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17화 (617/634)

Dark Match 103.

뻐억-!

[Uoooooooooooooohhh?!]

신의 킥을 맞은 기간트가 다시 무릎을 꿇자 지켜보던 관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장을 당한 대가는 컸다.

무릎을 보호하려던 기간트는 갑작스러운 복부 킥을 허용하고 말았다.

통증 속에서 신음하는 기간트.

그는 바닥을 엉금엉금 기었고 그 모습은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전의 대회에서 파워풀 딕을 아이언 클로 한 방에 실신시켰던 기간트가 신의 앞에서 맥을 못 추고 있었다.

하지만 신 역시 애써 평정을 가장하고 있을 뿐,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로프에 몸을 기대지 않고서는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방금 당한 무릎이 욱신거리며 통증을 호소했다.

“후우.”

심호흡으로 버텨내고.

로프에 몸을 맡긴 신은 앞으로 나서며 기간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뻐억-!!

바닥을 구르는 기간트.

신도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무너지는 대신, 신은 쓰러진 기간트의 머리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바트 맥센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원하던 그림이 아니었다.

신의 비열한 한 방으로 인해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당장에라도 끝내고 싶었다.

그럼에도.

기간트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는 없었던 바트 맥센은 전전긍긍하며 반격이 이뤄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계속해서 사라졌다.

신이 기간트를 ‘번쩍’ 들어올렸다.

[Uoooooooooooooooooohhhh?!]

놀라는 팬들.

바트 맥센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뒷모습이라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은 바트가 원해 마지않던 ‘미국의 영웅’ 그 자체였다.

평범함을 아주 약간 벗어난.

그렇기에 동경과 동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내가 괴물을 들어 올려 그대로 메치려고 하는 상황이었다.

보디 슬램.

머리 위로 기간트를 거꾸로 들어 올린 신이 지면으로 힘껏 내동댕이쳤다.

투콰앙-!!

[Waaaaaggghhh!]

[Boooooooooo-!]

환호와 야유가 한데 뒤섞였다.

바트 맥센도 그런 기분이었다.

프로레슬링에 미친 인간으로서는 확실히 엄청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너로서는 열이 받았다.

보디 슬램 이후 이어진 핀 폴.

[1……!]

[2……!!]

벗어나는 기간트.

집요하게 무릎과 다친 내장을 노리는 신의 공격에 그는 어떻게든 버티면서 계속 반격할 타이밍을 노렸다.

솔직히 말해, 지금 당장에라도 쓰리 카운트를 내어주고 난 뒤 병원으로 가 진찰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다리 아래에 힘이 풀렸다.

하지만.

스스로 인간을 벗어난 강자임을 어필한 이상 절대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기간트는 절뚝거리는 신의 왼쪽 다리를 잡아 그대로 힘껏 잡아당겼다.

“……?!”

쿠웅-!

무너지는 신.

그대로 관절기에 들어갔다.

“끄흑?!”

이어지는 충격에 신이 발버둥 쳤지만 기간트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우드득-!!

꺾이는 관절.

고통 속에 신음하는 신.

그러던 중.

신은 갑자기 몸을 비틀더니 잡히지 않은 다른 발로 기간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끄흐으윽-!!”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버티던 기간트는 붙잡고 있던 신의 무릎을 놓으면서 그대로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

링 바닥을 굴러 바깥으로 나온 그는 조금은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에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기간트!”

지켜만 보던 바트 맥센이 틈이 생기자 달려 나와 그 상태를 살펴보았다.

“괜찮나?!”

“아직, 할 수 있습니다.”

“제기랄, 이게 무슨 일인가!”

손쉬운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신은 끈질기게 달라붙었으며 결국은 기간트의 약점을 완벽하게 공략했다.

기간트는 고통 속에 숨을 몰아쉬었으며,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바트 맥센 역시 쉽사리 뭐라 하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Uoooooooooooooooohhh?!]

팬들의 비명 소리를 듣고 순간 깜짝 놀란 두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이 더 휘둥그레 뜨였다.

신이 서있었다.

탑 턴버클 위에 아슬아슬하게.

그리고 뒤를 이어.

NWA의 제이미 스누카처럼 그 거체가 그대로 두 사람을 향해 떨어졌다.

신은 약속을 지켰다.

물론, 바트 맥센을 향해 던진 건 기간트가 아니라 본인의 몸이었지만.

어쨌거나.

콰앙-!!

충돌이 이루어졌다.

바닥을 나뒹구는 세 사람.

[Waaaaaaaaaaaggghhh!!]

팬들의 환호가 경기장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를 들은 퍼시 앤 빌이 다시 놀라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신은 듣지 못했다.

“…….”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쓰러진 기간트의 위에 올라타 주먹을 휘둘렀다.

뻐억-!!

턱에 꽂히는 한 방.

저항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기간트는 신의 목을 조르려 들면서 두 사람은 사자처럼 서로를 미친 듯이 물어뜯었다.

[SHIN! SHIN! SHIN! SHIN! SHIN!]

[Gigant! Gigant! Gigant! Gigant!]

커지는 환호.

기간트의 기세가 꺾였다.

목을 조르려던 팔은 신이 안면에 펀치를 꽂아 넣을 때마다 떨어졌다.

신은 흥분해 제대로 앞도 보지 못하고 연이어 기간트의 얼굴을 후려쳤다.

빠악! 뻑!! 퍼억!

손등의 뼈에 금이 갔다.

상대의 얼굴에서 코피가 터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신!”

“그만해!!”

링 안팎에서 튀어나온 대회 관계자들이 신을 붙잡고서는 뜯어말렸다.

[Booooooooooooooo-!]

쏟아지는 야유.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경기 끝내! 끝!! 무효!!”

얼굴에 신의 부츠 자국이 찍힌 채로 일어선 바트 맥센이 서둘러 상황을 정리했고 링 벨이 울려 퍼졌다.

땡땡땡-!!

[Boooooooooooooooooo-!!]

더 커지는 야유.

기간트도 다섯 사람이 말려 신이 겨우 떨어지자 바로 다시 일어선 걸 보면 아직 싸울 여력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경기를 이어나가다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기에, 그렇게 종료가 되었다.

신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경기를 갑작스럽게 끝낸 이 바트 맥센이라는 남자를, 그리고 거기에 동조하고 있는 이 수많은 인간들을.

‘도대체 뭘 하자는 거지?’

“아, 메인이벤트는 과도한 폭력에 따른 무효로 끝났습니다. 찾아주신 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링 아나운서가 상황을 수습하려 들었고 신은 곧바로 링 위로 올라가 그 마이크를 빼앗았다.

[Uooooooooohhh?!]

놀라는 관객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뭐, 뭐야! 저거 당장 말려!!”

물론 잔뜩 흥분한 바트 맥센이 그것을 가만히 놔두려고 할 리 없었지만.

“보스.”

뒤쪽에서 쉬고 있던 기간트가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쯤 해두시죠.”

“뭐?!”

“저 자식은 지금 승리를 빼앗긴 겁니다. 그러니까 뭔가 한마디 하고 싶을 텐데. 그냥 좀 놔두시죠.”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그게 아니면 당장 보스에게 달려들어서 코를 짓뭉개려고 들걸요. 아니면 지금 경기장에서 폭동이 일어나거나.”

“끙…….”

그런 말을 듣자 바트 맥센은 눈썹을 찡그리며 링 위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마이크를 쥔 신을 보고 관객들도 모두 진정하고 하는 말을 일단 들어보자고 생각하는 듯했다.

결국.

한국 출신의 신에게 최초이자 최후의 마이크워크 기회가 주어졌다.

많은 생각을 했다.

많은 것을 봐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곳은 자신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차별을 이겨내기 위해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숙인다 하더라도.

절대로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힘은 얻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떠나기 전.

신은 현재 바트 맥센의 자존심과도 같은 기간트를 박살 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기회마저 빼앗겼다.

그렇다면.

단지 이야기할 뿐이었다.

“언젠가는 그런 일이 있겠지.”

동양권의 발음이 드러나는 영어.

“너희가 아닌 나 같은 놈이 여기 이 역겨운 새끼들을 모두 발라버리고 챔피언이 되는 날이 분명히 올 거다.”

[Uooooooohhh……!]

“퍼시 앤 빌, 바트 맥센. 다 똑같아. 너희는 나와, 여기 있는 관객들을 무시하고 ‘나’를 숨기려고 했지만.”

동양인인 신에게 가면을 씌우고.

그걸 알자 멋대로 배신감을 느끼고.

사실, 여기에 있는 관객들도 별반 다른 것은 아니었지만.

방금 신은 증명해냈다.

동양인도 환호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충분히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바트의 얼굴이 더 구겨졌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았다. 오직 신에게 느낀 배신감만이 그를 이곳까지 이끌었다.

“그래도 분명, 언제가 됐든.”

동양인 월드 챔피언.

시대의 아이콘.

그런 남자가 북미 프로레슬링 업계를 지배하는 날이 올 것이다.

신은 링 아래를 돌아보았다.

바트 맥센은 분노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고 기간트는 피식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울 뿐이었다.

링에서 퇴장하는 신.

한 프로레슬러의 은퇴였고.

그 광경에 관객들은 숙연해졌다.

인종차별.

이 시대에 분명히 있는 것.

하지만 거기에 대해 지적을 당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따라서 관객들은 인간이 언제나 그렇듯이 이 사건을 금방 지워버렸다.

자신은 이 부끄러운 차별에 해당되는 사람이 아니며, 곧 그런 프로레슬러가 있다는 사실도 잊고 말았다.

그게 인간이었다.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

기간트가 발린 비디오의 판매가 이루어질 리도 없어서 영상은 폐기가 되었고, 그렇게 반년 남짓한 시간 동안 활동한 레슬러는 금방 지워졌다.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뻔’했다.

“신!!”

바트 맥센은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도 못한 채 백스테이지로 돌아간 신을 쫓아갔다.

“동양인이 월드 챔피언이 되는 날이 올 거라고?! 분명히 그럴 수 있겠지!”

그는 조롱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아니야! 프로레슬링은 백인의 스포츠니까! 나는 단지 시장의 논리에 따를 뿐이라고!!”

“…….”

“너는 분명 훌륭한 실력을 갖고 있지! 정말 대단한 놈이야! 솔직히 말하면 날 속이지만 않았어도 당장에 너를 WWF로 영입했을 거다!”

“…….”

“뭐라도 좀 말해보시지?!”

“아니.”

신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네놈이 이야기하는 개소리를 더 들어줄 시간은 없다.”

그러더니 뚜벅뚜벅 걸어갔다.

사라져 가는 그.

넓은 등짝을 멍하니 바라보던 바트 맥센은 이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시를 당했다.

그가 가장 참을 수 없는 두 가지.

무시를 당하고.

속는 것.

신은 그 두 가지를 어겼다.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미래.

바트 맥센은 한 레슬러와 함께 레스토랑을 찾았다 출입거부를 당하자,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오히려 같이 온 레슬러에게 테이크다운을 걸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는 자기 자신의 감정을 이런 식으로밖에 표현할 줄 모르는 남자였다.

신에게 무시당한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바로 세우기 위해, 바트 맥센은 단숨에 다가가 그 뒤를 덮쳤다.

하지만 물론 신은 당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뒤를 돌아본 신은 달려드는 바트의 힘을 이용해 그 턱에 힘껏 자신의 무릎을 꽂아 넣었다.

이후, ‘스팅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기술이었다.

쩌억-!!

“끄윽……!”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바트.

실신한 그 앞에서 가만히 서있던 신은 아무런 미련 없이 뒤로 돌아섰다.

SHIN.

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만 프로레슬러.

이후 ‘캡틴 로건’이라는 기라성 같은 스타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프로레슬링의 ‘황금시대’가 찾아오게 되고.

그 이후 그렉 하트의 ‘신(新) 시대’와 락콜드 스티비 스틴의 ‘태도 불량 시대’에 이르는 동안.

그를 기억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틀림없이 맞았다.

숀 시나의 ‘전체 이용가 시대’.

그 뒤를 이어 동양인 아이콘이 자신이 꿈꿔왔던 프로레슬러의 정점에 이르게 되면서.

‘꿈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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