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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오빠는 덤입니다-179화 (180/194)

179화

바깥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흐릿하기에 알아보기 조금 힘들었지만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시간 같았다.

“제트 지금 시간은 몇 시쯤 됐을까?”

“아마, 곧 날이 밝을 시간으로 생각됩니다. 아니, 맞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잡힐 즈음에 알츠베이트 저택 내엔 기사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외에도 계속 결집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분명 이건…….”

“응, 알아. 예상했던 대로지. 제트, 우리 마지막 문서는 그 사람에게 제대로 갔지? 웨어우드 프레보스트.”

“예, 프레보스트 후작에게 도착한 것 또한 정보 길드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좋아.”

웨어우드 프레보스트 후작은 아스킨의 스승 격인 사람이다.

아스킨 못지 않게 지독한 충신이긴 하지만, 동시에 정의로운 사람이니.

분명 이 상황을 그냥 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잡혀서 갇힌 것만 제외하면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데 말이지…….

“나갈 수 있을까?”

“예, 원하신다면 가능합니다.”

“아니, 무리일 것 같다. 그렇지? 창문을 깨뜨릴 만한 게 없나…….”

“농이 아닙니다, 공녀님.”

“응, 농담 아닌 거 알아. 무리하는 걸 원치 않는 거지.”

“무리도 아닙니다.”

나는 방을 살펴보다 고개를 돌렸다.

“아니, 무리야. 난 너를 건강하게 오래 보고 싶고, 팔이 부러진 검사를 부릴 만큼 매정한 주인이 아니야.”

“팔이 멀쩡하다면 다시 부려 주시겠습니까?”

“뭐?”

아깐 부러졌다며? 혹시 머리도 크게 맞은 걸까.

충격을 받아서 말을 이랬다가 저랬다가 할 가능성도 있는데…….

“공녀님께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분명 제 팔은 지금 부러졌고 멀쩡하다는 건 아닙니다. 그저 당장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까요.”

“……어떻게?”

“저는 성기사입니다, 아니 성기사였습니다, 공녀님.”

그거야 네가 고백해서 잘 알지. 이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나는 천천히 원작 내용을 떠올리다가 아, 하는 얼굴로 제트를 향했다.

“최상위 성기사는 자신의 몸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잠깐, 너 그 정도였어?”

“과거의 영광일 뿐입니다.”

“아니, 잠깐만.”

나는 처음으로 제트의 본명을 듣지 않았던 걸 후회했다.

그 스스로를 치료할 정도의 대단한 성기사는 제국에 몇 명 없잖아?

신이 성기사를 아끼어 스스로를 치료할 힘을 내주었다.

단 그 성스러운 힘은 극소수에게만 허락될지어니.

“그리 효율이 좋은 힘은 아닙니다. 오늘 쓰게 되면 길게는 3개월에서 반년 정도 쓰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

“아니, 그렇다고 해도 대단한데……?”

“그럼 사용하겠습니다.”

내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제트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피어올랐다.

나는 저 빛이 문득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아, 내가 여기서 처음 눈을 떴을 때 봤던 신과의 계약서. 그 양피지에서 나온 빛이랑 비슷한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 빛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회복한 제트는 자신을 묶은 밧줄을 내 도움도 없이 손쉽게 풀어냈다.

멍이 사라진 얼굴을 보며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니, 얼떨떨해서 생각을 못했는데.

“혹시 그 힘, 쓰면 불이익은 없어? 너 신전에서 쫓겨났다며.”

“음, 정확하게는 쫓겨난 것이 아니라 팔린 겁니다.”

“아무튼 간에.”

“제가 현재 공식적으로 파문당한게 맞다면, 아마 이 힘을 사용한 걸 들켰을 때 사형당하겠군요.”

“……뭐?”

제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공녀님께서 신전에 말씀하지 않으신다면 들킬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무덤까지 가져갈게.”

“아, 그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응? 뭐를?”

“사실 팔 골절뿐만 아니라, 갈비뼈 5개 추가 골절, 다리 뼈에도 금이 간 듯했고, 발목은 돌아간 상태였습니다.”

“…….”

나는 잠시 침묵했다.

“……힘 안 썼으면 나한테 죽었겠다. 너는.”

거짓말할 게 따로있지. 어쩐지 몸을 일으키는게 힘들어 보이더라.

그래, 좋게 생각하자. 제트가 말끔히 회복한 거잖아?

아마도 알츠베이트 공작이 여기에 제트를 함께 넣어 준 건, 네가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걸 내 눈으로 확인이나 하란 소리였겠지.

역시나 악취미다.

‘그런 인간은 여기가 아니라 지옥에나 떨어져야지.’

나는 창문을 빤히 보았다.

* * *

밤부터 시작한 비는 아침이 되며 더욱 강한 빗줄기가 되었다.

굵어진 빗방울이 건물이며 나무를 세차게 두드리는 날씨.

알츠베이트 공작은 저택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공작이 지금까지 모은 정예 기사가 열과 오를 지어 정갈하게 서 있었다.

하나같이 비장한 표정이었다.

가장 앞에 있던 기사 단장이 정중하다 못해 비굴할 정도로 허리를 푹 숙였다.

알츠베이트 공작은 흡족하고 음흉하게 웃었다.

“이제 때가 되었구나. 그간 치욕을 갚아 주러 가자꾸나.”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알츠베이트 공작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아니, 웃고 있는 것이지만 지나친 나머지 일그러진 얼굴처럼 보였다.

‘오래 기다렸다.’

드디어, 이 순간이 오고야 만 것이다.

알츠베이트 공작이 탄 마차가 정신없이 달렸다.

잠시 후, 알츠베이트 공작은 쏟아지는 빗발에도 불구하고 직접 마차에서 내렸다.

공작이 도착한 곳엔 낯익은 인물이 서 있었다.

바로 차일드 백작이었다.

“공작님을 뵙습니다.”

백작은 허리를 굽혀 예를 갖췄다.

그 어느 때보다 공손한 모습이었다.

비록 두 사람은 아스킨이 이룩한 새로운 로드 개척 건으로 잠시간 갈등을 빚었으나, 알츠베이트 공작의 주선으로 그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이르렀다.

차일드 백작은 권력을 바랐다.

그러나 자신의 이상에 다가가기에 영향력이 부족했다.

알츠베이트 공작은 영향력과 권력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결정적인 한 방이 모자랐다.

두 사람은 서로를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점을 깨닫고 과거는 잠시 잊기로 하였다.

“……감탄했습니다. 역시, 알츠베이트 공작님이십니다!”

차일드 백작은 알츠베이트 공작과 함께 도착한 기사들의 수를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플로리아가 지금도 잘해 주고 있다면 이 대규모 기사들의 이동 소식은 감쪽같이 숨겨졌으리라.

“모든 것은 준비된 것인가?”

“예, 물론입니다. 지시하신 모든 것을 받아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알츠베이트 공작은 흡족한 얼굴과 함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쏴아아아, 비는 그치지 않고 내렸지만 오히려 이는 이들에게 호재였다.

쏟아지는 비가 기사들의 이동을, 소리를, 흔적을 기껍게 감춰 주고 있었다.

즉, 하늘까지 자신들의 편이었던 것이다!

알츠베이트 공작의 얼굴로 호탕한 미소가 어렸다.

“지금 내리는 이 비와 함께 이 제국도 모든 것이 씻겨 나가고 새로운 제국이 되겠군.”

“……새로운 제국이 건국되는 시기에 함께하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차일드 백작의 아부가 나쁘지 않다는 듯 공작은 턱을 쓸며 웃었다.

“그럼 저는 공작님께서 신호를 주시면 바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차일드 백작이 이렇게 말하면서 뒤로 물러나자, 알츠베이트 공작의 뒤에 서 있던 공작의 부관이 찡그리며 나서려 했다.

그러나 알츠베이트 공작이 손짓하자 동작을 멈추고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곧이어 마차에 다시 오른 알츠베이트 공작에게 부관이 닦을 천을 건네며 기다렸다는 듯 질문했다.

“공작님, 외람되오나 차일드 백작도 동행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조금 전 태도는 분명 여차하면 내빼겠다는 듯한 태도로 보였습니다.”

“제대로 봤네.”

알츠베이트 공작 또한 모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더욱 그냥 둬선 안되지 않겠습니까?”

“됐네.”

차일드 백작과 알츠베이트 공작은 분명 서로의 이득을 위해 손을 잡았지만, 저 장사치는 마지막까지 저울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고, 공작 또한 이를 알고 있었다.

“내 이제 저 치를 잘 알지. 다그친다 한들 오랫동안 박쥐처럼 살아온 저 작자가 제 목을 직접 들이밀겠는가?”

알츠베이트 공작이라고 그대로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오늘 거사가 성공한다면, 저 자는 분명 후에 떳떳하지 못한 순간을 마주할 걸세. 그때 처리하면 그만이야.”

거사가 실패하면 침몰하는 그 배에 자신만 타고 있진 않게끔 증거를 남겨 두었다.

“오늘은 약속한 것을 물심양면 지원할 테니 그냥 두는 걸뿐.”

‘그러니 죽어도 함께 죽는 것이지.’

그러니 이 정도 겁먹고 물러나는 정도야, 여유롭게 봐주기로 했다.

“아마 거사가 완성되기까지 저 작자는 절대 얼굴을 내밀지 않을 걸세.”

“……공작님, 그건.”

“됐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마지막 본전은 잃지 않겠다는 저 욕심이 결국엔 모든 걸 잃게 만들거다. 나 또한 성공하기만 하면…… 중요할 때 발을 빼는 가신 따위 필요하지 않으니 말이다.”

마차가 황성에 다가갈수록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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