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34화 (완결) (634/634)

Father’s Day 16.

피는 예정된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떨어질 때 바닥에 있던 사다리에 긁히면서 이마에 출혈이 났고, 나는 그걸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일어선 것이었다.

잭 하디와의 협력 관계를 무너뜨린 뒤, 카메라는 분명히 맥 하디를 비추고 있을 터였다.

따라서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일어선다면 극적인 효과가 나리라.

팬들이 내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보면서 지금 이 경기가 얼마나 하드코어한지를 실감하겠지.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다.

[Uoooooooooooooohhhh……!]

그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맥 하디를 바라보았고 그 역시 나를 돌아보았다.

이어서 곧장 상황을 파악했다.

“으하하하하!”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다가온 맥 하디가 몸을 뒤로 젖히며 신호했다.

나 역시도 그렇게 했고.

꽈앙-!

우리는 동시에 머리를 부딪쳤다.

최후의 순간까지 승리에 대한 투지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이며 우리는 짧은 순간 협의를 끝마치고 움직였다.

맥의 공격이 이어졌다.

연이은 러시에 당해 뒤로 밀려나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맥의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 허리를 붙잡았다.

“……?!”

저먼 수플렉스.

봐주지 않고 넘겼다.

투콰앙-!

[Yeeeeeeeeeeeeeeaaaahhh!!]

화끈한 무브에 쏟아지는 반응들.

원하던 대로였다.

몸은 완전히 만신창이였고 사다리에 찍힌 여기저기가 마구 비명을 질러댔지만, 나는 다시 일어섰다.

사다리를 잡고 올라갔다.

챔피언 벨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반대편에서 무슨 벼룩처럼 뛰어오른 잭 하디가 사다리에 올라왔다.

크게 흔들리는 사다리.

하지만 겨우 중심을 잡은 나는 반대편으로 올라온 잭 하디의 안면에 힘껏 헤드벗을 날렸다.

그걸 몸을 비틀어 피해낸 잭 하디가 내 머리를 자신의 겨드랑이 밑에 끼웠고 그대로 몸이 들렸다.

수플렉스……가 아니었다.

나를 반쯤 들어 올리던 잭 하디는 그대로 옆으로 몸을 던지며 페이스 버스터 게열로 지면에 떨어졌다.

투콰앙-!!

내장이 울리는 듯한 충격.

옆으로 굴러간 나는 맥 하디와 나란히 누운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Waaaaaaaaaaagggghhhh!!]

팬들의 환호와 함께 다시 벌떡 일어선 잭은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갔고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며 기다렸다.

이어지는 스완턴 밤.

콰앙-!

링 바닥이 크게 울렸다.

그 체중을 고스란히 받아낸 나는 눈물이 찔끔 날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

심지어는 사용자인 잭도 쉽사리 일어서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리드를 잡은 상황에서 누워 있을 수만도 없는지 로프를 붙잡고 겨우 일어섰다.

녀석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에 맥이 엉겨 붙었다.

경기는 그런 식으로 누군가 사다리를 올라가면 누군가가 방해하는 형식으로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그동안 우리는 휴식과 범프를 반복했고 다행히 처음에 문제가 있던 잭도 무리 없이 역할을 수행했다.

사다리에 내던져지고, 사다리를 휘두르고, 사다리를 박살을 내가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싸워나갔고.

그럴수록 팬들의 반응도 좋아졌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경기는 이내 마지막 스팟으로 접어들었다.

우리 셋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섰다.

무너진 바리게이트 안에서.

박살 난 사다리 사이에서.

무너진 아나운서 테이블 위에서.

경기의 마지막 스팟을 기억하고 다른 두 사람을 믿은 나는 그들보다 한 박자 더 늦게 링 위로 올라갔다.

챔피언 벨트 아래.

이미 여러 개의 사다리가 설치된 상태였고 잭 하디와 맥 하디가 같은 사다리 위로 올라가 주먹질을 해댔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늦게 올라온 나는 경기의 마지막 스팟을 장식하기 위해 사다리를 밀지…… 않았다.

두 사람을 밀어서 떨어뜨리는 것보다 조금 더 멋진 스팟을 준비해왔다.

왜냐면 오늘 이 순간을 경기장을 찾은 모두가 평생 잊지 못하게 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나는 턴버클 근처에 있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는 그 위에 올라섰다.

[Uooooooooooooooohhh……?!]

‘기대’를 갖는 관객들.

내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있으니 그러는 건 당연했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사다리 사이를 이동했다.

그리고 하디 보이즈가 올라간 사다리 앞까지 도달해서는 그들을 봤다.

돌아보는 두 사람.

모두 나를 믿는 눈이었고.

그렇기에 이 기술이 가능했다.

변형 안티 크라이스트.

말하자면.

더블 안티 크라이스트.

나는 사다리를 박차고 뛰어 두 사람의 머리를 각각 겨드랑이 밑에 넣고는 그대로 사다리를 발로 밀어냈다.

순간이 길게 늘어졌다.

관객석의 팬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내 기술에 깜짝 놀라는 모습.

내가 박차자 넘어가는 사다리.

그리고 수플렉스 포지션으로 넘어오며 동시에 몸을 세우는 하디 보이즈 두 사람까지.

나는 그대로 두 사람의 머리를 단단히 붙잡은 채 지면으로 떨어졌다.

투-콰앙-!!

[Waaaaaaaaaaaaaaaaaagggghhh!]

경기에서 가장 큰 환호가 터졌다.

나는 흔들린 목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느끼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타이밍을 잡았다.

하디 보이즈 두 사람은 완전히 뻗었고 나는 끝끝내 다시 일어나 사다리를 세우고 챔피언 벨트로 향했다.

그리고 그걸 손에 넣었다.

그와 동시에 중심을 잃고 떨어진 나는 챔피언 벨트를 움켜쥔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Yeeeeeeeeeeeeeeeaaahhhh!!]

땡땡땡-!

그것으로 경기는 끝났다.

나는 오늘도 동료들과 함께 나 자신이 최고의 프로레슬러임을 증명했다.

“이봐, 잭.”

“……왜.”

“어디로 전화할 거야?”

“루시.”

그가 말했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나 역시 전화할 생각이었다.

* * *

경기가 끝나고.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나는 스스로를 증명한 대가로 수많은 사람들의 칭찬과 감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뻔한 상황이었지만.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더욱이, 좋아하는 내 일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인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나는 다른 이들도 최선을 다해 인정해주려고 했다.

오늘 경기를 함께 한 두 사람.

잭은 곧바로 루시와 통화를 한다면서 사라졌기에 남은 것은 맥뿐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사실.

오늘 경기는 초반에 벌어진 잭 하디의 사고를 맥이 나와 함께 잘 수습해줬기에 어떻게든 잘 끝난 것이었다.

그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필요했다.

더군다나 얼마든지 자기가 화려해질 수 있음에도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존경을 느꼈다.

“맥.”

“오, 신.”

“고생 많았어.”

“너도. 오늘 죽이던데.”

“너희가 잘 받아줘서지. ……아니.”

나는 쓰게 웃었다.

“당신이 캐리했어.”

“내가? 내가 뭘.”

“경기 도중에 관객들 흥미가 식지 않도록 잘 해줬잖아. 솔직히 말해서 오늘 당신 역할이 컸다고.”

“푸하하! 별말씀을.”

맥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다 네 덕이지. 챔피언. 솔직히 이 정도로 좋은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어.”

“브로큰 맥 하디가 돌아왔는데, 당연히 이 정도 반응을 나와야지.”

“젠장, 끝이 없겠군.”

얼굴이 붉어지는 맥.

“결론을 내자면, 우리 모두가 오늘 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을 보였다는 거겠지. 프로레슬러로서 말이야.”

“그래, 잭도 잘했지.”

“이제는 최고의 아빠가 되러 갔군.”

“애들이 보통…… 경기를 봐?”

“우리 애는 잘 봐. 걱정하기도 하지만 끝나고 전화 한 번 해주면 안심하더군. 그리고 솔직히.”

“음?”

“그때 모든 게 풀려.”

고통도.

피로도.

맥은 시원하게 웃었다.

지금까지 동생을 지켜왔기 때문이려나. 그는 실제로도 최고의 아버지 상을 타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게 또 나름 귀감이 되었다.

“……고마워.”

“그래! 또 같이 일하자고!”

미소를 지은 그가 사라졌다.

락커룸에 혼자 남겨진 나는 그‘들’에게 전화를 걸기 전, 몸을 씻고 정신을 가다듬는 과정을 걸쳤다.

‘들’이라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면서도 나는 왠지 모르게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훤히 그려지는 걸 느꼈다.

그랬다.

내 아이였다.

동시에.

내 아내였다.

전화를 걸자 그들은 곧바로 받았다.

[신!]

“사랑해.”

[……? 갑자기?]

“당신이 있어서 버텼어.”

[난 스트레스 받는데.]

“응?”

[언제까지 그쪽에서 일할 거예요?]

“……예?”

[슬슬 이쪽에 와서 일 좀 할 때 되 지 않았나? 애송이. 네가 싸워줄 선수들이 지금 한 트럭이라고.]

“………….”

나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케인 맥센이 같이 술 먹다가 농담 삼아서 이렇게 말을 했었지.

‘요새 아버지가 착해지셨어.’

‘뭐?’

‘진짜야. 은퇴하고 나서 사람들한테 드디어 웃어주기 시작했다니까.’

그러더니.

‘맥센 패밀리’의 일원은 권력을 잡으면 변한다는 가설에 대해 설명해줬지.

그것도 꽤나 진지하게.

“어, 티파니?”

[계속 그러면 아들 못 볼 줄 알아.]

“왜 갑자기 유괴범이…….”

[얼른 날아오라는 이야기죠.]

“아.”

조금 안심했다.

좀 짓궂은 농담이었던 모양이다.

[나의 제국인 WWF로.]

아니로군.

아내가 다● 베이더처럼 되어버려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신이다.

아내가 악의 제국을 만들고자 한다면 나의 사랑으로 감화시키면 그만이다.

“티파니.”

[…….]

“보고 싶어.”

[계속 갑자기 그러네요.]

“정말로, 많이. 날아갈 거야.”

WWF가 아닌 당신의 곁으로.

“아이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 같이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뇨, 괜찮아요.]

티파니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내 경기에 대한 과격한 칭찬(?) 이후에 그녀는 드디어 라이벌 단체의 황제가 아닌 내 아내로 돌아왔다.

[나는 프로레슬링을 하는 당신이 좋은걸요. 당신도 내가 내 일을 하기에 좋은 것 아니겠어요?]

“맞아. 그런 당신을 사랑해.”

[저도 그래요. 신.]

그리고 언젠가.

[우리 아들도 잘 알겠죠.]

오늘을 되새기리라.

비디오로 남겨진 이 순간을 기억하면서 아버지와 같이 프로레슬러로서의 꿈을 키워가리라.

“뭐?”

[왜 놀래요? 당연하지.]

“아니, 아니. 나는 우리 애 프로레슬링 안 시켜. 절대 반대야. 티파니.”

[그건 애가 정하는 거죠.]

“우리 애는 주식 부자나 우주 비행사 같은 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보통 그걸 부모의 욕심이라고 하던데요.]

“어어…….”

[자기 부모님도 자기가 평범한 교사 같은 직업을 가졌으면 했었다고, 예전에 저한테 말씀해주셨죠.]

“끄응.”

나는 앓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되려나?

진짜로 내 아이가 우주 비행사가 되는 미래는…… 바랄 수 없으려나?

뭐, 어쨌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최고의 아버지가 되어줄 거지만 말이지.

* * *

그날의 쇼는 대박을 쳤다.

다음 주에 방영된 WWF 제공의 섬머 수플렉스를 박살 낸 ACW의 대시 앳 더 비치는 그렇게 목표를 이뤘다.

하디 보이즈는 제각각 자신들이 누군지를 확실하게 팬들에게 보여주면서 메인스트림으로 돌아왔고.

그 과정에서 한 남자의 역할이 중요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WWF는 회장인 티파니 맥센의 진두지휘 아래, 대책 회의에 들어갔고.

ACW는 이후 단체의 얼굴인 메인 챔피언을 누구와 대립시킬지에 대해 의견이 서로 분분했다.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그의 마음이었다.

곧바로 다음 날 쇼에 참석해 승리의 세리머니를 펼친 신은 이후로 한 달간의 휴가를 신청했고.

그날로 캘리포니아로 날아가 아내와 만나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아내가 너무 바쁘신 몸이라 적국(?)인 WWF로 직접 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WWF 선수들이 시청률을 빼앗아간 신에게 투지를 불태우는 등의 사소한 사건이 있었지만.

달달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자신과 러셀이 빠진 ACW 페이퍼뷰가 하디 보이즈의 대립으로 잘 돌아가는 것까지 일일이 확인한 끝에.

10월.

최고의 아버지이자.

최고의 남편이었던 그는.

이제 다시 최고의 프로레슬러가 될 준비를 마치고 링으로 돌아왔다.

쇼의 오프닝.

“신! 영상 끝나고 폭죽 터뜨리고 나면 곧바로 자네 차례니 준비해!!”

“오케이.”

“다 죽여버리고 오라고! 챔피언!”

깊은 심호흡.

링 위에 오른다.

그건 언제나 심장이 뛰는 일이었다.

“고! 고! 고!”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푸화아아아악-!!

휘몰아치는 연기.

타오르는 불꽃.

그리고 자신의 테마 음악과.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환호.

신은 다시 링으로 나갔다.

<프로레슬링의 신 Father’s Day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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