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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오빠는 덤입니다-156화 (157/194)

156화

“너는 황실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느냐?”

“……비밀?”

차일드 가문은 좋게 망하면 장사와 정보, 협상에 타고난 가문이었으며 나쁘게 말하자면 박쥐 같은 이들이었다.

필요에 의해 강자에게 기생하는 것은 물론 어디에든 붙을 수 있단 소리였다.

그렇게 오랜 세월 강자들의 옆에서 자리를 지켜 온 차일드 가문은 그 강자들이 쓰러지는 와중에도 잘만 살아남았다.

그들은 한쪽에만 끈을 만들어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정보들 중에서 어느 날 이번 세대의 가주, 현 차일드 백작은 대단한 정보 하나를 알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대대로, 기이한 힘에 미친 자들이 나타난다. 그자들은 때때로 이성을 잃고 사람을 죽이거나 피를 좋아하는 등 광인의 면모를 보이지. 익숙한 소리 아니더냐?”

제국에는 몇 세대에 한 번씩 폭군이 나타났다.

피를 좋아하고 전쟁을 사랑하며, 포로를 여지없이 잔악하게 죽이는 이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이들의 공통점은 머리가 좋으며 정무에는 정확하다는 점이다. 마치 간헐적으로 여기, 이성이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냥 폭군이기만 했다면 이 황조는 결코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폭군들은 신기하게도 잔악하기만 할 뿐 정치 감각이 매우 좋고 정무에도 능했다.

한마디로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그러나 폭력적인 군주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많이 들어 본 이야기 아니더냐? 현 황제께서는…… 이러한 이야기에 부합하시지.”

이안은 대답하는 대신 침음을 흘렸다.

만약 아비의 말이 사실이라면 현 황제 록시디언은 과연 이런 조건에 부합했다.

“……대체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알아내신 겁니까?”

“몇 대 전, 그러니까 네게 증조할아버지 되는 분께선 황실 시종장과 절친하게 지내셨지. 그 집안은 몇 대째 시종장을 하다 그 시절에 경질되었고, 그들에게서 사들인 재산 중에서 이런 기록이 있지 않겠더냐. 찾아낸 것은 나이지만 말이다.”

차일드 백작은 지금보다 젊은 시절 찾아냈던 기록을 떠올렸다.

그는 호기심 많은 어린 상인이었고, 우연히 다락방에서 발견한 잡동사니에서 돈이 될 만한 것을 찾다가 금지된 기록에 가까운 대단한 정보를 알아내고야 말았다.

“자세하게는 저 먼 옛날 고대 짐승이 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만, 기록한 자는 이것보다는 역대 광증을 앓았던 황제의 사연과 증세만 자세히 적어 두었더구나. 내 추측이다만…… 기록한 자는 나중에 이것을 요긴하게 써먹으려 했을 것이다.”

기록에서는 그런 집요함이 느껴졌다.

만에 하나 제가 권력을 잃더라도 이것을 이용에 되찾고야 말겠다는 그러한 집념 말이다.

차일드 백작은 동질감을 느꼈다.

“그럼 아버지밖에 모르는 사실입니까?”

“그렇지, 이제는 너와 나 둘이겠구나.”

이안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물었다.

사실인진 모르나, 확실히 현 황제는 기묘한 면모가 있고 이는 차일드 백작이 말한 것과 일치했다. 다시 말해 그럴싸한 이야기였단 소리다.

“황제 폐하께서 정말 기묘한 광증, 같은 것을 앓고 계신다면…… 그게 플로리아란 여자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오, 그래. 내 똑똑한 아들. 지금부터 이야기하려 했지. 자, 이렇게 생각해 보자꾸나.”

차일드 백작이 테이블 위에 있던 체스말을 들어 올렸다.

종종 손님과 체스를 두기도 하기에 한쪽에 정리되어 있던 것이었다.

백작이 들어 올린 말은 다름 아닌 ‘킹’이었다.

“만약 황실에서 소수가 앓는 이 ‘광증’이 저주와 같은 것이라고 해 보자꾸나. 그럼 저주를 해소하는 자도 있지 않겠느냐?”

이어서 백작이 들어올린 말은 ‘나이트’와 ‘퀸’이었다.

“기록에는 애매모호하지만 이런 광증을 해결하는 자들의 이야기도 나와 있더구나. 다만 그 잘난 황실에서도 풀어내지 못한 수수께끼였지. 나는 이 기록을 발견한 순간부터,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답을 찾아 헤맸단다.”

기록상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황실에 대대로 광증을 해소하는 방법에 대해서 구전 설화처럼 예언이 내려오고 있다고 적혀 있었고, 그 예언은 마치 시구절처럼 굉장히 광범위하고 모호했다.

백작은 나이트를 제 앞에 두고 퀸 만을 들어 올렸다.

이안은 알아차렸다.

“……설마, 그 해결 방법이라는 게 플로리아란 말입니까?”

“그렇단다. 아들아. 그리고 그 여자는 나와 뜻을 같이하기로 했지.”

차일드 백작이 씩 웃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았던 검은 욕망이 드글거렸다.

이안이 잠시 흠칫하고 말 정도로.

“플로리아와는 이미 오래전부터 접촉했지. 그녀가 포로로 잡힌 건 예상 못한 일이었다만, 오히려 잘됐어. 토벌이 성공하고 그녀를 수월하게 제국으로 들였으니 말이다!”

세상에 운명이란 게 있는 걸까?

놀랍게도 여성에겐 단 한 줌의 관심도 주지 않던 현 황제 록시디언이 처음으로 관심을 보였다.

그 모습에 얼마나 큰 희열감을 느꼈던가.

“황제는 플로리아의 정체를 알아차리면, 아니 그녀가 스스로 정체를 밝혔을 때, 분명 꼼짝없이 빠져들 것이다.”

세상 그 누구도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미모, 순종적인 성격.

게다가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광증마저 치료할 수 있다.

황제는 운명처럼 플로리아에게 빠져들고 말 것이다.

차일드 백작은 선조와 같이 여러 강자에게 끈을 만들고 기생하여 살아왔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 아니, 혐오감을 느꼈다.

“플로리아는 우리와 뜻을 같이할 것이다. 나는, 플로리아를 이용하여 황제를 치겠다.”

이안이 찌푸렸다.

그의 입장에서는 제 아버지가 무슨 헛꿈을 꾸는 건가 싶었다.

“아버지, 그건 반역 행위입니다. 그간 제게 가르쳐 주신 가문의 기치, 수많은 것들이 모두 거짓이셨던 겁니까?”

“넌 모른다. 우리 가문이 그간 얼마나 비굴하게 살아남아 왔는지!”

차일드 백작이 참지 못하고 손에 든 퀸을 던져 버렸다.

“우린 이미 새로운 ‘로드’의 주인이 되었다. 우리 가문에겐 다시 없을 기회야. 현 황제는 이 제국을 망치고 있어!”

“…….”

이안은 가만히 생각했다.

‘레무트 공작의 빚을 변제해 준 것 또한 여기까지 생각한 것이었던가…….’

이안은 여전히 침착했다.

그는 난감한 얼굴을 꾸며 내고는 동조하는 척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장사꾼은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모든 것을 걸지 말라는 말씀을 잊으신 겁니까?”

“오오, 잘 기억하고 있구나. 그래. 그렇지. 장사꾼은 모든 것을 걸면 안 돼.”

차일드 백작이 씩 음흉하게 웃었다.

“그래서 실패할 시엔 모든 책임은 알츠베이트가 가져갈 것이다.”

이는 곧 이 반역 계획에 알츠베이트를 끌어들이든 혹은 뒤집어 씌우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 말에 이안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알츠베이트 공작이야 어떻게 되든 아무런 생각이 없으나, 자칫 그 불똥이 샤를리즈에게도 화를 입힌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예전에도 지금도 정말로 존경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건 너무 위험성이 높습니다. 성공 가능성이…….”

“이안.”

“더 이상 저를 실망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이안은 마지막으로 아들 된 도리로서 이렇게 말했지만, 이미 차일드 백작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하였다.

도리어 이안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겁쟁이를 보듯 제 아들을 자비롭게 응시했다.

그런 네 모습마저 내가 포용하겠다는 것처럼.

“모든 건 이 아비가 책임지고 실행할 테니, 너는 가만히 있거라. 난, 널 꼭 제국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을 것이다.”

이안을 위한 길이라 하였으나, 결국 이것은 차일드 백작이 권세를 누리는 길이었다.

이안은 부친을 설득하려 했으나, 이미 차일드 백작은 이성을 잃어버린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안은 이런 맹목적이고 집요하며 집착적인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얼굴을 한 이들의 뒤는…… 늘 실패하거나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또한.

이안은 언제 심각했냐는 듯 평소처럼 부드럽게 웃었다.

아버지의 뜻에 감동한 아들처럼.

“아버지의 뜻 받들겠습니다.”

가늘어진 웃음 뒤로 예기가 흘렀다.

이 순간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은 오로지 샤를리즈에 대한 것뿐이었다.

* * *

나는 고민에 잠겨 있었다.

“공녀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말씀하신 신설되는 철광석 광산의 8할이 허위 매물이었습니다.”

플로리아도 나타났겠다.

원작과는 전혀 다른 타이밍에 나타난 그녀를 보고 있으려니 이제는 원작과는 정말로 어긋나 버린 것을 깨닫고 더는 늦지 않게 여기저기 알아본 것들을 수거하고 정리하는 중이었다.

알츠베이트 공작을 공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선택한 것은 알츠베이트 가문이 그간 해 온 수많은 불법을 들춰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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