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5화 (146/194)

145화

 

한편 플로리아를 더 가까이서 보게 된 샤를리즈는 속으로 감탄하기 바빴다.

와우, 역시 예쁜 건 가까이서, 크게 봐야 한다더니.

샤를리즈는 놀라는 한편 속으로 야광봉을 흔들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묘사만 봐서는 청순함의 끝판왕일 것 같더니만, 진짜네. 완전 예쁘다, 예뻐.’

책 속 묘사 그대로 첫 아침의 흰 백합처럼 물을 머금은 듯한 청초함이 깃든 아름다움에 이쪽을 주시하던 주변 모든 이들이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샤를리즈와 함께 서 있으니 두 사람의 아름다움이 대비되어 마치 보색처럼 서로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낳고 있어 특히 시선이 쏠렸다.

제 얼굴에 익숙해진 샤를리즈 자신조차도 찰나 넋을 놓았을 정도인데, 플로리아를 처음 본 사람들이야 뻔한 결과였다.

한편으로는 볼수록 정말 ‘그’ 플로리다가 맞다는 걸 부정할 수 없어지자 머리가 지끈 아파 왔다.

아니, 정말 여주인공이라면 내 계획은, 내 계획은!

샤를리즈가 이마를 짚자, 조심스러운 손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괜찮은가?”

눈을 들어 올리면, 샤를리즈의 눈에 걱정을 띤 아스킨의 얼굴이 보였다.

생소한 모습이었다.

“몸이 좋지 않은 건가. 돌아가지. 저택으로 안내하겠다.”

“아니, 됐어. 괜찮아. 잠깐 놀라서 그런 것일 뿐이야.”

자연스럽게 아스킨의 손을 밀어내려던 샤를리즈는 차일드 백작을 비롯한 시선을 눈치채고는 얼른 천연덕스럽게 아스킨의 손을 그대로 잡았다.

움찔하는 모습 한번 리얼하고.

솔직히 샤를리즈는 아스킨과 벌인 연극이 성공한 건 아스킨이 이처럼 날것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 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 순간 아주 조심스럽게 이마에 손이 내려앉지 않았더라면 평온하게 그런 생각이나 했을 터였다.

“내 눈을 속이려 하지 마라. 난 내 여동생을 10년 넘게 돌봐 왔다. 네 혈색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어어, 이 말은 좀 오해의 여지가 있지 않나?

샤를리즈는 속으로 당황하며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경악한 눈치였다.

“들으셨어요? 혈색만 봐도 알 정도래요!”

“세상에…… 아직도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연인이신가 봐요……! 얼마나 오래 유심히 보셨으면 얼굴만 봐도 상태를 아실까요?”

수군거림이 작지만 명확하게 들려왔다.

이거 봐, 이거 봐. 다들 순조롭게 오해하잖아?

샤를리즈로서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아스킨이 제가 한 말이 어떻게 들릴지 알긴 하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아픈 여동생을 오래 지켜봐서 환자를 눈치채는 데엔 이골이 났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겠지만.

‘지금 말은 나를 낱낱이 알고 있단 소리로 들린다고. 이 양반아.’

순진한 아가씨가 들었다면 그야말로 감겨 버릴 플러팅이었다.

샤를리즈는 걱정은 둘째치고 플로리아에 대한 것을 더 묻고 싶었다.

이마에 올라온 아스킨의 손을 내리며 그림같이 미소했다.

“날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이런 모습은 내 앞에서만 보여 주기로 한 거 아니었어?”

“아…….”

샤를리즈가 웃으며 다시 눈을 돌렸을 때였다.

플로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호기심과 묘한 것이 어린 눈동자였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한 발짝 더 다가온 플로리아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시선을 거두곤 아스킨에게 인사를 건넸다.

“레무트 공작님을 뵙습니다.”

“무슨 일이지?”

듣는 샤를리즈마저 움찔하게 만드는 싸늘한 음성이었다.

샤를리즈는 오랜만에 향수에 잠겼다.

‘그치, 얘는 이런 얼굴로…… 이렇게 쏘아보는 인간이었지.’

새삼 아스킨의 모습이 변했다는 걸 깨닫게 해 주는 모습이었다.

“저, 그것이…… 이전에 경황이 없어 제대로 된 감사 인사도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요.”

“임무였을 뿐이니, 감사 인사는 받지 않겠네. 난 지금 바쁘니 물러나겠네. 백작, 상관없겠지?”

“네, 물론입니다. 공작님. 하하하…….”

네가 뭐 때문에 바쁜데? 너 이 파티의 주인공 아냐?

샤를리즈가 이런 의문이 담긴 시선을 던졌다.

이도 잠시 아스킨이 부드럽게 잡아당기는 손에 그녀는 순순히 이동해 주었다.

그녀라고 딱히 차일드 백작을 오래 보고 싶진 않았던 데다가 플로리아 쪽은 만나서 신기하고 감탄하긴 했지만 머리가 아픈 상황이었다.

마지막으로 흘끗 보게 된 플로리아의 모습은 금세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눈망울이었다.

하기야 은인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단 말은 진심이었던 듯한데, 이런 반응이었으니 당혹스러울 만도 했다.

내가 저 기분 잘 알지. 샤를리즈는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서 파티의 주인공께서는 뭐 때문에 바쁘신데?”

두 사람이 멈춘 곳은 한적한 테라스였다.

아스킨이 바깥에서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커튼을 내리자, 샤를리즈는 기다렸다는 듯 장식되어 있는 소파에 앉아 다리를 뻗고 앉았다.

오만하고 거만한 자세였지만 나른한 표정을 지은 그녀와는 매우 잘 어울렸다.

아스킨은 희게 드러난 발목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모르긴 뭘 몰라, 바빠서 나를 여기 데려오신 분이. 이제 용건을 보러 가시나?”

“용건이라니.”

아스킨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느릿하게 찡그렸다.

달빛 때문일까 유독 그의 얼굴이 희게 빛이 났다.

“내가 집중해야 할 사람이 여기서 너 말고 또 있나?”

……이 남자 보게?

샤를리즈는 헛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이놈 왜 이래?’

왜 갑자기 사람이 뒤바뀌어서는 순진한 아가씨가 홀딱 홀리기 좋은, 아니, 유죄를 외칠 인간이 되었단 말인가?

사람이 바뀌는 것도 정도가 있는 거지.

“말 나온 김에 하나 묻자. 넌 감사 인사를 그런 식으로 응답하니?”

아스킨은 무슨 말이냐는 듯 잠시 의문을 틔웠다가 곧 대답했다.

“혹시 조금 전의 일을 말하는 건가? 그거라면 내 임무였을 뿐이다. 감시 인사라면 내가 아니라 차일드 백작이 받아야겠지. 애초에…… 백작이 의뢰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곳에 갈 일도 아니, 그곳에 왕국 세력이 만든 아지트가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아스킨이 이리 말하며 조금 전엔 다 말하지 못한 그때의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 말을 듣고 보니 그러네.’

결국엔 아스킨이 구출하긴 했지만 차일드 백작의 의뢰가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니, 감사는 백작에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럴듯했다.

다만 조금 의문이었던 점은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아스킨은 다소 이상하고 지나칠 만큼 플로리아에게 냉정했단 점이었다.

예법이라면 이안만큼 완벽한 예법은 아니더라도, 아스킨은 기본적으로 기사로서 레이디를 존중하는 미덕을 갖춘 인간이었다.

게다가 아스킨은 책 속에서 남주 후보에 속하진 않았지만 여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플로리아와 손을 잡는 인물이었다. 최소한 동료란 말인데.

제아무리 원작이 시작하지 않았더라도 호의의 ‘호’ 자도 보이지 않으니 이상했다.

“그래, 뭐.”

샤를리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여기 얼마나 있을 거야?”

조금 전에 둘이서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하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뭔가 묘했다.

“왜 그러지? 돌아갈 거라면 데려다주겠다.”

“왜?”

“뭐?”

“왜 안 하던 짓을 하려 하냐고. 아까도 연회장에서 우린 파혼한 게 아니라는 말도 그렇고, 조금 전엔 나 말고 중요한 사람이 또 어딨냐는 말도 그렇고.”

두 사람 사이에 그렇고 그런 일만 없었다면 딱 오해하기 좋은 말과 행동이다.

과거라는 장벽이 아주 크긴 하지만. 샤를리즈는 이 순간 그 벽에 금이 갔음을 인정했다.

“……오늘만큼은 넌 내가 초대한 사람이다. 끝까지 책임지겠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샤를리즈가 도도하게 다가갔다.

아스킨은 움찔하며 발을 빼려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검사인 자신이 타이밍을 놓치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 그럼 그 책임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데?”

샤를리즈가 아스킨을 보며 은근한 눈웃음을 지었다.

“그 책임은 이 연회가 끝나고도 유효한가?”

아스킨은 다시금 후각을 파고드는 장미 향에 눈을 질끈 감고 싶은 심정이 됐다.

그러나 시선을 사로잡힌 듯 눈을 휜 샤를리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는 너랑 이 연회가 끝나고도 유효했으면 좋겠는데.”

“……뭐?”

“책임져 보라고.”

샤를리즈의 손가락이 툭 아스킨의 어깨에 닿았다.

샤를리즈는 이 손가락이 금세 뿌리쳐질 거라 생각하고 느릿하게 아래로 쓸어내렸다.

‘뭐야, 왜 가만히 있어?’

살짝 당황하는 사이, 손이 붙잡혔다.

“책임지면…….”

커다란 손이 뜨거웠다. 흡사 맥동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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