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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194)

프롤로그

“드디어 그 여자가 제국에 돌아왔다더군.”

소규모 파티장. 사람들은 과하지 않은 차림새로 삼삼오오 모여 한창 떠들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제국, 특히나 수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인공이 수도에 복귀했단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었다.

“허, 자네도 소문 들었나?”

“당연하지. 그걸 듣지 못할 수도 있나?”

샤를리즈 알츠베이트.

제국의 최고 권력자 중 하나인 알츠베이트 공작의 외손녀.

지독한 수전노이자 음지의 큰손이라 일컬어지는 공작이 유일하게 지극히 아끼는 인물이다.

애정에 관해서야 입이 아플 만큼 소문이 자자했다.

이 때문일까.

조그만 소녀는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 오냐오냐해 주는 외조부 손에서 제국의 제일가는 망나니로 성장하고 말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샤를리즈의 부친 선대 황제는 알츠베이트 공녀와 불같은 사랑에 빠졌고, 이로써 제국 권력자들의 거대한 화합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알츠베이트 공녀는 공작의 유일한 자식이었기에 황실과 공작가는 약조를 하게 된다.

“아이를 둘 낳아 한쪽은 공작가의 후계자로, 다른 한쪽은 황실의 후계자로 삼게 약조하겠노라!”

그리하여 샤를리즈는 황족이지만 알츠베이트의 이름을 가지고 공녀로 자라나게 된다.

공작가와 황실의 이름을 힘입어 그녀가 저지른 패악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그녀는 범죄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곤 했는데, 모든 범죄가 기물 파손과 주취 폭력에 해당했다. 성정을 알 만하다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간에 거대한 사고 하나를 치고서 제국을 잠시 떠났던 그녀가 돌아왔다니.

수군수군 떠들던 사람들이 헙, 입을 다물었다.

“헉, 저기 들어오지 않나.”

곧 한 곳에서 꺄하하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곳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미녀가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고운 비단처럼 흘러내리는 분홍색 머리카락은 이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색으로 칭송받는 색이었다.

이유인 즉, 은발과 흑발만 나오는 황실과 붉은색, 주황색 머리카락만 가진 알츠베이트 공작가의 화합으로 나온 제국에 하나밖에 없는 색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모두가 한숨을 쉬고 바라보게 만드는, 기적을 상징하는 색.

피를 담은 듯 새빨간 눈동자, 예쁘게 올라간 눈매.

“……오늘은 대체 누굴 표적으로 삼으시려고.”

“헉, 눈 마주치지 마세요.”

애석하게도 생긴 것은 그야말로 제가 부리는 패악에 어울리는 표독스러운 인상이었다.

현재 뺨이 지나치게 발그레했고, 웃음은 어딘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곧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다.

“어허, 경은 이전에 내 고백을 거절한 미남 같은데?”

“무, 무슨 짓이십니까, 고, 공녀님!”

입만 다물면 세상의 모든 보화를 다 바쳐도 보기 힘든, 몹시도 아름다운 공녀의 얼굴이 취기로 잔뜩 붉어져 웃음을 흘렸다.

“흐음, 아닌가? 더 늙었나? 1년 사이에 20년이나 늙을 수도 있나?!”

다리를 툭툭 걷어차던 샤를리즈가 곧 들고 있던 샴페인을 눈앞의 늙은이에게 퍼부었다.

늙은 귀족이 놀라 눈을 깜빡였다.

그사이 샤를리즈가 고개를 숙여 늙은 귀족의 귀에 무어라 속삭였다.

“못생겼네? 죽어라, 너.”

“히이익!”

사색이 된 귀족이 참지 못하고 줄행랑을 쳤다.

그러나 이도 잠시, 공녀는 비틀거리다 검은 옷을 입은 기사들의 손에 부축을 받았다.

“너, 못생겨서 사형!”

알츠베이트 공작가의 기사들.

그중에서도 그녀의 외조부인 공작이 뽑은 공녀의 호위만을 맡는 정예 기사들이다.

“꺄르르, 오늘 밤 우리 ‘테리’가 포식하겠네!”

테리는 공녀가 키우는 괴물 개였다.

몬스터와의 혼혈종으로 사람의 살갗을 대번에 물어뜯는 끔찍한 종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은 짐작했다.

드디어 이 제국 수도에, 그 유명한 개망나니 ‘샤를리즈 알츠베이트’가 돌아왔노라고.

“큰일이로군요…….”

“큰일이에요.”

사람들은 각기 모여 수군거리기 바빴다.

행여나 샤를리즈와 시선이 마주칠까 봐 시선을 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 다시 한번 수도의 미남이 씨가 마르겠네요…….”

“적령기의 미남 아들을 가진 귀족 가들은 모두 조심해야겠죠……. 살롱에 알려야겠어요.”

“허어, 그럴 필요가 있나요? 다들 알고 있을 텐데.”

“…….”

샤를리즈는 어느새 한 손에 샴페인을 든 채로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의 주변은 마치 결계라도 쳐진 양 아무도 발걸음하지 않았다.

쳐다보면 큰일 날 것처럼 굴었다.

알츠베이트 공작가.

‘눈이 마주쳐선 안 된다!’

나는 새는 물론이요, 겨냥만 하면 태양조차 떨어트릴 수 있지 않느냔 말마저 나오는 가문.

샤를리즈는 그런 곳의 금지옥엽 외손녀였다.

더군다나 그녀의 오빠는 무려 현 황제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그녀를 제지할 수 있는 수단도 사람도 없다는 소리다.

사람들은 연신 그녀와 눈이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며 쑥덕대기 바빴다.

“‘그 문제’는 잘 해결된 걸까요? 왜, 성기사 중 가장 미남이시던 단장 카하스 님과의 일 말이에요…….”

“오잉, 그 문제를 말한 거였소? 내가 떠올린 건 서부 공작인 레무트 님과의 치정 문제로 알고 있는데……. 약혼 관계이지 않소?”

“세상에, 정령사인 로펜하임 님의 제자를 납치해 억지로 저택에 데려간 이야기는 어떻고요”

샤를리즈 알츠베이트의 이력은 화려했다.

너무나 화려해서 전부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개중 굵직한 건들은 역시나 제국의 굵직굵직한 인사들을 죄다 한 번씩 건드려 봤다는 것이었다.

이번 제국 밖 여행도 샤를리즈의 사건 사고를 참다못한 황실에서 여행을 빙자한 근신 명령을 내린 것이란 소문이 자자하기도 했다.

고용된 악사들이 분위기를 바꿔 보고자 한 듯 꽤 경쾌한 음악이 흘렀다.

그사이 웬 청년이 차분한 걸음으로 샤를리즈를 향해 다가갔다.

아닌 척 주목하고 있던 이들이 모두 숨을 삼켰다.

“알츠베이트 공녀님.”

“…….”

샤를리즈가 대놓고 무시하자 청년이 찡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황녀님.”

그의 입에서 샤를리즈가 제일 싫어한다고 소문난 호칭이 나오자 아니나 다를까. 샤를리즈가 악독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서늘한 시선에 청년이 놀라 움찔했다. 그러나 곧 이를 악물었다.

“오늘만을 기다렸습니다. 당신께서 돌아올 날만을…….”

“너 뭐야. 누군데?”

서슬 퍼런 차가운 목소리에 청년은 몸을 떨면서도 차분하게 말하려 애썼다.

“절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흐응? 어디 보자, 못생겼네?”

“…….”

“난 못생긴 놈은 기억 안 해.”

“……그렇군요. 당연하실 겁니다. 네…….”

“뭐야? 그만 꺼…….”

“당신이 기억하셔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제 동생이니까요.”

그 순간 청년이 소매에서 날카로운 단검을 꺼냈다.

사실 청년은 숙련된 기사였다.

그런 이가 작정하고 검을 꺼내자 실로 놀라운 속도로 검이 샤를리즈에게 쇄도했다.

카앙!

그러나 그 시도는 호위 기사의 검에 가로막히다 못해 팔이 붙잡히면서 허무하게 끝났다.

“이익, 젠장, 젠장! 공녀! 망할 개망나니 같으니! 릭 터슈타인! 내 동생은 기억하겠지! 당신이 농락한 그 이름!”

“…….”

“내 동생은 당신 때문에 비관해서 생을 망쳤어, 당신 때문에! 저주할 거다, 저주할 거라고!”

청년은 호위들에게 질질 끌려가면서도 끝까지 제 할 말을 마치려 애썼다.

“당신이 그렇게 목을 매는 약혼자도 당신을 지독하게 혐오하며 버리겠지! 죽어 버려!”

이윽고 청년이 사라진 자리로 침묵만이 흘렀다.

샤를리즈는 청년이 사라진 곳을 흘끗 쳐다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돌렸다.

“뭐야, 누굴 말하는 거야?”

그 목소리는 심드렁하기 짝이 없었다.

“재미없어.”

딸꾹, 샤를리즈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남은 호위 기사가 부축하려 손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차갑게 손을 내쳤다.

“건드리지 마.”

호위는 익숙하다는 듯 얼른 뒤로 물러났다.

샤를리즈는 비틀거리며 입구로 돌아갔다.

“돌아갈래.”

술에 취한 그 목소리에 모든 이들이 안도했음은 물론이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샤를리즈가 사실은 술에 취하지 않았을뿐더러 주정을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주먹을 쥔 손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다는 것 또한.

샤를리즈는 방으로 돌아가 홀로 남자, 그대로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으윽, 살벌해 뒈지겠네!’

샤를리즈의 당당하던 어깨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참았던 떨림이 밀려온 것이다.

검? 거엄?

대체가 파티에서 대놓고 검에 찔려 뒈질 뻔한 것이 몇 번째인지!

무려 다섯 번째다, 다섯 번!

심지어 그녀가 정식으로 수도로 돌아왔다고 알려진 지 단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숫자였다.

‘릭 터슈타인이면 아는 놈이지. 아니, 그놈이 억울할 게 뭐가 있는데?’

릭 터슈타인은 샤를리즈 알츠베이트를 악질적으로 스토킹하던 놈이었다.

파티란 파티마다 졸졸 쫓아다니며 기회를 보다 술 취한 샤를리즈에게 몹쓸 짓을 시도하려 한 적도 있었다.

물론 과거의 샤를리즈가 참지 않고 응징해 주긴 했지만 그걸 빌미로 그의 가족들이 덤벼들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네 번의 암살 시도는 뭐 때문인지 이유도 몰랐다.

‘후려 놓은 남자가 너무 많다고!’

왜냐, 그녀의 알맹이는 ‘샤를리즈 알츠베이트’가 아니니까!

그녀는 아니, ‘윤지후’는 샤를리즈 알츠베이트의 몸을 잠시 빌린 사람이었다.

하필 피폐하기 짝이 없는 19금 책 속 악녀로 눈을 뜬 게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아니, 최악의 불운.

그녀는 괴로울 때마다 스스로에게 외쳤다.

견디자. 딱 1년만.

‘딱 한 놈만 꼬시면 돼.’

여기서 한 놈은 바로 그녀의 하나뿐인 약혼자였다.

하필, 이 세계에서 악녀를 가장 혐오하는 남자 말이다.

그녀는 홀로 남은 방에서 참지 못하고 외쳤다.

“아, 그놈의 코인만 아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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