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20화 (620/634)

Father’s Day 2.

포르노와 코믹북.

다르게 말하자면.

인디 감성과 메이저 감성.

그쯤?

하지만 마냥 그렇게 볼 수도 없다.

옛날 같았으면 그런 식으로 말했겠지만, 현재는 시청 계층이 차이가 난다는 표현으로 요약이 가능했다.

프로레슬링은 다시 핫해졌다.

10대에서 20대 청년들은 보다 하드코어한 ACW를 주로 보았으며, 반대로 가족 시청자들은 WWF를 챙겨 봤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상대 단체의 쇼를 보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었다.

내 영혼을 지켜주는 티파니 맥센이 WWF의 회장이 된 이후로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예를 들자면.

랜스 오튼이 ACW에서는 하드코어한 범프를 하고 좀 더 잔인한 모습을 보인다던가.

러셀 오메가가 WWF로 가면 그런 면이 살짝 지워지는 식이었다.

그러므로 나도 다비 알렌과의 대립에선 좀 몸을 험하게 쓸 생각이었다.

그럴 각오를 해두었는데.

다비는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었다.

쇼가 시작하기 전.

나는 앞서 다비와 만나서 오늘 링 세그먼트를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두었다.

다비가 내 신경을 살살 긁다가 결국에는 열이 받은 내가 녀석을 박살 낸다는, 뭐 대충 그런 세그먼트인데.

이럴 줄은 몰랐다.

‘정말 몰랐지.’

나는 순간 숨을 삼켰다.

다비 알렌.

링으로 나와 나를 제대로 열 받게 만든 이 꼬마는 자신이 어떤 남자인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나는 놈의 팔을 잡아 코너 쪽으로 던졌다. 왜소한 체구의 다비는 그대로 날아가 기둥에 처박혔다.

까강-!

턴버클과 턴버클 사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가로로 내던져진 다비는 기둥에 등부터 부딪히고는 그대로 링 바깥으로 떨어졌다.

[Uoooooooooooooooooohhh!]

TV로 보기는 했는데.

확실히 엄청난 박력이었다.

고통스러워하는 다비.

언더독과 하드코어 스타일.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표정을 굳힌 채 링 아래로 내려갔고 쓰러져 있던 다비를 일으켜 세워 그대로 주먹질을 해댔다.

뻐억!

보다 잔혹하게.

빠악!

보다 강하게.

[Waaaaaaaaaaaaaggghhh!!]

팬들이 환호를 보냈고 나는 뒤로 물러나 전매특허 기술을 준비했다.

슈퍼 킥.

하지만 비틀거리며 쓰러지려던 다비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 링 위로 올라갔고 반대편 로프로 달려갔다.

로프 반동.

[Uooooooooooooooohhh!!]

이어지는 수어사이드 다이브.

하지만 나는 몸을 내던지는 다비를 붙잡고 그대로 뽑아들었다.

등과 허리의 힘을 써서 들어 올리고는 그대로 딱딱한 링 에이프런에 놈을 내동댕이쳤다.

콰앙-!!

“그하악!!”

고통에 몸부림치는 다비.

다시금 링 아래로 떨어진 놈을 마구 짓밟아대던 나는 이내 등 뒤에 서있던 크로우를 사납게 돌아보았다.

이런 와중에도 나는 다비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아직까지 내 상대가 될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현재 크로우가 함께하며 다비는 팬들의 큰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비와 나는 다가오는 7월의 페이퍼뷰에서 맞붙을 예정이었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치 않겠지만.

그래도 내가 다비의 도발에 넘어가 공격했다는 점을 보면 저번 주보다 나름대로 발전이 있는 셈이었다.

‘나쁘지 않군.’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크로우를 바라보다 그대로 백스테이지로 퇴장했다.

* * *

다비 알렌은 대립이 거듭될수록 자신이 얼마나 큰 행운을 겪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

과거, 세미 프로 스케이트보더였던 그는 자신의 음울한 과거를 캐릭터로 만들어 결국 ACW와 계약을 따냈다.

팬들은 처음에 그를 인정하지 않았고 야유를 보냈으나, 단 한 번의 경기로 많은 것이 변화했다.

그야말로 자신의 몸 전체를 사리지 않는 경기 스타일에 팬들은 크게 열광했으며 깊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신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페이퍼뷰 경기까지 2주.

그날 다비는 평소와 달리 직접 링에 올라 마이크워크를 진행했다.

그는 짧은 경력에다가 마이크워크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 계속해서 크로우의 도움을 받아왔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신이 ‘말도 안 된다’며 일축해줘서 오늘은 특별히 마이크워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할 말은.

사실 이 시애틀 출신 젊은 청년의 진심이 담긴 이야기였다.

“잠깐만요. 크로우.”

[Uooooooooooohhh……!]

“할 말이 있습니다.”

평소 말이 없었던 다비가 그렇게 먼저 할 말이 있다면서 나서자 관객들은 큰 흥미를 보였다.

다비는 숨을 삼켰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진심을 전해나갔다.

“신, 나는 당신을 보고 레슬링에 빠져들었어. 내 음울했던 삶에서 당신의 투쟁은 유일한 희망이었지.”

[Darbie! Darbie! Darbie! Darbie!]

“그렇기에 내가 이곳에 들어오고 당신과 만나는 그날만을 기다려왔지. 그리고 드디어 때가 왔다 싶었는데.”

신은 자신을 상대로도 보지 않았다.

“그럼 이렇게밖에 할 말이 없군.”

다비는 입장로를 돌아보았다.

“내가 할 말이 있으니 그 무거운 궁둥짝 들고 당장 여기로 나와!”

[Yeeeeeeeeeeeeaaahhh!!]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챈트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음악.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다비 알렌은 심장 소리를 들었다.

[Waaaaaaaaaaaaaaaaaggghhh!!]

휘몰아치는 연기와 불꽃.

그 가운데에서 나타난 그는 마치 과거 캐스켓-테이커라는 사내가 이러했을까 싶을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어깨의 챔피언 벨트.

검은 가죽 재킷에 선글라스를 쓴 그는 등장만으로도 경기장 전체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 정도였다.

다비는 느꼈다.

‘이게 아이콘.’

한 시대의 상징.

그리고.

프로레슬링의 정점.

링으로 올라온 신은 그대로 다비를 지나쳐 미들 로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쏟아지는 환호 속에서 돌아서서는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다비 알렌.”

그 얼굴에 귀찮음에서 비롯된 피로감이 스쳤다.

거기에 다비는 투쟁심을 느꼈다.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나와주기는 했는데. 사실 네가 아니라 네 옆의 전설 때문에 나왔다고 봐도 좋아.”

또 다시.

신은 크로우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예우를 갖췄다.

“저 남자가 아니었다면 넌 아무것도 아니지. 나와 링 위에서 마주보고 있을 깜냥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야.”

[Yeeeeeeeeeeeeeaaahhh!!]

“오, 좋아. 피츠버그. 너희가 크로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느껴지는군.”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Crow!]

다시 이어지는 챈트.

이 남자는 관객을 가지고 놀았고, 전설적인 선배마저 당황하게 만들었다.

신은 그런 남자였다.

“그래서 다비, 웬만하면 관객석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싶은데.”

보다 못한 크로우가 나서려던 그때.

다비는 먼저 입을 열었다.

“나에게도 무기는 있지.”

바로 이 몸.

“당신에게 도전하고 싶다. 다가오는 올 인에서.”

“…….”

“당신은 분명히 크로우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는데. 아니라고 답하지.”

왜냐면.

실제로도 다비 알렌에게 크로우라는 매니저가 붙은 것은 그가 스스로의 상품성을 증명해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신 역시 그의 상품성을 높게 쳐서 돌아온 직후의 짧은 대립 상대로서 다비를 점찍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그렇게 해야만 이 선수에게 차근차근 성장할 발판이 마련된다는 것과.

다른 단체와 계약이 끝나서 ‘이쪽’으로 돌아오는 ‘형제’를 적절한 타이밍에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하나.

다비 알렌 스스로가 신의 상대가 될 만한 남자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키 173센티미터.

온리 하드코어.

걸 것이라고는 단 하나.

“당신이 그 타이틀을 건다면.”

[Uoooooooooooooohhh!!]

“난 내 목숨을 걸지.”

타이틀은 물론이고 커리어조차 없는 다비 알렌으로서 가장 큰 한마디.

관객석이 술렁거렸다.

신은 미소를 지었다.

진심을 담아, TV쇼에 데뷔한 지 이제 고작해야 두 달이 지난 청년이 가진 재능을 마음속으로 칭찬했다.

몸이 부족하다.

키도 작다.

그럼에도 이 남자는 세상을 술렁이게 만들 수 있는 재능을 지녔다.

그래야겠다는 간절함이 보였다.

“좋아, 다비 알렌.”

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Challenge Accepted.”

그리고 슈퍼 킥을 날렸다.

쩌억!!

[Uoooooooooooooooooohhh?!]

순간 놀라는 관객들.

오랜만에 터진 슈퍼 킥은 다비 알렌의 가벼운 몸을 뒤로 넘어뜨리는 동시에 링 반대편으로 날려버렸다.

다소 오버 셀링.

하지만 신은 만족했다.

신인인 다비 알렌과의 경기.

사실, 그 ‘형제’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 달을 때우기 위한 대립이었지만.

느낌이 좋았다.

분명히 서로 이득이 있을 터였다.

* * *

다비 알렌의 하드코어함은 경기 중에서 그 진가가 드러났다.

[신이 다비의 스케이트보드를 듭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아아앗-!!]

콰앙!

[Uooooooooooooooooohhhh!]

스케이트보드 샷.

다비 알렌은 등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그 마른 등짝이 붉게 달아올랐다.

7월 말의 올 인.

당당히 메인이벤트를 꿰찬 신 VS 다비 알렌의 경기는 하드코어 조항이 추가된 챔피언십 매치였다.

신은 시작부터 내내 다비 알렌을 압도했고 단 한 번도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으면서 경기를 이끌어나갔다.

링 아래에 다비의 매니저로 나온 크로우의 안색은 딱히 변함이 없었다.

어쨌든 다비는 일어설 테니까.

그 말처럼 다비 알렌은 핀 폴을 벗어났고 신은 숨을 몰아쉬며 잠시 로프에 기대어 서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거기에서.

신이 아주 살짝, 다비 알렌을 얕잡아본 순간부터 반격이 이루어졌다.

경기의 중반을 넘어가는 시점.

[다비가 빠져나갑니다!]

[베이스볼 드롭킥!]

무릎을 노린 킥에 신이 휘청거렸다.

다비 알렌은 이후로 신의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 로프 반동 후 찹 블록으로 무릎 뒤쪽을 힘껏 후려쳤다.

소인이 거인을 상대하는 방식.

물론 신은 거인 레슬러가 아니다.

평균보다는 큰 키였지만 적당히 보기 좋은 정도였고, 자이언트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다비 알렌은 상대가 그 누구더라도 대부분 이런 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신은 다비의 스피드에 꽉 쥐고 있던 주도권을 놓았고, 그때부터는 하드코어의 시간이 찾아왔다.

다비는 몸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마치 무기처럼 활용해서 상대방을 공격해나갔다.

신의 팔을 잡고 높이 뛰어올라, 로프를 밟고 다시 힘껏 뛰어올랐다.

그리고 내동댕이쳤다.

일종의 암 드래그에 가까운 기술.

하지만 체중이 적게 나가는 다비에게는 이런 방식이 필요한 법이었다.

결국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신은 링 바깥으로 나갔고 다비는 몇 번의 수어사이드 다이브를 거치며 점점 자신이 리드를 하는 이유를 보여주었다.

그는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탑 턴 버클 위로 올라간 다비 알렌은 링 바깥으로 그 몸을 던졌다.

[커핀 드롭-!!]

[아, 신이 그대로……!]

[Uooooooooooooohhhh?!]

쩌억-!

팬들도 순간 당황했다.

링 바깥으로 등부터 그대로 내던지는 커핀 드롭. 하지만 신이 그걸 피한 탓에 다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끄으윽……!]

비명과 함께 바닥을 굴러다니는 다비.

그리고 순간, 그 옆에 주저앉은 신의 표정이 카메라에 담겼다.

경악, 당혹, 그리고 몰이해.

다비 알렌이라는 남자가 가진 매력을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셀링이었다.

“죽여주네.”

콘비프에 치즈를 곁들여 먹으며 쇼를 지켜보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봐, 잭!”

답은 멀리서 들려왔다.

“왜-!”

“저기 너 닮은 놈 나온다!”

다비 알렌은 여성, 특히 어린 여성들로부터 인기가 많았고 몸을 가리지 않는 범프를 사용해 자신을 채웠다.

그는 자신의 동생도 전성기 시절에 저런 느낌이었다고 문득 회고했다.

“그렇지? 릴리안.”

옆을 돌아보며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고, 그는 계속해서 콘비프를 퍼먹으면서 동생을 기다렸다.

지하에서 기타를 치던 동생이 올라왔고, 형의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형.”

“응?”

“그거 기믹이잖아.”

“그런가? 오, 인사해. 여기는 내 새로운 친구인 릴리안이라고.”

“그 금붕어가?”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형, 맥 하디.

동생, 잭 하디는 최근 들어서 쇼가 끝난 이후로도 괴상한 기믹을 계속 고수하고 있는 형에게 묘한 환멸감을 느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누가 날 닮았다는 건데.”

TV 속에서는 경기가 계속 이어졌다.

[커핀 드롭-!!]

콰앙-!!

결국 들어가고야 말았다.

다비 알렌의 몸이 신의 등 위로 떨어졌고, 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걸 본 잭 하디는 딱히 더 말하지 않아도 형이 누구를 보고 자신 같다고 하는지 대충 알아차렸다.

“Wonderful-!”

신나서 외치는 맥 하디.

수염에 붙은 치즈와.

콘비프 통조림.

생으로.

이제 다음 주면 ACW로 복귀할 형이 저러는 모습에 잭 하디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