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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44/194)

43화

이게 최선이었니?

나는 여기서도 샤를리즈의 업보인지 모를 것을 느끼며 속으로 쯧 혀를 찼다.

“혼인이야말로 공녀님께 가장 행복한 길.”

눈을 가늘게 접은 백작 영애가 손을 잡고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그렇게나 아끼고 또 홀로 애정을 쏟은 분이니, 그분께서도 분명 알아주실 거예요. 축복합니다. 너무 행복하시겠어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악의가 느껴졌다.

이제까지 너를 외면해 오고 무시해 온 레무트 공작이 이제 와 네 말을 따라 줄 리 없지, 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이것과는 별개로,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느껴지는 악의에 질리는 한편 분노가 치밀었다.

‘약혼자님은 샤를리즈에게 지독하게 당한 과거라도 있지.’

이 사람들은 샤를리즈에게 기생하여 그녀의 부와 권력의 부스러기를 노렸다.

샤를리즈 또한 알고도 방관한 일이었으니 내가 굳이 무어라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 알맹이는 나란 말이지.’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이것 또한 샤를리즈 기억에 영향을 받아버린 걸까?

정신 차렸을 때 내 입을 말리기에 너무 늦어버렸단 사실을 깨달은 뒤였다.

“이번 연회에서는 나도 결혼 발표를 할 예정인데.”

“……네?”

백작 영애는 물론 듣고 있던 다른 망나니 영애들도 놀라다 못해 경악했다.

한 영애는 참지 못하고 들고 있던 잔을 떨어트릴 만큼 놀랐다.

“세상에, 세상에! 이럴 수가, 너무 축하드려요, 공녀님!”

“드디어……! 사실, 저는 공녀님과 레무트 공작님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왔답니다.”

얼굴을 뒤집는 솜씨가 그야말로 타고난 간신이요, 뒤집개들이 따로 없었다.

물론 나는 순간 분노에 눈멀어 저질러 버린 실수를 통감하며, 이들을 모두 보내 버리고 싶어졌지만.

“로타리아 백작 영애의 청혼 파티에도 꼭 오시면 좋으시겠어요!”

누군가 콕 집어 백작 영애를 말하기에 나는 피식 웃었다.

“고민은 해 볼게.”

이미 저질러 버린 실수에 이 망나니 영애들의 축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건 잊지 않았다.

분노에 눈이 확 돌아 실수해버렸지만…….

“다들 이토록 축하해 주니 나도 기쁘네.”

나는 시선을 돌려 백작 영애를 향했다.

“게다가 로타리아 백작 영애가 이렇게 나를 생각할 줄은 몰랐지.”

“공녀님……?”

“그래서 나를 그토록 생각하는 백작 영애가 어떤 선물을 줄지 기대되네.”

“…….”

백작 영애가 꿀 먹은 아이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하얘졌다.

“설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

나는 눈만 휘어 웃었다.

“기대되네.”

악의에는 똑같이 돌려줄게.

그래, 당신이 걸어온 싸움. 어디 한번 수습 잘해 봐.

“나를 실망시키지 말길.”

* * *

이후로도 영애들은 정신없이 나를 축하해 주기 바빴다.

심지어 자신들이 잔뜩 가져온 술도 잊고 발그레해져서는 열심히 박수치기 바쁜 영애가 있는가 하면.

축하는 술로 해야 한다며 술병 채로 마시려 드는 영애도 있었다.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일부는 질시라면 또 일부는 진심으로 설렌다는 표정을 하는 사람도 있어서 기분이 묘했달까.

이 사람들이 절대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으나 단순한 것만은 분명했다.

아무튼 간의 뺄 살도 없으신 분이 왜 관리를 하시나 했더니, 역시 뭔가가 있었다며 난리 블루스를 췄고.

‘개판에 춤판까지?’

나는 그 춤을 멈춰 세웠다.

결국 나는 관리를 핑계로 빨리 쉬어야 한다고 모든 사람을 다 쫓아냈다.

그렇게 망나니 멤버들을 떠나보내고, 나는 응접실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절로 깊고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야.’

현타가 찾아왔다. 아니,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순간 화를 찾지 못해서 이런 실수를 하다니?

물론 나를 향한 악의가 고약했다고는 하나 그거 하나를 못 참아서 대의를 그르치냐?

나를 향한 비하와 비난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진짜 무슨 짓을 한 건지…….”

일이 잘되어 가고 있었는데.

억울해졌다.

나는 눈을 뜬 이후로 정말 노력했는데!

맨날 좋은 일 해도 의심만 받고, 경계만 사고!

죽자 살자 노력하고, 아무리 봐도 외모나 알맹이가 나로 들어온 뒤로는 고장 난 인성도 고쳤는데!

평범해졌는데!

그 영애의 말을 듣는 순간 나를 비꼬는 그 조소에 속된말로 빡쳤다.

이토록 노력하는데 남의 청혼 축하 파티에 가려 하니 찰나 너무 억울하고 누굴 놀리나 싶었다.

‘아아아악!’

일을 원활하게 해결하기는커녕 악의 하나 못 참고 다된 밥에 코를 빠트린 격이라니.

‘입조심 하나를 못해서!’

내가 저지른 이 대형 사고를 어찌 감당하나 싶은 마음에 울고 싶어졌다.

잠시 후, 저녁 시간이 되자 시종들이 식사를 권했지만 입맛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으나 밤에 잠도 오지 않더라.

거의 반송장처럼 밤과 다음 날 하루를 보냈다.

‘……이러다 나 진짜 사망하는 거 아니냐.’

그 망나니 영애들 얼굴을 안 보는 거야, 어차피 앞으로 다신 보지 않고 살려고 마음먹은 거라 상관없지만.

혹시나 소문을 내진 않을까 염려가 앞섰다.

그래도 악녀의 악명이 있는데 혹여나 심기에 거스를까, 빈축을 살까. 함부로 입을 놀리겠나 싶었다.

‘소문나면 바로 자기네들 짓인 거 알 텐데.’

샤를리즈는 망나니들이 다른 사람의 이슈를 가지고 깔깔대는 건 신경 쓰지 않았지만 저와 관련된 유언비어로 낄낄대는 꼴은 두고 보지 못했다.

어떤 패악과 후환이 올지 잘 아는 사람들일 테니.

일단은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나의 크나큰 오산이었다.

이를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다음 날.

망나니들이 멋대로 쳐들어왔다 쫓겨난 지 딱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디자이너들이 가봉된 옷을 가지고 나타났다.

다들 중간 날짜를 잘 기억하고 있다는 듯 단 한 사람도 시일에 늦은 사람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 조금 놀라긴 했다.

‘칼같이 지켰네.’

게다가 그들이 가져온 옷들은…….

‘대단한데?’

하나같이 아주 멋졌다.

아스킨, 그 남자를 생각했을 때 아주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물론,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내 드레스와 잘 어우러졌다.

‘옷이 멋있게 잘 나왔어.’

그 남자가 입었을 때를 상상하니 완벽했다.

나는 옷들을 보며 싱긋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눈치를 보던 디자이너들의 얼굴이 덩달아 환해졌다.

하나같이 고생들을 했는지 퀭한 얼굴이었지만, 얼굴에는 막 탈옥을 성공한 사형수처럼 환희가 어렸다.

개중 한 디자이너가 슬그머니 손을 들고 기쁘게 말했다.

“고, 공녀님. 청혼복이라 들어 더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뭐?

그러나 그런 내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디자이너 하나가 이렇게 말하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내 눈치를 보면서도 하나둘씩 열심히 입을 열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혼인하신다니요!”

“제, 제국의 홍복입니다. 너무나 축하드립니다!”

번개라도 맞은 듯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기분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충격에 그대로 굳어 버렸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입을 가렸다.

나는 충격을 드러내지 않으며 최대한 평온하고도 우아하게 물었다.

“그건 어디서 들었지?”

“아, 이미 제국 내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공녀님!”

“저희가 그 소문을 듣고 단 한숨도 자지 않고 더욱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XX! 망했다!

나는 속으로 온갖 신을 찾으며 욕을 지껄였다.

오 세상에, 드디어 저는 죽는 건가요? 내 코인! 내 돈! 억 소리 나는 내 돈!

나는 표정 관리를 위해 얼른 뒤로 돌아섰다.

뒤에서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디자이너들이 계속 아부를 하듯 축하한다고 전하며 결혼식 예복도 언제든지 말해 달라고 조심스럽게 외쳤다.

목적이 예복인 것 같았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미 내 귀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당장 나가.”

“네……?”

“당장!”

나는 서둘러 디자이너들을 뒤로 물렸고, 그들은 깨갱해서는 물러났다.

혹시나 자신들이 실수한 건가 싶어 사색이 된 표정들이었지만 미안하게도 그들에게 신경을 써 줄 여유가 없었다.

홀로 남은 나는 손톱을 딱딱 깨물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설마 그 망나니 영애들이 소문을 퍼트렸을 줄이야.

이유야 짐작 갔다. 내 욕도 아니고 좋은 일이라 생각해서 생각 없이 퍼트렸거나.

‘아니면…… 거짓말이라면 그대로 엿 돼 봐라. 하고 퍼트린 거겠지.’

내 눈이 가늘게 좁혔다.

‘이 소문이 약혼자님 귀에도 들어갔을까?’

들어갔으면 큰일이었다. 또 난리 칠 게 뻔했다.

난리뿐일까?

‘이번에 먼저 오겠다는 편지까지 보내 줘서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는데.’

뭔가라도 해 볼 수 있다고 그렇게 희망을 가졌는데.

나는 손에 얼굴을 묻었다.

……모든 게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번쩍 들고 입술을 마구 때렸다.

‘입! 이놈의 요망한 입! 입이 문제야!’

그래,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고, 이 사태를 수습할 방법을 찾아보자.

나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일어난 일이라면 슬퍼하고 있는 것보다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게 효율적이다.

‘일단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부터 가야겠지?’

즉시 채비를 하고 레무트 영지로 떠났다.

어떤 반응일지 뻔한 약혼자님의 얼굴을 애써 상상하지 않으려 애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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