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11화 (611/634)

Dark Match 97.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활주로에 비행기가 내려서고 그 안에서 처음으로 내린 남자는, 비행기를 장난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키 224센티미터.

체중 238킬로그램.

‘세계 제8대 불가사의’.

앙드레 더 기간트.

안 그래도 큰 키를 압도적으로 만들어 보이는 펑크 머리와 함께 그는 주변으로 나온 스튜어디스들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맞는 자리도 없어서 나란히 있는 좌석 두 개를 이어 붙여 여기까지 온 그는 동부와 다른 공기를 느꼈다.

“여기가 로스앤젤레스로군.”

“저, 손님?”

“응?”

“다른 손님들이…….”

“오, 이거 실례.”

기간트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덧붙였다.

“내가 ‘뭐든지’ 다 커서 말이야.”

가벼운 농담.

스튜어디스들이 키득거렸고 그중에 몇몇을 눈으로 점찍은 기간트는 호텔 룸 넘버를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금발 미녀.

그것도 한 명이 아닌 세 명.

손에 들고 있던 맥주를 단숨에 들이켠 그는 오늘도 방탕한 하루가 되리라 느끼며 그대로 활주로를 걸었다.

그 뒤로 따라 붙는 한 남자.

바트 맥센이었다.

“기간트.”

“예, 보스.”

“오늘도 놀 생각인가?”

“그래야죠. 젊을 때 즐겨야지.”

“자네 나이가 몇인데 젊을 때야?”

“아직 한창입니다.”

“일에만 지장 없도록 하게.”

“옙.”

기간트는 미소를 지었다.

그 뒤로 따라 붙는 거구들.

평균 신장, 190센티미터.

미식축구 플레이어들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덩치의 사내들이 기간트의 뒤를 따라 공항 안으로 들어섰다.

바트 맥센은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WWF.

앙드레 더 기간트라는 괴물을 영입하고, 그를 전 세계에 파견시켜서 자금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단체.

그들은 마치 공룡 기업처럼 지역구 단체들을 차례차례 밟아나가면서 업계를 정복해나갔다.

반대편에 있는 NWA와 대립 구도가 있긴 했지만, 보수적이고 평화적인 그들과 WWF는 정반대였다.

이번에도 그랬다.

미국 동부와 중북부를 꽉 잡은 바트 맥센의 WWF는 이제 캘리포니아까지 그 마수를 뻗치려 하고 있었다.

공항을 나온 바트 맥센은 평화로운 캘리포니아의 공기에 불쾌함을 느끼며 자신의 최측근을 불렀다.

“롭슨.”

“예, 보스.”

“존나 기분 나쁜 도시로군.”

“……그런 것 같습니다.”

롭슨은 일단 동의했다.

도대체 왜 바트 맥센이 이 캘리포니아의 따스한 기류를 느끼고 기분이 나빠진 건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보스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좋게 말해서, 좀 미쳤다.

“뭐야, 저기 있는 저 히피 새끼들은! 모조리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히피는 죽어야죠.”

“하여간, 날씨가 이렇게 좋기만 하니까 다 이러는 거야. 동부는 항상 구린 날씨로 사람이 단련되는데.”

“그렇죠. 동부가 짱이죠.”

“여기 머저리들에게 진짜 남자란 무엇인가를 한번 보여줘야겠군.”

“그러시죠. 보스.”

‘진짜 남자’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는 바트로서는 캘리포니아의 온건한 공기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트 맥센은 그런 Pus-y 같은 주인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레슬러를 보고 단숨에 반해 교류전을 신청했다.

그 이름은 Shin.

대체 무슨 의미로 그런 이름을 지었는가는 알 수 없었지만, 바트는 단숨에 그 잠재력을 알아보았다.

가면 아래에 있는 얼굴이 얼마나 못생겼든 상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바트는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호텔에 짐도 풀지 않고 곧바로 일에 들어가는 것은 프로레슬링이라는 산업에 자신의 열과 성을 다 하고 있는 바트 맥센의 특별한 부분이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중심부에 위치한 아이언 가든은, GCW의 전용 흥행 체육관으로 주로 대회를 여는 곳이었다.

롭슨과 함께 차를 타고 그곳에 도착한 바트는 마중을 나온 퍼시 앤 빌과 인사를 나누었다.

“바트 맥센! 반갑습니다. 저는 퍼시고 이쪽은 제 사촌인 빌입니다.”

“만나서 반갑네. 퍼시 앤 빌이라면 이 업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지.”

“과찬이십니다! 하하!”

일견 화기애애한 분위기.

하지만 바트 맥센은 침착하게 퍼시 앤 빌의 상태를 파악해 나갔다.

일단.

‘경계를 하고 있는 모양이군.’

선수들을 소개해주지 않고 일에 관한 이야기로 주제를 돌리는 걸 보니.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어차피 같이 일할 텐데. 괜스레 시간을 버는 행위밖에 되지 않았다.

“네바다 놈들이 항상 문제였죠.”

“그쪽 친구들 악명이 높던데.”

“예, 뒤쪽에 마피아 놈들이 있어 언제나 배짱을 부린다는 말입니다.”

“그런 놈들은 비슷하게 가야지.”

바트 맥센은 호기롭게 웃었다.

“말인즉슨 그쪽이 마피아로 나온다면 우리는 경찰로 나가면 된다는 이야기요. 네바다 놈들이 뭘 어쨌건.”

“건수를 기다리고 있는 경찰들 입장에서는 솔직히 좋은 일이겠죠.”

“그러다마다요! 하하!”

쓸데없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내, 바트 맥센은 말할 가치가 없다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저녁 때 뵙죠.”

“예, 특등석을 준비해두겠습니다.”

악수를 나누고 나온 바트 맥센은 롭슨이 건네는 손수건으로 손바닥을 닦고 그대로 차에 올라탔다.

‘등신 같은 놈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캘리포니아는 거대한 주였고 인구수도 많아 프로레슬링 산업을 뻗어나가기에 큰 무리가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캘리포니아가 어찌하여 네바다 같은 곳에게 엿을 먹고도 대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가.

다 무능한 프로모터 때문이었다.

바트 맥센 스스로가 GCW의 오너였다면 당장에 네바다로 쳐들어가 모두를 미니 건으로 쏴 죽였을 터였다.

‘그 정도는 해줘야지.’

바트 맥센은 자신과 자신의 단체가 무시당할 때 가장 큰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겪고도 가만히 있는 이 GCW가 정말로 열 받았다.

‘먹어주마.’

그게 이곳 선수들을 위한 길.

더 나아가 북미 프로레슬링 업계를 위한 길이기도 하리라.

바트 맥센은 의심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WWF를.

* * *

저녁에 펼쳐진 GCW의 정기 흥행.

개중에서 가장 큰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남자였다.

Shin.

[Waaaaaaaaaaaaaaaaggghhh!!]

악역인지 선역인지도 불분명한 캐릭터.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압도적인 파워로 팬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아무 등장 음악 없이 링에 오른 그는 뒤이어 나오는 갱 크러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크러셔는 꽤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GCW 대회에서 다시 신을 상대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WWF의 회장, 바트 맥센이 지켜보고 있는 마당에 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은 크러셔는.

‘제기랄.’

결국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다.

그것은 프로레슬링이 아니었다.

[Uooooooooooooohhhh!!]

링에 오르자마자 메고 있던 멜빵을 풀어 주먹에 휘감은 크러셔는 그것을 채찍처럼 사용하려고 했다.

심판인 퍼시가 당황해 달려왔다.

“크러셔!”

“헤이, 퍼시. 당신 얼굴에 이거 꽂아 넣기 전에 당장 꺼져.”

“뭐……?”

“너희가 나 엿 먹이려는 수작 모를 줄 알아? 내가 쉽사리 너희 등신짓에 당해줄 줄 알았으면 큰 오산이야.”

“아니, 정신 차려. 크러셔.”

퍼시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

그리고 진실을 이야기해줬다.

“바트 맥센의 요청이야.”

“뭐?”

“너와 신이 경기를 하는 걸 보고 싶다면서 요청한 거지. 그쪽으로 이력서라도 보냈나? 제기랄, 우리 모두 바트 맥센에게 놀아난 거라고 크러셔.”

“다, 닥쳐!”

크러셔는 현실을 부정했다.

뒤쪽의 신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우연히 그걸 발견한 크러셔는 분을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땡땡땡-!!

황급히 울리는 링 벨.

관객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경기가 시작이 되었다.

그것을.

바트 맥센은 체육관 3층의 특등석에서 동료들과 함께 보고 있었다.

GCW 측에서는 맨 앞자리를 추천해줬지만, 그는 일부러 이곳을 택했다.

한 남자 때문이었다.

바로 앙드레 더 기간트.

2미터가 넘는 그가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금방 눈에 띌 테니 일부러 이곳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스튜어디스들을 호텔에 남겨두고 나왔던 기간트는, 처음엔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으나 이제는 전혀 아니었다.

“저 친구, 괜찮군.”

“그렇지?”

기간트는 ‘남자’였다.

자신과 같은 부류를 금방 알아보았고, 그렇기에 락커룸 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큰 존경을 받았다.

그런 그가 인정한 사내.

Shin.

“크아아악-!”

[Boooooooooooooooooo-!!]

야유 속에서 멜빵을 휘두르는 크러셔. 하지만 신은 그 공격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몸으로 받아냈다.

쩌억-!

피와 살점이 함께 튀었다.

멜빵에 달린 철제 파츠가 신의 등을 긁어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크러셔를 붙잡았다.

[Uooooooooooooooooooohhh?!]

거기에서.

바트 맥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미친 자식.’

각본에 없던 일이 벌어질 것임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바트 역시 그것을 노리고 이 상황을 유도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진짜 열이 받아 무기를 들었는데도, 심지어 그걸로 공격을 당했는데도 신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저런 놈을 찾았어!”

바트는 신이 나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금방 묻혔다.

[Waaaaaaaaaaaaaaaaggghhh!!]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

신은 그렇게 붙잡은 크러셔의 저항을 무시하고 바닥에서 뽑아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보디 슬램.

투콰앙-!!

[Waaaaaaaaaaaaaaggghhh!!]

“저거 물건이군.”

“그렇지?”

“예, 보스. 상대가 저항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무리 없이 뽑는군요.”

기간트가 평가를 내렸다.

“이곳의 ‘폴리스 맨’인가.”

폴리스 맨.

1970년대의 프로레슬링은 무법지대였고, 그 사실을 외부로 발설하지 말아야 하는 룰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락커룸 내의 일은 락커룸에서 처리했으며 그걸 위해 싸움이 가장 강한 선수가 그 역할을 맡았다.

실제로 사고를 많이 치는 선수를 경기로 가장해 두들겨 패기도 했고 다른 단체와의 싸움도 먼저 나섰다.

힘이 좋고.

터프한 레슬러.

쩌억-!!

크러셔가 다시금 멜빵으로 신의 머리를 공격했다. 하지만 신이 피한 탓에 멜빵은 등을 찢어발길 뿐이었다.

[Uooooooooooohhh……!]

당황하는 관객들.

퍼시도 쉽사리 상황을 중재하지 못하고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미동도 않은 신은 그대로 크러셔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수직으로 치솟는 크러셔.

발버둥을 쳤다.

그렇기에 수직낙하기에서 자주 나오는, 피폭자가 멋들어지게 발을 허공으로 뻗는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신은 그런 태도였다.

“저건…….”

바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브레인 버스터.

아니, 파일 드라이버?

“아니.”

저항하는 상대의 다리를 확실히 붙잡고는 수직으로 힘껏 내리 찍었다.

투콰앙-!!

울려 퍼지는 소리.

[Waaaaaaaaaaaaaaggghhh!!]

팬들의 환호 속에, 크러셔의 저항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신은 그 위를 덮고 곧바로 핀 폴에 들어갔다.

1……!!

2……!!

3……!!

땡땡땡-!!

[Shin! Shin! Shin! Shin! Shin! Shin! Shin! Shin! Shin! Shin! Shin!]

팬들의 챈트가 이어졌다.

자리에서 일어선 신의 등짝은 피로 얼룩졌고 링 아래에서 대기하던 메디컬 팀이 올라와 상처를 지혈했다.

하지만 바트 맥센은 그걸 욕했다.

“저 미친놈들!”

그건 아니지.

“저 멋진 걸 드러내야지!!”

전사의 훈장!

남자의 상징!

바트 맥센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앙드레 더 기간트만을 남겨둔 채 자리를 빠져 나갔다.

당장에 백스테이지로 들어가 저 남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다.

사나이 중의 사나이.

저놈이 있다면 세계 제8대 불가사의인 앙드레 더 기간트와 함께 자신은 세계를 정복할 수 있으리라!

“크하하하……!”

그렇게 생각하며 만류하는 직원들을 뿌리치고서 백스테이지로 들어간 바트 맥센은 곧바로 신을 찾았다.

“신, 신!!”

그리고 그가 발견한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신……?”

링 위의 히어로는.

동양인이었다.

전혀 상상도 못하던 상황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