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10화 (610/634)

Dark Match 96.

“파, 파일 드라이버!”

해설을 맡은 빌이 놀라 소리쳤다.

파일 드라이버.

1950년대부터 전해져온 기술.

하지만 그걸 경기의 첫 순간에 사용한 것은 분명히 이번이 처음이었다.

관객들이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 말을 잇지 못했고, 그들은 순간 이 검은 레슬러에 대해 같은 생각을 했다.

괴물이 나타났다.

신이라는 이름의 괴물은 WWF의 기간트처럼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충분히 설득력을 갖춘 덩치.

그리고 행동.

완전히 뻗은 크러셔를 다시금 번쩍 들어 올린 신은 바로 보디 슬램을 날리며 공격을 계속 이어나갔다.

“어, 어…….”

당황한 심판, 퍼시.

뻐억-!

신이 주먹을 날렸다.

기절한 상대를 봐주지 않고 박살 내던 신은 이내 관객들의 반응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좀 더 화려하게.’

그동안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며 선수들이 보여줬던 기술이 떠올랐다.

신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예 뻗은 크러셔의 어깨와 다리 사이를 붙잡고 위로 들어올렸다.

[Uooooooooohhh!!]

그제야 터져 나오는 반응.

고릴라 프레스.

신은 80kg이 넘어가는 크러셔를 마치 역기를 들듯이 양팔로 들어 올리면서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그리고 그게 먹혔다.

[Waaaaaaaaaaggghhh!!]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힘의 과시.

단순하지만 강렬한 퍼포먼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신은 고릴라 프레스 이후 크러셔를 잡고 반대편으로 힘껏 떨어뜨렸다.

투콰앙-!!

“신, 이제 끝내.”

“…….”

보다 못한 퍼시의 지시.

신은 그대로 기절한 크러셔를 핀 폴했고 쓰리 카운트가 이어지면서 경기는 쉽사리 막을 내렸다.

압도적인 파워.

초대형 신인의 등장이었다.

퍼시도 순간 미소를 지을 정도였다.

* * *

25달러.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다.

신권을 받아든 신은 마지막으로 남아 퍼시 앤 빌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자, 다들 오늘 고생 많았고.”

“어이, 크러셔. 몸은 괜찮나?”

퍼시와 빌은 완전히 신의 편으로 돌아섰고, 그것을 선수들 모두가 느꼈다.

입술을 질끈 깨문 크러셔는 아무 말 없이 신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하지만 신은 신경 쓰지 않았다.

락커룸의 정치꾼들이 노련하게 생각을 거듭하며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고민에 잠겼다.

그동안 줄곧 좋은 모습을 보였던 백인, 크러셔냐.

아니면 마스크를 써서 동양인이라는 점을 커버하고 있는 신이냐.

그런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락커룸 리더인 파워풀 딕이었다.

“저 친구, 괜찮네요.”

그가 공개적으로 말을 꺼냈다.

크러셔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그로써 여기에 있는 모두가 직감했다.

놈은 끝이었다.

앞으로 그가 여기 이 GCW에 다시 출연하는 일은 없으리라.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락커룸 리더인 파워풀 딕의 한마디로 신과 크러셔의 위치가 바뀌었다.

“진짜 잘하던데. 신참. 정말 처음이야? 어디에서 배워온 건 아니고?”

“왠지 감이 좋은데요. 퍼시.”

“그러게 말이다.”

껄껄 웃는 퍼시.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

아니,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다들 그런 척을 하고 있을 뿐.

밑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다들 신이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지는 않을까.

경계를 애써 감추고 있었다.

그렇게 신은 ‘Masked Wrestler’로서 자신의 선수 커리어를 시작했다.

* * *

그로부터 두 달이 흘렀다.

신이 들어온 이후, GCW는 내내 상한가를 기록하며 캘리포니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신의 마스크에 붙은 장식물도 늘어났고, 입장 테마를 틀지 않는 것은 하나의 콘셉트로 활용되었다.

검은 마스크의 레슬러.

거대한 덩치에, 말 한마디 없이 상대 선수를 무참하게 박살 내는 그 모습이 팬들의 인기를 끌었다.

물론, 그 모든 과정이 완전한 합의 아래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퍼시와 빌은 신에 대한 선수들의 태도를 알고 일부러 경기의 결과를 떠넘기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신은 수틀리면 곧바로 자신에게 슛을 걸어오는 다른 선수들과 맞붙어야만 했다.

하지만 물론.

그는 절대로 지지 않았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공격에 당해주는 척하며 곧바로 반격을 취했다.

그리고 그게 팬들을 끌어들였다.

쩌억-!!

가감 없이 터지는 펀치.

[Uooooooooooooooohhhh!!]

관객수는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변호사인 로이어 라이어와의 승부.

로이어는 심판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일부러 자신이 들고 나온 서류 가방으로 신의 등을 힘껏 찍어버렸다.

뻐억!!

하지만 신은 멀쩡했다.

그 현실감.

‘실제’ 공격을 주고받는 모습이 팬들의 마음에 정확히 꽂힌 것이었다.

매 경기가 그랬다.

이깟 동양인 하나쯤은 자신이 이긴다는 생각으로 선수들이 매번 덤벼들었고 프로모터들도 그걸 방관했다.

신은 경기마다 실전을 치르는 셈이나 다름없었고,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보여주며 위상을 쌓아나갔다.

물론 신도 바보는 아니었고.

어느 순간부터 프로레슬링에 각본이 있다는 점은 조금씩 눈치를 챘다.

하지만 전부 그렇지는 않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해했다.’

화려한 기술을 서로 받아주면서 최대한 멋진 공격을 보여주고, 그 끝에서 더 반응을 끌어낸 쪽이 이긴다.

그게 신이 생각하는 프로레슬링.

그렇기에 상대가 직접 싸움을 걸어오는 경우만 제외하면 공격을 받아주면서 좋은 경기를 만들고자 했다.

그런 상황 속.

“제기랄…….”

크러셔는 내내 싸구려 맥주를 마시면서 GCW 대회를 보고 있었다.

2주에 한 번씩 하더니 점점 대회가 늘어나 캘리포니아 전역을 돌아다니게 된 프로레슬링 단체, GCW.

물론, 신과의 대결 이후로 한 번도 거기 참석해본 적이 없었던 크러셔는 분을 삭이고 있을 뿐이었다.

[신이 또 승리합니다!]

[괴물이 탄생했습니다!]

“관객들을 속이기나 하고.”

동양인이라는 사실만 밝혀진다면 다 거품처럼 꺼질 인기일 뿐인데.

그렇다고 해서 크러셔 본인이 그것을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케이페이브.

그에 의한 비밀 유지 서약서.

마지막으로 힘에 의한 논리.

퍼시 앤 빌도 그냥 프로모터는 아니었고 갱스터들을 좀 알고 지냈다.

그래서 만약, 자신이 신이 동양인이라는 사실을 퍼뜨린다면 당장에 무력행사를 하려고 들 게 뻔했다.

‘빌어먹을.’

한숨을 내쉰 크러셔는 기분 나쁜 텔레비전 방송을 끄고 캔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소리쳤다.

“대체 언제 오는 거야!!”

결과를 말하는 것이었다.

GCW에서 나온 이후.

크러셔는 뉴욕을 거점으로 하는 단체, WWF에 입사 지원서를 보냈다.

하지만 그 답변은 아직까지 오지 않았고, 그는 이를 아득바득 갈면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렇게 자신의 커리어가 끝나면.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고민 속에 점차 취기를 느끼며 크러셔는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따르르르르릉-!

“헉?!”

날카로운 벨 소리에 놀라 일어난 크러셔는 알 수 없는 기대감을 느끼며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갱 크러셔?]

“누, 누구시죠?”

[WWF의 잭 롭슨입니다.]

“아, 옙!!”

[비디오는 잘 봤고. 전에 GCW 소속이셨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그쪽 회사랑 교류전을 가지기로 해서 말이야. 그때 혹시 경기하러 좀 나올 수 있습니까?

“예?”

크러셔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GCW를 떠난 사람한테 GCW와 교류전에 나오란 건 대체 무슨 말인가.

이를 어쩌나 싶던 찰나.

잭 롭슨이 그를 도와주었다.

[그쪽 단체랑은 이야기가 됐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오면 되는데.]

“아, 그거라면!”

크러셔는 미소를 지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고, 게다가 그 멍청한 GCW 놈들 앞에서 WWF로 가는 모습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예쓰!”

전화를 끊은 크러셔는 쾌재를 부르며 남아 있는 맥주를 다 마셨다.

그 반대편.

“보스, 오겠답니다.”

전화를 끊은 잭 롭슨은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이야기했다.

검은 머리칼을 넘긴 회색 정장의 미남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하지만, 괜찮을까요?”

“뭐가 말인가?”

“그 친구, 우리가 자기 비디오를 보고 좋아서 부르는 줄 아는데.”

“…….”

“아니라는 걸 알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이걸 어떻게 하죠.”

“롭슨.”

“예, 보스.”

“그런 놈이 우리가 한 말을 ‘오해’한 것까지, 내가 신경을 써야 하나?”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말하지 말게.”

바트 맥센.

그는 자신의 앞에 놓인 자료를 살펴보면서 한 남자에게 눈독을 들였다.

검은 마스크와 팬츠.

이쪽에서 보낸 스파이가 찍은 사진이라 많이 흔들렸지만 분명 190이 넘는 거구라는 사실은 눈에 들어왔다.

‘신이라고.’

분명 눈에 띄는 선수였다.

* * *

WWF에서 교류전을 하자는 제안을 받은 퍼시 앤 빌의 선택은 간단했다.

단칼에 거절.

더 이야기할 것도 없었다.

그쪽에서 어떤 식으로 일을 하는지는 이미 업계에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미국 동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WWF는 바트 맥센 주니어가 사업을 이어받은 뒤 크게 변했다.

그들은 프로레슬링 업계의 전국 통일을 꿈꿨으며 공격적인 확장 정책을 통해 차근차근 영토를 늘려나갔다.

그 중심에 서있는 건 두 사람.

바로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압도적인 별명으로 유명한 WWF 월드 챔피언, 안드레 더 기간트.

그리고 바트 맥센 주니어.

두 사람은 전국을 돌면서 악당 짓을 통해 프로레슬링 팬의 이목을 끌었다.

그런 식의 각본은 마치 지금 GCW에 영입된 신과 크게 닮아 있었다.

압도적인 강자가 나타나 자기 단체의 선수들을 짓밟으면 그 팬들의 마음이 더욱 공고해지는 각본 시스템.

그렇기에 이 시절에는 ‘월드 챔피언’이라는 이름의 거대 단체의 악역 아이콘이 크게 유행을 끌었다.

NWA의 악당, 닉 플레어와 함께 앙드레 더 기간트는 프로레슬링 업계의 양대산맥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기간트는 이미 전국적인 스타였으며 프로레슬링을 모르는 이들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다.

시리얼에 들어가는 것도 기간트.

기간트, 기간트.

여기저기에 ‘악당’ 기간트의 사진이 붙었고 그를 통해서 바트 맥센은 자신의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게 바로 프로레슬링.

그게 바로 WWF.

마치 거대한 군대의 침략을 받는 것처럼 퍼시와 빌은 덜덜 떨어야 했다.

하지만 WWF는 영리했다.

그들은 갱 크러셔를 GCW로 복귀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교류전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누구에게?

선수들에게.

“아니, 진짜라니까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크러셔는 바트 맥센의 의도대로 행동했다.

“WWF 측에서 저한테 직접 전화가 왔어요! 교류전을 할 테니까 돌아가서 준비하라고! 진짜죠. 퍼시?!”

“…….”

“퍼시, 이게 진짭니까? 빌이라도.”

“그래, 사실이다.”

빌이 인정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WWF가 교류전을 제안해온 사실 자체는 숨길 수 없겠다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바트 맥센은 이런 음험하고 더러운 방식을 즐겼다.

선수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후 자신은 여기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발뺌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퍼시, 그리고 빌.”

“…….”

“하죠, 교류전.”

“제기랄.”

파워풀 딕의 말에 한숨을 내쉬는 퍼시 앤 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수들의 요청을 거절한다면 프로모터로서 신용을 잃게 될 터였다.

어쨌든 모두가 자유 계약 신분이었으니까.

남은 희망은 하나.

“신.”

그 말에, 가장 뒤쪽 벽에 기대어 서있던 신이 고개를 들었다.

모두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동양인은 단숨에 시청률과 티켓 판매량을 월등히 상승시켰다.

그것도 마이크워크 하나 없이 자신의 신체능력 하나만으로.

그렇기에 어느덧 퍼시와 빌도 그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게 되었고.

다른 선수들도 ‘신에게는 까불지 말자.’라는 풍조가 형성된 상태였다.

그리고 답변은.

황당했다.

“그게.”

“말해보게나.”

“WWF가 뭐하는 곳입니까?”

“…….”

“…….”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바라보는 가운데, 신은 가볍게 뺨을 긁적거렸다.

뭐가 어쨌든.

요새 들어 자주 캘리포니아 전역을 다니게 되면서 마냥 행복한 상태.

“월드 레슬링 파운데이션.”

“동부의 프로레슬링 단체다.”

“그쪽하고 붙는 겁니까?”

“……그런, 셈이지.”

다소 시무룩한 퍼시 앤 빌.

선수들도 앙드레 더 기간트에 대해 생각하고 쓰게 웃는 가운데, 신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꺼냈다.

“저희가 이기면 되겠군요.”

[Uoooooooooohhh!]

선수들 모두가 탄성을 내뱉었다.

순간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말 잘 했다! 신참!”

“이기면 되지! 이기면!”

물론.

선수들과는 별개로 퍼시 앤 빌은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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