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Day 4.
잭이 상황을 수습했다.
“아무튼 신경 쓰지 마. 하디 보이즈 기믹으로 복귀하면 그만이니 말이야.”
“아니, 근데 머리 스타일이…….”
기묘한 순간이었다.
원래는 보통 상황이 반대였다.
동생이 철없는 미친 짓을 하고, 형이 나서서 동생도 좋은 놈이고 잘할 거라 변호를 했는데.
이제는 동생이 형을 변호했다.
“독립체……!”
“어?”
“독립체가 보인다!!”
놀라서 돌아보자.
맥 하디가 저편에 있는 감자칩 자판기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후진 자판기다!!”
그리고 돌진했다.
뭔가 싶었는데.
주머니에서 쿼터 동전을 꺼내더니 자판기에 넣어 감자칩을 사고는 신난 듯이 들어 올렸다.
“형.”
다가가는 잭.
“식단 관리 중이잖아. 먹지 마.”
“브라더 네로!”
참고로 말하자면 ‘네로’라는 이름은 잭 하디의 미들 네임이었다.
“그래, 그래.”
흡사 저런 대화를.
요양원의 치매 노인과 그를 돌보는 간병인에게서 본 것 같은데.
맥 하디는 진짜 그래 보였다.
잭 하디는 그래도 관리를 다시 해서인지 예전의 미모와 근육을 되찾은 것 같은 멋진 모습이었지만.
맥 하디는 브로큰 기믹을 하면서 머리를 마치 푸들처럼 부풀려서 어깨까지 늘어뜨렸고 흰색 브릿지를 넣었다.
최악의 비주얼.
하지만 그게 ‘브로큰 맥 하디’라는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를 완성시켰다.
그런데.
‘저걸 그냥 저대로 둔다고?’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나는 걱정 속에 바라보았다.
형이 들고 있던 감자칩을 빼앗아 쓰레기통에 쳐넣고 돌아오는 잭.
“신. 그러고 보니.”
“어, 잭…….”
“소식은 들었어. 임신했다면서.”
그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받자 말이 이어졌다.
“지옥이 기다릴 거야.”
환한 미소.
나는 거기에서 잭의 변화를 느꼈다.
마약에 취해서 살던 예전과는 달라진 잭 하디. 그 변화는 딸아이의 탄생과 함께 일어났다고 전해졌다.
잭을 똑 닮은 미소녀.
그러고 보면.
‘날 다룰 수 있는 여자는 없어!’라고 외쳤던 오튼도 얼마 전에 딸의 요구로 팅커벨 복장을 입었다고 했더랬지.
역시 사람은 책임을 질 때 철이 드는 법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다.”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어쩐지 앞으로 이 형제와 하는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심각한 오판이었다.
* * *
프로레슬링 업계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속이 다른 것으로 유명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남자들 간의 유혈.
챔피언 벨트를 따내기 위한 싸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치정! 음모!
……같은 건 사실 없었다.
아니 물론, 정치적으로 심리전이 벌어지기는 했다. 프로레슬링은 미리 결과가 정해져 있는 스포츠였으니까.
그것을 표현하는 선수의 역량에 따라서 관객들의 반응이라는 점수로 결과가 나오는 스포츠 말이다.
그리고 그 표현을 혼자서는 할 수가 없었으므로 프로레슬링은 자연스레 선수 간의 합이 가장 중요했다.
즉.
레슬러들은 서로 협력했다.
형재애로 뭉쳐서 서로의 얼굴을 갈기고 상대가 죽지 않도록 기술을 받아주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여기에서 전설적인 사내, 믹 졸리가 한 말을 인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순간’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기억하는 ‘순간’을 위해.
하지만 여기에서 맹점이 하나 있으니. 한 번 깨진 신뢰는 웬만한 노력으로는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잭 하디의 경우가 그랬다.
머나먼 과거, 내가 GCW에 있던 시절부터 메인에서 활약한 하디 보이즈.
리키타까지 더해져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그들이었지만, 쇼와 현실이 매번 ‘익스트림’의 연속이었단다.
프로 의식이 더럽게도 없는 잭 하디가 매번 사고를 쳐대서 다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트 맥센은 그를 차기 메인 이벤터로 점찍고 어마어마한 푸시를 해줬다.
허나 잭은 스스로 레슬링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며 WWF를 나갔고.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아 TMA로 복귀했지만, 거기에서도 사고를 쳐대면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그래도 이제는 딸아이가 생기고 하면서 좀 나아졌는가 싶어 데릭 비숍을 포함해 모두가 믿고 계약했더니.
오늘도 사고를 쳤다.
“하디이이이이이이-!!”
비숍의 비명이 휘몰아쳤다.
쇼의 시작까지 15분 남은 상황.
오프닝에서 신이 나가고 하디 보이즈가 멋지게 복귀하면서 시청률을 끌어올릴 생각이었으나 일이 틀어졌다.
형인 맥 하디는 일찍 와서 나와 같이 리허설도 진행했건만 잭 하디는 도통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후우.”
한숨을 내쉬는 맥 하디.
동생이 연락이 안 되자 ‘브로큰’에서 돌아온 그는 내게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 신. 이 자식, 루시가 생기고서는 정신 차린 줄 알았더니.”
“괜찮아. 맥. 일단 잭이 쇼가 시작까지 안 왔을 때 어떤 식으로 할지를 좀 이야기해보자고.”
“어떻게 하지?”
“너만이라도 나와야지.”
“하지만, 하디 보이즈인데.”
“여기에 맥 하디가 있잖아.”
“그래도…….”
영 자신감을 못 보이는 맥 하디.
불안하고 초조한 듯 손을 떠는 그를 앞에 두고, 나는 묘하다고 느꼈다.
분명히 직전까지만 해도 브로큰 기믹을 터뜨려서 TMA와 인디, 더 나아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그인데.
‘왜?’
아니.
당연한가.
그 브로큰 기믹을 못 쓰니까.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노력하는 형은 프로레슬러로서 가장 중요한 카리스마가 부족한 선수고.
반대로 망나니 같은 동생은 프로레슬러로서 갖춰야 할 그 재능을 압도적으로 타고난 선수였으니 말이다.
“저기, 맥.”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잭 하디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잭, 잭이냐?!”
흥분해 전화를 받는 맥.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맥의 안색이 점차 새하얗게 질리는 걸로 봐서 대충 예상이 됐다.
그리고 그게 맞았다.
“……늦을 것 같다는데.”
“얼마나?”
나는 비숍을 슬쩍 돌아보았다.
가까이 다가온 그와 각 팀장들까지 합류해 맥 하디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10분 정도.”
“기절하시겠군.”
“지금 어디라는데?”
“병원에서 막 나왔대요.”
“아니, 왜? 왜 지금? 게다가 병원이라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그, 가족 문제가 있었다는데요.”
“그게 말이나 되나!!”
버럭 소리를 지르는 비숍.
그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다들 무척 실망한 눈치였다.
안 그래도 아직까지 신용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잭은 또 다시 자신의 신용을 시궁창에 처박아버렸다.
쇼의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어쨌든 맞추지 못할 터였다.
그렇다면.
방법을 생각해야지.
“일단 그러면…….”
“그 새끼 당장 잘라버려! 그딴 망나니 자식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어!”
“비숍.”
나는 목소리를 살짝 깔았다.
그리고 힐끔.
“내가 말하고 있잖아요.”
순간 어깨를 움찔 떠는 비숍.
이런 식의 위협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촉박해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근처에 본가가 있던 잭 하디는 어제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늘 쇼에 늦어버렸다.
허나 지금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
그냥 나가서 즉흥적으로 하는 게 다가 아니었고, 다른 팀원들에게도 전달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5분 내로 결론을 내야 했다.
“비숍, 각본을 당겨쓰죠.”
“……삼파전을?”
“예,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원래 우리는 TMA에서 하디 보이즈가 보여주었던 분열 각본을 약간 비틀어서 다시 사용할 예정이었다.
나와 러셀이 팀을 맺고 하디 보이즈를 상대하다가 그사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 삼파전으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러셀이 빠지고.”
사실 러셀은 지금 무릎 쪽의 부상이 올라와서 반쯤 억지로 대립을 진행할 수밖에 없던 상태였다.
“좋게 생각하자고요.”
지금 한창 의무실에서 진통제를 맞고 있을 러셀에게 휴식을 보장하고.
초장부터 삼파전으로 간다.
어쩔 수 없지만 선택해야만 했다.
“어떻게 하실래요?”
“제기랄.”
“8분!”
“비숍, 빨리 정해야 해요.”
“맞습니다. 비숍.”
“어떻게 하면 좋죠?”
“아니, 제기랄! 하디 보이즈 티셔츠를 다 찍어놨는데 그 많은 재고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단 말인가?!”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당신과 맥이 시간을 끄는 사이, 잭이 도착하면 바로 내보내는 건?”
“만약 잭이 제시간에 도착한다는 확신이 있으면 그렇게 해도 좋겠죠.”
“아니, 그러니까.”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다음 주로 미뤄도 되고. 그게 아니면 맥의 복귀를 빼앗아가는 흐름이 좋죠.”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잭 하디의 지각이 생각도 못한 곳에서 좋은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 두 사람을 하디 보이즈로 엮어서 복귀를 시키자는 아이디어는 전적으로 비숍과 수뇌부의 생각이었다.
그 때문에 원래는 쉬어야 할 러셀이 억지로 대립에 나오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선수를 또 갈아 넣으려는 방식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혼란을 틈타 다시 쇼를 훔치려 들었다.
그리고 사실, 이게 더 나았다.
지금 팬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는데 멀리 돌아갈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6분!”
“비숍.”
“비숍 씨!”
“빨리요!”
“끄으으응…….”
고민하던 비숍은.
이내 날 보고 말했다.
“……믿어도 되겠지?”
“그럼요.”
나는 씨익 웃으며 맥을 가리켰다.
“죽여줄 겁니다.”
* * *
그렇게 쇼가 시작되었다.
오늘 오프닝 세그먼트 안에 잭 하디가 도착하건 말건, 나는 새롭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낼 예정이었다.
그건 바로 ‘하디 보이즈’가 아니라 ‘맥 하디’라는 한 레슬러의 복귀를 수행하는 일이었다.
“10초 전!”
카운트가 들어가고.
송출 차량이 방송국과 연결되고.
각 인원들이 준비를 했고.
관객들이 숨을 삼켰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그리고 터져 오르는 오프닝 폭죽.
[Waaaaaaaaaaaaaaaaaaggghhh!!]
자욱한 연기 속에 시작되는 쇼.
[Welcome~! To ACW Nitro!!]
[오늘도 멋진 쇼가 시작됩니다!]
커튼 바로 앞.
나는 챔피언 벨트를 어깨에 짊어진 채 해설자들의 코멘터리를 들었다.
적당히 양념과 같은 멘트들.
이후.
“신! 고!”
지시가 떨어졌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이어지는 내 테마 음악.
[Waaaaaaaaaaaaaaaaggghhh!!]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챈트 속에 링으로 나아간 나는 오늘도 멋진 쇼가 될 것을 예감하며 그대로 마이크를 손에 들었다.
“살아서 다시 보게 되었군.”
[Yeeeeeeeeeeeeeeeaaahhh!!]
“멋진 밤이었어. 그렇지? 이 업계에서 전례가 없던 놈이 전례가 없던 챔피언과 환상적인 순간을 보냈다고.”
다비를 잠깐 칭찬한 뒤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려던 나는 이어지는 팬들의 챈트에 잠시 마이크를 내렸다.
[We Want Hardy!]
짝! 짝! 짝짝짝!
[We Want Hardy!]
짝! 짝! 짝짝짝!
[We Want Hardy!]
짝! 짝! 짝짝짝!
‘우리는 하디를 원한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보통 복귀는 정말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지 않는 이상에야 도리어 시청률을 위해 퍼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디 보이즈도 그랬다.
TMA와 계약이 만료된 다음의 거취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ACW로 돌아온다.
‘신’과 마주하기 위해서.
그 챈트가 워낙에 컸던 터라 나는 차마 무시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프로레슬링의 이 하드코어함을 단순히 ‘고통의 전시’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 이건 그저 삼류 쇼라고.”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물론 여기 모인 팬들은 우리가 이 챔피언 벨트에 진심이고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리는지 잘 알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만약 프로레슬링이라는 스포츠에 부정적인 이들이 어제 다비 알렌의 경기를 보았다면 과연 뭐라고 말할까?
이해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해를 필요로 하여 프로레슬링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과.
“여기에 모인 모두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그렇다면.
“다비 알렌 이전에 누가 있었지?”
[Hardy! Hardy! Hardy! Hardy! Hardy! Hardy! Hardy! Hardy!]
“제기랄! 정말로 그놈들이 내 다음 상대가 되기 위해서 이 회사에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너희들?!”
[Yeeeeeeeeeeeeeeeeeaaahhh!!]
“그건 나도 바라는 바야.”
나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돌아보았다.
예정보다 조금 더 빨랐지만.
[Oh~ Yeah~!!]
‘정신이 나가지 않은’ 맥 하디의 테마 음악이 경기장 안에 울려 퍼졌고.
[W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은 열화와 같은 환호로 인디에서 돌아온 레전드를 맞이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