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Match 102.
3단 로프 위로 뻗어 나온 거인의 모습은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경외감.
공포.
그리고 신기함.
안드레 더 기간트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링 위에 서있는 그를 동물원 원숭이처럼 보았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Gigant! Gigant! Gigant! Gigant!]
조금씩 나오는 챈트.
보통 공감 받을 수 없는 괴물의 입장에 있는 기간트는 자기 커리어 대부분을 악역으로서 행동해왔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게 좀 아이러니했다.
경기가 시작하고 이미 한참 시간이 지났으나 링 위의 두 선수는 아무런 행동도 않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러던 중.
기간트가 입을 열었다.
“신.”
“…….”
“내 살면서 나보다 더 괴물 취급을 당할 남자가 있을 줄은 몰랐군.”
“내가, 괴물이라고?”
“동양인이 자네처럼 강하고 늠름한 걸 사람들은 못 받아들이는 모양이야. 쿵푸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니까.”
영화 스타이자 무술가기도 했던 브룩 리와 같은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동양인의 스테레오 타입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아 가능했다.
무술로 왜소한 체격을 커버한 남자.
하지만 신은 그와 달랐다.
그는 마스크를 벗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들 당연히 백인이라고 느낄 정도로 큰 체구의 소유자였다.
지금껏 본 적이 없었던 타입.
그렇기에 ‘괴물’로 보이는 거겠지.
“상관없다.”
신은 가볍게 그걸 쳐냈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해보자고.”
“……정말로 덤벼올 셈이군.”
“그야 당연하지.”
짧게 대답한 신이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기간트의 안면에 펀치를 날렸다.
뻐억-!
턱을 노린 한 방.
그리고 그것을 통해, 신은 지금 자신이 버거운 상대를 만났음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일단 ‘위로’ 펀치를 휘두르는 건 상당히 힘을 잃어버리는 짓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말단비대증이란 병을 앓고 있는 기간트의 턱 뼈는 엄청나게 단단했다.
“좋아.”
미소를 짓는 기간트.
그리고.
펀치가 돌아왔다.
꽈앙-!!
순간.
트럭에 치인 듯했다.
명치를 노리고 날아든 펀치를 팔을 들어서 막아낸 신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전혀 충분하지 않았다.
몸이 그대로 뒤로 날았다.
중심을 잃고 나가떨어져 로프에 부딪힌 신은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다.
[Uooooooooooohhhh……?!]
놀라는 관객들.
지금까지의 다른 그 어떤 경기와도 달랐다. 거인 레슬러가 전력을 다해서 내지른 주먹이었다.
그들 모두가 그랬다.
안드레 더 기간트부터 시작해.
베이다.
디 캐스켓-테이커.
기간트 곤잘레스.
빅 죠.
카인.
거인 레슬러는 절대 ‘전력으로 상대를 공격하지 말라’는 지시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는 했다.
일반인의 체격을 넘어선 그들이 실제 자신의 최대 완력을 발휘했다가는 상대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기간트도 전력으로 상대방을 공격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영광(?)의 그 첫 대상이 된 신은 반쯤 죽음마저도 느끼고 있었다.
트럭 정도가 아니었다.
포탄을 배로 받아낸 기분이었다.
“크윽…….”
바닥을 나뒹구는 신.
그 앞에서 가만히 서있던 기간트는 이내 피식 웃으며 핀 폴에 들어갔다.
이걸로 끝이다.
자신의 진심이 담긴 펀치를 맞고 일어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무리 신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영역이다. 기간트와 같은 거인을 상대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1……!]
[2……!]
마지막 카운트가 남은 순간.
팔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린 심판은 계속해서 보고 있던 신의 어깨가 어느새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
놀란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기간트 역시 무언가가 개미처럼 자신의 어깨를 타고 오르는 걸 느꼈다.
바로 신이었다.
링 바닥에 뻗어 있던 그는 어느 샌가 기간트의 등 뒤로 돌아 들어가 그대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팬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닥에 엎드린 기간트는 갑작스러운 신의 공격에 당황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신은 절대 손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목을 졸랐다.
“끄극……!”
기간트가 거인이라고 해도 경동맥이 막히면 순간적으로 힘을 못 쓰는 법.
하지만 그는 동시에 레슬러였다.
힘을 주어 옆으로 구른 기간트는 신을 체중을 실어서 깔아뭉개려 했다.
결국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Waaaaaaaggghhh……!]
야트막한 환호를 보내는 팬들.
그런 가운데, 정신을 차린 신과 기간트가 다시금 대치했고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마침내 폭발했다.
[Waaaaaaaaaaaaaaggghhh!!]
환호를 보내는 팬들.
그리고 다시 맞붙는 두 사람.
괴물과 동양인.
동양인과 괴물.
팬들이 그 누구에게 보내는 환호인지도 불분명한 채 싸움이 이어졌다.
신은 무릎을 노렸다.
거리를 벌리면서 안으로 파고들려는 기간트의 무릎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쩌억!
“그흑!!”
중심을 잃는 기간트.
거대한 키의 유일한 약점.
턱이 내려왔다.
심호흡을 한 신은 그대로 주먹을 당겼다 내지르며 턱을 후려쳤다.
뻐억-!!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어어어-!”
턱을 맞은 상태에서 도리어 신의 몸을 잡고서 들어 올린 기간트는 지면에 내동댕이쳤다.
보디 슬램.
투콰앙!
힘과 높이를 실은 타격.
낙법을 친 신은 순간적으로 등줄기가 타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지만 애써 버텨내고는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다시 붙잡혔다.
이번에는 더 높이 들어 올리는 기간트.
보디 슬램?
아니, 그보다 더 한 게 왔다.
파워 슬램.
투-콰앙-!!
자신의 체중까지 실어 신을 바닥에 처박아버리는 기간트.
[Uoooooooooooooohhhh!!]
핀 폴.
[1……!]
[2……!!]
어깨를 들어 벗어나는 신.
“쿨럭! 쿨럭-!!”
그는 크게 기침을 했다.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기간트의 가공할 파워 슬램에 뇌진탕까지도 왔는지 구역질이 났고 완전히 기절하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상대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신의 머리를 잡고 일으켜 세운 기간트는 그대로 자신의 무릎에 대고 갈아버리며 반대편으로 내던졌다.
코코넛 크래시.
원래대로라면 신이 접수를 하지 않는 상황이니 제대로 기술이 들어가지 않아야 마땅한 상황이었으나.
기간트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는 실전으로 비효율적이고 화려하기만 한 프로레슬링 기술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선수였다.
신은 어린아이처럼 다뤄졌다.
아니, 아예 무게가 없는 비닐 인형처럼 머리가 갈리며 내동댕이쳐졌다.
“끄응…….”
확실히 느꼈다.
규격이 다른 상대였다.
그럼에도 지고 싶지는 않았다.
모두가 적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일까.
신은 다시 일어섰다.
기간트는 그런 그를 보고 웃었다.
“남자로군.”
보통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대부분의 선수들은 포기하는 걸 택했다.
하지만 신은 달랐다.
그 눈빛은 패배가 가까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활로를 찾고자 번뜩였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경기.
신은 일단 물러섰다.
링 아래로 내려간 그는 기간트가 따라오기를 기다리며 심호흡했다.
당연히 기간트도 링 아래로 따라 내려왔고 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 목을 붙잡고 반대편으로 내던졌다.
콰앙!
철제 바리게이트에 부딪히는 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신!!”
누군가 등을 두드렸다.
고통 속에서 뒤를 돌아본 신은 관객 하나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자신의 등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뭘 그렇게 쫄아 있어! 보여줘!!”
“…….”
솔직히 말해 좀 놀랐다.
이곳의 팬들이 자신을 인정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처럼 신을 응원하는 이들은 지극히 소수였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신이 동양인이라는 사실은, GCW의 구린 부킹으로 인해 팬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은 링 위에서의 퍼포먼스를 통해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준 레슬러였고.
거기에 감화되는 존재는 소수라 해도 분명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SHIN! SHIN! SHIN! SHIN!]
작은 응원 소리.
[Gigant! Gigant! Gigant! Gigant! Gigant! Gigant! Gigant! Gigant!]
반대급부로 나온 기간트를 응원하는 소리에 묻혀버렸지만 신은 어쩐지 조금은 기운이 나는 것을 느꼈다.
“후우.”
정신을 집중했다.
가까이 다가오는 기간트.
솔직히 말해서, 단순한 완력 싸움으로 맞붙어 그를 이길 자신은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그걸 위해 이곳을 선택했다.
“기간트! 움직입니다!!”
해설 중인 바트 맥센이 소리쳤다.
곧바로 앞이었다.
바리게이트에 필사적으로 몸을 기대고 있는 신과 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 기간트가 보였다.
그는 의기양양한 상태였다.
신은 기간트라는 괴물 앞에서는 쪽도 쓰지 못했다. 결국 그 역시도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기간트! 그대로 태클……!!”
신이 나 소리치는 바트.
고함을 내지르며 뛰기 시작한 기간트가 바리게이트 앞의 신과 충돌했다.
콰앙-!!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Uoooooooooooooohhhh?!]
팬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게 말이나 돼?’
지켜보던 바트 맥센 역시 경악을 금치 못하며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신은 자리에 서있었다.
숄더 블록을 먹인 기간트와 서로 어깨를 맞부딪힌 채로 꿋꿋이 버텨냈다.
“저 미친……!”
험한 소리마저 나왔다.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
신은 무려 100킬로그램 이상 차이가 나는 상대방이 전력으로 몸을 부딪혀온 것을 자리에 서서 버텨냈다.
미쳤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푸후우.”
하지만 물론.
신이 아무리 힘이 강하더라도 이러한 체중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꾀를 썼다.
“끄윽…….”
기간트의 안색이 질렸다.
그는 당혹감과 분노가 어린 눈동자로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신을 바라보았다.
바트 맥센의 시선에서.
그리고 관객들 대부분이 앉아있는 곳에서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신의 무릎이 기간트의 복부 깊숙한 곳에 꽂혀 있는 상태였다.
도박수였다.
두 다리로 양발을 지탱하는 대신에 하나를 공격에 사용한다는 판단.
하지만 그것은 창이 되었고 안드레도 마지막 순간에 속도를 줄이며 신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버텨냈고.
충격을 선사했다.
“끄윽……!”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는 기간트.
그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아무리 거인이라고 하더라도 단단한 뼈에 의해 보호받지 않는 부위는 당연히 연약할 수밖에 없는 법.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정답이었군.”
“노렸, 나?”
“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보다야 해볼 만하다고 느꼈지.”
“그래, 확실히…….”
기간트가 크게 기침을 했다.
가래에 피가 섞여 나왔다.
신의 무릎 한 방이 내장을 손상시킬 정도로 깊숙이 꽂혔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신 역시도 크게 다쳤다.
그는 버티지 못하고 철제 바리게이트에 기대어 선 채로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기간트에게 타격을 준 만큼, 억지로 버티고 선 무릎에 반동이 돌아왔다.
‘관절이 나갔군.’
중심을 잡고 설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두 사람을 보고 심판인 퍼시가 가까이 다가왔다.
“둘 다 문제라도…….”
“그야 물론이지.”
고개를 끄덕이는 기간트.
“아주 제대로 박혔어.”
일반인이었다면 실신해서 병원에 실려 가는 게 당연할 정도의 타격이었다.
퍼시는 경기를 끝내야만 한다고 느꼈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두 레슬러가 일어섰다.
그리고.
방금 기간트를 멈춰 세운 신의 동작에, 팬들이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Waaaaaaaaaaaaaaaggghhhh!]
[SHIN! SHIN! SHIN! SHIN!]
[Gigant! Gigant! Gigant! Gigant! Gigant! Gigant! Gigant! Gigant!]
만약 두 선수의 안전을 생각해 경기를 끝냈다가는 당장에 폭동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기세였다.
그리고.
신과 기간트 역시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