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32화 (632/634)

Father’s Day 14.

“뭐야?!”

데릭 비숍이 버럭 소리쳤다.

“예?”

“뭡니까?”

다들 의아해했다.

비숍은 앓는 소리만 낼 뿐 뭐라 말하지 못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업계에 오랫동안 몸을 담고 있었던 만큼 그는 짧은 순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잭이 나설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어지는 신과 맥의 애드리브는 아주 좋았지만 경기 시작 후 5분도 지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다니.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3번 카메라가 잭을 찍고 있었다.

사다리에 맞고서 링 아래로 나가떨어진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등이 크게 부풀었다.

고통을 참아내는 게 눈에 보였다.

‘저걸…….’

어쩐다.

“비숍.”

상황을 눈치챈 직원 하나가 넌지시 신호를 주었고, 비숍은 인 이어 마이크로 곧장 명령을 내렸다.

“잭 상태 확인해.”

‘현장’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링에는 심판과 선수들 말고도 링 아래에 부심판들을 여럿 두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비숍의 명령을 듣고는 곧바로 잭 하디의 상태를 확인했다.

“잭, 잭!”

“……괜찮아.”

잭은 정신을 차렸다.

잠깐 기절했던 모양이다.

링 위에서 환호가 나왔다.

[Waaaaaaaaaaaaaaaaaggghhh!!]

맥 하디가 자신의 뺨을 스스로 후려치면서 신에게 어디 더 때려보라는 식으로 즉석에서 스팟을 만들었다.

관객들은 그렇게 몰입한 상태였지만 고릴라 포지션의 상황은 심각했다.

[괜찮답니다.]

“확인해봐.”

비숍의 명령에 잭 하디가 떨어질 때 촬영했던 영상이 안에서 재생되었다.

그 시간은 수 초.

하지만 실수로 로프에 걸려 머리부터 떨어지면서 순간 뇌진탕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심판이 뇌진탕 상태를 체크해보려고 했지만 잭 하디는 혀를 차며 그걸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잭!”

“이제…… 시작이야.”

무시하고 자신의 스팟을 수행하고자 움직이는 잭. 그가 지금 상황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링 안과 밖의 상황을 내내 주시하던 심판이 신의 공격이 반칙이라며 만류하는 척하며 잭의 상태를 전했다.

“뇌진탕 가능성이 있어.”

“어떻게 하고 있는데?”

“올라오고 있고.”

신은 그런 심판의 판정에 항의하는 척하면서 상황을 대강 전해 들었다.

그리고.

비숍이 판단을 내렸다.

“일단 고.”

그걸 전해 받은 심판들이 물러섰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비숍은 즉시 송출 팀에게 연락해 잭이 떨어지는 상황을 리플레이로 방송에 내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런 식으로 잭 하디가 경기에서 잠시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즉석에서 설명하는 것이었다.

온 에어 화면이 작아지면서 잭이 로프로 나가 머리부터 떨어지는 장면이 그대로 방송과 스크린에 송출되었다.

[Uoooooooooooooohhh……!]

자세히 보지 못했던 관객들이 신음을 흘렸고 바로 그때, 마법과 같은 일이 경기장에서 벌어졌다.

‘리턴’.

당하던 선수가 순간적으로 복귀하거나 반격을 취했을 때를 뜻하는 말.

리플레이가 끝난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잭 하디가 탑 턴버클 위로 올라섰고 팬들의 환호가 쏟아져 내렸다.

그걸 본 순간 데릭 비숍은 그만 어이가 없어져 웃고 말았다.

잭 하디를 수식하는 말이 있다.

‘프로레슬링을 하기 위해 태어난 남자’.

그만큼 잭 하디는 그 누가 보더라도 프로레슬링에 최적화된 남자였다.

그냥 걷기만 해도 그가 하면 마치 그게 운명처럼 맞아 떨어졌다.

지금도 그랬다.

잭 하디는 정말로 멋진 타이밍에 돌아왔고 심판에게 항의하던 신이 돌아서자 그대로 몸을 날렸다.

위스퍼 인 더 윈드.

회전하며 떨어지는 그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신은 잭 하디에게 깔리며 그대로 바닥에 짓뭉개졌다.

투콰앙-!!

링이 크게 울렸다.

[Uooooooooooooohhh!!]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Jack!]

챈트가 터져 나왔다.

바로 그게 잭 하디였다.

그는 언제나 언더독이었고, 프로레슬러치고는 꽤나 마른 체구에 속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마구 날아다니는 그는 언제나 팬들의 응원을 받는 그런 선수였다.

복부를 움켜쥔 채 자리에서 일어선 잭은 지끈거리는 등을 참아내며 그대로 다시 신을 향해서 다가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

킥 위주의 무브는 단순히 거기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잭 하디 특유의 스타일을 담아내고 있었다.

잭은 같은 킥을 차더라도 로프를 이용해 높이 뛰어오른 뒤 자신의 몸 전체를 이용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콰앙-!

그렇기에 나는 소리도 엄청났다.

신은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나뒹굴었고 코너까지 몰린 상태에서 연이어 킥을 허용하며 주도권을 내주었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연이은 킥은 잭 하디의 몸에도 생채기를 남겼고, 그렇게 난 상처는 균열을 일으키는 법이었다.

“후우…….”

공격을 이어가야만 하는 잭이 오히려 더 괴로워하자 신은 자신이 반격해야 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잭.”

[Waaaaaaaaaaaaaggghhh!]

팬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신호를 보낸 신은 잭이 다시 공격을 들어오려고 하자 옆으로 피했다.

[Uooooooooooohhh!]

신이 피한 나머지 하단 턴버클에 다리 사이가 낀 잭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선 신은 사다리 쪽으로 잭을 끌고 가서 머리를 잡고 그대로 박아버렸다.

콰앙-!

이어서 잭이 좀 쉴 수 있도록 조금 전처럼 사다리 밑에 목을 끼워 깔아놓고는 천천히 벨트를 향해 올라갔다.

그는 믿었다.

잭에게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그리고 링 아래에서 다음 등장을 준비하고 있을 맥 하디가 상황을 파악하고 올라오리라고 믿었다.

그 말대로, 링 아래에서 타이밍만을 잡고 있던 맥 하디는 신의 애드리브에도 당황하지 않고 움직였다.

그는 사다리를 접어 링 위로 올려보냈고 그것이 다른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는 신의 등 뒤로 가게 했다.

긴장하는 관객들.

맥 하디는 신의 다리를 잡았고 그대로 뒤로 당겨서 앞으로 떨어지게 했다.

신은 앞으로 낙법을 치며 배부터 접혀져 있는 사다리 위로 떨어졌다.

투콰앙-!

그것은 신호였다.

원래는 잭 하디와 맥 하디가 연합해서 신을 공격하는 스팟이 먼저 나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잭의 상태가 아직 덜 회복되어서 그게 불가능했고, 맥은 뒤에 사용할 스팟을 끌어와 순서를 바꾸었다.

사다리를 쓰는 싸움.

그거라면 맥 하디도 챔피언에게 대응하는 게 가능했다. 신은 바닥을 나뒹굴었고 맥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는 그대로 힘껏 뛰어내렸다.

다이빙 레그 드롭.

콰앙-!!

“끄흐윽?!”

[Yeeeeeeeeeeeaaahhh!!]

호쾌한 무브에 감탄하는 관객들.

맥은 엉덩이뼈가 욱신거리는 걸 느꼈지만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갔다.

신이 가장 처음에 들고 온 짧은 접사다리를 들고 그대로 내던졌다.

콰앙!!

신의 몸통 위에 떨어진 사다리.

맥 하디는 자신이 생각해도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며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가 팬들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DELETE!]

팬들은 일평생 그저 그런 선수에 불과했던 맥 하디에게 챔피언과 싸울 수 있도록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

‘이래서 못 끊지.’

차라리 똥개가 똥을 끊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맥 하디는 경기장을 찾은 팬들을 향해 크게 웃었다.

“이예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Waaaaaaaaaaaaaaggghhh!!]

‘부서진’ 맥 하디.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훨씬 더 자유로워진 상태로 힘껏 몸을 날렸다.

다이빙 엘보 드롭.

콰앙-!!

그것도 온 더 래더.

사다리 위로 전신을 날리며 신의 몸 위에 떨어진 사다리에 팔꿈치 공격.

그 자신의 몸을 담보로 내건 위험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화려하게 링을 나는 맥의 모습은 팬들을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서게 만들기 충분했다.

[Yeeeeeeeeeeeeeeaaaahhhh!]

끔찍한 고통.

차라리 로-블로를 허용하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신은 이빨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대로 잠깐 휴식.

팬들은 엄청난 무브를 눈앞에서 직접 보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반인이라면 절대로 일어나지 못할 만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링 위의 신은 마치 사자와 같은 짐승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투쟁을 위해 일어섰고 맥 하디 역시 똑같이 움직여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대로 머리가 부딪혔다.

“크르르르륵!!”

“……!”

짐승 같은 소리를 내는 맥.

그와 서로 엉겨 붙은 채 투지를 내보인 신은 맥 하디를 들어 올려 수플렉스로 사다리에 꽂아버렸다.

쩌억-!!

“크하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는 맥 하디.

거칠게 숨을 몰아쉰 신은 일순 허리를 붙잡으며 아까 전의 엘보 드롭의 고통을 견뎌내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은 ‘셀링’이었다.

맥 하디가 몸을 던져 그런 멋진 순간을 만들어줬는데, 자신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다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정말 아프기도 했고.

그리고 그걸 본 맥 하디는 이어 신이 다가오자 옆에 있던 작은 접사다리를 들고 힘껏 휘둘렀다.

쩌억!

머리를 얻어맞은 신이 천천히 쓰러졌다.

그사이 맥은 사다리에 끼어 있는 동생의 상태를 곁눈질로 확인했다.

그리고 동생이 싸울 정도로 몸이 회복되었음을 바로 알아챈 맥은 타겟을 바꾸기 위해 일어났다.

프로레슬링 경기는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했다.

안 그러면 풀타임으로 25분의 미친 경기를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경기를 이끌어온 신이 쉴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맥은 동생으로 타깃을 변경했다.

그리고 다가가 말을 걸었다.

욕을 하는 척하면서.

눈이 광기로 물들어서 동생을 모욕하는 듯했지만, 그 내용은 평범했다.

카메라에 잡히는 입 모양마저 속여가면서 원하는 의사를 전달하는 건 맥 하디의 주특기 중 하나였다.

“천천히 가자.”

잭이 눈을 두 번 깜빡였다.

‘No’라는 신호였다.

그걸 받아들인 맥은 동생을 깔아뭉개고 있는 사다리를 들어서 치웠다.

옆으로 넘어간 사다리가 로프에 걸쳐져서 크게 흔들렸고, 맥은 잭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공격했다.

퍼억!

해머링 러쉬.

그리고 팔을 잡아 당겨 기울어 있는 사다리 쪽으로 보냈다. 거기에서 하디 보이즈의 진가가 드러났다.

래더 매치의 달인 두 사람.

그렇기에 동생은 곧바로 형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채고는 사다리의 밑 부분으로 가 힘껏 머리를 부딪쳤다.

팬들은 분명 잭 하디가 머리부터 떨어지는 장면을 보았을 터였다.

그렇기에 행한 ‘머리 공격’.

미친 짓이었지만 맥 하디와 잭 하디는 서로를 믿고 그 스팟을 해냈다.

[Uooooooooooooooohhh!!]

경악에 머리를 부여잡는 관객들.

가상이 현실을 엄습하자 맥 하디는 자신의 ‘부서진’ 모습을 팬들 앞에서 드러내며 설득을 시도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현실에 이런 광인은 없다.

있으면 당장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우선이었다. 격투기 쪽에서는 이런 위험한 자를 선수로 쓰지 않았다.

하지만 팬들은, 아니, 누구라도 그것을 한 번쯤 보고 싶어 했다.

미친 남자가 링 위에서 모든 걸 제압하는 순간을.

그렇기에 맥 하디는 신이 나서 광기를 연기했고 거친 무브로 잭을 박살 내면서 그대로 계속해서 경기를 리드해나갔다.

정작 자신의 등 상태도 말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동생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했다.

‘힘든데?’

등이 욱신거렸다.

뿐만 아니라 엉치뼈 쪽도 그랬다.

아까 사용한 다이빙 엘보 드롭이 문제인 듯했다. 그럼에도 맥은 동료들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었다.

어차피 나중에 가서 더 화려하고 위험한 무브로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은 두 사람이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이 순간을 ‘깔아주는 데’ 바쳤고, 신과 잭은 숨을 몰아쉬면서 체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Wonderful-!”

신에 이어 잭마저 제압한 맥이 팔을 양옆으로 벌리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Yeeeeeeeeeeeeeeeaaahhh!!]

팬들이 그런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완전히 원 맨 쇼였다.

맥 하디는 자신의 캐릭터를 이용하면서 이 경기에서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이야기에 몰입한 팬들은 거기에 맞춰 호응하면서 이 경기를 즐겼다.

그리고 그사이.

‘이쯤이면 됐어.’

‘다시 들어가야지.’

신과 잭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메라가 정면에서 맥을 비추는 가운데,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두 사람은 또 다시 극적인 ‘리턴’을 팬들에게 선사해주었다.

[Waaaaaaaaaaaaagggghhhh!!]

환호가 쏟아졌다.

그리고 또 찰떡같이, 그 반응에 맞춰 맥은 당황한 표정으로 굳어지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그에게 쏟아지는 킥.

퍼억-!!

[Uooooooooooooooooohhhh!!]

양쪽에서 안면을 노린 킥에 팬들이 환호를 보냈고, 신과 잭 하디는 행동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품었다.

‘고맙다. 맥.’

‘맡겨두라고. 형.’

이런 걸 뜻하는 말이 있었다.

‘Darkside Of The Ring’.

세 사람의 완벽한 호흡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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