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98.
“Asian……?”
“Problem?”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바트 맥센은 지금의 상황을 순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굳어져 있을 뿐이었고 뒤이어 락커룸 안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워풀 딕과 다른 동료들.
동부의 왕, 뉴욕의 지배자이자 프로레슬링 업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사탄, 바트 맥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퍼시 앤 빌이 황급히 락커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바트 맥센의 황당하다는 표정을 보고는 대강 지금의 상황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 반대편에서 무뚝뚝한 얼굴로 서 있던 신이 이내 샤워실 안으로 들어섰고 바트 맥센이 소리쳤다.
“퍼시! 빌!”
“……예, 바트.”
“저게 뭡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뭐 저런! 허!”
바트는 쉽사리 말하지 못했다.
SHIN이 동양인이라는 사실.
사기의 영역에 가까운 짓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염치를 모르는 사람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았다.
바트 맥센이 신의 정체를 알고는 어째서 놀랐는지, 차마 말도 못하고 답답해 전전긍긍하고 있는지를.
동양인 프로레슬러.
숫자 비율로 따졌을 때 열 명도 되지 않을 그들은 대부분 고전 공포 영화에서 나오는 캐릭터처럼 푸-만추 수염을 기르고 악당 역할을 수행했다.
그 외의 역할은 없었다.
비교적 강한 악당이지만 일회용으로 쓰이고 버려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선역, 미국의 영웅과 싸워서 비겁한 마법 같은 술수를 부려대다가 결국에는 패배하고 마는 것이 동양인.
바트 맥센은 지금 이 순간 이전까지 분명 그 미국의 영웅 역할을 신이 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기간트는 너무 거대했다.
더스티는 늙었으며 플레어는 체구가 작았다. 바트는 본격적인 TV 시장 진출에 앞서 영웅을 찾고 있었다.
미국의 얼굴이 될 영웅.
그리고 신에게서 그 가능성을 봤다.
그 힘.
근육.
덩치.
미국인의 희망.
베트남전의 패배에 대한 열등감으로 죽어가는 국민들에게 긍지를 불어넣고 히피들을 몰아낼 Real American.
그 자리에 신을 점찍어놨는데.
‘설마 동양인일 줄이야.’
바트 맥센은 순간 할 말을 잊었다.
그는 시간 낭비를 증오하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호텔로 돌아갔다.
그리고 늦은 새벽까지 신이 동양인이었다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이걸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큰 엿을 먹여야겠어.’
신의 정체를 폭로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연을 가장해서 말이다.
새벽 4시.
그는 시간에 아랑곳 않고 곧장 자신의 부하인 롭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보스.]
“자고 있었나?”
[그렇습니다.]
“일 이야기 좀 하지.”
[바로 가겠습니다.]
롭슨은 이제 익숙해졌다는 듯 바트의 제안에 곧바로 응답했다.
바트 맥센은 일에 미친 남자였고, 낮이든 밤이든 아무 상관도 않고 자신의 부하들을 마구 부려먹었다.
그렇게.
바트 맥센이 사악한 계획을 짜는 사이, GCW 측에서도 그것을 예상하고는 대항할 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70년대의 프로레슬링 업계는 전쟁터였다. 매너도 존중도 없었고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아무렇지도 않게 벌였다.
그 과정에서 범죄 단체들이 개입하기도 했다. 실제로 락커룸 내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차라리 바트 맥센은 낫지.”
“……그런 셈인가?”
“총은 안 쓰잖아. 그래도 엿 같다는 점은 전혀 변함이 없지만 말이야.”
빌이 한숨을 내쉬었다.
바트 맥센은 프로레슬링을 메이저의 영역으로 올리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다른 단체처럼 범죄 행각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교묘하게 상대 단체를 망하게 했다.
한숨을 내쉬는 퍼시 앤 빌.
바로 그때, 가만히 있던 신이 바트 맥센의 얼굴을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바트 맥센입니까?”
“그래, 신.”
“WWF의 오너지. 업계의 또라이이자 미친놈으로 유명해. 엮이면 좋을 게 하등 없는 남자라는 말이지.”
“그 사람이, 저희 단체에 뭔가 나쁜 짓을 하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아마도, 자네에게.”
“저 말입니까?”
“그래, 자네가 동양인인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 그걸로 화가 많이 났겠지.”
“……이해할 수 없군요.”
“우리도 그래.”
퍼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는, 좋은 레슬러야.”
“…….”
“카리스마가 있어. 멋지지. 자네 그 거친 경기 스타일은 인기가 좋아. 싫어하는 선수들도 많지만 말이야.”
“진짜로 패는데 누가 좋아하겠어?”
“그래도 그 방식이 맞지! 프로레슬링이잖아! 겁쟁이가 아니면 이게 진짜 남자의 방식이라는 말이야.”
다들 좀 술에 취한 채였다.
그렇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링에 오르는 신은 그 누구보다도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파워풀 딕에게 도전해 이기더라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계속 이어지는 칭찬.
그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신은 이내 한 가지를 두 사람에게 물었다.
“동양인인 게 문제입니까?”
“……뭐?”
“만약 제가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면 선수로서 활동할 수 없는 겁니까?”
“솔직하게 말해줘야겠군.”
“예, 그래주십시오.”
신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동안 캘리포니아 전역을 돌며 그는 수많은 일을 겪었고 그를 통해 미국이라는 사회에 대해 알게 되었다.
미국은 위선자들의 사회였다.
그리고 피부색으로 뭉쳤다.
일반적으로 백인이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에게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백인이 차별을 당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도 힘이 없으면 똑같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힘이란 숫자에서 오기 마련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백인은 절대적인 강자였다.
거리에서 만나는 대부분이 백인.
동양인은 마치 원숭이가 거리에 나온 것과 비슷한 시선을 받았다.
신은 일을 끝마치고 가면을 벗고 식당을 찾아갈 때마다 냉대를 받았다.
그 모두가 미국에서 동양인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모두 자네에게 돌을 던지겠지.”
“…….”
“난 그렇게 생각해. 솔직하게 하는 말이네. 인종차별을 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래?”
“예, 다들 제가 마스크를 쓰고 백인인 척을 하고 있을 때는 환호를 보내지만, 가면을 벗고 가게에 들어가 와플이라도 하나 시키면 1시간 넘게 기다려야 받을 수가 있더군요.”
그는 피식 웃었다.
무덤덤하게 사실을 말했다.
그 사실이 무척 열이 받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렇다 할 해결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굳이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법이었다.
퍼시 앤 빌도 신이 그런 감정을 애써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딱히.
뭐라고 말을 해주지는 못했다.
자신들 역시도 신을 인종적으로 생각하고 대했다. 그가 자신을 증명하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차별을 했다.
그리고 그게.
그들로서는 당연했다.
동양인은 프로레슬러가 될 수 없다.
그것이 현 시대의 정서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바트 맥센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신.”
“……예.”
“마스크가 안 벗겨지도록 하게나.”
“그쪽은 그걸 노릴 거야.”
정확히 집어내는 두 사람.
그 앞에서 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굳이 그래야만 하는가.
자신이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
아이러니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아직까지는 이 프로레슬러로서 살아가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바트 맥센의 연락을 통해서 GCW와 WWF 간의 협업이 이루어져 나갔다.
그들은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2,000여 명 규모를 수용할 수 있는 종합 체육관을 빌려서 사용하기로 했다.
GCW로서는 경악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WWF가 보유한 스타 파워는 엄청났다. 실제로 그들은 에디슨 스퀘어 가든을 근거지로 삼았다.
오히려 GCW의 스타 파워를 가늠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지금 최소한도로 숫자를 잡은 것이었다.
보통 이런 단체 간의 교류전에서 침공해온 선수나 단체가 악역을 맞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보통 이겼다.
안드레 더 기간트는 월드 챔피언이었으니까. 그 월드 챔피언과 잘 싸운 지역구 챔피언이 격려 받는 각본.
보통 그런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그것은 이번에도 변함이 없었다.
메인이벤트는 안드레 더 기간트와 파워풀 딕 간의 월드 챔피언십 매치.
그리고.
바트 맥센이 이렇게 제안을 해왔다.
“신을 세미 메인에 넣죠.”
“신을……?”
“그 상대는 누구로?”
“빅 건 스터드.”
퍼시와 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빅 건 스터드.
무려 2미터 8센티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의 레슬러로, 앙드레 더 기간트의 뒤를 잇는 파워하우스 선수였다.
“스터드를?”
“신이 상대할 수 있을까 싶지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세미 메인은 우리가 가져가게 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협업이 하루에 끝날 것도 아니고 천천히 가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요.”
“예?”
“제가 저희가 기껏 여기 서부 캘리포니아까지 날아왔겠습니까. 팬 숫자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서죠.”
“…….”
“한 두어 달 함께 일하려고 하는데. 기왕이면 좀 ‘극적인’ 각본을 진행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신이 지는 걸로요?”
“음…….”
“……일단 전해두겠습니다.”
“예?”
의아해하는 바트 맥센.
거기에서.
퍼시가 순간 기지를 발휘했다.
“저희는 실전 지향이라서요. 완벽하게 실전 레슬링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저희 거친 놈들이 그쪽 선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겁니다. 특히나 신 같은 선수는 더더욱.”
“……크하하하하!”
바트 맥센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동양인이 실전에 강하다는 말을 그저 농담으로 치부할 정도였다.
거기다 빅 건 스터드와 신의 덩치는 비슷해도 키 차이가 있어 절대로 지지 않으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따라서 이런 대답이 나왔다.
“좋습니다! 그러면 그 경기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하도록 놔두도록 하죠!”
그런 식으로 서로 잔뜩 날이 선 상태에서 협업이 이루어졌고, 2주가 지나 GCW VS WWF 대회가 열렸다.
거인, 안드레 더 기간트를 볼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티켓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그런 상황에서 GCW 선수들도 의욕에 불탔고, 대회당일 일찌감치 경기장에 모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신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그는, 솔직히 말해 경기장의 크기를 보고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이 정도나 크다니.’
이곳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는 광경을 상상하자 순간 감탄이 나왔다.
가벼운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멍하니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이내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솔직히.
좀 놀라고 말았다.
230에 달하는 키.
펑키한 헤어에 엄청난 체중.
척 봐도 느껴졌다.
‘이런 거랑 싸우면 죽겠군.’
그렇게 다가온 사내는 신이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자 가볍게 눈썹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이봐.”
“…….”
“무례하군.”
“실례.”
“괴물이라도 보는 눈이야.”
사과를 했지만 안드레 더 기간트의 기분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는 그 누구보다 차별에 노출된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이런 문제를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신은 침착했다.
“아니, 정확히는.”
“……?”
“당신과 싸운다면 내가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를 좀 상상하느라 그만.”
“푸흡.”
웃음을 터뜨리는 기간트.
“크하하하하!”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목소리.
신의 방금 한마디에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놈의 ‘차별’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네가 ‘신’이로군.”
손을 내미는 기간트.
솔직히 말해, 신이 동양인일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였다.
“당신은…….”
“안드레, 안드레 더 기간트.”
“월드 챔피언이로군.”
“그래, 여태껏 그 누구도 나와 싸워서 이기지 못했지. 링 위에서 덤벼드는 놈은 누구든 다 한 방이었어.”
“그렇게 보여.”
“그러다 보니 누구도 내 앞에서 ‘이길 방법’ 같은 건 말하지 못했는데.”
한 방 먹었다.
기간트는 눈앞에 있는 이 동양인에게 갑작스럽지만 큰 호감을 느꼈다.
스스로가 그 누구보다 차별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그는 타인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었다.
오히려 자기 차별과 혐오는 자기 자신에게 향할 때가 많았다.
안드레 더 기간트는 쾌락에 빠져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사람이었다.
모든 슈퍼스타가 그렇듯이.
“어때, 이길 수 있겠나?”
“해봐야 알지. 아마 총이 있으면 내가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고릴라라서 그런가?”
“당신도 총을 가졌을 때를 말하는 거야. 자꾸 사람을 나쁘게 몰지 마.”
“하하하! ‘신이 인간을 만들고 콜트가 평등하게 만들었다’고 하듯이!”
신과 기간트는 그대로 자리에 서서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 큰 웃음소리를 듣고 락커룸의 선수 하나가 그를 찾으러 올 때까지.
“보스!”
“오, 금방 가지.”
락커룸의 보스, 기간트.
그는 신의 등을 툭 때리고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긴 뒤 떠나갔다.
“자네 상대는 꽤 빡센 놈이야.”
“…….”
“나와 한번 붙어보고 싶다면 이기고 올라오라고. 기다릴 테니까.”
그렇게 기간트가 떠난 뒤.
가만히 서있던 신은 오랜만에 대화다운 대화를 했다는 느낌으로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그렇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