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Day 13.
8월 말에 열리는 ACW 대시 앳 더 비치는 WWF의 섬머 수플렉스에 맞서서 개최되는 페이퍼뷰 중 하나였다.
그것도 그냥 페이퍼뷰가 아니다.
각 분기마다 있는 가장 거대한 페이퍼뷰 중 하나였고, 선수들은 아무리 길어도 거기서 대립을 마무리 지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한 달의 대립이었고 이것이 끝나면 맥과 잭이 본격적으로 형제간의 대립을 이어나갈 테지만.
일단 우리 세 사람의 대립은 짤막하게 두 사람에 대해 ACW 팬들에게 소개해주는 형식으로 잘 먹혔다.
그 덕분인지 각자 다른 에디션으로 나뉘어 발매된 하디 보이즈의 티셔츠는 꽤나 판매량이 호조라고 들었다.
데릭 비숍은 거침없이 우리에게 경기 시간을 할애해줬으며 최종적으로 25분간의 혈투가 예정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마지막까지 몸 관리에 최선을 다했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경기 전날에는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시작된 대시 앳 더 비치.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Waaaaaaaaaaaaaaaaaaaggghhh!]
터져 오르는 폭죽이 쇼의 시작을 알리자 경기장을 찾은 15만 가량의 팬들이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Welcome To……!!]
[Dash At The Beach!!]
[해설을 맡은 짐 고스!]
[캐스터에 사이드파크입니다!]
[오늘도 정말 엄청난 경기들이 준비되어있습니다! 이날만을 기다리며 얼마나 밤잠을 설쳤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경기가 가장 기대되시죠?!]
[물론 메인의 래더 매치죠!]
[저는 코디 로스와 드류 맥킨마이어의 라이벌리도 정말로 기대됩니다!]
[그것도 놓칠 수 없죠!]
초장부터 해설자들이 화끈하게 분위기를 띄워주는 가운데, 첫 번째 대립의 프로모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걸 지켜보았다.
다른 녀석들이 어떻게 하는지.
얼마나 잘했는지.
업계의 1인자라고 해서 방심하지 않고, 때로는 내 의견을 전달해 모두 다 함께 올라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삶의 균형을 잡는 게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나는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다 가져야만 속이 후련해지는 성격이었다.
프로레슬러로서의 영광도.
남편이자, 아버지로서도.
최고가 된다.
그러면 그만이었다.
‘좋아.’
마음을 다스리며 앉아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티파니였다.
“어, 여보.”
[경기 얼마나 남았어요?]
“이제 절반 정도.”
[긴장되나요?]
“……아마도.”
티파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어떤 기분으로 이 대립을 진행해왔으며 믹 졸리에게 찾아가 어떠한 조언을 구했는지까지 말이다.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내가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것을 괜히 이야기해서 심적인 부담을 가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나의 일이었다.
하지만 티파니도 나에게 숨기는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후 이어진 대화에서 어쩐지 묘한 기류가 흘렀다.
나를 좀 걱정하는 듯했다.
평소보다 더.
[잘하고 돌아와요.]
“나쁜 꿈이라도 꿨어?”
[지금 현실이 깨지 않는 꿈이죠.]
“말해봐. 무슨 일 있어?”
[어, 아니. 아니. 나쁜 건 아니에요. 당신 경기 끝나면 말하려고 했죠.]
“뭔데 그래?”
한참을 침묵하는 티파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조그만 대답이 돌아왔다.
[아들, 이래요.]
“…….”
[음, 끝나고 이야기하죠.]
전화가 툭 끊어졌다.
감정적인 교류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티파니는 나를 배려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감사를 느끼면서도 나는 잠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당장에 달려가고 싶었다.
만나서 그녀를 안아주고 고맙다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감정을 정돈하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티파니도 그것을 알기에 내게 너무 부담을 안겨주지 않으려는 거겠지.
웃음이 나왔다.
‘Life Goes On.’
인생은 계속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수많은 일을 겪고 변화했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로 인해 그 성장통을 잘 이겨냈다.
최고의 프로레슬러.
일단 그것만 생각한다.
* * *
시간은 흘러 메인이벤트.
세 사람이 지난 한 달간 보여주었던 대립의 총집편이 나간 뒤, 팬들은 당연하다는 듯 챈트를 시작했다.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경기장 곳곳에서 퍼지는 챈트.
그리고 먼저 잭 하디가 등장했다.
특유의 나시티와 팔토시.
조금 시대의 흐름에 뒤쳐진 듯한 모습이었으나 잭은 그런 모습을 하나의 올드 패션으로서 승화시켰다.
‘No More Word’s’.
드럼과 베이스 라인.
보랏빛 조명 속에 입장로 위로 모습을 드러낸 잭 하디는 링 주변에 설치된 사다리 아래를 지나쳤다.
[Waaaaaaaaaaaaaggghhh!!]
오랜 미신.
입장 시 사다리 아래를 지난 선수에게는 불행이 닥친다. 그것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동이었다.
잭 하디는 그런 걸 믿지 않았다.
그가 믿는 건 오직 자신과 상대뿐.
그리고 오늘 상대는 분명 자신이 업계에서 만난 이들 중 최고들이었다.
다음은 맥 하디.
잭 하디의 ‘부서진’ 형은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에어 피아노.
다소 코믹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모습이었으나 팬들은 맥에게 열광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부서진 모습을 연기하고 있어도 맥은 링 위에서 언제나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줬다.
동생과 마찬가지로 세워져 있는 사다리 밑을 통과한 맥은 링 위로 올라와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팬들의 챈트에 미친 듯이 팔을 휘저으며 반응을 이끌어내는 맥 하디.
형제 모두가 입장을 끝마친 뒤.
[Uooooooooooooooooohhhh……!]
경기장이 ‘들끓었다’.
팬들 모두가 기다렸다.
현재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걸.
바로 SIN이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푸화아아아악-!!
분사되는 연기.
피어오르는 불꽃.
그 가운데에서 모습을 드러낸 챔피언을 본 하디 보이즈는 오래된 옛 기억을 잠시 머릿속에 떠올렸다.
캐스켓-테이커.
그와 마주했을 때의 느낌.
지금 신은 그런 레벨이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저거였지.’
자신의 경기가 끝난 뒤, 락커룸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다비 알렌은 그 압박감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신은 현대의 선수들에게 그런 레슬러였다. 동시에 캐스켓-테이커보다 더 압도적인 대중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챔피언 벨트를 가지고 링으로 나온 신은 긴장하고 있는 맥과 잭의 사이에서 벨트를 번쩍 들었다.
[Waaaaaaaaaaaaaaaaggghhh!!]
쏟아지는 환호.
심판이 벨트를 가져갔다.
데릭 비숍이 신호를 보내 천장에서 링 중앙으로 와이어를 내려 보냈고 거기에 챔피언 벨트가 걸렸다.
그리고 벨트는 와이어에 걸린 채로 상승해 5미터 높이까지 이르렀다.
래더 매치의 규칙은 다음과 같았다.
No DQ.
서브미션, 핀 폴, 카운트 아웃 없음.
승리 조건은 링 위 높은 곳에 매달린 챔피언 벨트의 탈환.
그를 위해서 사다리가 존재했고, 그것은 이동 수단이자 공격 수단이었다.
땡땡땡-!
[Waaaaaaaaaaaaaaaaaggghhh!]
경기가 시작되었다.
환호하는 팬들을 앞에 두고 신은 나머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카우보이의 삼파전이었다.
누가 먼저 뽑느냐.
바로 맥 하디였다.
그가 자신의 동생인 잭 하디를 향해 달려들었고 미친 듯이 해머링을 날리며 상대를 공격해댔다.
[Yeeeeeeeeeeeeeeeaaahhh!!]
두 사람은 이내 뒤엉켰고 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마구 싸워댔다.
그걸 바라보던 신은 조용히 링 아래로 내려가 사다리를 챙겨 들었다.
여러 개의 사다리 중에서 가장 작은 사이즈. 50센티미터 정도. 손으로 들고 휘두를 수 있는 크기였다.
그걸 가지고 위로 올라간 신은 등을 보이고 있는 잭에게 한 방을 날렸다.
쩌억!!
[Uoooooooooooooohhh?!]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지는 잭.
작은 사다리의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철제 의자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그 뒤에 서있던 맥의 머리에도 한 방을 꽂아 넣은 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혼자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50센티미터 높이의 접사다리를 설치하고는 그대로 위로 올라가 챔피언 벨트를 손에 넣으려고 했으나.
당연히 높이는 턱도 안됐다.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들.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장난이었다는 듯 행동한 신은 쓰러져 있던 잭 하디를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엘보 드롭.
투콰앙!
‘다이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은 높이였으나, 래더 매치를 설명하는 듯한 스팟 자체로는 꽤나 일품이었다.
“바로 저거다.”
백스테이지.
다비 알렌과 함께 경기를 보던 크로우는 신의 저런 점은 반드시 레슬러라면 배워야 할 점이라고 칭찬했다.
“프로레슬러는 링에서 몸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신은 자기 캐릭터를 저런 식으로 보여주고 있지.”
“그렇다면…….”
“네 방식을 찾아라. 다비.”
지금의 다비 알렌은 신처럼 유쾌한 면이 있는 캐릭터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이야기나 흐름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기도 했다. 크로우는 그걸 스스로 생각해 나아가라고 다비에게 조언한 것이었다.
다비는 침묵했고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경기를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첫 리드를 잡은 건 신.
하지만 그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경기 초반인 만큼 흐름은 빠른 속도로 변화했다.
신이 잭을 공격하는 동안 회복한 맥이 링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더니 보다 큰 일반 사이즈의 접사다리를 들고 와 신을 공격했다.
[Uooooooooooooohhh?!]
팬들의 비명에 돌아본 신은 큰 사다리를 가로로 든 채 자신에게 돌진해오는 맥 하디를 발견했다.
쩌억-!
거기에 얼굴부터 부딪혔다.
그리고 쓰러지자 맥은 그대로 사다리를 펼쳐 신의 목 위에 올려놨다.
“큭?!”
순간 당황한 신은 몸을 움직여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직후, 뭔가가 그런 자신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걸 보고 경악했다.
바로 잭 하디였다.
레그 드롭.
투콰앙-!!
형인 맥 하디가 사다리를 놓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레그 드롭을 날린 잭은 지금 이걸로 똑똑히 보여주었다.
형제는 형제였다.
그리고 그 형제는 래더 매치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고수였다.
[Waaaaaaaaaaaaaaaaggghhh!]
적의 적은 아군.
그 말이 무색하지 않게 잭과 맥은 잠시 동안 형제의 힘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눈치를 보던 중 맥 하디가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 벨트를 가지려 들었다.
가만히 보고 있을 잭이 아니었다.
잭은 맥의 다리를 당겨 사다리에서 떨어뜨렸고 두 사람은 다시금 그 앞에서 서로 주먹질을 해댔다.
[DELETE! DELETE! DELETE!]
[Jack! Jack! Jack! Jack! Jack!]
팬들이 각자 응원하는 선수에게 환호를 보내는 가운데, 신이 움직였다.
사다리에 깔려 있던 그는 정신을 차리자 곧바로 그걸 위로 들어올렸다.
기우뚱하는 사다리.
그 앞에서 다투고 있던 하디 보이즈가 그 끄트머리에 맞았고 잭은 링 바깥으로 나가떨어졌다.
이번에는 맥의 차례였다.
그가 달려들었고 자리에서 일어서던 신은 해머링을 버텨내며 움직였다.
어퍼.
퍼억-!
[Waaaaaaaaggghhh!!]
헤드벗.
쩌억!
발을 밟는 스톰핑.
콰앙-!
“크헉?!”
맥의 허리가 앞으로 기울어지자 다시 팔꿈치 안으로 어퍼컷을 날렸다.
쩌억!!
일련의 콤보는 신이 상대방을 압도할 때마다 자주 나오는 동작이었다.
그만큼 신은 두 사람을 상대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맥 하디도 휘청거리며 챔피언을 크게 띄워줬다.
얼핏 쉬운 느낌의 경기.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 경기는 ‘형제’와 ‘사다리’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며 탑 독이 무너지는 과정을 그려나갈 예정이었다.
그걸 위해서 맥 하디는 어쨌든 간에 좋든 싫든 동생인 잭과 태그를 맺어서 신을 상대할 예정이었다.
이어지는 슈퍼 킥.
쩌억!!
맥은 무릎을 꿇었고 신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리며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여기에서 원래대로라면 잭이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가 멋지게 형제의 공격을 이어나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
잭이 그 자리에 없었다.
신은 그걸 곧바로 알았다.
맥의 순간 굳어지는 손.
팬들의 ‘무반응’.
만약 뒤에 잭 하디가 있으면 이렇게 될 수가 없었다.
신은 잭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깨닫고는 곧바로 움직였다.
그대로 허리를 숙이며 맥의 등을 팔꿈치로 내리찍었고 그 상태에서 짧게 말을 속삭였다.
“시간 끌 테니까 보고 와.”
눈빛으로 Yes를 표현하는 맥.
아무도 그것이 즉석에서 상황을 변경한 애드립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렇게 두 선수는 팬들의 몰입감을 깨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를 이어갔다.
백스테이지 뒤의 일이었다.
이건 그들이 알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