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27화 (627/634)

Father’s Day 9.

하디 보이즈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들의 대립은 인디 시절에 이미 검증이 되었다. 결국 프로레슬링의 재미란 비슷하기에 분명히 먹힐 터였다.

실제로 반응도 잘 나왔고.

앞으로도 두 사람에게 맡겨두면 알아서 잘하리라는 예상이 2주차의 나이트로를 통해서 확신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나와 데릭 비숍을 포함한 모두는 이 하디 보이즈의 대립에 챔피언이 끼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형제 두 사람의 대립은 이미 인디에서 써먹을 대로 써먹었으니까.’

그 시즌2를 만든다면 보다 발전된 형태의 대립을 제공하는 게 업계의 최첨단을 달리는 자로서의 의무이리라.

하디 보이즈.

그리고 나.

세 사람이 만들어내는 앙상블.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업계로 돌아온 형제는 형이 다시금 광기에 물들며 대립은 삼파전의 형태가 되었다.

2주차 때는 형제가 싸웠고.

이제는 내 차례였다.

“지금까지 계속 보여줬지만 난 시비를 걸어온 놈을 그냥 놔두지 않아.”

8월 3주차.

링에 오른 나는 경기장에 모인 팬들의 앞에서 공격의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주 형제의 경기에서 난입한 나는 철제 의자로 두 사람을 까버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잭 하디가 병원에 실려가는 불행한 사고가 발생했다.

“안타깝게도 허리 쪽에 문제가 생겼다는데. 셋째는 바라기 힘들겠군.”

가벼운 농담.

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Boooooo……!]

아주 약간의 야유가 나왔다.

나는 눈썹을 치켜떴다.

‘이거?’

꽤나 재밌는 반응이었다.

이걸 이용해볼까 싶었다.

“너희 중 몇몇은 이런 내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로군. 뭐,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내 이야기도 한번 들어볼 가치는 있지 않겠어?”

나는 링 아래로 내려갔다.

철제 의자를 갖고 와 앉았다.

“간단해.”

나와 러셀 오메가, 그 외의 수많은 개자식들이 일궈놓은 링에 돌아와 까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전에 박살을 내줬던 락콜드의 시대에 데뷔해 활약했다고 해서 말이야. 돌아오자마자 챔피언십? 애초부터 말이야.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반응이 크게 올라왔다.

그래.

내가 만약 두 사람을 까버리고 싶다면 이런 이유가 되어야만 마땅했다.

업계의 아이콘.

업계의 수호자.

프로레슬링의 신.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신.

그런 나였기에.

때로는 오만했고.

때로는 군림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뭐야? 이 개새끼들 돌아와서 내 앞에 나타나더니만 갑자기 지들 멋대로 ‘브로큰’해버린다고?!”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난 하디 형제를, 개중에서도 잭 하디라는 놈을 믿지 않아. 그 개자식은 커리어의 절정기에 WWF를 떠났지.”

그 이유가 웃겼다.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

“뭔 개 같은 이유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후, 잭하디는 TMA로 복귀하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맥 하디의 도움을 빌어서.”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맥이 브로큰해버리는 게 이해가 안 가지는 않아. 그래놓고 잭은 인디에서 온갖 사고를 또 다 쳐댔지.”

미쳐버린 형.

그리고 원래부터 미친 동생.

나는 하디 형제들이 듣는다면 실제로 기분 나빠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조명이 꺼지고.

[Uooooooooooooooooohhh……!]

‘그 음악’이 나왔다.

월광 소나타.

1악장.

느릿하고 감미로운 멜로디 속.

입장로에 한 줄기 빛이 비췄으나 맥 하디는 그곳을 통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내 뒤에 나타났다.

“신.”

“……내 흉내냐?”

“난 네가 올 줄 알았지.”

“캐치프레이즈로군.”

나는 피식 웃으며 돌아보았다.

“아주 좋아. 구리다는 점만 빼면.”

[Uoooooooooooooooooohhh!!]

“네 어깨에 걸린 그 영광의 증표를 빼앗는 것은 내가 브라더 네로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린 이후였건만.”

“어, 우리는 이미 이걸 월드 챔피언 벨트라는 죽여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거든? 사회적 합의에 따라달라고.”

“그르르르르륵…….”

“개새끼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고 웬 등신 같은 드론을 보내서 불을 지르고! 정신이 나갔지만 그게 또 교묘한 마인드 게임이 되는군! 맥 하디!!”

하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챔피언이고.”

너는 한낱 미친 인간이니까.

“나는 너를 알고 있지. 신.”

맥 하디의 말이 이어졌다.

“너는 분명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존재였어. 누구도 너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지. 누구도 네가 성공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지. 심지어는 나조차도.”

그 또한 ‘진심’이 담겼다.

광기가 연기인지조차 불분명한 채로 스릴 라이드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너는 성공했지. 그 어깨의 증표가 지금 너를 증명해주고 있어.”

“…….”

이야기가 점점 이상해졌다.

“그리고 그게 없는 너는 뭐지?”

“굳이 대답해야 하나?”

“원래 정상은 고독한 법이야. 그리고 무너져 내려올 때의 쾌감은 그 어느 누구도 주체할 수가 없다고.”

무서운 대사였다.

왠지 모르게, 나는 그것이 실제 맥 하디의 진심이라면 이 두 사람을 받아들인 게 옳은 결정일는지 싶었다.

실제로 맥도 잭처럼 무너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보다 골치가 아픈 상대가 없을 테니 말이다.

“정상에 서본 적도 없으면서.”

“아니지. 신. 잘 들어보게나.”

맥이 기괴하게 웃었다.

“나는 그걸 허락받지 않아.”

“…….”

“자네처럼 인정을 갈구하지 않지.”

이전과는 달랐다.

TMA 때와는 달리 맥 하디는 광기에 어떤 철학을 담아서 가지고 나왔다.

그걸 대하는 시점에서는 솔직히 말해 좀 골치가 아프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빠져나갈 구석은 존재했다.

이미 각본진에서 짜준 대사는 깡그리 무시한 채, 맥 하디와 나는 실제에 기반한 대립을 계속 이어나갔다.

나는 타이틀을 내밀었다.

“그럼 이걸 원하는 이유는 뭐지?”

“그 본질을 되찾기 위해서야.”

“뭐……?”

“글로리어스를 얻기 위해서 이 링에 오르는 모든 이들이 피를 흘렸지. 실패한 자도 있고 성공한 자도 있다네.”

맥 하디가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았고 모두가 그 기묘한 이야기를 정신줄을 반쯤 놓은 채로 들었다.

“나 역시 과거에는 그랬었지.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어. 집착하지 마. 그게 가지고 있는 본질을 알라고.”

타이틀을 망가뜨리고, 부수고.

해체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는다.

그게 브로큰 맥 하디의 행동 원리.

앞으로의 모든 대립이 그럴 터였다.

동생을 부수고.

나를 부수고.

그걸 위해서 행동하겠지.

“……아무래도 넌 그냥 두기에는 너무 위험한 인물 같은데. 맥 하디.”

나는 그 앞으로 다가섰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오늘 밤.

여기에서.

[Waaaaaaaaaaaaaaggghhh!!]

팬들의 환호가 경기장을 채웠다.

* * *

시간은 흘러 메인이벤트.

땡땡땡!

요란한 링 벨 소리와 함께 나와 맥 하디의 싱글 매치가 시작되었다.

초장부터 락 업으로 붙어서 서로 힘을 겨루면서 나는 자연스레 알았다.

‘잘하는데?’

맥 하디는 현재 미친 상태와는 관계없이, 그라운드 레슬링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방면으로 도가 튼 레슬러였다.

서로 힘을 겨루는 간단한 락 업에서부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를 아주 잘 알았다.

[Uooooooooooooohhh……!]

나는 단숨에 놈을 밀어붙였다.

코너까지 밀려나 심판이 교착 상태를 타계하기 위해서 나를 말렸고.

내가 잠깐 뒤로 물러서자 맥 하디는 달려 나와 이쪽의 무릎을 걷어차는 기습 공격으로 순간 기세를 잡았다.

퍼억!

“끅?!”

이어지는 해머링.

[DELETE! DELETE! DELETE!]

하지만 나는 주도권을 쉽게 내어주지 않고 헤드벗으로 반격했다.

쩌억!

이어 코를 움켜쥐며 고통스러워하는 맥 하디의 발을 콱 짓밟아 버리고.

쿵!

어퍼컷을 날렸다.

퍼억!!

나가떨어지는 맥 하디.

무릎을 접었다 폈다 하는 셀링을 취하며 나는 놈을 향해서 다가갔다.

그리고 쓰러져 있던 맥 하디는 미소를 지으며 벌떡 일어났다.

뻐억!

복부에 이어지는 펀치.

순간 내 허리가 앞으로 숙여졌고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선 맥 하디는 그대로 이쪽의 머리를 붙잡았다.

DDT.

콰앙-!

[Waaaaaaaaaaaaaggghhh!]

“으하아아아하아아아~!!”

광기에 물들어 웃는 맥 하디.

잠깐 지면에 엎드려 있던 나는 놈이 퍼포먼스를 펼치는 동안 정신을 차리고 반격을 준비했다.

다가온 맥 하디가 내 머리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나는 반대로 놈을 붙잡고 들었다.

버티컬 수플렉스.

콰앙-!!

넘겨서 떨어지는 깔끔한 동작.

경기는 그렇게 맥 하디와 한 번씩 주고받다가 내가 점점 리드를 하게 되는 형태로 이어졌다.

아무래도 월드 챔피언인 내가 더 강한 모습을 보이는 편이 낫다……라는 우리 모두의 판단 때문이었다.

나는 맥 하디의 깔끔한 셀링 속에서 팬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나는 맥 하디가 가지고 있는 두 번째 장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동생인 잭 하디와 비교했을 때, 맥 하디는 어쩐지 좀 띄워주는 역할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두 사람의 태그 팀 무브인 ‘포에트리 인 모션’이라는 기술에서도 맥 하디는 동생이 뛸 수 있도록 발판의 역할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게 맥이 위험한 범프를 수행할 깡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링 밖에서였다.

왠지 모르게 ‘안 돼요! 너무 위험합니다! 맥!’이라고 외치는 해설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순간 이어진 반격에 내가 정신을 차릴 시간을 벌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

“흐하아아아아하아아아-!”

미친 듯이 웃은 맥 하디는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가 내게 몸을 던졌다.

다이빙 크로스 바디.

[Uooooooooooooooohhh?!]

팬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범프 링의 바깥과 안의 낙차를 고려했을 때 일반인이라면 순간 겁을 먹을 정도로 높은 높이였다.

하지만 맥 하디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 광기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도 거기에 맞서서 그를 받아주면서 경기를 멋지게 이어나갔다.

뒤엉켜 쓰러진 우리.

하지만 기어코 일어나.

링 안으로 들어간 나는 주도권을 잡았다는 생각으로 너무 흥분한 맥 하디의 심리를 역으로 이용했다.

탑 턴버클 위에서 다시 몸을 던지는 놈의 공격을 피해내 오폭시켰다.

투콰앙-!!

[Waaaaaaaaaaaaaaggghhh!!]

환호하는 팬들.

고통스러워하는 맥.

그리고 나는 놈이 일어서는 순간까지 반대편에서 로프를 붙잡고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기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러닝 스팅거.

위클리 쇼에서 경기를 끝내기에 충분한 위상을 지닌 내 피니시 무브.

쩌억-!!

[Uooooooooooohhh?!]

맥의 몸이 넘어갔고 나는 그대로 놈의 위에 누워서 핀 폴을 시도했다.

결과는 심플했다.

1, 2, 3.

땡땡땡-!!

[Waaaaaaaaaaaaaaggghhh!!]

챔피언의 승리.

“좋았어!”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끝없는 챈트 속에 심판이 가져온 ACW 월드 챔피언십 벨트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럼으로써 나는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업계의 최정상.

The Alpha.

그게 나였다.

“신, 3분.”

심판이 그렇게 이야기를 전해왔다.

오늘 쇼가 끝날 때까지 3분.

‘경기를 좀 길게 했나?’

그런 생각으로 먼저 링에서 나온 나는 팬들을 바라본 상태로 뒤로 물러서며 입장로를 통해서 퇴장했다.

사실, 다소 맥 하디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결과이기는 했다.

나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깔끔한 패배를 맛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 주인공은 맥이 아니었다.

바로 잭이지.

[Uooooooooooooooooohhhh?!]

비명을 내지르는 팬들.

‘뭔가’를 본 모양이었다.

예정된 대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뒤를 돌아본 나는 말도 안 되는 것을 발견하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ACW 나이트로의 세트장 위.

탑 턴버클보다 높은 위치.

잭 하디가 서있었다.

그리고 놈은.

‘미치겠군.’

나를 향해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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