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24화 (624/634)

Father’s Day 6.

늦은 밤, 러셀 오메가로부터 전화를 받은 나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들었다.

[왜 날 빼버린 거야?]

감사의 인사였다.

“너 무릎 조졌잖아.”

[아니, 할 수 있다니까.]

“그 무릎으로?”

[할 수 있댔지.]

“나 근성론 싫어하는 사람인 거 알잖냐. 너 무릎 상태 개판이고, 상태 봐서 휴식이던 수술이던 치료해야 해.”

[후우.]

러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비숍이 화가 많이 났더라.]

“내라지.”

[같이 일하는 사이잖아.]

“말이 통해야 같이 일하는 사이지.”

비숍은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

좀만 틈을 주면 호시탐탐 개짓거리를 해대려고 해서 주기적으로 밟아주는 과정이 필요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공도 세웠다.

브룩 레스너.

하디 보이즈.

다 놈의 공이었다.

정확히는 그 뒤에서 돈을 대준 체드 터너 아저씨의 힘이 크긴 했으나, 그럼에도 추진력 하나는 정말 대단했다.

문제는.

“그렇게 가져온 비싼 재료들로 똥을 만들려고 해서 문제라는 거지만.”

[푸하하!]

“웃지 마, 네 단체야.”

[맞지. 맞지. ……젠장, 고맙다.]

“많이 아프냐?”

[죽을 맛이지. 대체 내가 무슨 정신으로 크레센트를 쓰는 걸까 싶다.]

슈팅스타 프레스는 그 특성상 무릎을 다치기 쉬운 무브 중 하나였다.

“업보지. 업보야.”

[야, 네가 쓰라면서?]

“적당히 써야지. 잭 하디 그 자식도 지금 등이 말이 아니라고 하던데.”

[아, 그래. 잭 하디.]

러셀이 화제를 전환했다.

[어쩔 거야?]

“…….”

나는 잠시 침묵했다.

“딸 때문이라더라고.”

[딸?]

“딸이 아파서 늦었대. 우연히 듣고 말았지.”

[제기랄, 할 말이 없군.]

내가 딱 그런 반응이었다.

잭 하디가 의도적으로 한 말이 아니었기에 더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자기 딸을.

자기변명에 이용하겠는가.

사실 러셀에게도 이 이야기를 숨겨야 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말한 이유가 있기는 했다.

“일단 좀 지켜보자고.”

[……그래.]

녀석은 지금 락커룸 리더였다.

테이커 아래에서 내가 다른 선수들을 이끈 것처럼, 러셀도 자연스레 크로우 아래에서 그렇게 되었다.

따라서 놈에게는 말해야만 했다.

[그 마음, 이해하지.]

“네가?”

[나도 아들 있잖아.]

“올해 몇 살이었지?”

[세 살.]

러셀 오메가.

ACW 월드 챔피언 3회.

그리고.

이혼 경력 1회.

세상 모든 남자들의 워너비.

[켈리가 자꾸 바깥으로 나돌아서 얼마 전에 던전으로 데려왔거든. 그런데 자꾸 밤마다 나를 찾는 모양이야.]

“…….”

[그래서, 조금.]

“힘들어?”

[아니야. 그럴 순 없어.]

러셀은 단언했다.

[트리플H가 말했었잖아.]

그래.

과거 ‘파워 이너프’라고 하는 프로레슬러 선수 육성 프로그램에서였다.

리얼리티 쇼.

그 쇼에 멘토로 출연한 트리플H는 육성 선수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슈퍼’가 되어야 한다.’

슈퍼 아빠, 슈퍼 엄마.

슈퍼 남편, 슈퍼 아내.

[그래서 힘들다고 할 수는 없어.]

“제기랄.”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트리플H는 거기에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나는 이 비즈니스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프로레슬링은 가장 위대한 일 중 하나다.’

선수 생활은 빛처럼 빠르게 흘러가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살기를 선택한 자들이고 그 간극을 메워야 한다.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나?”

[그래, 너라면.]

쉽게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되고 말지, 까짓거.’라고 예전 같았으면 쉽게 이야기를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내를 두었다.

그리고 그 아내는 지금 우리가 사랑한 결실을 혼자 책임지고 있었다.

힘들다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지금 그 옆에 있을 수도 없었다.

다음 쇼가 있으니까.

‘어려운 문제로군.’

그래서 잭 하디에게도 딱히 뭐라 이야기할 수가 없었던 거다.

태어난 아이가 아프다.

만약 그렇다면 나도 진짜 어떻게 행동했을지 알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고민에 빠져 있던 그때.

“……?”

나는 뒷목이 찌르르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손을 가져다댔다.

‘뭐지?’

잠깐 있다가 사라졌지만.

분명한 통증이었다.

* * *

ACW 목요일 밤의 썬더.

그 촬영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나는 예정했던 대로 늦지 않게 경기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직원 및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며 비숍에게로 향했다.

총괄 프로듀서실.

내가 별생각 없이 노크를 하자 무척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비숍, 할 말이 있는데요.”

“오, 신.”

표정을 펴고자 노력하는 비숍.

“무슨 일이지?”

“하디 티셔츠. 어쩔 겁니까?”

“누군가가 지난 쇼에서 개판을 쳐줘서 말이야. 발매는 하겠지만 판매량이 영 신통치 않을 것 같아.”

“안타까운 일이군요.”

“그러게 말이네. 우리는 하디 보이즈 티셔츠로 일단 좀 계약금을 회수하고 분열을 시키고 싶었는데.”

“그건 너무 뻔하죠.”

거기다 러셀 문제도.

“까놓고 말하자면, 왜 그랬나?”

“말했잖아요. 뻔하다고.”

“……사람들은 뻔한 걸 원해.”

“아니죠. 뻔하면서도 자기가 의식하지 못한 뻔함을 원하는 거라고요.”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 발매 예정인 그 하디 형제 티셔츠를 제가 팔겠다는 겁니다.”

“자네가? 어떻게?”

의아해하는 비숍.

그리고 내가 계획을 이야기하자 그 눈에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신.”

“네?”

“자네는 킹 오브 자본주의야.”

미소가 입에 걸렸다.

Easy, Easy.

* * *

그리하여 그 방법이 무엇인가 하면.

간단했다.

내가 하디 보이즈의 티셔츠를 입고서 링에 나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결국 비숍이 그들의 티셔츠가 안 팔리라 예상하는 이유는 그걸 입고 홍보할 만한 기회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이가 안 좋은 하디 형제 중 누가 보이즈의 티셔츠를 입는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그걸 입을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다들 이 티셔츠를 보라고.”

[Yeeeeeeeeeeaaahhh……!]

링 위.

상황을 파악한 팬들의 환호했다.

“하디 보이즈의 새 티셔츠지. 안타깝게도 놈들 중 그 어느 하나도 입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나는 현실과 가상을 뒤섞었다.

티셔츠의 발매와 별개로 형제가 진짜 싸웠다는 듯이 이야기를 진행했다.

거기에 비숍은 넘어갔다.

“티셔츠 자체는 멋진데 말이야. 폴리에스테르 96%에…… 다량의 섹시함과 마초성이 첨가되어 있군.”

[Waaaaaaaaaaaaaaggghhh!]

“좋아, 친구들. 당분간 내가 이 티셔츠를 입기로 하지. 새 옷 냄새도 좋고. 오늘 밤은 이걸로 해야겠어.”

바로 그 순간이었다.

‘No More Words’.

맥 하디의 테마가 흘러나왔다.

[Waaaaaaaaaaaaaaggghhh!!]

자리에서 일어서는 팬들.

형제 중 동생.

잭 하디가 모습을 드러냈다.

청바지에 민소매 티셔츠.

온몸에 빼곡한 문신이 새겨진 날카로운 인상의 미남. 귀에 구멍을 뚫어 거대한 피어싱을 박아둔 게 인상적이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쇼에 늦지 않은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오, 한 장 줄까?”

“아니, 당장 벗어.”

“너희 형제의 복귀를 기념하면서 만든 티셔츠잖아. 하지만 지금 너희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글쎄다.”

창고에 쌓아두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대신 입기로 했지! 우리의 하디 보이즈가 다시금 사이가 좋아지기를 기원하면서 말이야!”

모든 건 상대적이라는 말이 있다.

잭 하디는 그 카리스마와 캐릭터 특징으로 대부분 선역 롤을 수행했다.

그리고 맥 하디는 악당.

동생에 의한 질투심과 분노로 인해 완전히 미쳐버린 입체적인 캐릭터.

그렇다면 내가 그 사이에서 선역과 악역이 혼재된 트위너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보다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터였다.

“어때, 잭. 지금이라면 9.99달러에 이 멋진 티셔츠를 구매할 수 있다고.”

“챔피언. ACW에 돌아오면서 널 존중해보려고 했지만, 넌 지금 그럴 가치가 없는 남자임을 입증하는군.”

“그걸 네가 정하는 거였나?”

“내 눈에는 그렇단 말이야.”

잭이 위협적으로 나섰다.

“나와 형의 관계가 어떻든 네 이런 조롱은 정말로 참기가 힘들군. 신.”

“내가 챔피언의 모습이 아니다? 재미있는데. 네 입에서 그 말을 들을 줄이야.”

나는 현실을 가져왔다.

“네가 이 일에 대한 열정이 떨어졌다며 회사를 나간 이후에도 난 계속 이 자리에서 챔피언으로 존재해왔어.”

그리고 마이크를 들어올렸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리얼리티.

드림.

그 모든 게 이곳에 존재했다.

“나는 Work Horse야. 뼈 빠지게 일하면서 이 업계를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스릴 라이드에 태웠다고.”

하지만 잭 하디는 어떤가.

그리고 맥 하디는 어떤가.

“너희는 그저 인디 벌레에 불과해.”

[Uoooooooooooohhh……!]

[Booooooo……!]

좋아.

조금씩이지만 야유가 나왔다.

“책임감은 눈곱만큼도 없잖아. 무언가 기회를 주려고 하면 도망쳤지.”

잭 하디는 이를 갈았다.

방금 내 발언에 어지간히도 화가 난 듯이 눈을 부릅뜨고서 말했다.

“내 열정을 왜 네가 평가하지?”

“그럼 업계 관계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투표로 결정할까? 인정해. 잭. 맥이 미쳐버린 것도 무리는 아니야.”

맥 하디가 왜 부서졌을까?

“사고만 치는 동생을……!”

공격이 이어졌다.

퍼억!

날카로운 해머링.

마이크가 땅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는 뒤로 물러났다.

[Uoooooooooohhhh……!]

놀라 일어서는 관객들.

하지만 이어지는 공격은 없었다.

“남의 가정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버릇이 있는 줄은 몰랐군.”

대신 잭은 냉정한 분노를 보였다.

“확실히 내가 많은 이들을 실망시키긴 했지. 그래도 중요한 건. 그만큼 나는 나 자신을 증명해왔다는 거야.”

전형적인 선역의 대사였다.

하지만 관객들은 열광했다.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그 자체로 풍겨져 나오는 아우라.

맥과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그가 업계에서 만들어온 ‘탕아’의 이미지.

그 모든 게 얽히며 잭 하디라고 하는 고유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퇴폐미로 무장한 언더독.

그 인기는 여전했다.

하지만 상대가 나였다.

“나라고 안 그랬을 것 같나?”

나는 팔을 좌우로 뻗었다.

그러자 이어지는 챈트.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모두가 나를 인정했다.

잭 하디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한들 나는 지금껏 업계의 수호신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되었다.

“그래, 너와 네 형이 어떤 관계든지 솔직히 내 알 바 아니긴 하지. 하지만 그 사이에 날 끼우려고 드는 건 엿 같은 기분이 좀 들거든. 잭.”

나는 벨트를 위로 들었다.

“이걸 원하나? 그렇다면 널 증명해봐. 여기에 있는 모두가, 백스테이지에 있는 모두가, 널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디 한번 증명해보라고!”

[Uooooooooooooooooohhh!]

“물론 그다음에는 날 상대하는 대신 네 형을 조지는 게 먼저겠지만.”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질 거였다.

월드 챔피언십.

모두가 원하는,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

잭 하디는 자신이 그걸 가질 자격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 걸 버리고 업계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형제 모두가 말이다.

“말하자면 이런 거지.”

나는 거만하게 웃었다.

“네가 업계에서 뭘 이루고자 한다면 집안 정리 정도는 미리 해두라고.”

[Uooooooooooooooooohhh!]

통렬한 한 방이었다.

또한 그 말은 우리가 앞으로 진행할 각본의 방향성을 나타내기도 했다.

‘가족’.

‘아버지’.

당연히 업계로 돌아온 두 하디는 더 이상 ‘보이즈’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잭 하디, 맥 하디, 그리고 나.

우리 세 사람이 처한 현실을 교묘하게 투영하고 있는 삼파전 각본.

“나는…….”

잭 하디가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

돌연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베토벤.

월광 소나타.

[Uoooooooooooooohhh……!]

나는 피식 웃으며 돌아보았다.

여기에서 데릭 비숍이 가지고 있는 과감성이 좋은 방향으로 나타났다.

단 일주일.

그 짧은 시간 만에 데릭 비숍은 맥 하디가 묶여 있던 TMA, ROH와 같은 단체와 접촉해 저작권을 사왔다.

그래.

‘브로큰’ 맥 하디.

작년, 프로레슬링 업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었던 기믹이 메인스트림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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