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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오빠는 덤입니다-157화 (158/194)

157화

“그리고 정보 길드에 저를 통해 의뢰하신 일도 답변이 왔습니다. 말씀하신 하넨시(市)에서는 불법 노예 경매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알츠베이트 가문은 원작의 주연은 아니었지만 샤를리즈라는 악역 덕분에 그들이 한 짓이 간접적으로 여기저기 드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땅 위로 툭 튀어나온 나무 뿌리를 보고서 위치를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간 천천히 알아내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던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재벌 가문이 웬만한 범죄는 덮던 걸로 미루어 봤을 때…….’

알츠베이트 가문 역시 웬만한 범죄를 묻어 버릴 수 있는 위치의 권력자였다.

‘그럼 덮을 수 없는 걸 들춰내면 되지.’

다행히 이런 방면에서 알츠베이트 공작가는 거의 노다지나 마찬가지라고 할까.

살짝 염탐을 보냈는데 곳곳에서 금광이 터지는 수준이었다.

‘그나저나 제트 얘는 잘도 알아 오네. 보통 호위 기사가 이렇게까지 유능한가?’

제트에게 일을 맡기기는 했지만 반신반의했다.

여차하면 내가 직접 나가서 알아보려 했는데, 이게 웬걸 제트는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내가 시킨 일들을 해냈다.

가끔 보면 어떤 단체를 이끌어 본 경험이 있나 싶을 정도로 여러 업무에 능하더라고.

“제국은 전쟁을 많이 하는 곳. 귀족가 또한 웬만해선 사병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철광석 소비가 어마어마한 나라.”

폭군 록시디언이 전쟁과 전투를 선호한다는 건 기초 상식이나 다름없었다.

본인은 광증을 이렇게 해소하려 했던 모양이지만.

“하지만 이 철광석이 사실은 리베이트로 인해 불순물이 잔뜩 들어간 거고, 순물질을 받은 게 아니었다면 어떨까…….”

과연 이때에도 알츠베이트 가문을 충성스럽게 따르던 가문이 편을 들려 할까?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이득에 가장 예민한 법이다.

‘게다가 폭군 그놈에게도 알츠베이트를 내쫓을 명분을 주는 거지.’

이제 마지막으로 그럴싸한 증거만 찾으면 되는데 말이지.

나는 고민하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것만은 내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겠네.’

그렇게 일어나서 창문 너머를 바라보다 슬쩍 얼굴을 돌렸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방, 불이 환히 켜진 방은 익숙한 사람의 방이었다.

아스킨의 방이었으니까.

‘……곤란하네.’

아스킨 그놈의 더럽게 잘생긴 얼굴이 뇌리에 툭 달라붙어 온종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건 내 탓이 아니었다.

‘저놈이 생각나게 구는 탓이지.’

나는 머리를 헝클였다.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다.

차갑고 냉정하던 눈이 그런 식으로 변해 버렸는데, 그 안에 깃든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할 리가.

다만, 의문스럽긴 했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만든 건데?’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해서, 나 한 번만 봐 달라고 얼쩡거릴 때는 단 한 번을 돌아보지 않다가 이제 와 체념했더니 돌아보는 아스킨을 보고 있자니 더 애를 태우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다.

오히려 역전된 이 관계에서 순순히 수긍하는 대신 그래서 어디까지인데? 그 감정은? 하고서 도발하게 된다는 거다.

‘지구에서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꼬인 심사냐, 아니면 샤를리즈의 성격이 나한테 융화된 거냐.’

나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츠베이트 공작이 철광석에 장난질을 쳐서 제 편이고 남의 편이고 할 것 없이 여기저기 가져다 판 정황을 발견했겠다.

증거를 가지러 가야겠다.

다만, 이 증거만큼은 내가 직접 받으러 가야 했다.

의뢰한 정보 길드에서 직접 대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주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궁금했던 모양이지.’

어차피 지금 받으러 가는 증거는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없는 증거였다.

아마 가지고 있는 걔네도 이게 어디에 필요한 건지는 몰라도 일단 중요해 보이니까 하수인에게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채비를 마치고 망토까지 뒤집어쓴 뒤에 마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차 앞에서 가장 수수한 마차를 하나 고르고 있는데, 주변에서 머뭇거리는 기사들이 내게 말을 걸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저어, 공녀님……!”

그중에 한 사람이 용기를 내고 내게 말을 걸었다.

내 시선에 금세 쭈뼛쭈뼛해져서는 어깨를 떨었지만.

“외람되지만 야심한 시각에 어딜 가시는 것인지 감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와아, 엄청 조심스럽네.

나는 잠시 내가 이 기사를 쥐잡듯이 잡은 적이 있었나 고민했지만 기억엔 없는 얼굴이었다.

“내 목적지를 알아서 어떡할 건데?”

“아, 다름이 아니라 공작님께…….”

“보고한다고? 내가 이 성을 아예 나가는 것도 아닌데 외출을 그 사람 허락 맡고 나가야 해?”

사실 충분히 물어볼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대로 실랑이가 길어질수록 아스킨이 직접 나타날 것이기에 일부러 까칠하게 답변했다.

그러나 살짝 늦었던 것인지, 아스킨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부관인 벤이 나타났다.

아마 이 근처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공녀님께서는 현재 이 성의 귀중한 손님이십니다. 손님께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저희로서도 공작님께서도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 그럼…….”

여기서 제트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는 현재 알츠베이트의 동향을 살피는 중요한 역할을 맡아 이곳에 없었다.

“마침 호위도 없겠다, 너희들 중 하나가 따라오든가.”

“……예?”

“대신 단 한 명뿐이야. 제일 실력 좋은 사람이 따라와.”

이렇게 말하고서는 문을 쳐다보자, 근처에 있던 기사가 허둥지둥 문을 열었다.

기사들 사이에서 소요가 일어나더니, 잠시 뒤 나와 함께 자리에 오른 자는 다름 아닌 아스킨의 부관 벤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마부에게 목적지를 알렸고, 마차는 고요히 출발했다.

“공녀님.”

침묵의 틈 사이에서 벤이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생각해 보면 이 자와는 맨 처음에 레무트 성을 방문했을 때를 제외하면 제대로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어찌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난감한 얼굴이 보였다.

“……시간을 조금 주셨더라면 분명, 그, 공작님께서 직접 나서셨을 겁니다.”

그 말은 이미 지금쯤 아스킨의 귀에 내 외출이 들어갔으리란 소리였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쯤이야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서 빨리 출발한 거라곤 생각 안 해? 딱히 같이 가고 싶진 않았는데.”

“…….”

“구속하는 남자는 매력 없어.”

그러자 벤의 표정이 묘해졌다.

마치 ‘과거의 네가 했던 짓이 구속이 아니면 뭐였냐’ 내지는 ‘그럼 네가 했던 짓은 뭔데?’ 하는 얼굴이라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남자는 너무 눈에 띄어. 그래서 같이 가지 않으려 했던 것뿐이야.”

“……외람되지만, 그 말씀은 공녀님께도 해당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나는 대답하는 대신 몸에 걸치고 있던 로브를 팔랑 흔들었다.

“나야 이걸로 머리카락부터 가리면 된다지만, 너희 공작님은 어디 그게 가린다고 가려지는 덩치니?”

“……그 말은 맞습니다만.”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니까. 밤 산책이란 게 그렇지.”

그러자 벤은 이번에도 표정으로 ‘대체 님이 은밀하게 움직일 일이 뭐가 있는데?’ 하는 표정을 했다.

그러다 표정을 굳혔다.

“공녀님, 공녀님께서는 현재 레무트 저택의 손님으로 계십니다. 공녀님의 산책에 누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으나, 이대로 도박장…….”

“도박 아니고 가면 파티도 아니야.”

“…….”

나는 다리를 꼰 채 턱을 괴었다.

영 미심쩍게 나를 바라보는 벤을 보고 있으려니, 과연 수장을 따라서 이 기사들의 경계심도 많이 풀렸구나 싶었다.

“그보다 기왕 함께 탄 김에 다른 얘기나 해 보자. 나 심심하거든.”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처음엔 노려보기 바빴고, 그 아래로는 애써 숨겼지만 나는 예민하게도 희미한 경멸을 느끼곤 했던 것이다.

‘샤를리즈’의 자업자득이었지만.

“요즘 너네 공작님은 왜 그런대?”

허물없는 호칭에 벤의 표정이 살짝 딱딱해졌다가 이내 풀렸다.

이럴 땐 샤를리즈의 이미지가 참 편했다.

봐, 지금도 ‘얜 원래 이랬지…….’ 하는 알아서 수긍 어린 얼굴을 하지 않은가.

신기하게도 내게 어딜 가는지 추궁할 법도 한데, 이런 의문을 보이는 대신 내 질문에 큼큼 헛기침을 하며 벤이 대답했다.

“크흠, 저희 공작님의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몰라서 물어?”

“…….”

“너희도 잘 알잖아. 아스킨, 요즘 이상해진, 아니 변한 거. 왜 그런다니?”

아스킨이 무엇 때문에 심경 변화를 겪었는지 벤이 아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최측근이니 뭐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 던져 본 것이었는데.

“변한 것은…… 공녀님께서 먼저 아니십니까?”

“흐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손바닥도 부딪쳐야 소리 나는 것처럼 한쪽이 변했다면 그 관계 또한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기엔 내가 사과하면서 쫓아다닐 때 미련 없이 쫓아내던데.”

“저희 공작님께선 원래 느리십니다.”

벤이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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