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14화 (614/634)

Dark Match 100.

원래대로라면 백스테이지로 퇴장했을 신이 다시 한 번 링으로 올라갔다.

팬들의 환호성에 응한 것이었다.

각본에도 없었던 갑작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자연스럽게 카메라가 그 모습을 잡았고 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바트 맥센은 이를 뿌득 갈았다.

저 개자식이 어째서 링 위로 올라왔는지, 그리고 어찌하여 안드레 더 기간트가 상대를 해주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림도 말이 안 됐다.

230에 가까운 기간트.

190이 될까 말까 한 신.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았고, 신은 기간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머리 하나는 더 차이가 났다.

압도적인 피지컬의 격차.

하지만 팬들은 지금껏 링 위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 왔던 신을 믿었다.

[SHIN! SHIN! SHIN! SHIN! SHIN! SHIN! SHIN! SHIN! SHIN! SHIN!]

강렬한 환호.

이게 홈 그라운드였다.

미소를 지으며 서있던 기간트가 이내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고, 그럴수록 팬들의 환호성은 더 커졌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

이곳.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프로레슬링 팬 모두가, 신이 안드레 더 기간트와 맞서 싸우는 장면을 기대했다.

그리고.

‘대체 왜……!’

이 각본을 벗어난 상황에서 가장 분노하고 있는 건 바트 맥센이었다.

그로서는 자신의 챔피언이자 업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간트가 신의 도전을 받는 일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동양인 놈이 마스크로 자신을 감추고 있는 것 자체가 기만이었다.

하지만 링 위의 일에 함부로 난입할 수도 없는 시점에서 바라만 보며 이를 아득바득 갈고 있자니.

얼마 후.

신이 기간트의 악수를 받아들였다.

[Waaaaaaaaaaaaaaaaggghhh!!]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환호.

지금 이 순간 모두가 느꼈다.

이건 열릴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 * *

1970년대.

베트남전 이후.

히피의 몰락.

인종의 용광로 현상의 심화.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로 인해 프로레슬링 업계는 충분히 치고 올라갈 만한 상황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인들에게는 긍지가 필요했다.

그 외의 여러 나라에서도 증명되었듯, 프로레슬링이 인기를 끌 때는 고전적인 ‘애국심 마케팅’의 힘이 컸다.

국민 영웅이 나타나서 다른 나라에서 온 괴물들을 쓰러뜨린다는 각본.

거기에 패배감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이 열광하면서 프로레슬링은 자연히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는 것이었다.

한국의 임일.

일본의 역두산.

모두가 그런 마케팅을 발판으로 프로레슬링 업계를 반석에 올려놓았고, 바트 맥센도 그럴 생각이었다.

지역구 단체가 난립하는 현재의 시대를 타파하고 미국 전체에 자신이 생각하는 애국 프로레슬링을 퍼뜨린다.

그런 웅대한 꿈을 가졌다.

그렇기에 바트 맥센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단체를 공격했다.

이번에도 달라지진 않았다.

대회가 끝나자마자 바트는 대회에서 좋은 반응을 받던 GCW 선수들에게 연락해서 독점 계약을 시도했다.

파워풀 딕을 비롯해 몇몇 선수들이 그 대상이 되었고, 그들은 퍼시 앤 빌과 대화를 통해 결론을 내렸다.

갈 수밖에 없었다.

바트 맥센이 제시하는 금액은 25달러, 100달러 정도가 아니었다. 그 5배 이상의 금일봉을 보장해주었다.

그렇기에 프로레슬러로 안정적인 수입을 벌고 싶었던 선수들이 혹해 넘어가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었다.

업계란 그런 곳이었다.

상도덕도 긍지도 없었다.

바트 맥센은 GCW의 선수들을 그대로 흡수한 뒤, 마지막으로 NWA와 대적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남부 이외에는 다 장악하게 되는 셈이니까.’

더스티 로스.

닉 플레어.

그런 놈들이 점거하고 있는 NWA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프로레슬링 업계에 이전까지 없던 스타가 필요했다.

그리고.

거기에 안드레 더 기간트가 말했다.

“신에게는 제안을 안 하셨겠죠.”

“……내가 왜?”

“좋은 레슬러 아닙니까.”

기간트는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놈은 나를 기만했어.”

“아니, 어디가요?”

“동양인임을 숨겼잖나!”

“숨긴 적은 없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했을 뿐.”

기간트는 그걸 이해했다.

실제로 신 본인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마스크를 써서 동양인이라는 사실을 숨긴 게 절묘한 포인트였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팬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터였다. 기간트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걸 끌어안고 가보죠.”

“뭐……?”

“나쁘지 않잖습니까. 신. 가면을 쓴 미스테리한 레슬러. 거기 그 뭐냐, 마벨 코믹스의 히어로 같기도 하고.”

“만약 그놈이 WWF의 선수가 된다면 한 달 내로 동양인임이 전국에 까발려진다는데 300달러를 걸지.”

“당신이 이겼습니다. 보스.”

기간트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굳이 마스크를 씌우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훌륭한 레슬러가 아닐까요?”

“난 슈퍼스타를 원한단 말이야! 이 미국과 전 세계를 가져다줄 스타!”

“……놀랍게도.”

“동양인은 절대 아니지!”

“저도 프랑스인인데요.”

“아니지. 자네는 프로레슬링 업계에서만큼은 미국인이야. 그리고 솔직히 악당이기도 하잖나! 내가 원하는 건 미국인 슈퍼 하이퍼 스타라고!”

잔뜩 흥분해 소리치는 바트 맥센.

거기에서 기간트는 확실히 알았다.

‘아쉬워하고 있군.’

그래서 일부러 더 심술을 부리는 거다. 바트 맥센은 그런 남자였다.

사실.

원래대로였다면 캘리포니아로 오기 전에 거쳤어야 할 단체가 몇 개 존재했지만 바트는 곧장 이곳으로 왔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신의 비디오를 보고 그 강력함에 반해서였다. 게다가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상황은 훨씬 더 좋았다.

바트 맥센이 갈고 닦아서 더 멋지고 화려한 기믹을 주어 ‘미국의 영웅’으로 데뷔를 시키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게 어그러졌으니 바트 맥센의 성격이라면 복수를 생각하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었다.

문제는.

“믿었던 스터드도 보스의 명령대로 그 친구 마스크를 벗기기는커녕 처절하게 당했다는 거죠.”

“……흥.”

“그래서 제가 하겠다고 했더니 그건 또 안 된다고 난리를 피우시고.”

“그 개자식이 자네와 붙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기 때문이야.”

급이 안 맞는 싸움이었다.

그렇기에 바트는 ‘기간트와 싸우기 위해서 실력을 더 쌓고 와라!’는 식으로 각본을 잡고 진행할 예정이었다.

오랜만의 각본.

70년대의 프로레슬링은 쇼 하나하나가 일종의 이벤트였고 그렇기에 딱히 강한 드라마가 존재하진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GCW와 WWF는 두 달 정도 계속 함께 일할 예정이었다.

그동안 바트 맥센은 그 동양인을 어떻게든 업계에서 쫓아낼 생각이었다.

물론.

‘생각대로 되려나.’

안드레 더 기간트는 회의적이었다.

이런저런 놈들과 링 위에서 직접 맞붙어봤던 그는, 이제 눈빛을 나눈 것만으로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신은 보통 놈이 아니었다.

* * *

바트 맥센.

내가 딱히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를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이유는, 결국 차별 문제 때문이었다.

다른 선수들이 다 스카웃 제안을 받았는데도 나는 받지 못했다. 그 이유를 이제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스타가 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좀 짜증나는군.’

지긋지긋할 정도였다.

동양인에게 있어서, 특히 나처럼 한국인들에게 미국 사회는 별천지였다.

물론 한국에 차별이 없진 않았다.

지역으로,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했고 미국인이 한국에 오면 좋지 못한 일을 겪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여기는 미국이었다.

백인 위주의 사회.

그 아래를 흑인이 깔고 있지만, 그들은 그나마 차별을 그만두라며 목소리를 낼 정도의 숫자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동양인은 철저한 비주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트 맥센은 자신이 가진 힘을 바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의 직장을 파괴하고 장악을 해나갔다.

약간의 울분을 느꼈다.

그게 내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지난번 크릭스 때처럼 힘을 쓸 수는 없었다.

‘당연하지.’

미국은 자본주의 사회.

결국 난다 긴다 하더라도 돈이 많은 쪽이 이기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이 바닥에서 바트 맥센은 거의 최고였다.

퍼시 앤 빌 역시도.

첫 번째 대회가 끝난 이후 선수들을 마구 사들여나가는 바트 맥센에게 맞서서 뭔가를 해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그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를 넘기라는 바트 맥센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GCW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 나 역시 이번 대회가 끝난다면 이곳에서 잘리고 말겠지.

“후우.”

어떻게 한다.

고민하며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앉아 있자니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나를 찾아왔다.

바로 바트 맥센이었다.

“이봐, 아시안.”

“…….”

“기간트와 붙고 싶은가?”

양복 차림의 그는 껄렁하게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서 이야기했다.

“기회를 주지. 우리는 앞으로 두 달 동안 일을 할 거고. 2주에 한 번씩 대회를 열 거야. 그리고 자네는 그때마다 나의 선수들과 붙을 예정이고.”

“……그렇군.”

“그들을 이겨봐라. ‘너’는 그런 식으로 프로레슬링을 해왔다면서?”

“다른 방식이 또 있나?”

“아니지! 프로레슬링은 투쟁이 맞아. 원하는 게 있다면 쟁취해보라고.”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바트.

나는 잠시 고민하다.

“이봐.”

그를 불러 세웠다.

“……?”

“노래를 틀어줄 수 있나?”

“무슨 노래? 입장 테마?”

“그래, 좋아하게 된 노래가 있어.”

“무슨 노래지?”

“꽤 귀여운 여자와 보게 된 영화에서 나온 노래인데. 무명 복서가 챔피언에게 도전하는 영화였지.”

“로키 말이군.”

“그래, 그 영화의 메인 테마를.”

“……글쎄.”

슬며시 웃는 바트 맥센.

“그건 우리를 위한 노래라서.”

“뭐, 어때. 괜찮잖아. 백인. 동양인에게도 좀 윤허를 해달라고.”

“푸하하하하! 생각해보지.”

그리고 나가는 바트 맥센.

나는 숨을 몰아쉬며 기다렸다.

이 정도로 불쾌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아니, 나는 애초부터 불쾌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딱히 없었다. 군에서 그저 시키는 대로 살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되었다.

또 그러자니 재미있었다.

“나쁘지 않군.”

좋았다.

나는 이제 싸워서 이겨야만 했다.

국가의 명령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나를 위해서.

나의 영혼을 위해서.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락커룸 안으로 들어온 백인들이 자기들끼리 떠들어대며 시간을 보냈고.

그들의 나라에서.

나는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뭐 어떤가.

집에 돌아가면 나는 김신이 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된장찌개를 끓여주는 아가씨를 아는데.

‘얼른 끝내고 가자.’

대회가 시작되었다.

먼저 링에 오른 것은 WWF의 선수.

백인.

주먹부터가 다부져 보이는 스타일.

실전 경험이 상당한 것 같았다.

[링 뒤에서 나오는 저 개자식을 오늘 내가 조져버릴 테니 기대해라!!]

[Booooooooooooooooooo-!!]

야유를 보내는 관객들.

이 모두가 내 팬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고민하며 서있자니.

빠밤밤-!

로키의 메인 테마가 나왔다.

“어이, 동양인.”

“그렇게 원하던 로키 테마야.”

“잘 어울리는데~! 마스크를 얼굴에 쓰고 있으니 누군지도 잘 모르겠고.”

나를 비웃는 관계자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이내 커튼을 걷고 나섰다.

링으로 나아갔다.

[Waaaaaaaaaaaaaaaggghhh!!]

모두가 나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런 가운데.

바트 맥센이 낄낄 웃었다.

나는 그 심리를 알아차렸다. 동양인인 내가 로키 테마에 입장하니 자신만 아는 유머라고 느끼는 거겠지.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애초부터.

이런 건 딱히 필요 없었다.

나는 얼굴에 쓰고 있던 마스크의 끝을 붙잡고 그대로 주욱 당겨 벗었다.

[Waaaaaaaaaaggghhh……?!]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반대편의 백인 선수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고, 관객들의 환호는 멎었다.

모두가 놀라 날 바라보았다.

시선이 느껴지는 가운데.

퍼시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꽤 하잖아.”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왜냐면.

해설을 맡은 바트 맥센의 표정이 이보다 더 할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일그러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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