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Day 5.
6시 15분.
차가 막혔다.
겨우 경기장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린 잭 하디는 직원용 출입구로 달려들어 가며 상의를 벗어던졌다.
쇼는 이미 시작되었다.
지각.
펑크.
오프닝에서 형과 함께 하디 보이즈로 복귀할 예정이었건만 그 기회를 허공에 날리고 말았다.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곧장 고릴라 포지션으로 향한 잭은 사나운 시선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데릭 비숍.
그 외의 수많은 직원들.
쇼는 링 위로 올라간 형, 맥 하디가 신의 앞에서 자신의 복귀에 대한 단상을 나누고 있는 지점이었다.
잭은 멍하니 그걸 보았다.
[오랜 기간 업계에 있으면서 난 지금껏 단 한 번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그 이유가 무엇일까.
팬들의 챈트가 이어졌다.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브로큰 맥 하디의 상징적인 챈트.
비록 오늘 맥 하디는 ‘브로큰’이 아니라 ‘V1’ 기믹으로 나왔지만 그런 건 팬들에게 아무 상관도 없었다.
맥 하디는 자신을 증명했다.
그것도 메이저 프로레슬링 밖에서.
동생에게 밀려 언제나 2인자를 고수하던 형은 제대로 된 기믹 하나로 말미암아 단숨에 핫한 FA가 되었다.
잭은 미소를 지었다.
‘형.’
언제나 사고만 치던 자신을 돌봐준 형이 지금은 링 위에서 신이라는 위대한 남자와 당당히 마주보고 서있었다.
자랑스러웠다.
그러자니 이어지는 핀잔.
“잭, 자네.”
데릭 비숍이었다.
“많이 늦었군.”
“예, 앞으로는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지금 크게 꼬인 건 아니죠?”
“…….”
황당하다는 듯 돌아보는 비숍.
당연히 꼬일 대로 꼬여버렸다.
복귀는 타이밍이었다. 지금 잭 하디는 ACW 커리어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순간을 놓친 것이었다.
“왜 늦었지?”
“집안일이 좀 있었어요.”
“뭔데?”
“……그냥 집안일입니다.”
일축하는 잭.
비숍은 다시 할 말을 잃었다.
잭 하디는 이런 남자였다.
어차피 자기가 늦은 건 사실이고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다지 사과와 변명에 열심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실망했을 뿐.
하지만 그조차도 어쩔 수 없었다.
루시가 아팠다.
아침에 일어나니 갑자기 열이 끓었고, 병원에 함께 가서 상황이 좀 나아질 때까지 옆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행여나 딸아이에게 총구가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잭 하디는 일부러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비숍을 비롯한 직원들은 그런 잭 하디의 태도에 순간 환멸을 느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슨 일이 있어서 늦었는지는 말해주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게 아니더라도 더 깊이 사과해야 하지 않나?
이쪽은 그 덕분에 손해를 감수해야만 할 판이었다. 잭 하디의 지각으로 세워둔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그사이에도, 쇼는 계속 이어졌다.
[기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이고 시간은 지나지 마련이지. 하지만 내가 업계에서 이룩한 순간은 남아 있지.]
[그래서 이걸 원하는 거냐?]
신이 벨트를 들어올렸다.
[Uoooooooooooooooooohhh!!]
비숍은 이를 아득 갈았다.
“광고 내보내.”
“예?”
“지금요?”
“빨리. 타이밍 내가 잡을 테니까.”
“비숍!”
“러셀도 나오라고 해!”
어떻게든 하디 보이즈 플랜을 이어가고 싶었던 비숍은 그렇게 억지를 부리며 잭 하디를 돌아보았다.
“자네도 준비하고!”
“……음.”
잭 하디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광고가 나간 것은.
[이 벨트를 원한다고?!]
신이 그렇게 외친 시점이었다.
“Now!”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원래는 세그먼트가 끝난 뒤에 이어져야 했을 광고가 먼저 나갔다.
1분의 시간.
링에 나가 있던 심판이 비숍의 명령을 듣고는 링 위로 올라가 맥과 신을 말리는 척 상황을 전달했다.
그 과정은 스무스했다.
쇼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이야기를 들은 신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뒤로 물러서면서 이것이 세그먼트의 일부인 것처럼 행동했다.
[Booooooooooooooooooo-!]
야유하는 팬들.
심판이 신과 맥의 대립을 말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 끌기’였다.
1분의 광고.
원래 그사이 링을 정비하고 팬들에게 기다려달라고 말하는 게 보통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잭, 일단 링으로 나가라고.”
“그럴까요.”
“신이 위기에 처하면 러셀이 나타나서 도와주는 거야. 그런 각본으로 다시 하디 보이즈를 뭉치게 한다.”
완전히 주먹구구.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신은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굳이 그렇게 가시겠다.’
누구 마음대로?
그는 맥에게 다가갔다.
약간 시비를 거는 척.
[Uoooooooooohhh……!]
“이봐, 맥.”
“어떻게 하지?”
“저딴 소리 들을 필요 없어. 우리는 우리 식대로 세그먼트를 이어간다.”
“아니, 그래도 돼?”
“꼬우면 자르라지.”
그리고 아마 절대 못 자르리라.
왜냐면 지금 상황에서 다시 하디 보이즈를 이어나간다는 플랜은 데릭 비숍 혼자만의 고집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혼란 속에서 1분이 지났다.
신은 잭 하디가 원래 계획을 조져버린 상황조차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이용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쇼.
1분간의 대치가 이루어진 후에 한 남자의 테마 음악이 이어졌다.
방송이 다시 송출된 직후였고 팬들이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Waaaaaaaaaaaaaaaaaaaggghhh!]
‘No More Word’s’.
보컬과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가 일품인 잭 하디의 전용 테마곡이었다.
그리고 그 반응은 명백히 맥 하디를 뛰어넘었다. 특히나 여성 팬들의 반응이 정말로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확실히 물건이군.’
입장로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낸 잭은 청바지에 상의 탈의라는 복장으로 춤을 추며 링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맥의 옆에 서서 형제가 다시 뭉쳤음을 보여주었다.
[Hardy! Hardy! Hardy! Hardy! Hardy! Hardy! Hardy! Hardy!]
팬들의 챈트가 쏟아졌다.
형제가 돌아왔다.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인디’스럽고 하드코어했던 형제가 돌아왔다.
마이크를 손에 쥔 잭 하디는 맥과는 달리 신에게 먼저 악수를 청해왔다.
“네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
[Uoooooooooooooooooohhh!]
형과는 전혀 다른 태도.
여기에서 팬들을 약간 흥미롭게 만든 뒤 잭이 ‘우리 자리를 그렇게 잘 지켜줘서’라며 도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잭, 넌 또 이런 식이군.”
맥이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의아해 돌아보는 잭.
하지만 이미 의견을 맞춰두었던 두 사람은 막힘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형제 분열’이로군. TMA 때의 앙금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거야, 맥?”
“언제나!!”
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로써 상황은 보다 흥미로워졌다.
“끝났다고 생각하나? 잭? 이곳에 와서는 다시 뭉칠 수 있을 것 같았어?”
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팬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이미 인디 시절, ‘브로큰’ 맥 하디 기믹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
다른 하나는 ‘브로큰’ 맥 하디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이들.
그들 모두를 아우르는 대사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앙금이 있다.
형은 자신의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아가는 동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동생은 그런 형을 당혹스럽게 여겼다.
이해하기 쉽고, 흥미로운 이야기.
지금까지 숱하게 써먹어 온 하디 보이즈가 아니라 그로부터 발전된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게 나았다.
물론, 형제의 대립은 과거 WWF 시절에도 계속해서 써먹어왔던 거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형’은 과거와 달리 ‘동생’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단순한 찌질이가 아니라 자신만의 멋진 기믹을 가지고 맞섰다.
바로 ‘브로큰’ 맥 하디.
동생에 의한 질투로 말미암아 광기에 사로잡힌 형.
맥의 준수한 연기력이 더해진 기믹은 업계를 단숨에 뒤흔들었다.
지금 당장은 저작권 문제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맥은 그 광기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얼마나…….”
[Delete! Delete! Delete! Delete!]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맥, 진정해.”
“닥쳐!”
맥이 먼저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곧바로 잭을 공격했고 두 사람이 뒤엉키며 링 바깥으로 내려갔다.
신이 생각하던 그대로였다.
[Waaaaaaaaaaaaaaaaggghhhh!]
환호가 터져 나왔다.
챔피언을 두고 두 형제간의 풀리지 않은 앙금이 다시금 촉발되었다.
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천천히 로프에 기대어 섰다.
그리고 짐짓 챔피언으로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듯 링 아래의 심판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척했다.
물론 그 내용은.
“비숍에게 전해. 지금 상황에서 러셀 내보내면 벨트 버리고 떠난다고.”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각본의 주도권은 이쪽에 있다.
그걸 전하는 이야기였다.
프로포터와 선수 간의 짤막한 기 싸움을 던진 신은 링 아래로 번진 형제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Jack! Jack! Jack! Jack! Jack!]
[Delete! Delete! Delete! Delete!]
챈트는 정확히 나뉘었다.
메인 스트리트로부터 떠나 있던 그들이었지만, 팬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마니아 팬이 많은 ACW는 형제의 최근도 잘 알고 있었다.
신은 그 분위기를 느꼈다.
‘잘 돌아왔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업계의 최전선을 달려온 챔피언으로서, 군림해온 자로서, 자신을 무시하는 걸 참을 수는 없었다.
두 사람도 그걸 알아주었다.
링 바깥에 멈춰 서서 주먹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보고 신은 움직였다.
벨트를 잠시 내려놓고.
반대편 로프로 달려가 몸을 맡기고는 그대로 그 반동을 이용해 달렸다.
[Uooooooooooooooooooohhh?!]
놀라는 팬들.
코너로 달려간 신은 그대로 턴 버클을 밟고 뛰어 올라가 뒤로 돌았다.
맥을 돌려세우는 잭.
그리고 두 사람이 자신을 받아줄 것임을 ‘믿은’ 신은 몸을 내던졌다.
문 설트.
함께 서있던 하디 보이즈의 위로 떨어져 내린 신은 두 사람을 덮치며 그대로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Waaaaaaaaaaaaaaaaaggghhh!]
환호하는 팬들.
그것으로 단숨에 상황이 정리되는가 싶었다. 신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바닥을 나뒹구는 형제를 바라보았다.
‘별 거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과 제스처.
팬들은 그런 신에게 환호하면서도 다음 장면을 기다렸다.
잭 하디와 맥 하디가 이대로 얌전히 당하고 끝나지는 않으리란 생각에.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신이 벨트를 가지러 링 위로 올라간 순간, 정신을 차린 맥 하디가 난입해 마구 해머링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퍼억! 퍽! 퍼억!!
그리고 그사이 탑 턴 버클 위로 올라간 잭 하디가 조금 전의 신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을 향해서 몸을 던졌다.
다이빙 크로스 바디.
퍼억!!
그렇게 이어지던 싸움은 결국 심판들이 링 위로 난입해서야 끝이 났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폭소하는 맥 하디.
중간에 기술을 구사하다가 맞은 입술이 찢어져서 피가 난 잭 하디.
마지막으로 벨트를 든 신까지.
아직까지 싸울 여력이 남았음에도 세 사람은 심판들의 만류를 받고 순순히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삼파전이었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어떻게 끝을 내야 하나 싶거든.’
이게 다 늦은 잭 하디 ‘탓’이었다.
그리고.
쇼에 늦은 잭 하디 ‘덕’이기도 했다.
* * *
고릴라 포지션으로 돌아온 신은 제대로 열이 받았는지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는 비숍을 지나쳤다.
‘저쪽은 나중에 상대하고.’
일단 딱히 감정적으로 화나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그와 별개로 쇼를 펑크낸 잭 하디에게 지랄 정도는 해둬야겠지 싶었다.
실제로 모두가 그렇게 느꼈다.
방금 이어진 일련의 오프닝 세그먼트는 신이라고 하는 정도의 프로레슬러가 아니었다면 다 조져놨을 거다.
지각한 잭 하디로 인해서.
하지만.
잭 하디는 말마따나 완전히 ‘난 놈’이었다. 모든 운이 그를 위해서 작용하는 듯한 착각마저도 들었다.
기술 구사력도 형편없고, 몸 상태도, 관리도 최악인 그 개자식은, 프로레슬링의 신에게 사랑 받는 존재였다.
일례로.
마지막에 입술에 난 피.
그건 예상치 못한 요소였지만 싸움의 종국에서 팬들의 시선이 순간 그에게 향하는 효과를 낳았다.
분명 마이크워크도 변변찮고 연기력도 그저 그런 사내였지만 형언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닌 선수였다.
“잭.”
신은 곧장 락커룸으로 들어섰고.
빠악!
주먹이 날아가는 걸 보았다.
맥 하디.
그가 자신의 동생을 때렸다.
진짜로.
“너 이 새끼! 정신 못 차려?!”
“……아프잖아, 형.”
“뭔 지랄을 해서 쇼에 늦은 거야?!”
“제기랄! 루시가 아팠다고!!”
신이 들어온 것을 알지 못하고 있던 잭 하디는 맥 앞에서만 할 수 있는 말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말았다.
그리고 그걸 들은 신은 순간적으로 뭐라 할 말이 없어지는 걸 느꼈다.
딸이 아파서 쇼에 늦었다.
이걸 두고 어떻게 말해야 할까.
“……신.”
그러고 있자니 이내 잭이 먼저 신이 온 것을 알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혀를 차며 말했다.
“그걸로 변명하고 싶진 않아.”
“알아, 잭. 제기랄.”
“더는 이런 일 없을 거다.”
“이미 일이 터진 걸 어쩌냐. 비숍이 너희 하디 보이즈 티셔츠 가지고 계속 뭐라고 할 테고.”
“그건…….”
“음.”
고민하는 하디 형제.
그 앞에서 신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다행히 내게 아이디어가 있지.”
“뭔데?”
“그 티셔츠는 내 티셔츠인 거야.”
“……뭐?”
“또 무슨 미친 아이디어야?”
형제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신은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