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이걸 하라고? 지난번에 준 게 훨씬 화려한데?”
당연히 샤를리즈가 할법한 반응을 보였다.
노아에게서 금방 답이 돌아왔다.
“예, 그 목걸이를 대신해 하시란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함께 착용하시란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설마하니, ‘이 은은한 목걸이처럼 너도 파티의 안개꽃처럼 조용히 어디 처박혀 있으란 의미인가?’까지도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함께? 목걸이가 있는데 굳이?”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그 목걸이만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목걸이’가 다 가려지지 않지 않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나는 자연스럽게 목을 만졌다.
손끝에 샤를리즈 모친이 준 목걸이가 만져졌다.
확실히 기존의 목걸이로는 이 목걸이가 다 가려지지 않을뿐더러 가까이서 보면 부조화스럽긴 했다.
“어디 떼어 낼 수도 없는 물건이지 않습니까.”
폭군 오빠가 새로 준 목걸이까지 하면 적절하게 가려질 듯했다.
……그놈이 이렇게 세심한 생각까지 해 줬다고?
“또한 폐하께서 전하신 가장 중요한 전언이 있습니다.”
“……뭔데?”
“이걸 받고 열심히 깽판을 쳐 달라는 전언입니다.”
“……오, 완전 싫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까지 선물한 건 일종의 깽판을 위한 무기라 이건가.
더 눈에 띌 테니까?
‘이렇게까지 안 해도 약속은 지킬 예정인데 말이지.’
샤를리즈의 인성을 보아 내가 튀기라도 할 줄 알았나?
‘정답이네.’
사실 노아가 막 나타나기 직전에 차라리 할아버지가 결혼 발표하기 전에 약혼자님의 손을 잡고 튀어 버릴까 생각 중이었다.
제 아무리 할아버지라지만 당사자들이 없는 곳에서 그런 발표를 하겠어?
게다가 한다고 한들 내가 아니라고 잡아떼면 어떡할 거야.
물론 이건 미봉책에 불과했다.
나는 노아가 내민 상자를 흘끗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 알았어. 용건은 이게 다지?”
노아가 고개를 들었다.
짙은 눈동자로 잠시 의문이 스쳤다.
“……자세히 보시진 않으십니까?”
“내가 왜? 취향도 아닌데. 왜, 오빠가 나한테 고맙단 인사라도 꼭 받아 오래?”
“그건 아닙니다. 그런 명은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팔짱을 꼈다.
“그럼 됐네. 저기 두고 돌아가.”
내 말은 샤를리즈라면 할 법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샤를리즈는 자기 취향이 확고한 여자였으니까.
그런데 어째서인지 노아의 얼굴이 잠시나마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더니, 침울함이 스쳤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받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뭐?”
얘 왜 이러지?
폭군 오빠가 내게서 무슨 반응을 이끌어 내라고 몰래 지령이라도 내렸나?
‘……만약 못 이끌어 내면 이 사람한테 괜히 불똥 튀는 거 아냐?’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이미 내 안에서 폭군 오빠는 책 속 카리스마는 무슨, 초등학생 같은 유치한 심술로 중무장한 인간이 된 지 오래였다.
“그, 다름이 아니라 폐하께서 전달을 명하셨습니다만, 바쁘시다 보니 고르는 건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제가 다른 것으로 바꿔오겠습니다…….”
이상했다. 말투는 분명 잔뜩 눈치를 보는 자의 것인데.
마치 억지로 납작 엎드린 모습을 연기하는 것을 보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착각이 아니야.’
노아의 시선은 내 표정을 훑는 것 같았다.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관찰하는 것 같기도 하는 시선.
어째 살짝 보인 침울함이 신경 쓰였다.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아. 됐지? 나쁘진 않아. 최소한 목에 걸칠 만은 하네.”
나는 목걸이를 들어 위로 들어 올렸다.
신기하게도 빛을 받으니 더욱 우아하게 반짝거렸다.
자세히 보니 폭군 오빠가 앞서 보내 준 목걸이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근처 거울로 다가가 목에 가져다 대 보았다.
얼추 사이즈도 맞을 것 같고. 하녀들에게 가져다주면 알아서 걸어 주겠지.
“전달해 줘서 고맙다고 해 둘게.”
이제 됐지? 당신도 어찌 보면 고용인에 불과한데, 고생이 많다.
내가 뭣 같은 상사를 둬 봤던 입장에서 그 기분 잘 알지.
“…….”
노아는 어째서인지 나를 빤히 보다가 이내 싱긋 웃었다.
하나 잊은 것이 있다면 저 사람은 부드러움과 냉함이 공존하는 얼굴을 지녔단 점이었다.
부드러움이 사라진 냉한 미소에 속으로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이때까지 안절부절못했던 것이 연기라도 되는 양 노아가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아닙니다. 제 역할에 충실했을 뿐 영광입니다.”
그가 눈을 들었을 때 단 한순간이지만 마치 록시디언을 처음 마주할 때의 기분이 느껴졌다.
호기심.
“한데 착각이 아니라면 공녀님께서는…… 여행 이전의 모습과 달라진 것 같습니다.”
* * *
노아가 돌아갔다.
다행스럽게도 본래 하려고 했던 말은 아닌지, 그 말을 꺼내고서는 실례했다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찡그린 내 표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몇 번이고 재차 사과했다.
원래의 부드러운 모습으로 돌아간지라 내게 질문할 때 얼굴이 잊혀지는 듯했지만.
착각할 수 없는 말과 의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질문이라도 위험하지.’
까딱하다 들키기라도 하면 죽는 거니까.
다행스럽게도 겉으로는 전혀 표가 나지 않았지만 긴장으로 폐가 수축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노아가 돌아간 뒤, 그대로 하녀들을 불러들이려 했지만, 도무지 치장을 시작할 기분이 아니라 잠시나마 바람을 쐬기로 했다.
밖으로 나간 순간 나는 정문 앞에 서 있는 마차를 보고서 멈칫하고 말았다.
“허…….”
정말이지 거대하고 화려한 마차가 서 있었다.
‘이게 할아버지가 말한 마차인가?’
나를 위한 마차를 새로 만들었다며 열심히 자랑하더니 이게 바로 그 마차인 모양이었다.
색이 진한 검정 바탕에 어두운 푸른빛이 감싸는 형태였다.
게다가 마차에 매인 말은 총 여섯 마리로, 하나같이 우아함과 강인함이 돋보이는 흑마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와, 멋지긴 한데. 이거 완전. 악당 등장에 걸맞은 마차 아니냐?’
전체적으로 감상을 표현하자면 이 세계 스타일의 최고급 세단을 보는 느낌이다.
다만 드라마에서 악역 재벌이 타고 내릴 것 같은 차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검은 바탕에 포인트를 준 것인지, 황금으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멋스럽게 포인트를 주었다.
‘볼수록 더 예쁜데?’
게다가 돈을 잔뜩 들였는지, 뚜껑에다 문손잡이까지 황금으로 만들었다.
아주 눈이 부셨다.
“……미친.”
……걸작은 마차 문에 작게나마 익숙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샤를리즈 알츠베이트」
세상에나. 하나뿐인 명품에 셀럽의 이름을 새기는 건 본 적이 있는데.
이 세계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다름 아닌 내 이름이 황금으로 새겨진 문짝을 보고 드는 감상은…….
‘이게 바로 돈지랄인가.’
떡하니 새겨진 이름을 몇 번이고 보다 얼굴을 쓸어내리며 침음을 삼켰다.
누군가는 좋아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았던 내겐 그저 초등학생 애들이 자기 학용품에 이름을 쓴 것이나 다름없게 보였다.
‘……쪽팔려!’
솔직히 마차는 예쁘긴 예쁜데 이게 다 망친 것 같다!
나 저거 못 타, 못 탈 것 같다고!
한참을 서 있자, 결국 머뭇거리며 다가온 수잔이 이젠 꼭 연회 준비를 위해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고 알렸고.
어쩔 수 없이 방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머릿속엔 저 커다란 마차가 둥실둥실 떠다녔다.
그 탓에 나는 내가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멀리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마차를 미처 보지 못했다.
* * *
샤를리즈가 건물로 들어간 뒤, 건물을 향해 다가온 한 마차가 멈춰 섰다.
건물 주변에 있던 시종과 기사들은 하나같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거대한 마차? 누구지, 손님인가?’
그도 그럴 게 알츠베이트 공작이 샤를리즈를 위해 특별히 만든 마차만큼이나 거대하고 화려한 마차였다.
사실 시종들은 저 특별한 마차를 보면서 이보다 더 사치스러운 마차를 보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새로 들어온 마차는 이런 편견을 산산이 조각낼 정도로 화려했다.
“……이봐, 오늘 모실 손님이 있었나?”
“아니, 난 잘 모르겠는데……. 집사님께 못 들었어.”
시종들이 각기 쑥덕이는 동안 건물에서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다름 아닌 나갈 채비를 마친 알츠베이트 공작이었다.
시종들이 떠들다 말고 얼른 허리를 깊이 조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츠베이트 공작은 새로 들어온 마차를 보고서 인상을 찡그렸다.
“저건 대체 무엇이냐?”
화려하기 짝이 없는 마차의 모습은 알츠베이트 공작의 눈에 썩 차지 않았다.
화려하긴 하나 자신이 만든 것처럼 황금 장식 하나 없는 것이 영 볼품없게만 느껴졌다.
‘광대가 타고 다닐 마차군. 쯧.’
도대체 자신의 저택에 누가 저런 마차를 타고 온 것인가.
마차를 훑던 알츠베이트 공작의 주름진 눈이 살짝 커졌다.
놀랍게도 마차의 문에 새겨진 황실 문양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곧 새로운 마차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공작에게 다가가 고개를 조아렸다.
“알츠베이트 공작님을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