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21화 (621/634)

Father’s Day 3.

경기 종반부에 다다르자 다비 알렌의 몸은 누가 보더라도 확연히 망가졌다 싶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피부는 벌겋게 달아올랐고 몸과 얼굴의 페인팅은 지워졌으며 눈빛은 흐리멍덩한 기색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일어섰다.

[Darbie! Darbie! Darbie! Darbie! Darbie! Darbie! Darbie! Darbie!]

팬들도 마침내 다비를 인정했다.

아, 물론.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내게 쏟아지는 챈트는 그것보다 훨씬 더 거대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다비 보이가 나와 맞서서 어느 정도 팬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갔다.

아까 커핀 드롭을 등으로 받아낸 덕인지 욱신거렸다. 거기다 뒷목도 뻐근한 게 어딘가 좀 이상했다.

경기를 끝내야 할 때.

나는 다비에게 다가가 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슬슬 현실이 느껴지시나?”

“……Never.”

다비는 퀭한 눈으로 말했다.

“꿈속을 걷는 기분이야.”

“계속해서 걷게 해주지.”

나는 허리를 힘껏 뒤로 젖혔다.

그리고 이어지는 헤드벗.

쩌억-!!

중심을 잃고 나가떨어진 다비는 다시 일어서려다가 추욱 늘어졌다.

내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저먼 수플렉스.

투콰앙-!!

[Waaaaaaaaaaaaaaggghhh!!]

핀 폴.

2에서 벗어나는 다비.

일어서려는 그에게 슈퍼 킥.

쫘악-!

커버.

1, 2.

벗어나는 다비.

이어지는 공격 속에서도 놈은 끈질기게 버텨냈다. 관객들은 그런 다비의 모습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녀석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걸’ 써라.

[Anti-Christ-!]

짝! 짝! 짝짝짝!

[Anti-Christ-!]

짝! 짝! 짝짝짝!

[Anti-Christ-!]

짝! 짝! 짝짝짝!

팬들도 이야기했다.

‘그걸’ 쓰라고.

하지만 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걸’ 써주기를 원한다면.

‘난 그렇게 하는 인간이 아니지.’

그러므로 할 일은 간단했다.

“이봐, 다비 보이.”

“……끄윽.”

“내가 AC를 쓰길 원한다면, 다음에는 ‘죽을’ 각오가 아니라 ‘죽일’ 각오로 덤비는 게 좋아.”

짧게 충고(?)를 건넨 나는 직후 다비의 다리를 붙잡고 기술을 시전했다.

샤프 슈터.

우드득-!!

“끄하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는 다비.

그 얄팍한 허리가 뒤로 꺾였고 나는 기마 자세를 취한 채로 힘을 주었다.

하지만 다비는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이를 악물고 로프를 향해서 다가가고자 했다.

결착이 난 것은 내가 다비의 허리를 한층 더 강하게 꺾은 순간이었다.

[Uooooooooooooooooooohhh?!]

링 아래에서 올라온 크로우가 내 안면을 힘껏 후려쳤다. 그 광경을 본 심판이 DQ로 경기 종료를 알렸다.

땡땡땡-!

울려 퍼지는 링 벨.

순간 샤프 슈터를 풀며 뒤쪽으로 나뒹군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크로우에게 반격하기 위해서 일어섰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크로우는 날 계속해서 공격하는 대신 다비의 상태를 살폈고, 나도 거기에서 대응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는 이 경기를 끝내기 위해 난입했을 뿐, 그 외의 생각은 없었다.

이어서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일어서자 크로우가 가까이 다가왔다.

[Uooooooooooohhhh……!]

순간 긴장하는 관객들.

하지만 이미 내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오는 것은.

악수였다.

“미안하네. 승자.”

“타월이라도 던지시지 그러셨어요.”

나는 씨익 웃으며 그 악수를 받았고 상황을 파악한 팬들이 박수를 보냈다.

그 후, 다비는 끝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결국 크로우가 어깨에 들쳐 메고 그대로 퇴장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음악과 챈트 속.

나는 심판에게서 ACW 월드 타이틀을 받아 곧장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터져 오르는 폭죽.

[W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의 환호.

복귀전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 * *

올 인이 끝난 뒤.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나는 데릭 비숍을 비롯한 사람들의 축하와 감사를 들으며 함께 쇼의 성공을 축하했다.

“멋지군! 다비는 이제 스타야!”

“자네는 최고의 챔피언일세!”

뭐, 그런 뻔한 이야기들.

“다비가 잘 해줬죠. 저 자식, 물건입니다. 앞으로 귀중하게 쓰십쇼.”

거기에 웃으며 대답했다.

방금 발언은 가볍게 넘길 만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면 데릭 비숍은 다비를 탐탁찮게 봤기 때문이었다.

그 반대편에서 크로우나 러셀이 밀어주라고 이야기한데다 나까지 껴서 이런 부킹이 가능했던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 170센티미터의 꼬마는 절대로 ACW에서 이 정도의 역할을 맡기 어려웠을 터였다.

그렇기에 나는 일부러 다비를 칭찬하면서 비숍에게 살짝 압박을 넣었다.

앞으로 그가 다비라고 하는 사내를 얕보지 못하도록 가볍게 말이다.

그리고 락커룸으로 돌아가자 얼음을 등에 대고 찜질을 하던 다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맞이했다.

“신.”

“고생 많았다. 다비.”

“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짜식, 오늘 죽어라 구른 건 너잖아. 지금 이 기분을 마음껏 즐기라고.”

씨익 웃은 나는 다비의 등에 일부러 얼음을 대서 찜질을 슬쩍 도와줬다.

마르고 앙상한 등.

하지만 프로레슬러였다.

그렇게 다비를 격려해주던 나는 약속이 하나 있음을 떠올리고는 락커룸을 나와 반대편 복도로 걸어갔다.

감정을 정돈하기 위해서 일부러 다비와는 정반대편의 락커룸을 썼다.

“신, 멋졌어요.”

“고맙다. 코디.”

“오늘 제 경기 보셨죠?”

“봤지. 그거에 관해서 내가 할 말이 하나 있는데, 나중에 이야기하자.”

가는 길에 또 만난 선수들과 가볍게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락커룸에 도착한 나는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짧은 신호.

[You’re Late.]

“몇 초 지났지?”

[15초.]

“생방송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나갈 때까지는 15초 정도 갭이 있잖아? 그러니 대충 보자면 맞는 이야기지.”

[그 15초를 포함해서.]

“오케이, 허니.”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군.

“오늘 나 멋졌어?”

[어제보다 더, 내일보단 덜.]

“셰익스피어로군.”

[푸하하! 호르몬 때문인가?]

“오늘 어땠어?”

[평소 같았죠. 일 마치고 ‘적’의 입장에서 당신 경기 보고. 언제 또, 아.]

“응?”

[방금 발로 찼다.]

“발이, 있을 시기인가?”

[……그냥 해보고 싶었던 말인데 좀 맞춰주면 어디가 덧나요? 남자들은 이렇게 여자 마음을 몰라준다니까.]

“어, 음. 그런가?”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애가 건강하네.”

[당신 닮아서.]

“당신을 닮으면 더 좋을 텐데.”

[그래요? 왜요?]

“당신처럼 사랑스러운 사람이 세상에 한 명 더 생기는 거잖아. 세상 전체가 풍요로워질 일이겠지.”

[…….]

“여자들은 이렇게 남자 마음을 몰라준다니까. 기껏 멋진 말을 했더니.”

티파니 마리 맥센.

내 아이를 가진 그녀와 약속대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나는 마음이 한결 풍요로워진 걸 느끼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에게는 항상 감사뿐이었다.

오늘 경기는 격렬했다.

당연히 걱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 티를 내지 않고 나를 지지해줬다.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을지언정 내 옆에서 계속해서 함께 걸어줄 사람이었다.

아니, 뭐.

이러다가도 나중 가면 또 이혼하는 게 할리우드부터 시작해 스타들의 오랜 전통 같은 거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아니었다.

싱긋 웃으며 씻고자 샤워실로 들어선 나는 누군가 벌써 안에 있음을 알고는 약간 굳어졌다.

러셀.

러셀 오메가.

“어…….”

“…….”

“안녕, 러셀.”

“그래, 신. 고생했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네가 사랑스럽게 전화 통화하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뒤를 힐끔거리면서 눈치를 본 순간부터.”

“들었냐?”

“셰익스피어.”

“……제기랄!!”

“그럴 때지.”

“닥쳐! 이혼남!”

“네 다음 단계야.”

“아니거든!!”

나는 창피함에 몸부림치며 샤워기를 틀고 쏟아지는 물을 견디기 시작했다.

그러자니 다가온 러셀이 내 옆 부스에서 또 다시 샤워를 하는 게 아닌가.

“안 씻었어?”

“씻으면 너희 통화 못 듣잖아.”

“조만간 고소장 날아갈 거다. 사생활 침해로 하트 던전까지 모조리 다 씹어 먹을 테니 기대해라.”

“오늘 다비, 예전 그 양반 같더라.”

“말 돌리지 마. 진짜로 하트 던전을 빼앗아서 신 던전으로 바꿀 테…….”

“잭 하디.”

“제기랄! 그래! 복선이었다고!”

나는 샴푸를 머리에 들이부었다.

어쨌거나 쪽팔려 죽을 거 같은 상황에서도 레슬링 이야기가 나오자 말을 맞춰주는 게 참 나답다 싶었다.

“이제 그 형제가 돌아오잖아. 그걸 빌미로 다비에게 기회를 주자고 비숍을 설득했던, 뭐 그런 건데.”

“근데 둘이잖아?”

“응?”

“하디 보이즈.”

“그게 뭐?”

“하디 보이즈는 둘이고. 넌 혼자잖아. 파트너를 슬슬 골라야 하잖아?”

“그건, 글쎄다.”

누구로 하지.

나는 고민에 빠졌다.

* * *

맥 하디.

그리고 잭 하디.

둘이 합쳐서 하디 보이즈.

여기에 그때 당시 맥 하디의 여자친구였던 리키타가 추가되며 팀 익스트림이라고 불렸던 전설적인 팀.

하지만 수많은 문제로 인해 WWF를 나갔던 형제는 캐나다의 TMA를 비롯한 인디 단체에서 활동을 했다.

그리고 이제 돌아오려고 했다.

그것도.

‘맥 하디의 포텐이 터지면서.’

전생에도 대충 같은 식이었다.

원래, 하디 보이즈는 동생인 잭 하디가 훨씬 더 주목 받는 선수였다.

전성기의 잭 하디는 특유의 퇴폐적인 미모와 스타일로 인해 여성 팬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섹스 피스톨즈의 시드 비셔스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고 해야 할까.

위험한 경기 스타일에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그 모습은 프로레슬링 업계에 전례가 없던 캐릭터였다.

그래서인지 바트 맥센도 그를 푸시하면서 차세대 스타로 밀려고 했으나.

마약에 손을 대고 프로 의식이 부족해 끝내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리고 반면.

맥 하디라는 선수가 있다.

잭 하디의 형.

그리고 이 형으로 말하자면, 전형적인 육각형 레슬러라고 할 수 있었다.

잭 하디도 그렇지만 덩치가 좀 작다는 점을 제외하면 모든 부분에서 동생보다 훨씬 더 나은 레슬러였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

형언할 수 없는 능력치.

관객을 사로잡는 카리스마와 퇴폐적인 매력이 동생에 비해 부족했기에 항상 미드 카더로서 소진되었다.

노력하지만 마니아들 이외에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레슬러. 거기에 그는 망나니 같은 동생을 보호하느라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그런데도 각본 상 두 형제간의 대립은 열등감을 품은 형이 동생을 배신하는 형식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어쨌거나.

대충 이렇게 요약할 수 있었다.

천재인 동생.

노력하는 형.

그 두 사람의 태그 팀은 몸을 사리지 않는 격렬한 범프와 하드코어한 스타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럼에도 결국 정상에 올라설 뻔했던 것은 프로레슬링에 대한 의욕이 부족한 동생이라니, 아리러니하지 않은가.

다들 그렇게 생각했었다.

형제가 WWF를 비롯한 메이저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모습을 감추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기 전까지는.

그리고 이젠 상황이 반대가 되었다.

TMA와 같은 단체를 거치며 형은 하나의 기믹을 탄생시켰고, 그게 업계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주목 받았다.

‘이번 복귀가 그 때문인데.’

ACW 측에서 베테랑의 존재를 절실히 원해서 큰 오퍼를 넣은 것이었다.

근데 설마 이럴 줄은 몰랐다.

7월 페이퍼뷰가 끝난 뒤.

복귀한 하디 형제와 만나기 위해 보다 일찍 경기장을 찾은 내 눈앞에는.

“이예에에에에에에이이이~.”

‘브로큰’ 맥 하디가 서있었다.

손에 금붕어가 든 어항을 든.

“하하하하하하이예이이이이~.”

“……어, 맥?”

“Greeting!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자여!”

“……예?”

순간 정말 놀랐다.

“역십자를 짊어진 사내여!”

“아니, 그…….”

설정을 말하는 거였군.

근데 나한테 테이커처럼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그런 설정은 없는데.

‘부서지고’ 나서 정말 신기가 생겼나.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신.”

“아, 잭.”

“오랜만이군. 잘 지냈어?”

“그렇지. 그쪽은?”

“보시다시피.”

“형은 왜 기믹에 먹혔어?”

“아, 그게.”

슬쩍 넘겨다본 잭은.

“그, 저작권 문제 때문에 ACW에서 ‘브로큰’ 기믹을 못 쓰게 됐거든.”

“…….”

“그 반동 때문인지 현실에서도 저렇게 되어버렸는데. 어, 괜찮을 거야.”

지독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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