러져 가는 GCW로서는 반드시 잡아야만 하는 선수였다.
아무리 동양인이라고 해도.
그걸 뛰어넘는 무언가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