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30화 (630/634)

Father’s Day 12.

신이 몸을 던졌다.

탑 턴버클 위.

비효율적인 행동이었다.

높은 곳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그 몸을 무기로 상대를 공격하다니.

하지만 그게 프로레슬링이었다.

연출에 중점을 둔 비효율의 극치.

마치 영화나 만화에 나올 법한 멋진 싸움 장면을 만들어내 그로써 팬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게 목적이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잭 하디가 고개를 들었고, 떨어져 내리는 신을 정확하게 보고는 그 몸을 받아냈다.

[Waaaaaaaaaaaaaaaaaaggghhh!]

쏟아지는 환호.

두 사람이 뒤엉킨 채 링 위를 나뒹굴었다.

신은 깊은 통증 속에서 신음했다.

복부가 지끈거렸다.

웬만한 스턴트 배우들도 연속해 수행하기에는 꺼릴 만한 무브의 연속.

그럼에도 그는 일어섰다.

프로레슬러니까.

그것도 보통 프로레슬러가 아니라.

최고의 프로레슬러니까.

그런 프라이드를 가지고 살아가기에 신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이었다.

“후우.”

깊게 심호흡을 한 신은 쓰러져 있는 잭 하디를 향해 다가가 핀 폴을 했다.

1, 2.

팔을 들며 벗어나는 잭 하디.

100킬로그램이 넘는 근육질의 거구가 떨어지는 충격을 그대로 받아냈음에도 그는 아직껏 의지를 드러냈다.

다시 맞붙는 두 사람.

그 아래에서.

맥 하디는 열변을 토했다.

“열기와 열기의 충돌! 그로 인한 하모니가 링 전체를 감싸고 내리는군!”

“보통은 저걸 땀이라고 하죠.”

옆에 있는 해설자가 약간 지친 기색으로 대답했다.

‘부서진’ 맥 하디는 해설도 자기 멋대로 해나갔다. 그게 또 퍽 흥미로웠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옆의 해설자가 보조를 맞췄다.

약간의 코미디.

하지만 그건 링 위의 두 사람을 확실하게 띄워주었다.

“오호오호오오오오~~!!”

“잭 하디의 반격!”

“멋지군! 역시 브라더 네로!”

“여기서 말하는 브라더 네로는 잭 하디를 뜻함을 알려드립니다.”

“Wonderful-!”

박수를 보내는 맥 하디.

그리고 실제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맥 하디는 동생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진심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표정.

사실 동생인 잭 하디는 약물 중독의 후유증과 수많은 범프들로 인해 몇 년 전부터 등이 정상이 아니었다.

의사는 이대로 계속 레슬링을 한다면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질 수도 있다고 했지만 잭은 은퇴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레슬링을 했고 형에게 민폐를 끼쳤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이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것이었다. 또한 하디 보이즈가 재테크 같은 행위에 능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딸인 루시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잭은 계속해서 선수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링 위에서 받는 스포트라이트는 마약에 가까울 정도로 중독적이었다.

‘믹 졸리의 말이 맞군.’

맥은 씨익 웃었다.

최고의 남편.

최고의 아버지.

최고의 프로레슬러.

그 모든 걸 가지고 싶다고.

잭은 온몸으로 그걸 표현했다.

마침내 경기는 신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신은 일부러 자꾸 부상을 당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잭의 등만을 노렸다.

그래야만 그 이야기가 현실과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설득력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샤프 슈터.

우드드드득-!

“끄하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견디던 잭 하디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요란하게 탭을 쳤고 맥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신을 습격하는 스팟. 하지만 신 역시도 방심하지 않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벌겋게 달아오른 가슴과 땀으로 범벅인 피부. 척 봐도 잭과의 경기가 거의 사투에 가까웠음이 느껴졌다.

“으하아아아아아아-!”

“얼른 올라오라고.”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맥을 도발하는 허세를 부리는 신. 맥은 곧장 링 위로 올라가 신과 대치했다.

아까 잭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맥 하디에게도 똑같이 통용되는 것이었다.

최고의 남편.

최고의 아버지.

최고의 프로레슬러.

그렇게 되기를 꿈꿨다.

동생과 비교해 언제나 한 발 뒤쳐진다고 평가받았던 맥 하디였지만, 지금에서야 기회가 찾아왔다.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챔피언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챈트의 크기. 팬들의 지지로 맥 하디는 마침내 이런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챔피언과 마주보고 선 그는 곧바로 머리부터 들이대며 신을 공격했다.

그 연기의 디테일.

보통 사람은 하지 않을 광기.

신이 주먹을 내지르며 맞섰지만, 체력적으로 훨씬 더 우월한 상황에서 맥은 챔피언을 끝내 몰아붙였다.

그리고 마침내.

과거 WWF에서는 할 수 없었던 짓까지 저지르고야 말았다.

트위스티드 오브 페이트.

상대방의 머리를 붙잡은 상태로 지면에 함께 떨어지는 커터 계열 무브.

비슷한 R.K.O.에 징하게 맞아봤을 신이라도 이 기술은 처음이리라.

투콰앙-!

[Uooooooooooooooooohhh!!]

놀라 비명을 지르는 팬들.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언제나 무시 받는 2류 미드 카더에 불과했던 남자는 이제 두 메인 이벤터를 상대할 위치까지 올라왔다.

그 독특한 기믹과 연기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과거를 떨쳐내고 지금 이 자리에 우뚝 서있었다.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팬들의 열광적인 챈트에 맞춰 맥 하디는 오른손을 가로로 휘저어댔다.

그리고 바닥에 누워있던 신은 방송이 종료되었다는 시그널을 보고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잭 하디와는 전혀 다른 방식.

하지만 그게 맥 하디였다.

지금껏 중용 받지 못하고 바트 맥센에게 갖은 무시를 다 당했지만, 그 역시도 훌륭한 레슬러였던 것이다.

* * *

쇼가 끝난 뒤.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잭 하디는 다시 버티지 못하고 의무실을 찾았다.

그런 와중에도 끝까지 진통제는 쓰지 않으려고 해서 나는 그가 딸을 낳은 뒤 변화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하지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잭은?”

“지금 안정 중.”

의무실에서 돌아온 맥의 얼굴이 한껏 진지해서 나는 좀 얼이 빠졌다.

언제는 또 기믹에 먹히더니 자신이 주인공인 쇼였음에도 지금은 또 원래의 맥 하디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침착하고 동생을 잘 챙기는.

‘아.’

동생 때문인가.

나는 의문을 느끼고 물었다.

“고질병이야?”

“그래, 선수가 십 년쯤 활동하면 으레 가지고 있는 거지. 폭탄 목걸이처럼 몸에 심어둔 무언가 말이야.”

“……제기랄.”

“왜?”

“아니, 그래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게 잭답다 싶어서 말이야.”

“너도 그러면서 뭘 그래.”

맥의 말에 순간 침묵해버렸다.

그는 내 목 부분을 가리켰다.

“정상은 아니잖아?”

“맞는 말이야.”

러셀의 무릎이나, 잭의 등처럼.

나 역시 목 상태가 심각했다.

“그래도 잭보다는 나아.”

약간의 디스크 정도.

의사는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난리를 피우지만, 그게 어디 쉽게 되나.

“그러는 그쪽은 어때?”

“나? 나는 뭐, 고관절이 문제지. 경기에서 항상 하드한 스팟을 소화한 쪽은 잭이라 그나마 좀 괜찮지만.”

“……그렇군.”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또 누가 사다 둔 건지 맥주가 몇 캔 굴러다녀서 한 모금씩 마셨다.

더럽게 미지근한 맥주.

하지만 최고였다.

“겉과 속이 다른 업계지.”

“어디든 그렇지.”

“아니, 진짜로. 나 실은 잭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거든. 그 자식이 그런 미친 스팟을 소화하는데 누가 안 좋아하냐? 내가 기회를 받지 못한 건 동생 때문이 아닌데 말이야.”

“바트 맥센 때문이었나?”

“존 로이타스도 그렇고. 거기 꼰대들이 나에게는 가망성이 없다면서 쳐버린 걸 내가 어떻게 하냐.”

맥이 맥주를 홀짝였다.

“내가 뭐, 어디 누구처럼 정치를 잘해서 선배들이나 온갖 윗선에다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도 아니고.”

“그게 누군지 궁금한데.”

“그야 너지.”

맥이 씨익 웃었다.

“물론 그게 다 근거가 있었고.”

“……그래?”

“맞아. 너는 현실에서도 배드애스한 놈이었어. 어떻게 WWF를 버리고 나가서 PWA라는 회사를 만들 생각을 하나 모르겠단 말이지.”

그야 뭐.

내가 먼저 한 번의 삶을 거치면서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알았으니까 가능한 일 아니었겠는가.

거기에 그런 게 있으니 기대감에 차서 노력도 했고. 그게 아니었다면 다시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겠지.

하지만 그 사실을 지금 맥에게 말해준다고 해서 믿을 리도 없었고.

나는 이내 건배를 제안했다.

“Viva 프로레슬링.”

“그걸 말하려면 루차 리브레지.”

피식 웃는 맥.

일련의 대화를 통해 나는 그가 어쩌면 동생보다도 더 미친놈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4미터 높이의 사다리에서 몸을 내던지는 행위도 충분히 제정신인 인간의 범주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맥처럼, 기회를 받아도 사고만 치는 동생을 보며 프로레슬링에 계속 매진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미친 짓 같다고 느꼈다.

내가 동양인이라는 한계로 인해 한 번의 인생에서 실패를 겪었던 것처럼.

맥 역시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면서, 계속 싸워왔다.

……뭐, 자버에 불과했던 전생의 나와, 하위 단체라고는 해도 월드 챔피언은 먹어봤던 맥의 커리어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지만.

어쨌거나.

쇼와는 달리 백스테이지에서의 하디 보이즈는 이상적인 형제 관계였다.

특히 잭이 딸을 가지고 철이 들면서 더더욱 말이다.

* * *

대립은 계속되었다.

8월 마지막 주차에서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대립을 펼쳤다.

그리고 사실.

상황이 그쯤에 이르니 각본은 딱히 중요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단순히 서로가 링에 나서 얼굴을 노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팬들은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줬으니 말이다.

[DELETE! DELETE! DELETE!]

[Jack! Jack! Jack! Jack! Jack!]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링 위.

경기 계약을 위해 모인 우리에게 팬들이 제각각 성원을 보내는 가운데.

먼저 맥 하디가 입을 열었다.

“드디어 때가 왔군!”

“분명히 때가 왔지.”

“그래, 신! 대시 앳 더 비치에서 너와 나의 승부가 펼쳐질 예정이지!”

그리고.

“브라더 네로가 나를 방해하기 위해 묵시록의 붉은 용처럼 나타나리! 허나 나에게는 검은 강철의 검이 있도다!”

“……무슨 소리야?”

“우리를 박살 내겠다는 말이지.”

잭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얼굴에는 부서져버린 맥 하디에 대한 연민, 분노와 동시에 나에 대한 경계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는 안 되겠지만.”

“오, 브라더 네로. 검은 강철의 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다니!”

흥분해 외치는 맥 하디.

그러더니 링 아래로 내려간 그는 링 아래에서 뭔가를 천천히 꺼냈다.

그걸 본 관객들이 환호했다.

[Yeeeeeeeeeeeeeeeeeaaaahhhh!!]

바로 ‘사다리’였다.

옆면이 검은색으로 칠해진 접사다리는 프로레슬링을 위해 나무로 만들어서 그 위에 판을 덧댄 특제품이었다.

저것이 검은 강철 검이었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팬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래더 매치는 하디 보이즈를 지금의 위치까지 끌어올려준 경기라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의미가 컸다.

그런 래더 매치를 세 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트리플 스렛으로 펼친다니.

팬들이 흥분하지 않으면 이상하지.

링 위로 사다리를 가지고 올라온 맥 하디가 그걸 펼치고 위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자리에 앉아 팬들의 더 큰 환호를 유도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는 사다리를 하나 더 가져왔다.

[Yeeeeeeeeeeeeeeeeaaaahhh!]

사다리 위로 타고 올라가 앉자 환호하고 있는 팬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나저나.

범프 링은 누군가가 조금만 움직여도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덜컹거리며 흔들렸고, 덕분에 사다리 위에서 중심을 잡는 건 무척이나 어려웠다.

뒤이어 잭 하디까지 사다리를 가져왔고 우리는 그 위에 앉아 다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게 그 강철 검이로군.”

“흐하하하하!!”

“나쁘지 않은데, 맥! 좋아. 너희 두 사람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싸워줘야 챔피언의 가치가 증명이 되겠지.”

나는 팬들을 돌아보았다.

[Waaaaaaaaaaaaaaaaaggghhh!!]

단지 그뿐이었는데도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다. 나는 그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며 맥과 잭을 돌아보았다.

“래더 매치. 해보자고.”

“후회할 텐데.”

잭 하디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래더 매치에 있어서는 신의 경지에 이른 두 사람인 만큼, 확실히 내게 불리한 룰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대립 도중 깔끔하게 핀 폴을 내어줬던 두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다시금 들끓었다.

“그럴 리가 있나.”

나는 씨익 웃었다.

기괴하게 웃는 맥과 그 옆에서 조용히 자신의 투지를 드러내고 있는 잭.

경기는 그렇게 성사되었다.

최고의 남편.

최고의 아버지.

최고의 프로레슬러를 꿈꾸는 세 사람은 대시 앳 더 비치에서 래더 매치로 격돌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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