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5/194)

44화

* * *

“……이게 사실이냐?”

같은 시각 황실.

어제부로 수도에서 시작된 소문은 놀라울 정도로 순식간에 퍼져 오늘, 황실에까지 퍼지고 말았다.

‘알츠베이트 공녀와 레무트 공작이 혼인한다!’

당연했다.

이 수도에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관심과 흥미를 독차지한 인물의 소문이었다.

샤르리즈의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런 여동생을 둔 오빠 록시디언의 심기는 가히 편치 않았다.

집무실 가득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가득했다.

살기에 가까운 이 기세는 누군가 잘못 걸리면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노아는 이 기운의 주인공, 자신의 주군을 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폭주하시면 공녀님을 데려와도 되나?

록시디언은 그녀의 소문으로 분노한 것이고, 분노를 못 참다 폭주했다.

그런 사람 앞에 소문의 당사자를 데려다 놓는 게 옳은 일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 말고 노아는 흠칫 놀랐다.

‘……내가 왜 그 공녀의 걱정을 하고 있지?’

샤를리즈가 황실이 수습해야 할 정도의 사고를 쳤을 때, 실무를 담당한 건 언제나 노아 자신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샤를리즈 알츠베이트가 결코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오빠를 생각해서 데려온 거잖아. 오빠는 좋겠네. 경 같은 충신이 있어서.”

“정 미안하면 다음에 날 한번 도와줘.”

노아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이도 잠시 주군의 빡침, 아니 분노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이냐고, 물었다만, 노아.”

“……예, 일단 소문은 이렇게 돌고 있는 듯합니다. 사실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록시디언의 표정이 아주 살짝, 정말로 살짝 풀어졌다.

노아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폭주를 하지 않고 넘어간 듯했으니.

“그놈이 걔랑 결혼이 마땅하기나 해? 어이가 없네. 돈도 없는 놈이 무슨 결혼이야? 그 좋아하는 여동생 끼고 평생 살라 그래!”

“…….”

“내 멍청한 여동생이랑 혼인하면 돈이 나올 거라 생각한 건가? 심보가 못돼 처먹었군, 쭉정이 주제에. 야, 너도 말해 봐. 완전 나쁜 놈 아니냐?”

“……제 객관적인 의견이 필요하신 거라면.”

일단 과거를 보았을 때 어딜 봐도 못된 쪽은 샤를리즈 쪽이 아니던가.

지난 과거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바라본 노아가 생각했다.

“나쁜 놈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사내로서 레무트 공작은…… 좋은 남자 혹은 신랑감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허? 어디가? 어디가!”

“일단 여인들이 좋아하는 외양은 물론, 우직한 성격입니다. 정직하고 청렴한 성품에다…… 봉직에 상관없이 충성하는 기사들만 보더라도 품성은…….”

“…….”

노아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자칫하면 눈에서 마법 빔을 쏠 기세로 주군이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아는 불똥을 맞을 생각이 없었다.

“……뭐 백 보, 아니 천 보 양보해서 그놈이 붕어 똥만큼은 나은 점이 있다고 치지.”

“부디 황제 폐하의 품격에 걸맞은 단어를 써 주실 수는 없습니까?”

“닥쳐.”

록시디언이 분노했으나, 동시에 조금 전과는 다르게 차가워진 표정이었다.

툭. 제 책상을 두드렸다.

흥분한 것이 언제냐는 듯 록시디언에게로 평소 냉철한 황제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대로라면 알츠베이트란 욕심 많은 돼지 너구리의 뜻대로 걘 영원히 공작 가문 사람이 되어 버리겠지. 게다가 레무트도 그 영감 손에 들어간다고 봐도 좋겠군.”

일리 있는 말이었다.

샤를리즈는 알츠베이트 공녀로서 혼인할 테니까.

그 후 레무트 공작이 알츠베이트의 데릴사위라도 되어 버리면 샤를리즈를 황족으로 데려오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폐하께서는 어찌 그토록 공녀님을 황족으로 데려오려는 것입니까?”

“뭐?”

록시디언이 찡그렸던 것을 풀고, 뭐 그리 이상한 질문을 묻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가 어딨어? 그냥 가족이니까 데려오는 거지. 너라면 동생 미래가 파탄 날 게 보이는데 그대로 있을 거냐?”

“…….”

노아는 쉬이 답하지 못했다.

“아무튼 레무트 공작, 그놈은 안 돼.”

뭐…… 충신으로서는 괜찮은 놈이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이기엔 부족했다.

록시디언의 기준에선 한참이나 미달이었다.

노아는 이런 록시디언이 완전히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어쩌랴.

그는 주군의 뜻을 따르는 입장이었다.

그저, 아주 조금, 정말 조금은 최근 샤를리즈를 떠올릴 때면.

‘굳이…… 자신을 싫어하는 이와 혼인할 필요는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긴 했다.

그 생각은 록시디언이 벌떡 일어나면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디 가십니까, 폐하?”

“어디긴.”

록시디언이 손을 까딱했다.

저건, 노아 자신의 능력을 쓰라는 행동으로 보이는데.

노아는 불길함을 느끼고 주군과 책상에 잔뜩 쌓인, 그것도 오늘 내로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보았다.

불길함이 더욱 커졌다.

“걔한테 갈 거야. 문 열어.”

“……업무가 아주 많습니다.”

“지금 그게 문제냐? 사실 확인만 한다. 빨리 열어.”

아니나 다를까.

“쓰읍.”

“저 그만둬도 됩니까?”

“오냐, 그만두고 내 노예로 재취직할래?”

“…….”

주군에게서 나온 폭탄 같은 고집에 노아는 아주 잠시 진심으로 사직서를 쓰고 싶어졌다.

* * *

“공녀님을 뵙습니다.”

레무트 영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위화감을 느꼈다.

‘성문이 활짝 열려 있어?’

그도 그럴 게 언제나 내 마차의 입장을 막으며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내가 왔는데도 계속 열려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내가 내리자, 성문을 지키던 기사가 정중히 인사를 하기까지 했다.

지난번에 내게 감사 인사를 했던 기사와는 다른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도 맨 처음에 나에 대한 거북함을 보였던 것과 다르게 오늘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좋아해야 하는데, 왜 불안하지.

“공작님께서는 출타 중이십니다.”

이 말은 익숙했다. 그래, 약혼자님이 나 보기 싫을 때 하는 말이잖아?

“안쪽에서 기다리시겠습니까?”

……나 오늘 진짜 사망하나?!

티는 내지 못했지만 속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뭔데, 뭐냐고. 왜 소문이 쫙 퍼진 지금에 와서 이 사람들 날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건데?

왜 정중한 거냐고.

이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분명 소문이 여기까지 나 버린 것이 분명했다.

‘아, 정신 줄 놓고 싶다…….’

나는 얼굴을 짚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 해도 조금 사색이 된 건지, 함께 따라 나온 하녀 베스가 걱정스러운 말을 건넸다.

일단 얼굴은 보긴 봐야겠지?

그나마 안심인 건 아직 심장이 아프진 않다는 거였다.

여기에 희망을 가지고 본관으로 들어갔다.

호기롭게 들어가긴 했는데, 막 복도에 들어서니 다리에 힘이 풀릴 것만 같았다.

그대로 멈춰 서서 속으로 심호흡하는데……. 웬일인지 누군가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공녀님을 뵙습니다.”

시선을 돌리면 이곳에서 일하는 가신 중 하나인 듯했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는 불안이 살짝 섞인 눈으로 내 눈치를 보면서도 정중하게 물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응접실로 안내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니,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아서 멈춰선 건데.

무언가 오해를 불러일으킨 걸까?

‘하긴 지난번에 여기 그대로 앉아서 나올 때까지 안 간다 생떼를 부린 적 있지?’

나는 잠시 생각하는 척 드레스 밑에서 발목을 살살 돌리고는 힘을 다시 줬다.

가신을 향해 끄덕이자, 그가 모호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나를 안내했다.

‘……날 엄청 경계하네. 뭐. 어쩔 수 없나.’

응접실로 들어갔다.

이 응접실은 처음 들어오는 곳인데.

나는 아주 잠시 걱정을 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알츠베이트 저택의 응접실이 몹시도 사치스럽고 화려하고 호화로움과 고급스러움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면.

이곳의 응접실은 깔끔하면서도 효율적인 것에 집중된 모습이었다.

물론 레무트 공작가가 같은 작위의 가문들 보다 금전적인 것이 부족한 건 알고 있었다. 돈을 안 썼다는 소리가 아니라 깔끔하고, 어딘가 청초했다는 소리다.

‘방도 꼭 그 남자 같네.’

청초하고 깔끔함. 약혼자님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동시에 아주 아름다움. 이것도 붙여 줘야지.

미남보다는 미인이 어울릴 법한 미모니까.

덩치만 보면 그렇지 않은데 말이지.

곧 하녀가 들어와 차를 가져왔다.

혼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으려니, 잠시 쫓아냈던 걱정이 다시 밀려왔다.

애써 걱정을 지워 내며 응접실 구경을 재차 했다.

벽 한곳에는 조금 전에 구경할 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초상화가 보였다.

크기가 꽤 커다란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 보면 내가 정신이 없었구나 싶었다.

‘와…….’

가족 초상화인 듯, 단란한 네 가족이 보였다.

아마도 약혼자님과 아리아, 그리고 남매의 부친과 모친으로 보이는데…….

‘다들 엄청난 미남 미녀네……. 아니, 미인들인가?’

정확히는 굵직한 선을 가진 부친을 제외하면 세 사람이 엄청난 미인이었다.

특히나 약혼자님의 경우 어린 시절 모습은 머리가 살짝 짧은 미소녀라 해도 믿을 만큼 예쁘장한 모습이었다.

선대 레무트 공작도 방향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엄청난 미남이었다.

‘미남 미녀 사이에서 미인 남매가 태어난 거였구나.’

둘 다 선대 레무트 공작의 색을 그대로 타고난 듯했다.

‘아리아는 어릴 때 혈색이 더 좋았네. ……안타깝다.’

건강해지면 저런 색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발그레한 얼굴이었다.

집안 대대로 미남미녀라……. 그러고 보니 샤를리즈의 모친도 굉장히 미인이었는데.

나는 목걸이를 쥐었다가 놓으면서 다시 찻잔으로 손을 뻗으려 했다.

그때 똑똑 미약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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