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Day 9.
하디 보이즈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들의 대립은 인디 시절에 이미 검증이 되었다. 결국 프로레슬링의 재미란 비슷하기에 분명히 먹힐 터였다.
실제로 반응도 잘 나왔고.
앞으로도 두 사람에게 맡겨두면 알아서 잘하리라는 예상이 2주차의 나이트로를 통해서 확신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나와 데릭 비숍을 포함한 모두는 이 하디 보이즈의 대립에 챔피언이 끼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형제 두 사람의 대립은 이미 인디에서 써먹을 대로 써먹었으니까.’
그 시즌2를 만든다면 보다 발전된 형태의 대립을 제공하는 게 업계의 최첨단을 달리는 자로서의 의무이리라.
하디 보이즈.
그리고 나.
세 사람이 만들어내는 앙상블.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업계로 돌아온 형제는 형이 다시금 광기에 물들며 대립은 삼파전의 형태가 되었다.
2주차 때는 형제가 싸웠고.
이제는 내 차례였다.
“지금까지 계속 보여줬지만 난 시비를 걸어온 놈을 그냥 놔두지 않아.”
8월 3주차.
링에 오른 나는 경기장에 모인 팬들의 앞에서 공격의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주 형제의 경기에서 난입한 나는 철제 의자로 두 사람을 까버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잭 하디가 병원에 실려가는 불행한 사고가 발생했다.
“안타깝게도 허리 쪽에 문제가 생겼다는데. 셋째는 바라기 힘들겠군.”
가벼운 농담.
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Boooooo……!]
아주 약간의 야유가 나왔다.
나는 눈썹을 치켜떴다.
‘이거?’
꽤나 재밌는 반응이었다.
이걸 이용해볼까 싶었다.
“너희 중 몇몇은 이런 내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로군. 뭐,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내 이야기도 한번 들어볼 가치는 있지 않겠어?”
나는 링 아래로 내려갔다.
철제 의자를 갖고 와 앉았다.
“간단해.”
나와 러셀 오메가, 그 외의 수많은 개자식들이 일궈놓은 링에 돌아와 까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전에 박살을 내줬던 락콜드의 시대에 데뷔해 활약했다고 해서 말이야. 돌아오자마자 챔피언십? 애초부터 말이야.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반응이 크게 올라왔다.
그래.
내가 만약 두 사람을 까버리고 싶다면 이런 이유가 되어야만 마땅했다.
업계의 아이콘.
업계의 수호자.
프로레슬링의 신.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신.
그런 나였기에.
때로는 오만했고.
때로는 군림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뭐야? 이 개새끼들 돌아와서 내 앞에 나타나더니만 갑자기 지들 멋대로 ‘브로큰’해버린다고?!”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난 하디 형제를, 개중에서도 잭 하디라는 놈을 믿지 않아. 그 개자식은 커리어의 절정기에 WWF를 떠났지.”
그 이유가 웃겼다.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
“뭔 개 같은 이유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후, 잭하디는 TMA로 복귀하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맥 하디의 도움을 빌어서.”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맥이 브로큰해버리는 게 이해가 안 가지는 않아. 그래놓고 잭은 인디에서 온갖 사고를 또 다 쳐댔지.”
미쳐버린 형.
그리고 원래부터 미친 동생.
나는 하디 형제들이 듣는다면 실제로 기분 나빠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조명이 꺼지고.
[Uooooooooooooooooohhh……!]
‘그 음악’이 나왔다.
월광 소나타.
1악장.
느릿하고 감미로운 멜로디 속.
입장로에 한 줄기 빛이 비췄으나 맥 하디는 그곳을 통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내 뒤에 나타났다.
“신.”
“……내 흉내냐?”
“난 네가 올 줄 알았지.”
“캐치프레이즈로군.”
나는 피식 웃으며 돌아보았다.
“아주 좋아. 구리다는 점만 빼면.”
[Uoooooooooooooooooohhh!!]
“네 어깨에 걸린 그 영광의 증표를 빼앗는 것은 내가 브라더 네로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린 이후였건만.”
“어, 우리는 이미 이걸 월드 챔피언 벨트라는 죽여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거든? 사회적 합의에 따라달라고.”
“그르르르르륵…….”
“개새끼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고 웬 등신 같은 드론을 보내서 불을 지르고! 정신이 나갔지만 그게 또 교묘한 마인드 게임이 되는군! 맥 하디!!”
하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챔피언이고.”
너는 한낱 미친 인간이니까.
“나는 너를 알고 있지. 신.”
맥 하디의 말이 이어졌다.
“너는 분명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존재였어. 누구도 너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지. 누구도 네가 성공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지. 심지어는 나조차도.”
그 또한 ‘진심’이 담겼다.
광기가 연기인지조차 불분명한 채로 스릴 라이드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너는 성공했지. 그 어깨의 증표가 지금 너를 증명해주고 있어.”
“…….”
이야기가 점점 이상해졌다.
“그리고 그게 없는 너는 뭐지?”
“굳이 대답해야 하나?”
“원래 정상은 고독한 법이야. 그리고 무너져 내려올 때의 쾌감은 그 어느 누구도 주체할 수가 없다고.”
무서운 대사였다.
왠지 모르게, 나는 그것이 실제 맥 하디의 진심이라면 이 두 사람을 받아들인 게 옳은 결정일는지 싶었다.
실제로 맥도 잭처럼 무너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보다 골치가 아픈 상대가 없을 테니 말이다.
“정상에 서본 적도 없으면서.”
“아니지. 신. 잘 들어보게나.”
맥이 기괴하게 웃었다.
“나는 그걸 허락받지 않아.”
“…….”
“자네처럼 인정을 갈구하지 않지.”
이전과는 달랐다.
TMA 때와는 달리 맥 하디는 광기에 어떤 철학을 담아서 가지고 나왔다.
그걸 대하는 시점에서는 솔직히 말해 좀 골치가 아프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빠져나갈 구석은 존재했다.
이미 각본진에서 짜준 대사는 깡그리 무시한 채, 맥 하디와 나는 실제에 기반한 대립을 계속 이어나갔다.
나는 타이틀을 내밀었다.
“그럼 이걸 원하는 이유는 뭐지?”
“그 본질을 되찾기 위해서야.”
“뭐……?”
“글로리어스를 얻기 위해서 이 링에 오르는 모든 이들이 피를 흘렸지. 실패한 자도 있고 성공한 자도 있다네.”
맥 하디가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았고 모두가 그 기묘한 이야기를 정신줄을 반쯤 놓은 채로 들었다.
“나 역시 과거에는 그랬었지.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어. 집착하지 마. 그게 가지고 있는 본질을 알라고.”
타이틀을 망가뜨리고, 부수고.
해체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는다.
그게 브로큰 맥 하디의 행동 원리.
앞으로의 모든 대립이 그럴 터였다.
동생을 부수고.
나를 부수고.
그걸 위해서 행동하겠지.
“……아무래도 넌 그냥 두기에는 너무 위험한 인물 같은데. 맥 하디.”
나는 그 앞으로 다가섰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오늘 밤.
여기에서.
[Waaaaaaaaaaaaaaggghhh!!]
팬들의 환호가 경기장을 채웠다.
* * *
시간은 흘러 메인이벤트.
땡땡땡!
요란한 링 벨 소리와 함께 나와 맥 하디의 싱글 매치가 시작되었다.
초장부터 락 업으로 붙어서 서로 힘을 겨루면서 나는 자연스레 알았다.
‘잘하는데?’
맥 하디는 현재 미친 상태와는 관계없이, 그라운드 레슬링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방면으로 도가 튼 레슬러였다.
서로 힘을 겨루는 간단한 락 업에서부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를 아주 잘 알았다.
[Uooooooooooooohhh……!]
나는 단숨에 놈을 밀어붙였다.
코너까지 밀려나 심판이 교착 상태를 타계하기 위해서 나를 말렸고.
내가 잠깐 뒤로 물러서자 맥 하디는 달려 나와 이쪽의 무릎을 걷어차는 기습 공격으로 순간 기세를 잡았다.
퍼억!
“끅?!”
이어지는 해머링.
[DELETE! DELETE! DELETE!]
하지만 나는 주도권을 쉽게 내어주지 않고 헤드벗으로 반격했다.
쩌억!
이어 코를 움켜쥐며 고통스러워하는 맥 하디의 발을 콱 짓밟아 버리고.
쿵!
어퍼컷을 날렸다.
퍼억!!
나가떨어지는 맥 하디.
무릎을 접었다 폈다 하는 셀링을 취하며 나는 놈을 향해서 다가갔다.
그리고 쓰러져 있던 맥 하디는 미소를 지으며 벌떡 일어났다.
뻐억!
복부에 이어지는 펀치.
순간 내 허리가 앞으로 숙여졌고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선 맥 하디는 그대로 이쪽의 머리를 붙잡았다.
DDT.
콰앙-!
[Waaaaaaaaaaaaaggghhh!]
“으하아아아하아아아~!!”
광기에 물들어 웃는 맥 하디.
잠깐 지면에 엎드려 있던 나는 놈이 퍼포먼스를 펼치는 동안 정신을 차리고 반격을 준비했다.
다가온 맥 하디가 내 머리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나는 반대로 놈을 붙잡고 들었다.
버티컬 수플렉스.
콰앙-!!
넘겨서 떨어지는 깔끔한 동작.
경기는 그렇게 맥 하디와 한 번씩 주고받다가 내가 점점 리드를 하게 되는 형태로 이어졌다.
아무래도 월드 챔피언인 내가 더 강한 모습을 보이는 편이 낫다……라는 우리 모두의 판단 때문이었다.
나는 맥 하디의 깔끔한 셀링 속에서 팬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나는 맥 하디가 가지고 있는 두 번째 장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동생인 잭 하디와 비교했을 때, 맥 하디는 어쩐지 좀 띄워주는 역할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두 사람의 태그 팀 무브인 ‘포에트리 인 모션’이라는 기술에서도 맥 하디는 동생이 뛸 수 있도록 발판의 역할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게 맥이 위험한 범프를 수행할 깡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링 밖에서였다.
왠지 모르게 ‘안 돼요! 너무 위험합니다! 맥!’이라고 외치는 해설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순간 이어진 반격에 내가 정신을 차릴 시간을 벌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
“흐하아아아아하아아아-!”
미친 듯이 웃은 맥 하디는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가 내게 몸을 던졌다.
다이빙 크로스 바디.
[Uooooooooooooooohhh?!]
팬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범프 링의 바깥과 안의 낙차를 고려했을 때 일반인이라면 순간 겁을 먹을 정도로 높은 높이였다.
하지만 맥 하디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 광기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도 거기에 맞서서 그를 받아주면서 경기를 멋지게 이어나갔다.
뒤엉켜 쓰러진 우리.
하지만 기어코 일어나.
링 안으로 들어간 나는 주도권을 잡았다는 생각으로 너무 흥분한 맥 하디의 심리를 역으로 이용했다.
탑 턴버클 위에서 다시 몸을 던지는 놈의 공격을 피해내 오폭시켰다.
투콰앙-!!
[Waaaaaaaaaaaaaaggghhh!!]
환호하는 팬들.
고통스러워하는 맥.
그리고 나는 놈이 일어서는 순간까지 반대편에서 로프를 붙잡고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기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러닝 스팅거.
위클리 쇼에서 경기를 끝내기에 충분한 위상을 지닌 내 피니시 무브.
쩌억-!!
[Uooooooooooohhh?!]
맥의 몸이 넘어갔고 나는 그대로 놈의 위에 누워서 핀 폴을 시도했다.
결과는 심플했다.
1, 2, 3.
땡땡땡-!!
[Waaaaaaaaaaaaaaggghhh!!]
챔피언의 승리.
“좋았어!”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끝없는 챈트 속에 심판이 가져온 ACW 월드 챔피언십 벨트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럼으로써 나는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업계의 최정상.
The Alpha.
그게 나였다.
“신, 3분.”
심판이 그렇게 이야기를 전해왔다.
오늘 쇼가 끝날 때까지 3분.
‘경기를 좀 길게 했나?’
그런 생각으로 먼저 링에서 나온 나는 팬들을 바라본 상태로 뒤로 물러서며 입장로를 통해서 퇴장했다.
사실, 다소 맥 하디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결과이기는 했다.
나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깔끔한 패배를 맛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 주인공은 맥이 아니었다.
바로 잭이지.
[Uooooooooooooooooohhhh?!]
비명을 내지르는 팬들.
‘뭔가’를 본 모양이었다.
예정된 대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뒤를 돌아본 나는 말도 안 되는 것을 발견하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ACW 나이트로의 세트장 위.
탑 턴버클보다 높은 위치.
잭 하디가 서있었다.
그리고 놈은.
‘미치겠군.’
나를 향해서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