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26화 (626/634)

Father’s Day 8.

분명 잭과 맥은 이 업계에서 나름대로 큰 족적을 거둔 레슬러 형제였다.

‘형제’ 레슬러로 보자면 그들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이를 딱히 떠올리기 힘들 정도였다.

더즐리 보이즈는 각본 상 형제.

테이커와 카인도 각본 상 형제.

실제로는 남남이었으니까.

그 외에도 형제 두 사람이 전부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경우는…….

‘글쎄다.’

딱히 없지 않나?

그렇기에 특별한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없는 3년 동안.

프로레슬링 업계는 환상적인 시대를 맞이했다. 바로 우리들의 시대였다.

아무리 ‘브로큰’ 기믹이 터지고 팬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고 한들 그런 시대의 흐름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나.

숀 시나.

러셀 오메가.

랜스 오튼.

네 명의 사내가 중심이 되어 WWF, ACW, PWA라는 세 개의 단체가 시청률 싸움을 벌인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융성했던 시대.

드리밍 에라.

꿈의 시대.

그리고 현재도 진행 중인 시대.

그 시기에 입문한 시청자들은 하디 보이즈의 존재를 희미하게 알고 있지 확실히 무엇인지는 잘 몰랐다.

일단 마니아 팬층이 많은 ACW였기에, 또한 브로큰 기믹이 워낙 흥미로웠기 때문에 반응은 잘 나왔지만.

‘대시 앳 더 비치’의 메인이벤트를 위해서는 그걸 발전시켜야만 했다.

팬들이 보다 잭 하디와 맥 하디라는 남자를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동시에 그들이 내가 가진 월드 챔피언십에 도전할 만한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했다.

두 사람은 시험대에 오른 셈이었지만 사실,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왜냐면 두 사람은 이제 레전드의 반열에 놓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베테랑 선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간단했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할 뿐.

8월 2주차의 나이트로.

오프닝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동생인 잭 하디였다.

‘No More Word’s’.

[Waaaaaaaaaaaaaaaaggghhh!!]

톤이 높은 환호 소리.

그는 여성 팬으로부터 시작되는 라이트 팬층에게 특히나 더 잘 먹혔다.

남자친구나 가족을 따라서 쇼를 보러 왔다가 웬 퇴폐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꽃미남이 나오니 좋아하는 거지.

30대에서 40대로 가는 길목이었지만 아직 그 미모는 어디 가지 않았다.

잭 하디는 보랏빛 조명 속에 링으로 올라가 특유의 제스처를 보이고는 팬들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나는 오프닝 세그먼트를 락커룸에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지켜보았다.

다들 잭 하디를 의심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믿었다.

‘아버지’니까.

……뭐,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복귀하는 쇼에 늦는 건 일반적인 감성은 아니라고 느끼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Welcome Back!]

[Welcome Back!]

[Welcome Back!]

몇몇 팬들의 주도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복귀 환영 챈트. 잭 하디는 선역답게 완연한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반대쪽이 훤히 보일 정도로 귀를 확장시켜둔 큰 피어스. 온몸 가득한 문신. 그런 걸 보고 있자면 도저히 업계에서 원하는 선역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특히나 숀 시나처럼 어린아이와 여성 팬들이 많은 슈퍼스타였다.

마이크를 손에 쥔 채 서있던 잭 하디는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돌아오니 좋네.]

단순히 그게 전부였다.

그는 사실 언변이 딱히 좋지는 않았다. 연기력도 그저 그래서 악역을 하지 못하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히려, 그 어리숙함이 모성 본능을 자극한다고…… 대충 그런 분석을 들은 기억이 났다.

[물론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망가진 형을 되돌려놨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야.]

그렇게 TMA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스치듯이 해줌으로써 형제의 일이 계속해서 이어짐을 알렸다.

이건 각본이었다.

하지만 이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런 디테일을 절대 빼먹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잠깐이었지만 형의 그런 광기에 동조하기도 했지. 병원에 갇혀서 힘든 시간을 보낸 이후에야 내가 누군지 다시 깨달았지만.]

브로큰 맥 하디는 형제 대립에서 승리를 거뒀고 동생인 잭 하디마저 망가뜨리며 ‘브라더 네로’로 만들었다.

그렇게 광기로 물든 형제는 인디 전체를 초토화시키다시피 하면서 광기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후 인디 계약이 끝나고 메인스트림으로 복귀하면서 그런 설정은 잠시 멈춰둘 생각이었고.

[함께 치료를 받았다고 생각했던 형의 정신은 온전히 붙지 않았어. 다시금 부서지고 말았지. 그리고…….]

심호흡을 하는 잭.

[솔직히 두려워.]

서로 가정을 이루었던 형제의 싸움은 가족들마저도 위험하게 만들었다.

맥 하디의 아내인 레니와 그 자식들마저도 광기로 인해 무너져 갔으니.

이런 싸움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은 잭으로서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가족들마저도 거기에 휘말릴 수가 있으니까.

거기에서 나는.

잠시 벙쪘다.

“신? 이거 꽤 괜찮은데요?”

옆에 앉아 있던 드류가 말했다.

“그러게.”

“잭 저 양반, 원래 저렇게 연기력이 좋았나 싶은데. 음 이건 좋네요.”

“연기가 아니니까.”

“……그렇군요.”

납득하는 드류.

그래, 이건 연기가 아니었다.

하디 보이즈의 인생을 담아냈다.

형제라고 항상 사이가 좋았겠는가.

계속해서 다투고 화해하고 그러면서 이곳까지 프로레슬러로 함께 해왔다.

잭은 그런 형을 이해했다.

그런 형의 기믹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좋은 연기가 나왔다.

[형, 나는 형을 고치겠다고 말하지는 않겠어. 형과 싸우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 그 신이라는 놈하고도.]

잭 하디가 셔츠를 벗었다.

[Uoooooooooooohhh……!]

그 안에 있던 건 내가 지난주에 입고 나온 하디 보이즈의 티셔츠였다.

[나는 그냥 다 그만두겠어.]

잭은 마이크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링을 나가려던 그때.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나왔다.

1악장.

[Waaaaaaaaaaaaaaggghhh!]

환호하는 팬들.

여전히 이질적인, 하지만 그만큼 브로큰 맥 하디라는 남자를 잘 설명해주는 길이 없는 그런 곡이었다.

팬들은 입장로를 돌아보았다.

완연한 어둠.

그 흔한 선수를 소개하는 타이탄트론이나 조명조차 없었다. 그리고 대신 더 특이한 게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드론’이었다.

하늘을 날고 있는 드론은 맥 하디가 ‘뱅가드 원’이라고 이름을 붙인 공격용 전투기…… 비슷한 뭔가였다.

인디 시절에는 그게 적을 탐지하거나 하면서 좀 판타지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지만, 메인스트림의 기류와는 맞지 않아 바꾼 부분이 존재했다.

광기에 물든 맥 하디의 캐릭터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소품 중 하나.

우리는 그렇게 그걸 표현했다.

드론 아래에는 소품 팀에서 제작한 초소형 화염 방사기가 달렸다.

그리고 입장로 위에는 잭 하디가 말하는 사이 직원들이 가져다둔 하디 보이즈의 티셔츠가 걸려 있었다.

옷걸이에 매달린 티셔츠.

거기에 불길이 가해졌다.

푸화아아아악-!

[Uooooooooohhh!!]

‘쌈마이의 절정이로군.’

하지만 그게 포인트였다.

프로레슬링의 근본과 같았다.

비록 나, 러셀, 시나가 계속해서 보여주었던 현실에 기반을 둔 프로레슬링 스타일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뭐, 어떤가.

‘죽여주는데.’

그런 것을.

월광 소나타와 불에 타오르고 있는 하디 보이즈 티셔츠. 그리고 당황하고 있는 잭 하디의 표정 속에서.

맥 하디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발한 머리칼.

흰색 브릿지.

광증에 물든 형은 완전히 잿빛으로 물든(사실은 그냥 효과를 좀 주고 재질을 다르게 했을 뿐인) 하디 보이즈 티셔츠를 입고 있는 상태였다.

눈에는 검은색 화장을 했고 무표정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서 나오는 게 어쩐지 옛 시절을 느끼게 만들었다.

태도 불량 시대.

혹은 그보다 더 옛날.

음산한 목소리까지.

[브라더 네로.]

[Uooooooooooooooohhhh!]

[나는 알았지. 네가 올 것을.]

약간은 고전 영어 느낌으로 이야기하는 맥 하디는 정말로 미친 사람이라는 분위기가 확 풍겨왔다.

[너는 링에서 그런 식으로 나를 불행하고 나약한 사람으로 이야기하지.]

[DELETE! DELETE! DELETE!]

[하지만 다 알고 있군. 브라더 네로. 네게 남은 건 ‘궁극적인 삭제’뿐이다!]

Ultimate Deletion.

[Yeeeeeeeeeeeeeeeeeeaaahhh!]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이거 참.’

이렇게 되면 오히려 잭 하디가 악역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유쾌함과 광기, 진지함의 조화.

[오늘 너와 나는 콜로세움에서 맞붙는다! 또 다시 도망친다면 너는 네 성에서 편히 잠들지 못하리라!]

‘성’.

가족을 뜻하는 말이었다.

분명히 악역에 가까운 마이크워크였건만, 맥 하디의 기묘한 웃음소리와 어울리자 큰 매력이 느껴졌다.

한숨을 내쉰 잭 하디는 다시 마이크를 집어 들고는 투지를 드러냈다.

[생각도 하지 마.]

[무엇을?]

[레니와 액슬을 보면 알 수 있지.]

잭 하디는 이를 악물었다.

맥 하디의 광기는 전염을 일으켰다.

아내인 레니 스카이와 갓 세 살 된 아들인 액슬도 그 광기에 물들어 자주 프로그램에 출연을 할 정도였다.

[내 가족을 건들지 말라고!]

[흐하아아아아하아아아아아아-!!]

고함에 가까운 웃음을 내는 맥.

그리고 분노하는 잭.

그렇게 매치가 성사되었다.

* * *

그리고 시간이 흘러 메인이벤트.

링으로 나온 잭 하디와 맥 하디 형제는 팬들의 앞에서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똑똑하게 보여주었다.

“으하하하하하흐하하하하-!!”

경기는 맥 하디가 리드를 했다.

전문가들이 본다면 확실히 맥 하디에게 판정승을 안겨줄 경기였다.

하지만 화려한 건 잭이었다.

계속해서 리드를 내어준 상태로 경기를 진행하던 잭은 팬들의 걱정이 극에 달하는 시점에서 반격했다.

로프를 밟고 올라가 탑 턴버클에 선 뒤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맥 하디를 향해서 떨어져 내렸다.

위스퍼 인 더 윈드.

투콰앙-!!

[Waaaaaaaaaaaaaaaggghhh!!]

환호하는 팬들.

비틀거리며 일어난 잭 하디는 그대로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반격도 만만찮았다.

맥 하디는 반칙을 서슴지 않았다.

서브미션을 시도하려는 동생의 피어싱을 당겨서 고통을 주었고 잔혹한 무브를 연속해서 사용했다.

우드드드득!!

허리를 꺾는 보스턴 크랩.

거기에서 반응이 갈렸다.

[Jack! Jack! Jack! Jack! Jack!]

[DELETE! DELETE! DELETE!]

옛날 스타일, 판타지로서의 프로레슬링을 적극 가미한 기믹과 대립.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가 선역인 동시에 악역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 구분이 모호한 현대의 레슬링이었다.

그렇기에 팬들은 지금 맥 하디의 캐릭터를 마벨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나오는 악역처럼 받아들였다.

교묘하게 현실에서 어긋났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로 여겼다.

“으하아아아아아-! 하하하하하!!”

보스턴 크랩을 거는 와중에도 신나게 웃어젖히는 맥 하디.

그리고 내 차례가 찾아왔다.

쿠웅-!!

쿵! 쿵! 쿵!

[Uooooooooooooooooohhh?!]

경기장의 조명이 꺼졌다.

“신. 고.”

링 아래에서 함께 있던 직원의 신호에 씨익 웃은 나는 한 가지 도구를 챙겨 들고 중얼거렸다.

“Old School, Baby.”

맥 하디가 그렇다면 나 역시도.

옛날식대로 나가기로 했다.

천 번을 오간 링이었다.

링 아래의 천을 걷고 나간 나는 곧바로 링 위로 올라가 동생에게 보스턴 크랩을 걸고 있는 맥의 앞에 섰다.

“하드코어하게 가보자고.”

철커엉-!

다시 불이 들어왔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팬들이 내 모습을 보고 환호했다.

검은 경기복.

완전히 싸울 태세로 맥 하디의 앞에 선 나는 순간 당황한 심판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철제 의자를 들었다.

그대로 풀 스윙.

쩌억-!!

일단 방해가 되는 심판부터.

“으아아아아아……!”

이를 딱딱 부딪치며 분노하는 맥.

그 이마에도 한 방.

쩌억!!

[Yeeeeeeeeeeeeeeeaaahhh!!]

보스턴 크랩이 풀렸고 잭 하디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나는 녀석에게도 공평하게 의자 한 방을 먹여주었다.

빠악!!

땡땡땡땡땡땡땡-!

요란하게 울리는 링 벨.

경기는 DQ로 막을 내렸고 나는 쓰러진 두 사람 사이에 의자를 두고 앉아서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챔피언을 내버려두고 대립이라니.

“재미없잖아? 응?”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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