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6/194)

5화

“공녀님께서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맞아요, 맞아요!”

“하하하, 제국에 또 활기가 돌겠군요.”

남녀 성비를 따지자면 여성이 더욱 많았는데, 남녀 할 것 없이 공통점이 있다면 차림이 몹시도 사치스러웠단 거다.

‘오, 드레스만 봐도 견적이 나오네. 저건 제국 최고의 의상실, 돈이 있어도 3개월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는 디자이너의 작품.

한 영식이 보란 듯이 시계를 꺼내 보고 있다.

‘저 시계는…… 50년 차 장인에게 수억 골드를 줘야 주문이 가능한 회중시계.’

우리 외할아버지도 저 중에서 최고급 라인을 가지고 있던가.

어째, 스캔만 해도 머릿속으로 견적이 쭉쭉 나왔다.

이 언니 사치를 얼마나 했길래 보기만 해도 바로 쭉쭉 뜨는 거야?

바코드 같네.

“아하하, 그래서 말이에요. 아바론 영식이 내 발에 입을 맞추지 뭐예요?”

“그래서요?”

“그 머리에 술을 부어 버렸죠!”

테이블 위에는 술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저 술들도 한 병에 은화를 가득 채운 만큼의 가격을 하는 비싼 술들이다.

한 영애가 신나서 자신의 무용담을 털어놓고 있었다.

이 모든 게 테이블이 차려진 지 20분도 안 돼서 펼쳐진 광경이라니.

‘얼마나 망나니처럼 놀았던 건지 상상도 안 가네.’

이들 중에 나보다 신분이 높은 자는 없다.

다만 샤를리즈 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높은 자제들이 섞여 있었다.

자신의 갑질을 신나게 떠드는 저 영애가 거기 해당된다.

한창 저들끼리 낄낄대며 놀던 이들은 웃으면서도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끼어들지 않아서 이상하다 이건가.’

물론 나는 끼어들지 않고 구경 중이었다.

관찰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에도 완판이라지 뭐예요? 억울해! 너무 갖고 싶은데!”

“디자이너 파샤라의 가방 말이죠?”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재미없어 한다고 느낀 건지 화제를 바꿨다.

신기한 점이 있다면 이 제국에도 현실과 같은 명품에 해당하는 것들이 존재하고, 최근에 유행한 건 한 손에 들 수 있는 아주 작은 가방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유행을 시작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샤를리즈였다고.

‘그랬겠지. 예쁜데 행동도 제멋대로. 그런데 그걸 무마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고말야. 사실 욕을 하면서도 은근한 동경의 대상이 되지.’

슈퍼스타는 까와 빠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던데, 그런 의미에서 샤를리즈는 어떤 의미에서 사교계의 슈퍼스타였다.

“어휴, 말도 마세요. 저도 너무 사고 싶은데…… 대기만 4개월이란 말에 학을 뗐다니까요.”

“그러고 보니, 최근에 새로운 색상이 나왔다던데 말이에요.”

한창 가장 중심에서 떠들던 예쁘장한 영애가 슬쩍 나를 보았다.

음, 저 영애 이름이 클레리아? 아니 가문이 클레리아인가.

아무튼 남작가 가문인데 상단으로 대박을 쳐서 작위는 낮아도 돈은 많은 졸부 가문의 딸이었다.

샤를리즈에게는 은연중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샤를리즈는 이를 알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쓴 것 같다.

“공녀님, 새로 나온 가방 말이죠……. 너무 사고 싶은데 대기가 너무 긴 거 있죠? 혹시 공녀님께서는 이미 구매하셨나요?”

“그러게요, 너무 궁금해요.”

솔직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영애들의 모습이 딱히 싫게 보이진 않았다.

참 어울리진 않는 것 같은데 먹이를 바라보는 아기 새 같은 느낌도 들었다고 해야 하나.

“나야 굳이 구매할 필요가 없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쪽에서 선물 준 게 있는데, 아마 그게 그 색인가 보네.”

손톱을 내려다보는 척하며 평소의 샤를리즈처럼 말했다.

“남작 영애에게 하나 선물 줄게.”

“헉, 정말요? 꺄아, 역시 공녀님은 화끈하세요!”

그러자 근처에 있던 영애들이 놀라 남작 영애를 보았다. 시기 어린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와우, 여긴 무슨 동물의 왕국인가. 다들 욕망에 충실하네.

“이런 좋은 일이 생기다니, 이럴 땐 한 잔 마시셔야죠!”

“맞아요, 맞아요.”

“제가 다 기분이 좋네요. 공녀님께서도 언제나처럼 한잔하셔요.”

기다렸다는 듯 술판을 벌이는 모습에 나는 속으로 입이 벌어졌지만 참았다.

내가 이 자리에 참여는 물론 저 영애에게 샤를리즈가 하듯이 선물하겠다 한 것은 알아볼 것이 있어서니까.

다만, 이 모임이 오늘이 마지막이 될 거란 건 확실했다.

나는 술을 홀짝홀짝 마셨다.

자신 있게 술잔을 들어 올린 건, 이들이 더욱 술에 취해 열심히 떠들어 주었으면 해서였다. 술에 취해 모든 걸 토해 내게 만들 작정이었다.

게다가 샤를리즈는 제국 최고의 주폭범, 주정뱅이임에도 동시에 술이 매우 셌다.

반대로 말하자면 술이 센데도 미친 듯이 마셔서 사고를 치는 망나니였단 소리다.

‘진짜 샤를리즈처럼 살다간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알코올 중독으로 죽겠네.’

샤를리즈가 아닌 걸 들키면 안 된다는 제약이 있으니 최대한 지키기는 하겠지만, 이 정도면 차라리 샤를리즈의 이미지를 바꿔 놓고 사는 게 훨씬 낫겠단 생각은 든다.

“흐으응, 공녀님 오늘도 저엉말 잘 마시시네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나를 제외한 이들 모두 취하는 것은 물론 말이 꼬였다.

제일 먼저 말을 꺼낸 건 내가 선물을 주기로 한 클레리아 남작 영애였다.

“어우, 우리 공녀니임! 이렇게 이쁘시구, 돈도 많으시구! 너무 이쁘시구……!”

“마자마자! 꺄르르르륵 부러어! 부러워!”

취기에 눈이 풀린 영애 하나가 툭 뱉었다.

“레무트 공작보다 공녀님이 아까워욧!”

“맞아 맞아. 그 사람, 가문이 쫄딱 망했다면서요? 얼마나 가문을 경영할 줄 모르면…….”

“남은 건 척박한 영지뿐이라잖아요.”

나를 보는 눈에 질 나쁜 웃음이 어렸다.

“마자, 심지어 몬스터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기까지 해! 검이라도 못 썼으면 어떡할 뻔했어요!”

“반대로 말하자면 검이 아니면 보잘것없죠! 그나마 봐줄 건…… 얼굴인가?”

“잘생겼지만 우리 공녀님께눈 부우족하죠!”

“맞아 맞아, 깔깔깔깔!”

나는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대는 척하며 이야기를 놓치지 않았다.

내가 가만히 웃고 있자 영애들이 더욱 신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공녀님에게느은 더 멋찌고 능력도 좋운 남자를 만나셔야죠!”

“근데 그런 사람은 공녀님이 다 건드리지 않으셨나아?”

“아니지 아니지, 저기 이웃 나라 로만 제국에 황자가 정말 잘생겼다잖아요! 그 정도는 돼야지!”

“맞아 맞아, 레무트 공작은 공식 석상에 나온 지도 오래됐죠오? 사실 미모 관한 소문은 과장된 걸지도 몰라요!”

“추남일지도?”

“깔깔깔!”

그녀들은 신나서 내 약혼자를 씹기 바빴다.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이 사람들 나를 까진 못하니까 약혼자를 까는 기분이었다.

아니,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나는 잔을 슬쩍 흔들었다.

‘내가 알기로 내 약혼자님이 이런 곳에서 까일 잘못은 하지 않았는데…… 나 대신에 욕을 듣고 계시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그런데 조금 세상이 비틀거려서 살짝 놀랐다.

뭐야, 샤를리즈의 평소 주량에 반도 안 먹었는데? 왜 취한 것 같지?

내 몸 상태를 점검하던 나는 흠칫 놀랐다.

‘설마, 내가 빙의하면서 주량이 바뀐 건 아니지? 설마?’

몸이 바뀐 것도 아닌데 설마 싶었지만, 상태를 보아서 맞는 것 같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주폭 망나니에게서 주량을 뺏어 가면 어떡해?

앞으로 샤를리즈 행세할 때 어떡하라고. 아니, 샤를리즈의 이미지를 개선하라는 신의 뜻인가?

나는 어이가 없는 기분을 꾹 참으며 중심을 잡았다.

“부족한 남자가 공녀님 눈에 든 탓이죠. 아까워라……. 더 멋진 분을 맞이할 수 있을 텐데.”

“어쩌겠어요, 너무너무 모오자란 사람이 우리 공녀님 약혼자여서……!”

“사실 못생겼을 게 틀림없어요, 못생기고 근육만 뒤룩뒤룩 찐 사람인 거죠. 그런데 소문만 잘못 퍼져서 미남자라는 소문이 퍼진 게 아니려나요?”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작 영애가 배시시 웃었다.

“우리 공녀님, 가엾어서 어떡해……!”

취기가 몸을 잠식함에도 알 수 있었다.

“약혼자가 그런 못난 사람이어서…… 꺄아아악!”

남작 영애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내가 주르륵. 영애의 머리 위에 냅다 포도주를 부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포도주가 뚝뚝 떨어지는 영애의 얼굴을 보며 나는 빙긋 웃었다.

“이상하네. 왜 분명 내 약혼자를 까는 것 같은데…… 내 눈을 욕하는 것 같지?”

“아, 아, 공, 공녀님? 그게 아니라…….”

“아니면? 내가 주는 술을 거부하는 거야?”

남작 영애는 자신의 광대를 타고 흘러내리는 술을 받아먹느라 켁켁거리며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받아 마시고 미움을 받지 않으려는 모습이 적나라했다.

내 웃음이 은근해졌다.

어차피 이 자리는 오늘로 파투 내려고 했다.

이 모임은 앞으로의 내 1년에 불필요하다.

“나는 내 약혼자를 사랑하는데…… 지금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깐 거야?”

“아, 그, 어,”

무엇보다 샤를리즈는 업보가 너무 크다.

그런데 이들은 샤를리즈의 업보를 키우면 키웠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

내 손에서 떨어진 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는 곧 이 자리를 파하게 만드는 소리기도 했다.

“다들 돌아가.”

“…….”

죄책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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