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28화 (628/634)

Father’s Day 10.

오늘 맡은 역할은 간단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동안 몸에 주어지는 충격량은 상상을 초월……하지는 않겠으나, 어쨌든 강렬할 터였다.

잭 하디는 ‘각오’했다.

그런 충격을 견뎌내고 자신이 이 회사에서 그 정도의 연봉을 줄 만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 보이겠다.

모든 것은 ‘가족’을 위해.

루시를 위해.

“잭, 준비해!”

비숍이 그렇게 외쳤다.

딱히 다른 곳에 갈 필요도 없었다.

잭 하디는 ACW 측에서 고릴라 포지션에 미리 설치해둔 사다리를 타고 입장로 구조물 위로 올라갈 예정이었다.

각 파츠들을 다수의 고정 장치들로 연결해둔 철골구조물 위에서 신을 향해 자신의 피니시 무브를 날린다.

그게 오늘의 역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간단하지만 쉽지 않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잭!”

신호가 떨어졌다.

잭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야광 테이프가 붙어 있는 통로를 기어갔다.

그리고 나오는 빛.

[Waaaaaaaaaaagggghhh!!]

경기는 진즉에 끝났다.

방송 종료까지 약 2분 10초.

신은 완벽히 타이밍을 맞춰 입장로로 걸어 들어왔고, 자신의 챔피언 벨트를 머리 위로 높이 들어올렸다.

그리고 잭 하디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Uooooooooooooooooooohhh?!]

관객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난주 체어샷의 영향으로 쇼에 안 나온다고 예고되었던 잭 하디가 마지막 순간에 깜짝 등장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지금 이 순간 똑똑히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프로레슬러 잭 하디는 내면의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좋아.’

겁먹지 말고.

몸을 던진다.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었다.

잭 하디는 이걸 수십 년 동안이나 해왔다.

2층에서 신나게 깡을 부리면서 뒷마당의 링으로 몸을 던졌었다.

형인 맥 하디가 받아주니까.

그리고 지금 저 아래의 남자도 분명히 그럴 터였다. 프로페셔널 레슬러니까.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상대였다.

그럼에도.

‘제기랄.’

이 위는 너무나도 높았다.

거의 4미터 50센티미터.

게다가 약간의 완충제를 밑에 숨겨두기는 했지만 바닥은 철이었다. 범프 링처럼 낙법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죽을 수도 있다.

낮은 확률로.

그런 생각을 하자 몰려드는 두려움.

실제로는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잭은 맹렬히 몰려드는 딸의 미소와 지금 자신의 역할 사이에서 갈등했고.

그대로 몸을 던졌다.

앞으로 한 바퀴 회전하며 떨어져 등으로 상대를 깔아뭉개는 피니시 무브.

스완턴 밤.

[Uoooooooooooooooooohhh?!]

비명을 지르는 팬들.

그 또한 찰나의 순간이었다.

구조물 아래로 떨어진 잭 하디의 몸이 신을 덮쳤고, 한데 뒤엉킨 두 사람이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잭 하디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쏟아지는 환호.

[Waaaaaaaaaaaaaaaggghhhh!!]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모두가 그를 인정했다.

환호했다.

그런 가운데에서 잭 하디는 마음껏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며 신과의 대립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쇼는 잭 하디의 화끈한 범프로 인해 환상적인 반응을 얻으며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런 프로레슬러를 연기하고 있는 인간 잭 하디는 지긋지긋한 등의 통증을 계속 버텨내고 있었다.

* * *

“……갈 때가 됐나.”

그게 잭 하디의 말이었다.

쇼가 끝나고 백스테이지.

의무실 침대에 엎드린 그는 마치 시든 꽃처럼 보였다.

나와 맥은 그 옆에서 걱정스럽게 닥터의 진찰 결과를 기다렸다.

“좀 심하게 떨어졌는데요.”

낙법을 치기는 했지만 등부터 제대로 떨어진 탓에 큰 충격으로 새파랗게 멍이 들 정도였다.

그걸 누가 견뎌내랴.

게다가 잭의 등은, 계속된 선수 생활 내내 ‘혹사’를 당하느라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었다.

뭐, 대충.

“척추가 달랑달랑하다고 보시면 돼요. 터지면? 붐! 바로 휠체어 신세.”

“몸에서 달랑대는 부분은 하나면 충분한데.”

“농담을 할 수 있는 걸 보니, 그래도 어느 정도 버틸 만한가 보네요.”

“그게 아니야.”

잭이 쓰게 웃었다.

“익숙해졌을 뿐이지.”

씁쓸한 이야기였다.

잭 하디는 오늘 ‘실수’를 했다.

몸을 던지는 각도가 애매했고, 머리부터 떨어질 뻔했다. 내가 그걸 밑에서 들어줘서 각도를 잡아냈지.

그게 아니었다면.

‘끔찍하군.’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신.”

“그래, 잭.”

“오늘 고마웠다.”

“별말씀을.”

나는 뒷목에 대고 있는 얼음의 차가움을 즐기며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천하의 잭 하디가 스완턴 밤을 실수할 줄이야. 전혀 상상도 못 했군.”

“…….”

침묵하는 잭 하디.

‘응?’

나는 눈썹을 치켜떴다.

표정이 좋지 않았고 닥터를 힐끔거리는 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얼마 후, 잭의 처치를 끝마친 닥터가 우리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자 맥 하디가 말문을 열었다.

“잭, 또야?”

“……그래.”

“무슨 소리야?”

“잭에게 발병한, 마음의 병인데.”

“내가 설명할게. 형.”

잭이 자리에서 일어서 앉았다.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는 잭의 모습을 보자니 의아한 기분이 들면서도 또 어딘가 마음이 짠해졌다.

“두려웠어.”

“당연한 거 아니야?”

“그 정도가 아니었어. 순간 패닉에 빠졌지. 딸아이의 웃는 얼굴이 머리를 스쳐지나갔고. ……뭐 그래.”

순간 말이 안 나왔다.

잭 하디.

수 미터에 이르는 사다리 위에서조차 겁 없이 몸을 던지던 그가 이제는 두려움을 느낀다고?

“아이가 생겼으니까.”

“…….”

“만약 내가 잘못된다면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거지?”

그 두려움이 찾아왔다.

방금 범프에서도 그랬다.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내 아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없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인데.

아니, 아니, 아니.

“그래도 했잖아.”

“돈이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잭이나 나나 애들 교육비나 노후 자금이 필요하니까.”

“그래도 알잖아. 신.”

잭이 쓰게 웃으며 진리를 말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거.”

그랬다.

우리가 하는 일은 ‘위험’했다.

링 위에서든 아래에서든.

과거에는 무리한 스케줄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그러고도 돈을 벌고자 계속해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았다.

잭 하디처럼 몸 상태가 말이 아닌데도 활동하다가 진짜로 몸에 큰 후유증이 남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시큰거리는 목.

“…….”

그리고 내 아이.

“제기랄.”

나는 욕지기를 내뱉었다.

* * *

그래도 할 일은 해야만 했다.

남은 대립은 점차 더 하드코어한 스팟을 보여주며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일단 잭 하디가 얻은 마음의 병을 어떻게든 덜어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자식의 얼굴이라.’

그럴 수 있는 걸까.

내가 누구인가.

나는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야생마처럼 우두머리로 불꽃 속에서 그대로 죽어도 전혀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티파니 맥센 킴도.

이해해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내 아집이었던 걸까.

얼굴도 본 적 없는 내 아이를 생각하자 계속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마치 내 가족이 티를 내지는 않아도 나를 계속해서 신경 썼던 것처럼.

그게 프로레슬러인가.

그 가족인가.

모르겠다.

“끄응.”

앓는 소리를 한 차례 낸 나는 차에서 내려 어느 집으로 들어섰다.

잠깐 비는 시간에 마침 또 가는 길이었던 터라 나는 한 레전드 선수로부터 조언을 듣는 길을 선택했다.

바로 믹 졸리였다.

하드코어 레전드.

그는 유혈이 난무했던 태도 불량 시대 당시, 뚱뚱하고 펑퍼짐한 몸매였음에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하드코어한 매치를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하는 그 깡다구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경기 중 로프에 귀가 끼어서 잘려져 나가도 무시하고 진행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프로레슬러.

하지만 현실의 그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였다. 은퇴한 이후로도 살이 그대로라 그냥 후덕한 아저씨로 보였다.

그리고 그는 이 대사를 쳤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순간이야.]

프로레슬링을 관통하는 명언.

그가 날 맞이하러 나왔다.

“헤헤이~ 챔피언~!”

“잘 지냈어요, 믹?”

“그럼! 은퇴해서 그냥 적당히 프로레슬링 방송이나 보며 살지.”

“요새 재미있겠네요.”

“그래, 맥 하디, 그리고 잭 하디. 마지막으로 신까지. 세 사람의 각축전이 이렇게 흥미로울 줄은 몰랐어.”

믹과 나는 살갑게 인사를 나눴다.

사실 다른 레전드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딱히 접점이 없기는 했다.

믹 졸리는 내가 데뷔하기 전에 몸이 망가져서 은퇴를 했으니까. 지금도 뒤뚱거리며 걷는 게 영 안타까웠다.

나는 그 뒤를 따라 작은 별장 안으로 들어서서 자리에 앉았다.

“밀크티?”

“엑스트라 밀크.”

주방의 믹 졸리는 귀가 잘린 부분을 가리기 위해 긴 머리를 유지해서인지 무슨 유모 아줌마처럼 느껴졌다.

바트 맥센의 아래에서, 저런 외모로 사람들에게 당당히 레전드로 인정받는 게 참 대단한 사람이다 싶었다.

“여기, 엑스트라 밀크.”

“고마워요, 믹.”

믹이 밀크티를 가져왔고 우리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가 궁금하다고?”

“그 경기요.”

“아, 킹 오브 더 킹 98.”

믹이 쓰게 웃었다.

믹 졸리가 무려 두 번이나 헬 인 어 셀에서 추락했던 전설적인 경기.

거기에서 믹은 마지막 순간까지 경기를 끝마쳤다. 심지어 바트 맥센마저 나와서 제발 그만하라고 했는데도.

그 상대인 캐스켓-테이커도 그만하자며 빌었지만, 믹 졸리는 했다.

그리고 ‘순간’을 남겼다.

“멋진 경기였지. 그 때문에 아직 고관절이 안 돌아가지만 말이야.”

“그때, 가족들을 부르셨죠?”

“그랬었지.”

이래서 내가 온 것이었다.

믹 졸리는 그때의 위험한 경기에 가족들을 모두 불렀다. 아내와 딸, 아들을 불러서 그 경기를 펼쳤다.

“대체 왜 그런 겁니까.”

“……뭘?”

“그냥 예정된 각본이었을 뿐인가요?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나요?”

“어, 글쎄.”

믹이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일단 대부분 애드립이었지.”

“애드립으로 셀 위에서 뛰어내려요? 제정신으로 그게 가능합니까?”

“그건 애드립이 아니었어.”

믹이 씨익 웃었다.

“각본이었지. 두 번째 추락은 사고였고. 아이들이 끝나고 내 얼굴을 보려고 하지도 않더군.”

프로레슬링은 가짜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그날 이후로 아버지의 일에 대해서 전혀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믹 당신 생각은요?”

“그러니까, 뭐에 대해서.”

“두렵지 않았나요. 어쩌면 가족들을 평생 볼 수 없다는 생각으로요.”

“당연히 두려웠지.”

그래도 해야만 했네.

“당신이 믹 졸리니까?”

“그렇지. Bang! Bang!”

믹이 현역 시절에 썼던 캐치프레이즈를 하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가 생겼다고.”

“……그렇습니다.”

“고민이 많을 시기로군.”

“그렇습니다. 음,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누구나 다, 남자라면 아버지가 되기 마련이지. 한 번쯤 겪는 일이야. 그리고 앞서서 그 길을 걸어본 내가 조언해줄 수 있을 것 같군.”

“뭡니까?”

“자네의 심장.”

믹이 내 가슴을 툭 건드렸다.

“아직도 뛰고 있나.”

“물론입니다.”

“프로레슬링을 사랑하나?”

“그 무엇보다도 사랑합니다.”

“아내보다도? 네 아이보다도?”

“…….”

“준비가 안 됐군.”

“그래야 합니까?”

“내 답을 들려주면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참고로 삼으려고 합니다.”

“말은 여전히 청산유수로군. 챔피언. 좋아. 그렇다면 감히 말하건대.”

믹이 내가 밀크티를 반쯤 마신 것을 보고는 무언가를 불쑥 꺼냈다.

브랜디였다.

“사랑에 우선순위를 두지 말게.”

“…….”

“Love Is Thunder라고. 챔피언.”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네 자식을, 네 아내를, 네 일을 언제나 최고로 사랑하라는 말일세. 아버지가 되더라도 수컷이기를 포기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밀크티에 브랜디가 섞였다.

“최고의 남자가 되라고. 링에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말일세.”

“거참, 더럽게 힘들겠군요.”

“하지만 그게 재밌지.”

인생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

아이가 태어나 육아로 미치겠고, 아내는 점점 히스테리가 심해지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삶은 이어진다고.

레슬러는.

링 위에 올라야만 한다고.

“제기랄.”

너무나도 시원한 대답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게 맞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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