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5/194)

74화

거침없이 토해진 발언에 헉, 하는 숨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오, 느껴진다. 느껴져. 흥미롭게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이 말이다.

“솔직히 조언드려, 남자에 미쳤다더니 이제는 진짜 미쳐 버린 거예요? 레무트 공작님의 관심을 못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구걸하는 제국의 미친년이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군요?”

“로타리아 백작 영애! 아, 아무리 그래도 공녀님께 너무 무례…….”

근처에 있던 지금까지 잠잠했던 귀족 하나가 기겁해서는 주최자인 백작 영애를 말리려 들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저 백작 영애 이미 눈이 돌아갔다.

“왜요?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죽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어요. 멀쩡히 잘 지내시던 레무트 공작님을 그렇게 잔악하게 괴롭힌 사람이 누구신데? 하, 이제 와서 차여도 할 말 없죠. 난 통쾌했어요! 그런 미친년이 이젠 제 남편이 될 사람에게까지 수작을 부리시는데 저보고 가만히 있으란 말이에요?”

……난 솔직히 좀 황당했다.

정강이를 까고 뺨을 때렸는데, 어딜 봐서 수작이라는 거야?

‘샤를리즈는 마음에 드는 애 때리지는 않았거든?’

게다가 샤를리의 눈을 뭘로 보는 건지.

이 악녀는 가물치는 사람으로 취급도 안 했어.

“수작이라? 재밌네, 재밌어.”

난 픽 웃고는 표독스럽게 날 노려보는 로타리아 백작 영애를 향해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내가 있던 테이블을 향했다.

같이 앉아 있던 영애들을 향해 손짓했다.

조금 전 내게 술잔을 받았던 영애들이었다.

* * *

세 명의 영애들은 샤를리즈가 자신들을 왜 이 순간 불렀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본디 나쁜 짓도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잘하는 법인지라.

이 세 명의 영애는 여기 부합하는 사람들이었다.

정확히는 나쁜 짓을 하고도 멍청한 이들을 방패 삼아 쏙 빠져나올 수 있는 영악함과 빠른 눈치, 처세술을 가진 자들.

순서대로 파란 머리 영애가 아릭타, 갈색 머리 영애가 페소네, 추임새에 능한 영애가 씨클 가문이었다.

“……로타리아 백작 영애, 일단 진정해요. 일단 진정하고.”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요? 못 해요! 내 약혼자까지 빼앗기라고?!”

정작 약혼자는 로타리아 백작 영애를 보호해 주기는커녕 드러누운 채로 꼴사납게 벌벌 떨고 있건만.

감히 샤를리즈에게 덤빈 백작 영애의 배짱만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눈치 빠른 세 영애의 눈엔 이건 배짱이 아니라 객기였다.

아릭타 가문의 영애는 악에 받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로타리아 백작 영애를 살살 달래면서도 은근하게 나머지 두 영애와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같은 생각을 했다.

아릭타 가문의 영애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번 공녀님의 행동은 정당했어요. 로타리아 백작 영애.”

“뭐, 뭐요? 또 저 미친년의 편을 들어줄 생각들이신가요? 이젠 지겨워요.”

자신을 부축하며 달래 주던 아릭타 가문 영애의 말에 백작 영애는 눈이 찢어질 듯 커지더니 억울함으로 얼룩졌다.

이게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사실 저 샤를리즈를 향해 분개해서 소리치는 순간부터 이미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이 치솟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로타리아 영애가 분개하는 순간이었다.

“로타리아 백작 영애! 말을 너무 함부로 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럼 공녀님께서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어도 참아야 한다는 거예요?”

“맞아요, 정말 어이가 없군요. 공녀님께서는 그저 숙녀로서 자신의 명예를 스스로 지키신 겁니다!”

“게다가 이 제국에 다시없으실 유일무이한 공녀님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였죠…….”

씨클 가문의 영애가 버럭 화를 내고, 페소네 가문의 영애마저 합세했다.

끝으로 백작 영애를 달래던 아릭타 가문의 영애가 싸늘하고 멸시마저 품은 표정으로 쌀쌀하게 말하자, 분개하던 백작 영애의 표정이 순간이지만 멈칫했다.

……뭐지?

아릭타 가문의 영애가 감싸 안고 있던 손을 풀었다.

“여기서 공녀님의 고귀함을 모르는 자가 없죠. 게다가 공녀님께서 가지신 저 유일한 색은 이 제국에서 화합과 기적을 상징하는 바.”

아릭타 가문의 영애가 공손하게 샤를리즈의 머리카락을 보았다가 시선을 옮겼다.

“저는 보았어요. 아루스 자작이…… 감히 공녀님의 몸을 노골적으로 훑는 모습을 말이죠.”

“생각만 해도 불쾌하네요.”

“더러워요.”

세 영애의 시선이 아루스 자작을 향했다.

이 수도에서 샤를리즈가 다시없을 악녀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천박한 곳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이냐, 아니 그건 절대 아니었다.

한 손에는 황실을 다른 한 손에는 알츠베이트를.

그리고 본인 자체는 신이 공들여 만든 듯 다시없을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

분명 그녀를 시기하는 영애는 너무나 많았다.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의 감정은 미묘했다.

시기와 동경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 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망나니 영애들이 샤를리즈에게 가진 시기심이란 이러했다.

본인들의 입 안에서 마음대로 굴려 소문을 만든 자들임에도 그녀들은 샤를리즈를 대신해 불쾌감을 느꼈다.

물론 샤를리즈의 압박이 느껴져 나선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겹쳤지만, 그녀들은 이런 일에 있어 프로들이었다.

다시 말해 샤를리즈에 견줄 바는 되지 않으나, 깽판에 있어 스페셜리스트들이었다.

“몸만 훑었을까요? 전 입맛을 다시는 것도 보았어요.”

“더러워.”

“……짜증 나. 감히 저희 공녀님에게 이런 개 같은 짓거릴.”

이 순간 샤를리즈를 향해 ‘또 시작이군.’ 따위의 비난의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이 바닥에 뒹굴며 상황을 살피던 아루스 자작 영식을 향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샤를리즈가 애꿎은 희생양을 하나 만들어 또 악랄한 취미를 즐기는 구나. 패악을 떠는구나 생각했으나, 영애들의 증언으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제는 샤를리즈의 간택을 받은 영애 외에 다른 망나니 영애들조차 상황을 빠르게 눈치채고 편승했다.

싸움은 목소리 큰 자가 승리한다는 말이 있다.

망나니들의 가장 큰 무기는 목소리였다. 게다가 명백한 잘못이 있는 자라면?

더욱이 우기기 좋았다. 우리가 진실을 말하고 있으니까!

“세상에, 더러워요. 우웩, 너무 더러워. 아직도 남의 다리나 훑는 개 같은 영식이 있단 말이에요?”

“이전에 공녀님께서 친히 입을 찢어 준 영식 뒤로 못 볼 줄 알았는데.”

“세상엔 제 버릇 개 못 주는 인간이 또 있는 법이죠.”

샤를리즈의 패악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 명확한 기준을 띄기도 했는데, 바로 이런 사례였다.

“……어머나. 들었어요? 아루스 자작 영식이 저런 사람이었나요?”

“그러게요, 외양은 멀끔해서는…… 다 가식이었나 보지요?”

“커흠, 같은 남자로서 정말 부끄럽군요.”

샤를리즈는 자신에게 기어오르는 자나, 자신을 불쾌하게 만든 자는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제 사촌 오라비에게 들었는데, 아루스 자작 영식을 파사네 2번 길에서 본 적 있다고요. 그땐 잘못 보셨겠거니 했는데…… 설마 홍등가에나 가시는 분인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어머 어머, 저도 들은 적 있어요. 그런 질 낮은 곳에 귀족 영식이?”

특히나 샤를리즈에게 작위가 낮은 영애들로 이루어진 추종자가 있는 뒤에는 가끔 이런 시원한 일을 벌이는 이유도 있을 정도였다.

내 손으로는 건들 수 없던 개자식을 공녀님께서 손봐 주신다?

그럼 오늘부터 우리 공녀님이지!

망나니 영애들의 적극 공세에 여론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샤를리즈의 전적 덕분에 뒤집기 아주 좋은 일이기도 했다.

로타리아 백작 영애는 망나니 영애들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들의 수군거림을 들었음에도 애써 현실을 부정했다.

‘아니야!’

믿기지 않았다.

“아니야, 아니에요! 제 약혼자이신 아루스 자작 영식께서 얼마나 올곧고 바른 분이신데요. 그럴 리가 없어요!”

로타리아 백작가에는 돈이 아주 많았다.

이런 이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품위였다.

그렇기에 돈은 없더라도…… 오랫동안 품위를 지켜 온 아루스 자작가의 영식과 약혼을 맺은 것인데.

그런 자가, 홍등가라니? 공녀의 다리나 훔쳐보았다니?

“더 이상 내 약혼자를 모욕한다면 로타리아의 이름으로 가만히 있지 않겠어요! 다들 닥쳐요, 닥치란 말이야!”

사람들은 크흠, 어머나, 하며 시선을 돌렸지만, 부채와 장갑 뒤로 로타리아 백작 영애를 비웃었다. 어리석기는. 지금 분위기가 보이지 않나?

“영식, 말해 봐요. 아니죠? 아니죠? 아닌 거죠?”

로타리아 백작 영애는 서둘러 자신의 약혼자를 붙잡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억울할 테니 본인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결백을 주장한다면 늦지 않았다.

“…….”

그러나 아루스 자작 영식은 덜덜 떨면서 말을 잇지 않았다.

분명 입이 뚫려 있음에도!

“영식, 영식? 왜 그래요. 어서 억울함을 밝히셔야죠. 이러면 다들 영식이 정말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러니까, 빨리 아니라고 말해. 무슨 말이라고 해 보라고!”

시선을 피하는 남자가, 이 초라하고 하잘 것 없는 인간이 정말 내 약혼자란 말인가?

로타리아 백작 영애의 눈으로 절망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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