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Day 7.
비루했던 커리어.
동생에 비해 썩 대단치 않은 인상.
인정받지 못함.
그로 인한 20년.
하디 보이즈는 20살이 되기도 전부터 나이를 속이고 WWF에서 스타 선수들을 돕는 자버로 활동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형은 동생을 띄워주었다.
팬들은 잘생기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동생을 스타로 생각했으며, 형은 그 옆의 보조로밖에 느끼지 않았다.
물론, 맥 하디도 잭과 찢어진 이후에는 나름대로 푸시를 받으며 선수로서 커리어를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잭 하디만큼은 아니었다.
동생 잭 하디는 백스테이지에서 평가도 개판이었고 프로 의식조차 없었지만, 바트 맥센의 큰 지지를 받았다.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니아 팬층 중에는 실력도 뛰어나고 성실함도 겸비한 형 맥 하디를 더 좋게 평가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WWF를 시청하는 절대 다수의 팬들은 맥 하디보다 동생인 잭 하디를 보고 더 큰 열광을 보냈다.
그뿐이었다면 괜찮았을 터였다.
친동생이니까.
혼자 밤에 이불을 적시더라도 겉으로는 웃으며 동생의 성공을 축하해주었을 터였다. 그게 맥 하디였다.
하지만 동생은.
마약 문제부터 시작해 온갖 구설수를 몰고 다니는 놈이었고, 형은 내내 그를 변호하고 상황을 수습했다.
나이가 30이 넘을 때까지.
TMA에서조차 동생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사고를 쳐댔다.
그리고 끝내 맥 하디는 무너졌다.
정신이 붕괴했다.
BROKEN.
30년 넘는 세월 동안 동생을 질투하고 싸울지언정 끝내는 그에게로 돌아왔던 형이 이제는 완전히 무너졌다.
현실과 융합된 기믹.
하지만 그 기믹은.
지극히 ‘판타지’에 가까웠다.
“이예에에에에에에이예에에에에~!”
링 위로 올라온 맥 하디는 광기 어린 웃음과 함께 우리의 앞에 섰다.
나와 잭 하디는 그런 맥 하디를 당황해 바라보았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 중 몇몇도 그런 반응이었다.
하지만 과거 TMA에서 맥 하디가 어땠는지를 기억하는 팬들이 그가 만들어낸 챈트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맥 하디는 말을 시작했다.
“브라더 네로, And 죄를 짊어진 자.”
“…….”
“…….”
마이크도 없이.
“저기, 음.”
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있던 나는 마이크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맥 하디가 눈썹을 찡그렸다.
“그런 도구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자신의 진심을 전할 수조차 없는가?”
“안 들리잖아?”
“으아아아아아아…….”
갑자기 이를 딱딱 부딪치면서 분노를 내비치는 맥 하디.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진짜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맥 하디는 ‘미친놈’이었다.
하지만 그게 팬들의 흥미를 끌었다.
이전까지, 동생에 비해 어딘가 부족한 모습을 보이던 형은 이제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혼돈’이 되었다.
“오케이, 죄를 짊어진 자.”
“그냥 신이라고 부르는 게 어때.”
내 제안을 무시하는 맥 하디.
그는 대신 내가 입고 나온 하디 보이즈 티셔츠를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망가진 추억이로군.”
그리고 맥은 동생을 돌아보았다.
순간 한없이 가벼웠던 표정이 날카롭게 일그러지면서, 맥 하디가 품고 있던 증오가 드러났다.
무려 30년간의 증오.
어렸을 적부터 이어진,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 형의 증오가 드러났다.
[Uoooooooooooooohhhh……!]
순간 관객들이 ‘긴장’했다.
WWF 때와는 달랐다.
그 시절의 대립에는 바트 맥센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그래선지 동생인 잭을 크게 띄워주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왜 저게 망가졌는지 알겠어? 브라더 네로? 어디 한번 대답해보시지.”
“형, 제발.”
“저건 우리를 대변하지 못해. 브라더 네로! 저건 너를 대변하지! 그렇기에 이미 빛이 바랬다는 거야!”
음험하게 웃는 맥 하디.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잘 복귀했던 그가 돌연 망가져서 여기 나타났다.
모두가 거기에 흥미를 느꼈다.
관객의 반응은 희미했지만 그게 이 세그먼트가 별로라서는 아니었다.
맥 하디가 보이는 연기력과 카리스마에 관객들이 몰입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느꼈다.
맥 하디는 역사상 가장 과소평가 받은 프로레슬러 중 하나였다.
하지만 동생 같은 화려함은 없을지언정 그 역시도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 빛바랜 추억이라도 지키고 싶다면 당장 이 링을 떠나도록 해.”
맥 하디가 링 밖을 가리켰다.
거기에서 내가 나섰다.
“그러니까, 맥. 완전히 정신이 망가진 맥 하디. 너는 지금 이 챔피언 벨트를 원하고 있다는 이야기로군.”
나는 팬들에게 ‘설명’했다.
동시에 내 멋대로 해석한 그를 입장을 바꿔서 디스해 나가려는 것이었다.
8월에 있을 초대형 페이퍼뷰인 대시 앳 더 비치까지 남은 시간은 3주.
그동안 돌아온 맥 하디와 잭 하디를 완전히 이 ACW 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네 동생에게 빼앗겨 온 스포트라이트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그럴 필요가 있는 거로군. 하지만 그거 알아?”
상대가 나쁘다.
나는 벨트를 들어올렸다.
맥 하디와 잭 하디.
그리고 나.
이 삼파전은 갖가지 감정과 이야기가 뒤섞여 엉망진창이 될 예정이었다.
“너희 둘 다 덤벼도 좋아. 그간 업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려주지.”
도전을 환영하는 챔피언.
“제기랄, 못해먹겠군.”
미쳐버린 형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하디 보이즈 티셔츠를 가지고 노는 나에 대한 분노를 가진 잭 하디.
“아~하하하하하!”
그리고 부서진 형, 맥 하디.
링 위에서 대치한 우리를 보고 누군가의 주도로 챈트가 시작되었다.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개중에서 가장 큰 건 ACW 월드 챔피언인 나에 대한 팬들의 환호였지만.
맥과 잭도 밀리지는 않았다.
‘재미있겠는데.’
나는 저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 * *
ACW의 TV 시청률과 인터넷의 관심도가 다시금 WWF를 크게 앞질렀다.
원래는 엎치락뒤치락했는데, 하디 보이즈의 복귀 효과가 생각보다 컸다.
거기에 내가 입고 나온 하디 보이즈의 티셔츠도 판매량이 꽤 잘 나왔다.
데릭 비숍은 아예 그 티셔츠의 디자인을 살짝 바꿔서 한 번 더 발매하자는 제안을 해올 정도였다.
“빛바랜 버전으로.”
맥 하디의 대사를 인용해서.
“이제 여기에서 잭 하디가 원래 티셔츠를 입고 나오면 되는 건가?”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는데. 부서진 형을 말리려는 동생이 원래 티셔츠를 입고서 그와 대립을 하는 거지.”
“그리고.”
내가 입을 열었다.
하디 형제와 나, 데릭 비숍과 각 팀장들이 참가한 회의. 일이 순풍을 타서인지 분위기는 무척이나 좋았다.
“새 티셔츠도 준비하죠.”
“새 티셔츠?”
“예, 이번 거 팔리면 맥과 잭의 개인 티셔츠를 또 팔아버리죠. 사람들이 울면서 살 수밖에 없도록.”
죽여주는 디자인으로 말이다.
“갓 오브 자본주의.”
비숍이 씨익 웃었다.
“자네를 위한 말일세.”
“별말씀을.”
문제가 되었던 하디 보이즈 티셔츠도 이런 식으로 대립에 집어넣는다면 앞으로도 잘 판매가 되리라.
“이후 대립은 맡겨두겠네.”
“그럼요. 대시 앳 더 비치에서 문제만 안 생기게 해주십쇼.”
결국 그게 문제였다.
데릭 비숍도 누군가는 최악의 프로모터라고 말하지만 잘만 쓸 수 있으면 자기 역할은 해주는 남자였다.
브로큰 기믹도 가져왔고.
내가 끼어든 상태로 신선함을 더하면 대시 앳 더 비치까지 대립은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 싶었다.
회의가 끝나고.
좀 이야기가 더 필요할 것 같아 하디 형제와 나는 잠시 남아서 이야기를 계속해서 진행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대립을 진행하고 어떻게 경기를 가질 것인지, 러프하게나마 매듭을 지어두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전에.
“잭.”
“그래, 신.”
“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함부로 듣게 되어서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아니야.”
고개를 내젓는 잭.
“그나마 이해해줄 수 있는 네가 들어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해.”
“…….”
아버지.
아버지란 무엇인가.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아는 건 한 명이었다.
잭이 시선을 피한 채 말했다.
“내가 변했다고 말하지는 않겠어.”
자신은 예나 지금이나.
잭 하디다.
“프로레슬링이 싫은 건 아니야. 하지만 그만큼 밴드도 좋고. 때때로 어떤 무력감이 나를 지배한다고.”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되었어.”
그건 믿어줬으면 좋겠다.
잭 하디는 그렇게 설명했다.
약도 그만뒀다.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은 앞으로 계속 증명해야겠지만, 딸로 인해 전과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믿어 달라.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또한.
“잭, 솔직히 말할게.”
나는 이 업계를 이끌어왔다.
오만한 개소리였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 되도록 지금까지 힘을 써왔고 그래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위치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잭, 만약 네가 정말 딸을 위해서 이 일을 하려고 돌아왔다면 난 그걸 백 퍼센트 존중하고 이해해.”
하지만 다른 사람은 아니었다.
“세상은 개인에게 관심이 없어.”
우리는 스스로 일어서야만 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손을 뻗어줄 수 있지. 제기랄, 내가 생각해도 이거 참 기독교적인 색채가 담긴 말이군.”
“푸하하하!”
잭 하디가 웃음을 터뜨렸다.
거기에서 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잭 하디.
2011년에 WWF를 나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깊이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자식이 이렇게 순수한 웃음을 터뜨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언제나 뭔가 음울하고 다크한.
……아니 뭐, 그 원인의 95퍼센트는 당시까지 놈이 미쳐서 살았던 불법 약물의 영향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런 레벨에서 꼴초 레벨로 내려온 잭 하디는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거기에.
“가족이라, 좋은 말이지.”
맥 하디가 손을 얹었다.
“난 언제나 여기 이 못난 동생을 돌봐왔다고. 죽음에서 돌아온 자여.”
“……또 브로큰 모드야?”
“형이 몰입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니까 좀 이해해줬으면 해.”
“우리는 꽃잎 속에서 춤추리라!”
“야한 농담이야, 형?”
“…….”
잭 하디도 영 정상은 아닌 듯했다.
어쨌거나.
“일은 어떻게 할 거야? 대립이야 뭐 우리 셋 다 같은 심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으니 별문제는 안 되고.”
남은 건 경기였다.
“3주가 남았으니까.”
“신 vs 맥 하디, 맥 하디 vs 잭 하디, 잭 하디 vs 신으로 꾸려볼까?”
“좋아. 마지막은 삼파전으로.”
“경기 방식은?”
“뭘 그런 걸 묻고 그래?”
나는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하나밖에 없었다.
사다리 매치.
사다리를 도구로 사용하는 경기.
링 중앙의 높은 곳에 벨트를 매달아두고 사다리를 설치한 뒤 올라가서 벨트를 따내는 이가 승리하는 경기.
“역시 그거밖에 없나.”
고개를 끄덕이는 맥 하디.
하지만 잭의 반응은 좀 달랐다.
“…….”
“잭?”
“어, 음. 그래.”
“문제없는 거지?”
“그래, 좋아. 사다리 매치.”
아무래도 좀 신경이 쓰였지만.
일단 그런 건 좀 차치해두고서 나는 대립의 디테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위클리 쇼의 경기는 어떻게 결판을 낼 생각이야?”
“그 디테일이 사실 큰 문제지.”
“일단 챔피언, 네가 리드를 잡는 게 나쁜 흐름은 아닐 것 같은데.”
맥이 설명했다.
쓰리 카운트를 따내는 건 나.
하지만 이후 각각의 형제가 난입해서 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그사이 다른 하나가 회복해서 일어나고.
“……엉망진창이군.”
“그게 매력이지.”
“원래 이렇게 일해?”
“그래, 3미터 위의 사다리에서 떨어질 때도 그냥 엉망진창으로 한다고.”
“하하하!”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분명히 두 사람이 가진 캐릭터를 발전시키면서 챔피언으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위상을 보여줄 방법.
엉망진창이겠지만.
죽여주겠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