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Day 1.
프로레슬링은 단지 고통의 전시이자 그걸 보고 즐기는 포르노가 아닌가.
그런 의견도 있다.
합을 맞추는 스포츠이자 쇼는 지극히 비합리적이었고, 언제나 크나큰 부상의 위협을 안고 있었으니까.
특히나 현대에 이르러 프로레슬링에 대중성이라는 옷이 입혀진 상황에서도 그 흔적은 남아 있는 상태였다.
정수리부터 수직으로 떨어지는 안티크라이스트부터 시작해 온갖 기술이 신체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이 대중성 이전에 프로레슬링은 정말 고문 포르노라고 하더라도 별로 할 말이 없을 정도의 수위를 자랑했다.
압정 위에 떨어지고.
철제의자로 사람의 머리를 치고.
사다리 위에서 몸을 던지고.
그뿐이랴.
6미터 아래로 추락.
불타는 링 위에서의 혈투.
그게 포르노가 아니면 무엇인가.
나도 가끔 그렇게 생각했다.
프로레슬링은 결국 고통의 전시이며 사람들은 우리가 서로를 죽이는 모습을 보기 위해 링을 찾는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뭐 어떤가.
‘포르노 배우라고 해도.’
어차피 나는 그런 존재다.
전 세계의 모두가 내 근육질의 몸을 보고 해피 타임을 가지고 있을 텐데.
“안 그렇습니까?”
“……?”
내 물음에 크로우는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크로우.
흰색 바탕에 검은색 라인이 더해진 페이스 페인팅.
검은 기사이자, 프로레슬링 업계의 전설적인 남자 중 하나.
그리고 이제는 선수보다는 매니저로서 더 깊게 활동하고 있는 남자였다.
190에 달하는 키와 멋진 외모.
하지만 50대에 다다르면서 수도 없이 많은 범프를 수행한 끝에 선수로서는 거의 끝물에 이른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로레슬러가 굳이 경기만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느냐면 그건 아니었다.
매니저.
그는 현재 선수인 동시에 누군가를 이끄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녀석이 많이 늦는군.”
“얼굴에 뭘 펴 발라야 하니 준비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더 필요하겠죠.”
“나는?”
“그쪽은 익숙하잖아요.”
“그 친구는 반만 바르는데.”
“몸에도 바르잖아요.”
“하하, 맞는 말이군. 그럼 아까 얘기로 돌아가서.”
크로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포르노라고?”
“예, 안 그렇습니까? 저 이번에 플레이걸에서 화보 제안도 왔다고요.”
“거절했나?”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기는 했지만, 신혼이라 꺼지라고 했죠.”
“허니문 베이비라면서.”
“예?”
“티파니 본인이 그러던데.”
“크흠, 사실 아마 그전에.”
“허허.”
“이 자식, 왜 안 와.”
나는 순간 당황해서 복도 쪽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깡 좋게도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크로우는 기회를 잡았다고 느꼈는지 나를 계속해서 놀려대기 시작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라.”
“…….”
“링 위의 마피아이자 업계의 지배자에게도 그런 날이 오고야 마는군.”
“그러게요.”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그런 날이 오는 법이었다.
한 번의 죽음으로부터 돌아와.
나는 내 삶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이었다.
“신!”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
돌아보자 인 이어 마이크를 착용한 직원이 내게 수신호를 보냈다.
3, 2, 1.
‘뭐야?’
계획이 변했나.
그 친구와 링 위에 오르기 전에 이야기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어쨌든, 나는 어개에 ACW 월드 타이틀을 걸치고 나갈 준비를 했다.
검은색 셔츠와 바지.
일부러 이렇게 준비했다.
영미권에서 검은 옷을 입고 돌아온다는 말은, ‘성공’을 이뤘음을 뜻했다.
좋아.
“Back In Black, Baby.”
“BBB로군.”
“저는 SSS급이지만요.”
크로우의 말을 받아치고.
나는 그 노래를 들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Waaaaaaaaaaaaaaaaggghhh!!]
둔중한 북 소리에.
관객들의 떼창이 겹쳤다.
이 노래에는 환호가 있다.
나는 링으로 나섰다.
불꽃과 연기.
푸화악-!!
ACW.
Mother-Freakin’.
Nitro.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약 두 달 간의 휴식.
그걸 끝마치고 돌아온 나는 브룩 레스너를 쓰러뜨리고 당당히 챔피언으로 링에 나타났다.
멋진 공기였다.
연기와 불꽃.
‘암 걸리기 딱 좋군.’
입장로를 지나.
손을 뻗어오는 팬들에게 눈빛을 보내며 링에 오른 나는 머리 위로 벨트를 들어 올리며 힘껏 소리쳤다.
“Who Is Best-?!”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좋아.
내가 최고지.
그런 마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난 복귀의 감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돌아오니 좋군.”
[Yeeeeeeeaaahhh!!]
“멋진 여행이었어. 하도 술을 마시고 즐겁게 놀았더니 여기 복근이 조금 빠졌지만. 그래도 아직 쓸 만하지?”
[Yes! Yes! Yes! Yes! Yes!]
“언젠가 내 자서전에 이렇게 쓰이겠지. ‘챔피언은 그 권리로 정당히 휴식하고 이제 여기 ACW의 멍청이들을 박살 내기 위해서 돌아왔도다.’”
[Waaaaaaaaaaaaaaaaggghhh!!]
“내가 없는 사이에…….”
바로 그때였다.
육중한 베이스 소리.
[Uoooooooooooooooooohhh!]
팬들이 경악했고.
한 ‘소년’이 링으로 나왔다.
그 뒤에 있는 건 크로우.
‘다비 알렌’.
얼굴의 좌측 반에 해골 형태의 페이스 페인팅을 한 그는 173cm에 80kg의 아주 왜소한 체격이었다.
근육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재 ACW에서 가장 핫한 신인.
나는 그를 이렇게 평가하고 싶다.
Porno Actor.
동시에.
‘Suicide Boy’.
크로우를 매니저로 삼아 나온 다비는 들고 있던 스케이트보드를 내려놓고 그대로 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까지 와서.
내 앞에 섰다.
머리통 하나 차이.
나는 웃으며 말했다.
“수어사이드 보이.”
[Waaaaaaaaaaaaaaggghhh!!]
“정말로 묫자리를 찾아 나왔군.”
“…….”
침묵하며 서있던 놈은 이윽고 내 무릎 아래를 걷어차며 공격을 시작했다.
퍼억!
“윽?!”
순간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엔지기리.
쩌억-!
순간적으로 내가 나가떨어지자 다비는 그대로 탑 턴 버클 위로 올라갔다.
[Uooooooooooooooooooohhh!!]
그가 왜 날 공격하는지.
그런 이유는 필요 없었다.
다비는 왜소한 체격으로 업계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아무도 그 관심을 가지지 않는 남자였다.
하지만.
자신의 어떤 한 부분을 통해 단숨에 팬들의 큰 존경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건 바로.
몸을 사리지 않는 과격한 범프.
탑 턴 버클 위의 다비.
그는 내게서 등을 돌린 채.
관짝에 떨어지는 사람처럼 가슴 위로 양손을 모으고 그대로 떨어졌다.
탑 로프 다이빙 센톤.
‘커핀 드롭’.
그리고 나는 벌떡 일어섰다.
캐스켓-테이커의 싯 업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앉자 다비는 그대로 링 바닥에 정면으로 떨어졌다.
오폭.
투콰앙-!!
‘소리 엄청나군.’
다비가 아무리 멋진 신인이라고 해도 신인은 신인. 그리고 나는 업계의 최전선을 이끄는 챔피언이었다.
슬쩍 일어선 나는 링 바깥에 서있는 크로우를 보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대로 다비를 일으켜 세웠다.
잠시 고민.
[Waaaaaaaaaaaaggghhh!!]
환호하는 팬들.
하지만 나는 괴로워하는 다비를 그대로 놓고는 링 아래로 내려갔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 선수다.
[Uooooooooooooohhhh!!]
대신 나는 크로우에게로 다가갔다.
다비의 매니저 역할을 맡았지만, 사실 매니저보다는 스승에 가까웠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크로우라면 몰라도 다비는 아니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
“저 새끼 뭐야?”
“다비 알렌.”
“다비고 도비고 나발이고.”
나는 혀를 찼다.
“증명을 해야지. 다짜고짜 갈겨대면 어느 누가 인정을 해주겠어?”
벨트를 높이 들었다.
[Uooooooooooooooooohhh!!]
순간 눈썹을 찡그리는 크로우.
그라면 몰라도.
다비 알렌은 아니다.
그렇게 확실히 메시지를 전한 나는 그대로 손가락을 튕기며 퇴장했다.
내 테마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 *
쇼가 막을 내린 뒤.
다비는 곧바로 나를 찾아왔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야, 뭐가. 너 혼자 다 했구먼.”
“신이라는 선수에게 킥을 날린 것만 해도 정말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제 시작이야. 다비.”
나는 그 어깨를 툭 두드렸다.
“잘 해보자고.”
“옙!”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다비.
일을 끝마친 나는 그를 놔두고 락커룸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남자와 만났다.
“여행은 좀 어땠어?”
러셀 오메가.
금발을 하나로 묶은 녀석과 함께 나는 호텔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Home, Sweet Home.”
“집이 좋지.”
“다비 녀석도 생각보다 반응이 좋게 나와서 앞으로 재미있을 것 같아.”
“그럴 줄은 몰랐는데.”
“그래?”
“응, 솔직히 다비가 저 정도의 인기를 얻을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어.”
러셀은 쓰게 웃었다.
“그리고 솔직히 걱정이고.”
“왜?”
“죽을까 봐.”
“죽겠지.”
“……그런가?”
“그리고 그런 순간이 오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업계의 몫이고.”
나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분명히 그랬다.
다비의 스타일은 너무나 위험했다.
아까 그 커핀 드롭도.
일부러 오폭할 정도의 깡다구를 지닌 녀석이 없어서 다비가 돋보이기는 했으나, 너무나도 위험한 기술이었다.
상상해보라.
수 미터 아래로 등부터 떨어진다.
딱히 무브도 없이 몸만 던지는 거다. 말 그대로 관짝에 몸을 내던지는 듯한 기술이 커핀 드롭이었다.
“러셀 너도 알겠지만.”
“음.”
“우리는 각자가 가진 무기로 싸워야 하는 거야. 키 173에 체중 80인 남자의 무기는 그 깡다구인 거지.”
“그걸 버리면 다비는 뭐가 될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꼬마겠지.”
러셀이 쓰게 웃었다.
다비는 입장 때도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나왔다. 그게 바로 녀석이 가진 선수로서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외에는?
거기서 범프를 뺀다면 뭐가 남을까.
해골 페이스 페인팅?
마른 체격?
그럼 대체 누가 선수로 인정할까.
“그러니 뺄 수는 없잖아.”
“맞는 말이긴 한데…….”
말끝을 흐리는 러셀.
거기에서 내가 다시 말했다.
“재미있지 않아?”
“뭐가?”
“업계의 흐름이.”
지금 프로레슬링 업계는 WWF와 그 반대편의 ACW, 마지막으로 그 사이의 PWA가 경쟁하고 협력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말하자면 흥미롭게도.
각각의 단체가 개성을 갖고 있었다.
그건 특히나 ACW와 WWF에서 두드러졌다.
나는 스스로 느낀 두 단체의 차이점을 러셀에게 설명했다.
“포르노와 코믹북이지.”
“우리가 포르노로군.”
“그래. 어디 사이트에 게이 포르노라든가 그런 거 보면 우리 영상이 짜깁기해서 올라오는 거 알고 있냐?”
“……굳이 알고 싶지 않았어.”
“좋아. 나만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게 아니니까 그걸로 족해.”
폭력은 섹스와 맞닿아 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ACW는 보다 더 폭력성을 추구하는 편이었고.
반대로 WWF는 여전히 가족 지향적인 드라마를 추구했다.
그래서 선수층도 갈렸다.
WWF는 기술이 좀 부족해도 덩치가 크고 힘이 강한 선수 위주로 뽑았다면.
“ACW는 깡이 있어야지.”
그래서 다비가 흥미로웠고, 내가 직접 짧은 대립을 요청했다.
그러자니 러셀이 물었다.
“그럼 너는?”
“나?”
“너는 포르노야, 코믹북이야?”
“가족 포르노.”
“……농담 좀 적당히 하고.”
“푸하하! 알잖아. 러셀.”
나는 그 모두를 아울렀다.
아무튼 어느 쪽을 연기하게 되었든, 이 업계에 들어온 선수는 결국 하나의 목표를 가지기 마련이었다.
자신의 꿈.
이 업계에서 이루고 싶은 꿈.
죽음을 각오하고 덤벼드는 다비 알렌이 결국에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 답은 간단했다.
“링 위에서 죽고 싶겠지.”
왜냐고?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