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6/194)

55화

* * *

‘우와 엄청 화려하네.’

샤를리즈가 안으로 들어선 순간, 그녀는 거대한 샹들리에를 보았다.

떡하니 자리 잡은 샹들리에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잡아끌 정도로 거대했다.

샹들리에뿐 아니라 온갖 마법 등으로 장식된 연회장은 대낮보다 더 밝고 화려했다.

하기야, 우스갯소리로 ‘수도에서 길을 잃었을 땐 황성의 불빛만 찾으라, 그곳이 서쪽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실 마법등의 화려함은 익히 정평이 자자했다.

‘이게 다, 황실의 부를 증명하는 거라지?’

샤를리즈가 가만히 생각했다.

연회장 벽면에는 거대한 창이 보였는데, 창문에 빗방울이 맺혀 마법등 불빛을 우아하게 반사해, 흡사 별이 부드러이 박혀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아스킨의 팔을 잡고 걷는데,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입구에 있던 이들은 샤를리즈를 한번, 아스킨을 한번.

마지막으로 그들이 낀 팔짱을 보았다.

세상에, 그 알츠베이트의 악녀와 그녀의 약혼자가 동시에 입장하다니?

입구에 있었던 만큼 시종이 외치는 입장 선언을 듣지 못한 자가 없었지만 모두가 경악했다.

샤를리즈 알츠베이트가 등장했다!

“……대체 언제 돌아오신 건가요?”

“듣지 못했소? 공녀님께서 다시 제국으로 돌아오신 게 언제인데.”

“하하. 수도가 워낙 넓어서 말이지요. 저처럼 아직 몰랐던 사람도 많을 걸요? 여기 참석 못한 사람 중에도 있을 거고요.”

“그나저나, 정말로 예쁘네요…….”

샤를리즈는 하나하나 보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첫 번째로 샤를리즈와 아스킨이 함께 등장한 것에 놀랐고, 다음으로는 샤를리즈에게서 눈을 떼어 내지 못했다.

오랫동안 제국을 떠나 있던 악동. 그녀의 귀환은 불안하기만 했건만.

‘역시 미색 하나는 제국 최고의 미인이군.’

화려하기 짝이 없는 미모와 이를 수없이 살리다 못해 덧입힌 드레스와 장신구들은 범접할 수 없는 기운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마치 장인의 걸작을 보기라도 한 듯 입을 떡 벌렸다.

한편 샤를리즈는 자신을 향한 감탄이 8할을 넘어섰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아스킨의 팔을 잡은 채로 속으로 웃기 바빴다.

‘그래, 신기하지? 나도 신기해.’

그녀는 속으로 뿌듯함을 삼키며 싱글벙글 웃었다.

동네 사람들, 보이십니까? 제가, 드디어! 이 남자를 꼬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렇게 1년을 잘 보내기만 해서 제 수명 연장을 모두 기원해 주십쇼!

이렇게 샤를리즈는 속으로 온갖 주접을 떨며, 걸어 나갔다.

사람들은 샤를리즈와 아스킨을 꼼꼼히 보면서도 마지막에는 샤를리즈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누군가는, 정확히는 대부분 남성이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대로 입을 벌렸다.

다시 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기에, 샤를리즈 또한 새삼 ‘샤를리즈’의 미색을 실감했다.

다만, 모든 시선이 유쾌하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불쾌한 시선도 끼어 있네.’

시선을 휙 피하며 노골적으로 입맛을 다시는 중년 남성을 본 순간, 샤를리즈는 괜히 신경이 곤두섰다.

평소 같았으면 뒷통수라도 한 대 갈겨주었겠지만, 오늘은 날이 날인지라 애써 눈을 돌려 피했다.

홀로 온 것도 아니고 파트너도 있으니 말이다.

처음 몰린 인파를 지나가자, 옆으로 사람들에게 가려져 있던 악단이 드러났다.

샤를리즈는 불쾌감을 잊고 악단을 응시했다.

‘음? 어쩐지 내 막귀에도 뭔가 다르다 했더니 직접 연주하는 거였구나.’

하기야 여기는 샤를리즈가 이전에 있던 곳처럼 라디오나 오디오도 없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나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 자신이 있던 세계와 전혀 다르지 않은 형태였다.

악기를 구경하는데, 샤를리즈는 연주자 중 바이올린 연주자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꽤 젊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순간 샤를리즈가 장난기가 돌아 싱긋 웃어 주자 그 순간.

끼기긱! 삐익!

연주자는 너무 놀라 손을 삐끗하기 무섭게 ‘삐익!’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덕분에 샤를리즈에게 쏠린 이목이 바이올린 연주자에게로 몰렸다.

‘아, 아, 안 돼!’

연주자는 당황한 나머지 뚝딱뚝딱 움직이다 말고 샤를리즈를 가리켰다.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뜻 모를 손짓이었다.

마침 첫 번째 인파를 막 벗어난 참이라 다들 샤를리즈와 레무트의 등장은 알되, 정확한 위치를 모르던 차였다.

중앙에 있던 인파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샤를리즈를 발견했다.

“……세상에.”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한번 숨죽여 감탄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저 드레스는 뭘로 만든 걸까요?”

“아니, 저분은 대체 언제 돌아오신 거예요? 언니가 알려 주지 않았는데!”

“세상에, 제 동생부터 피신시켜야겠어요. 오, 저분께 당한 상처가 아직 낫지도 않았는데……!”

“저건 블루 다이아몬드인가요? 저 두 분이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볼 줄이야.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진 않을는지…….”

찌를 듯한 감탄과 혹은 시기가 곳곳에서 샤를리즈를 찔렀다. 마침내 샤를리즈는 ‘샤를리즈’가 평생 느껴 온 시선을 마주했음을 깨달았다.

‘참 대단한 삶을 살았네.’

샤를리즈는 부채로 입술을 가리며, 슬쩍 입술을 축였다.

기억을 엿보는 것과 직접 체험하는 것엔 차이가 있었다.

‘……이런 인파 넘치는 곳에서 잔인하고 무지막지한 깽판과 패악을 부려 왔단 말이야?’

어떤 의미에서는 존경한다, 정말.

그녀는 예전 TV 쇼에서 역사상 위대한 사기꾼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그 사기꾼이 성공시킨 대단위 사기의 횟수는 최소 1,326회. 벌어들인 돈은 몇 천억.

나쁜 짓임에도 그쯤 되면 경이로울 지경이었는데, 새삼 과거의 ‘샤를리즈’가 이 부류라는 기분이 들었다.

‘와, 폭군 오빠는 이런 환경에서 더 깽판이나 치라고 조건을 내건 거야?’

아무래도 그 폭군은 자기 여동생을 정말, 정말로 싫어하는 게 틀림없다.

맞아. 틀림없다고. 샤를리즈가 이렇게 확신했다.

그녀가 속으로 이를 부득 갈며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샤를리즈와 함께 있던 아스킨은 자연스럽게 샤를리즈를 응시했다.

‘……벌써 피로하군.’

아스킨은 제 약혼자와 다르게 시선을 즐기지 않았다.

그가 과거 약혼자의 줄기찬 연회 신청을 거절한 데엔 가장 크게는 그녀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다만, 솔직히 이런 곳에서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뛰어난 검사였기에 아스킨은 더욱더 기민하게 시선을 감지했다. 동시에 시선에 어린 진득한 욕망과 감정까지도 함께 느꼈다.

외모가 외모인지라, 아스킨은 남녀노소를 불문한 감탄에는 익숙했으나 오늘 수없이 들려오는 이 감탄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란 사실은 들어선 순간 눈치챘다.

……그런데 정작 그 주인공은 예전처럼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떨었나?’

어째서인지, 그는 팔에서 미약한 진동을 느꼈다.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진동, 자신이 아니었으니 자연히 범인은 파트너다.

‘설마, 이 여자가 파티에서 떤다고?’

파티광이라 불릴 정도로 화려하고 패악질로 가득한 삶을 살던 사람이다.

파티가 싫은 건 절대 아닐 테니, 남은 건 하나였다.

‘……아픈 건가?’

한편 사람들은 수도의 대단한 악동이 돌아온 것에 몸서리를 치는 동시에 이전보다 더욱 대단해진 미모에 감탄한 나머지 좀처럼 그녀 근처에 다가가지 못한 채 침묵을 유지했다.

게다가 연주자가 일으킨 불협화음이 지나치게 이목을 끈 나머지, 이 시선을 이겨 내고 감히 저 패악질의 여왕에게 말을 걸 용기 있는 자는 없었다.

‘가장 먼저 말을 거는 자가 첫 희생양이 될지도 몰라!’

사람들은 박쥐 떼처럼, 승냥이처럼 기다렸다.

멍청하고 눈치 없는 누군가가, 혹은 샤를리즈를 잘 모르는 시골뜨기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반응으로 오늘의 기분을 알 수 있겠지.

또 어떤 폭력을 쓸까?

누군가는 잔악한 기대를 하면서.

샤를리즈가 좀 더 중앙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위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불편한 건가?”

시선을 들면 아스킨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 미묘한 표정이 스쳤다.

“다른 건 몰라도 아리아 덕분에 이런 눈치는 빠르다고 생각되는데.”

과거야 어찌 됐든, 아스킨은 오늘만큼은 자신이 한 말을 지킬 생각이었다.

“아프면 얘기해라.”

샤를리즈가 눈을 깜빡였다.

아스킨은 갈수록 과거의 샤를리즈가 지었던 표정을 하나씩 잊어간다 생각했다.

이는 눈앞의 이 여자가 자꾸만 처음 보는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파서 그대로 돌아가면. 당신이랑 참석한 연회는 그대로 끝이잖아.”

“그건 정말로 아프단 소린가?”

평소라면 여기서 표독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휘두르려 들어야 했다.

내가 아픈 줄 알면 엎드려 기분이라도 풀어 주라는, 모욕을 해야 정상이었다.

“왜, 내가 아프면 신경 쓰여?”

웃긴 하지만 미세하게나마 어색한 이 얼굴은, 그야말로 그에게도 어색함을 가져다주었다.

“장난은 좋아하지 않아. 마지막으로 물을게. 아픈 건가?”

“안,”

“아프면 한 번 더 참석해 줄 테니까 그냥 말해. 네가 아리아를 챙겨 주었듯 나도 그 정도 인정은 발휘하겠다.”

평상시와 같은 분노가 사라진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샤를리즈는 다시 멍해지려다 말고 정신이 들었다.

“……전혀.”

“그렇다기엔, 방금…….”

아스킨이 무어라 말을 하려는 순간, 누군가 연회장의 정적을 깨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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